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이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근 박물관에서 독립운동가의 유묵을 발굴하고, 그 아들인 백발 노인이 전시장을 찾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해서 큰 화제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독립 운동가의 것이 아니라 악질 친일파의 것이라 해서 논란이 일었다. 단순 착오라도 큰 잘못인데, 알고 보니 유홍준 개인 소장품이라 문제가 더 커진 모양이다.


최근 '국중박'의 인기가 최고조라 하지만, 참신한 전시와 굿즈에서 비롯된 관람 열풍은 어디까지나 전임 관장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니, 유홍준은 거기에 별로 기여한 바가 없다고 봐야 맞다. 미술사학자에 문화재청장 이력 때문에 낙점된 듯하지만, 그간 숱한 논란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방송 출연 등 나서기 좋아하는 면모 때문에 과연 적임자인지는 의문이었다.


어찌 보면 최근 소방 예산 '빨대'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추미애 경기지사와도 유사하다고나 할까. 그쪽도 평소에 숱한 논란을 자초해 왔으니, 이번에도 '결국 사고 칠 줄 알았다'는 반응이 상당히 많은 듯하다. 과거 자신의 오만을 반성한다며 '삼보일배' 쇼까지 벌였는데도 여전히 그 성질머리를 죽이지 못해 아군의 발목만 붙잡는 자폭만 거듭하니 한심한 일이다.


유홍준이라면 베스트셀러 저자에 TV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인물이지만, 사실 학술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여러 비판에 직면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화재 관련 설명에 대해 성낙주가 제기한 비판이라든지, 추사 연구에 대해 박철상이 제기한 비판이 대표적인데, 양쪽 비판자 모두 학계와 동떨어진 독립 연구자여서인지 타격이 크진 않았던 듯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도 쇄를 거듭하면서 각 장 말미에 본문 내용을 바로잡은 첨언이 여럿 달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름 정확성을 기하려는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뒤집어 보자면 애초부터 오독이나 억측 같은 내용 오류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니, 이른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저자며 서적의 위상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전력을 감안해 보면, 이번 친일파 유묵 논란도 오독과 억측에다 오만과 경솔을 곁들인 전형적인 '유홍준 식' 사고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단돈 5만 원에 구입한 붓글씨를 잘못 감정했을 뿐만 아니라, 실수를 지적받았을 때에도 자신의 치부는 감추고 마치 박물관 자체가 잘못한 것처럼 둘러댔기에, 결국 진상이 폭로되면서 더 큰 논란과 비난에 직면했으니까.


미술계와 운동권 활동으로 쌓은 인맥에, 베스트셀러 저자로서 얻은 영향력까지, 이른바 '문화 권력'으로서 유홍준이 지닌 부정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무려 사반세기 전에 강준만이 <인물과 사상>에서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그중 하나인 "겸손은 우리 시대의 악덕인가?: 더 이상 지적하고 싶지 않은 유홍준의 권위주의"(9권, 1999)에서는 다음과 같이 읍소한다.


"나는 유홍준 교수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선 유 교수가 좀 듣기 싫어할 말씀을 드려야겠다. 그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 때문이다. (...) 완벽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의외로 아주 간단한 일인데도 그걸 외면하는 유 교수의 강한 '소신'이 궁극적으로 유 교수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267쪽)


결국 그 '소신'인지 '오만'인지를 버리지 못한 탓에 망신하고 불명예 퇴진까지 하고 말았으니, 이번 논란도 '사람은 자신의 무능이 드러나는 지위까지 승진한다'는 '피터의 법칙'의 또 다른 사례가 아닐까 싶다. 향후 다시 관직을 얻을 가능성은 없겠지만, 베스트셀러 저자로서의 명성은 여전하니 몇 년 지나면 또다시 책 쓰고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지 않을까...



