며칠 전부터인가 알라딘 바탕 메뉴 한편에 "오뒷세이아"라는 붉은 링크가 생겨난 것을 보니, 이제 막 개봉했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보통은 아닌 듯하다. 하긴 지난번에도 원자폭탄 개발을 지휘했던 과학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전국민이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얼마나 좋았을까"를 외치게 했으니 그 영향력을 충분히 알 만하다.


그래서인지 알라딘에서도 관련 도서 특별전 메뉴를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뭔가 싶어 클릭해 보니 영화 개봉에 맞춰 간행된 갖가지 해설서와 편역서가 나오고, 심지어 수년 전부터 준비했음직한 호메로스 원전 번역본까지도 여러 종 나오니, 이래저래 당분간은 '호메로스'와 '오디세이(아)'라는 키워드 따라 돌아가는 출판계와 서점계와 독서계가 아닐까 짐작된다.


물론 영화가 되었건 드라마가 되었건 간에 이번 기회에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어보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간혹 방송에서 이 고전을 소개받는 사람 대부분이 '시 형식이라 어렵다'는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것을 감안하면, 그토록 굳건했던 대중의 편견이 고작 영화 한 편 때문에 무너졌다는 사실이야말로 살짝 우스워진다.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유명 영화의 영향력 덕분에 관련 단행본이 간행되는 것이 좋기보다는 싫다는 편인데, 왜냐하면 영화 개봉 일정에 맞춰 날림으로 번역되는 경우도 많고, 역시나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감과 동시에 모조리 외면을 받기 때문이다. 과거 <트로이>나 <알렉산더>나 <베오울프> 같은 영화가 그러했으니, 지금은 저 영화만큼이나 관련서도 잊힌 상태이다.


이번 영화와 관련해서는 어느새 네 종으로 늘어난 호메로스 원전 번역을 서로 비교해 읽어보는 것 정도가 의미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막상 저 영화는 2017년에 간행된 새로운 영역본을 토대로 한 것이라서 또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일각에선 가뜩이나 여성의 비중이 적은 고대 서사시인데도 불구하고 여성 번역자가 PC 색채를 입히려 애썼다(!)는 비판도 있는 듯하다.


고전 번역은 시대마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말이야 쉬워도 실제 결과물을 내놓기는 힘들게 마련이다. 서양에서야 그리스어와 각국 언어의 유사점 때문에라도 다양한 번역 시도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우리말로 옮기려 하면 아무래도 극복할 수 없는 차이점이 더 부각되지 않을까. 가만 보면 천병희 이후의 번역본 모두 이 점을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한 가지 바람이라면 언젠가는 고대 그리스어 지식과 시적 재능 모두를 보유한 이례적인 인재가 나타나서 마치 호메로스가 빙의한 것처럼 정확하면서도 때로는 과감한 번역을 시도하는 것인데, 과연 나귀님의 생전에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산문역으로 호메로스를 처음 접한 나귀님으로서야 천병희를 위시한 운문역만 네 가지인 현실만 해도 감지덕지이지만.


그나저나 이번 영화의 차마 무시 못할 영향력 때문인지, 호메로스 서사시의 제목은 <오디세이아>이지만, 영화 제목에 맞춰 <오디세이>라고 표기하거나 아예 영어를 병기한 경우도 흔한 듯하다. 알라딘의 특별전 메뉴에 소개된 책들 중에서도 비전공자의 해설서와 편역서는 "오디세이아"로, 원전 번역자는 "오뒷세이아"로 쓰는 (알라딘도 덩달아 이쪽인) 모양새이다.


그리스어 철자 입실론(Y)을 '이'로 읽느냐 '위'로 읽느냐의 차이인 듯한데, 그리말 사전에 붙은 강대진의 설명처럼 '위'로 읽으면 '테티스'와 '테튀스'를 구분할 수 있어 편리한 점도 있다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표기의 어려움 때문인지 편의상 '이'로 읽는 경우도 흔한 모양인데, 얼마 전 <국가>를 뒤적이니 박종현 선생도 편의성 면에서 '이'를 지지했었더랬다.


그나저나 알라딘의 "오뒷세이아" 특별전에 소개된 책 중에는 의외로 빠진 것이 더러 보인다. 우선 원전 번역 중에서 민음사의 김기영 번역본은 찾아볼 수 없어 이상한데, 때마침 영화에 편승하기 위해 기존 표지를 완전히 덮는 대형 띠지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 원작!"이라고 커다란 글씨로 적을 만큼 눈물겨운 노력까지 했으니 더욱 이상하다.


나귀님 같으면 호메로스 서사시의 후일담과 2차 창작에 해당하는 작품들도 소개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페늘롱의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나, 카잔차키스의 <오디세이아>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저 서사시의 말미에서 주인공이 아내에게 전한 말 때문인지, 그의 여정은 저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 시작이라고 상상해 본 사람들도 옛날부터 적지 않았던 듯하다.


심지어 고대의 <오디세이아> 속편 중에는 <투 마더스>와 유사한 결말(!)도 있다고 전한다. 의외로 단테의 <신곡>에서도 오디세우스의 후일담이 등장하는데, 꾀를 자주 사용한 까닭인지 거짓말쟁이가 가는 지옥의 불길 속에서 저 시인에게 자신의 최후를 설명한다. 여기서 나온 묘사에 착안해 보르헤스는 오디세우스가 '남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지적하기도 했었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도 그 주인공의 여정 중에 <오디세이아>에서 소개되었던 몇몇 장소를 재방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일부에서는 두려운 나머지 멀찍이 돌아가서 화를 면하기도 한다. 심지어 오디세우스의 동료 중 하나인 낙오자를 적군이었던 아이네이아스가 구출하는 대목도 있었으니, 이래저래 선행 작품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다.


<오디세이아>의 영향을 받은 현대 문학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당연히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아닐까. 나중에 가서는 저 서사시와의 비교가 불편했는지 그 유사성이나 영향 관계를 애써 부정했다고도 하지만, 조이스 소설의 제목이며 인물이며 구성에서도 호메로스를 떠올리지 않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양자의 유사성이라곤 딱 거기까지긴 하지만...




[*] 그나저나 영화에 편승해서 급조된 책들 중에서 가장 황당한 것은 <초판본 오디세이아>이다. 기원전부터 구전된 서사시에 초판본이 어디 있겠나 싶어 클릭해 보니 1616년의 채프먼 영역본 '속표지'를 가져다가 표지에 넣어 놓고 초판본으로 자처하는 것이니 황당할 따름이다.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초판본 창세기>며 <초판본 사자의 서>도 간행되어 '저자 북토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뭐든지 좀 정도껏 하자.


[**] 영화에 편승해서 급조된 또 다른 물건 중에 역시나 꼴보기 싫은 것은 알라딘굿즈 티셔츠이다. 시꺼먼 바탕에 진한 색으로 인쇄되어 잘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중 "항해" 디자인에 들어간 대형 범선은 호메로스 시대에 있지도 않았던 훨씬 더 후대의 것이니 고증 오류이다. 알라딘, 니들도 좀 적당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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