[*] 마침 며칠 전에 버릴 책을 정리하다가, 성낙주의 기고문 "문화전사 유홍준의 미덕과 해악"(<인물과 사상 2>, 개마고원, 1997)을 비롯해 유홍준에 관한 비판이 수록된 <인물과 사상>이 여러 권 나오기에 이번 논란과 연관지어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놓아두었던 참이다. 성낙주라면 현직 교사 신분으로 공모전에 당선된 소설 <차크라바르탄>의 저자로 기억하지만, 이후에는 석굴암을 비롯한 불교 미술에 대한 저서를 여럿 내놓아서 그간의 통설과 오해를 실증적으로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근황이 궁금해 구글링해 보니 2020년에 지병으로 타계했다기에 안타까웠다. 추사 연구자 박철상도 본래는 은행원으로 근무하며 '취미로 추사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였는데, 유홍준의 <완당평전>에 나타난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해서 결국 절판시킨(!) 것으로 유명해지고, 이후 추사 관련서 여러 권과 번역서 등을 간행했다고 알고 있다. 진지한 연구자보다 유쾌한 재담꾼이 인기를 얻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니 어쩔 수 없는가 싶다가도, 결국에는 그 재담꾼이 얕은 재주를 믿고 오만하게 굴다 자승자박한 꼴이 되었으니 사필귀정인가 싶기도 하다. 이전에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학자와 저널리스트를 혼동하고, 인기와 권위를 혼동하는 대중의 잘못된 습관이 그런 '문화 권력'을 만들어낸 셈이니 씁쓸할 수밖에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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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인터넷 헌책방에서 주문한 헤겔의 <철학사 1>이 도착했다. 예전에 신촌 지하 헌책방에서 (매장도 지하에 있고, 운영 방식도 일본의 지하 아이돌과 비슷해서, 구매액이 일정 한도를 넘어야만 사장님과 악수회도 가능하다) 계산을 마치고 보니 사장님 등 뒤의 책장에 그 책이 꽂혀 있는데, 누군가 예약한 것인 듯해서 놓쳤다가 이번에야 다른 헌책방에서 샀다.


<철학사 1>은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헤겔학총서' 제9권이다. 제목에 1이라고 나와 있으니, 혹시 2나 3은 없나 찾아볼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실제로는 1권만 나오고 말았다.(자매품으로 돈 드릴로의 <마오 II>가 있다). ISBN에 '세트' 표시를 한 모양인지 일부 도서관에서는 <철학사 1-2>라고 잘못 표기했는데, 심지어 서울대 도서관에서도 그렇게 잘못 적었다.


'헤겔학총서'는 대부분 임석진의 주도로 지식산업사에서 간행한 헤겔 관련서 시리즈를 가리키는데 지금은 모두 절판되었다. 그중에서 헤겔의 주저인 <정신현상학>과 <법철학>은 훗날 한길사에서 재간행되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역시나 절판인데, 혹시 <대논리학>의 경우처럼 다른 출판사에서 재간행을 준비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임석진의 헤겔 번역은 분도출판사에서 나온 <정신현상학>이 최초였으며, 이걸 나중에 지식산업사로 옮겨 재간행하면서 '헤겔학총서'라는 총서명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현재 알라딘에서는 총서명이나 역자명으로 검색해도 일부만 나오므로 (물론 서지 정보는 등록되어서 '헤겔 + 지식산업사'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2. <정신현상학 I-II>, 임석진 옮김, 1988

3. <헤겔 연구 4>, 한국헤겔학회 편저, 1988

4. <헤겔의 노동의 개념>, 임석진 지음, 1990

5-6. <법철학>, 임석진 옮김, 1989. (상하 분권에서 훗날 합본)

7. <역사 속의 이성>, 임석진 옮김, 1992

8. <피히테와 셸링 철학체계의 차이>, 임석진 옮김, 1989

9. <철학사 1>, 임석진 옮김, 1996

(10). <종교철학>, 최신한 옮김, 1999



'헤겔학총서'는 그 이름에 걸맞게끔 초기에는 임석진의 헤겔 번역서뿐만 아니라 헤겔 연구서며 학회지까지도 포함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임석진의 헤겔 번역서 위주로 굳어진 듯하다. 다만 마지막 권인 <종교철학>은 표지에 '헤겔학총서'가 아니라 '헤겔총서'라고만 나와 있고 연번도 나와 있지 않으므로, 어쩌면 별개의 단행본인지 시리즈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헤겔 저서를 넣어 둔 책장을 뒤지다 보니, 임석진의 저서도 두 권이나 나온다. <시대와 변증법: 헤겔철학의 한국적 수용과 그 전개>(청사, 1979)와 <헤겔 변증법의 모색과 전망>(종로서적, 1985)은 저자가 여러 지면에 기고한 철학 관련 에세이를 엮은 책들인데, 해외 학회 참석 당시 아도르노와 블로흐와 볼노브 등을 만난 일에 대한 회고도 짧게나마 실려 있다.


헤겔 번역서라면 예전 을유문화사의 <철학강요(백과)>와 삼성출판사의 <역사철학강의>와 지학사의 <대논리학>이 있었고, 이후 신학이며 자연과학 분야의 강의록도 간행되었다고 알고 있다. 최근 들어서도 <정신현상학>과 <백과>의 새로운 번역본을 비롯해서 관련서가 꾸준히 나오는 듯한데, 유독 임석진의 번역서만큼은 절판 상태가 지속되는 듯하니 의아한 일이다.


임석진은 독일 유학 당시 방북 사실을 박정희 정권에 제보해 이른바 '동백림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는데, '밀고자' 꼬리표가 달려서인지 이후로는 대외 활동보다 학술 연구에만 전념한 듯하다. 훗날 김형효도 전두환 정권에 협조했다가 '부역자' 꼬리표가 달려서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던데, 결과적으로는 양쪽 모두 자기 분야에서 대가가 되었으니 아이러니하다...



[*] 여하간 기회 있을 때마다 헤겔 책을 꾸준히 모아 온 나귀님이기는 한데, 막상 완독한 것은 몇 가지 안 되니 민망한 일이다. 가장 최근에 뒤적여 본 것은 <법철학>이었는데, 레드벨벳의 노래 "덤덤"에 나오는 "이성적인 감각"이라는 기묘한 표현이 무려 헤겔에게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즉 "이성적인 감각들을 헛갈리게 해"라는 저 가사의 맥락을 보면, 결국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 같은데, '이성'이면 '이성'이고 '감각'이면 '감각'이지 어떻게 '이성적인 감각'이 가능한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구글링해 보니 의외로 "이성적인 감각"이란 표현이 헤겔의 <법철학> 제3부 "인륜" 제398절에 나온다고 하기에 부랴부랴 임석진 번역본을 펼쳐보게 되었다. "이성적 고찰을 위한 이념의 의식이란 구체적이며 또한 이런 한에서 그것은 스스로 이념의 감각이기도 한 바로 이 이성적 감각에 다름 아닌 참다운 실천적 감각과 합치되거니와 결코 이러한 감각은 단순히 기계적으로 수행되는 업무나 제한된 영역의 지평과 혼동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지식산업사, 480쪽). 가뜩이나 둔한 나귀님 머리로는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헤겔이 보증한 이상에는 레드벨벳이 노래한 "이성적인 감각"도 아주 근거 없지는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이 유일한 소득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레드벨벳은 헤겔주의자인가?'라는 또 다른 의문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문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번 말이 많았던 아이린의 '갑질' 논란부터 <정신현상학>에서 소개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현실 사례일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이니, 어쩐지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케이팝 문화 뒤편에 도사린 독일 관념론자의 짙은 그림자를 목격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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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박완서의 낱말들> 책 소개 글에서 하나 이상했던 것은 배우 고아성의 추천사이다. "사캐즘(sarcasm)이라 하는 현대식 비꼬기를 박완서 선생님은 옛날에 다 해냈다." 이 문장만 보면 '사캐즘 = 현대'이고 '박완서 = 옛날'이라는 주장 같은데, 문제는 "비꼬기"나 "빈정거림"이라고 흔히 번역되는 저 영어 단어가 박완서보다 훨씬 더 먼저 있었다는 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박완서 이전의 한국 문학이나 세계 문학에서 '비꼬기'나 '빈정거림' 같은 표현이 전무했다 볼 수는 없을 텐데, 고아성의 추천사는 마치 '21세기에나 가능한 것을 박완서는 20세기에 미리 해냈다'며 격찬하는 듯하니 이상할 수밖에 없다. 혹시 저 영화배우의 말처럼 2026년 현재에 와서야 정립된 별도의 '사캐즘'이 있는지까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고아성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독자에게도 와닿는 박완서 작품의 탁월함을 강조하려는 뜻이었겠지만, 언젠가 이승철이 나이 어린 팬으로부터 '제2의 조성모가 되시라'는 격려를 들었던 것처럼, 또는 박완서가 과일장수로부터 '선생님도 불우 아동 수기 <저 하늘에도 슬픔이>처럼 좋은 책 많이 쓰시라'는 덕담 아닌 덕담을 들었던 것처럼 뭔가 살짝 어긋난 비유 아닐까.


박완서는 사변 직후 미군 PX에서 일하며 자기가 따낸 '오더'로 초상화를 그린 화가들을 (그중 하나가 무려 '박수근'이었다!) 멋모르고 하대했었다며 자책했었는데, 이에 착안해 '박완서는 21세기에 와서야 보편화된 갑질의 문제점을 20세기에 이미 통찰한 선각자'라며 추켜세운다면 민망할 것이다. 나귀님이 보기에는 고아성의 추천사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싶고...



[*] 더 쉽게 비유하자면, 고아성이 김혜자의 연기를 가리켜 "메소드라 하는 현대식 연기를 선생님은 옛날에 다 해냈다"고 추켜세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메소드 연기법 자체가 20세기 초에 고안되어 20세기 중반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을 감안하면, 20세기 인물인 김혜자가 그런 연기를 했다는 것은 딱히 놀라거나 감탄한 일도 아닐 테니까. (물론 김혜자가 실제로 메소드 연기를 했는지 어땠는지는 나귀님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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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노인네가 읽을 책 내놓으라고 성화이기에 간만에 책더미를 뒤지다 보니, 책장 맨 아랫칸에 들어 있던 이문구 전집도 오랜만에 꺼내 보게 되어서 내친 김에 인증 사진까지 찍어 놓았다. 랜덤하우스중앙에서 전26권으로 간행한 전집을 눈에 띄는 대로 한두 권씩 사 모으기 시작한 지 20여 년 만인 작년에야 알라딘에서 <토정 이지함>을 구입해 완질을 갖추었다.


이것도 원래는 바깥양반의 재촉에 구입하기 시작했는데, 나귀님이야 한국 소설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서 이문구라면 단편집 한두 권 밖에 가진 것이 없었다. 바깥양반이 에세이 몇 권을 읽어보더니 소설까지 읽어야겠다며 도서관에서 빌려와서는 '이문구 전집 한 질 없는 놈의 집구석' 운운하기에, 이미 절판된 책들을 뒤늦게야 하나둘씩 사모으기 시작했던 것이다.


절판본이기는 하지만 처음 몇 권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비교적 더 알려진 단편집은 그나마 쏠쏠하게 판매되었던 까닭으로 보이고, 비교적 덜 알려진 에세이는 딱히 사려는 사람이 없었던 까닭으로 보인다. 그런데 막상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무려 전26권이나 되는 책을 완간했다는 기특함 못지않게 영 아쉬운 점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일단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표지의 일관성 부재이다. 전26권에서 무려 4가지 디자인이 혼재되었기 때문이다. 다색 표지(1-3권), 흰색 표지(8, 12, 17권), 동시집 표지(23-25권), 회색 표지(4-7, 9-11, 13-16, 18-22, 26권)가 뒤섞여 있어서 한데 쌓아 놓으면 그야말로 꼴불견이다. 2003년과 2004년과 2005년에 연이어 표지가 바뀌었으니, 해마다 헛발질을 한 걸까.


물론 사전 계획 미비가 드러나긴 했어도 완간 자체는 사건이었다. 이문구 전집은 솔 출판사에서 이미 한 번 시도되었지만, <우리 동네>를 비롯하여 두어 권만 간행하고 중도작파했기 때문이다. 비록 표지가 들쑥날쑥이기는 해도, 전26권 완간에 추모문집과 연구론집까지 추가로 간행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랜덤하우스중앙이 큰일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성 싶다.


다만 교정 등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없지 않다. 각 권의 "일러두기"에서는 저자가 생전에 "첨삭, 가필, 개고"를 마무리한 판본이라고 적었지만, 한글 세대 편집자의 손을 거친 까닭인지 잘못된 한자가 대뜸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집 제15권 <유자소전> 수록 단편 "명천유사"에서 동료 작가인 "염평곡(廉平谷, 左萬)"을 언급할 때는 在를 左로 오기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반노>의 작가 염재만을 가리키는데, '평곡'은 그의 호라고 한다. 염재만이 1975-1985년에 한진출판사에서 주간으로 근무했다 하니, 1977-1984년에 그곳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한 이문구와는 절친했을 듯하다. 물론 이문구의 회고에 따르면 한진영화사에 딸린 출판사이다 보니, 영화 원작 소설을 주로 펴내는 '얼치기'였다고 하지만.


물론 영화 못지않게 원작이 우수한 경우라면, 거꾸로 국내 출판이 불가능했을 법한 수작 소설이 영화 덕분에 소개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나귀님이 가진 책 중에서는 래리 맥머트리의 <애정의 조건>과 게리 브란트너의 <캣 피플>이 그런 경우였는데, 같은 시리즈로 스티븐 킹의 <캐리>는 물론이고, 원작까지는 아니지만 <에일리언>의 소설판도 나왔었나 그랬다.


여하간 이문구 전집을 다시 꺼낸 김에 읽어본 작품은 앞에 언급한 "명천유사"였다. 오래 전에 읽었을 때 한 대목이 각별히 인상 깊게 남았었는데, 이문구 작품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제목을 기억 못해 아쉬웠다. 그의 대표작 <우리읍내>와 <관촌수필>을 뒤져도 나오지 않기에, 혹시 다른 작가의 작품을 착각했었나 의구심마저 들었는데 <유자소전>에 있었다!


"명천유사"는 저자가 고향 마을의 지명인 '명천'을 호로 삼게 된 내력을 회고하는 자전적 단편이다. 어린 시절 전쟁 후유증으로 풍비박산난 집안에 끝까지 남아 일을 돕던 까막눈 머슴에 대한 이야기인데, 머지않아 화자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상경하게 되자, 늙은 머슴도 졸지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고, 이후 피차 소식이 끊기고 만다.


화자는 몇 년 뒤에 고향에 왔다가 거지꼴을 한 머슴을 만나 측은한 마음에 주머니를 탈탈 털지만, 본인도 가난한 입장이다 보니 몇 푼 쥐어주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긴다. 이후 현재의 시점에서 화자는 자기 지갑을 다시 꺼내보며 다시 한 번 탄식한다. "아아, 그때는 왜 이까짓 단돈 몇 만 원도 내게는 없었던 것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원통한 일이었다."


나귀님이 각별히 인상 깊었던 대목이 바로 여기였으니, 은인에게 작은 인심조차 쓸 수 없었던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에서, 과거 책 사기 바쁘다는 핑계로 남에게 인색하게 굴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간혹 인심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모른 체 하고 넘어간 일이 없지 않았는데, 사실은 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어려서는 받기만 하고, 자라서 줄 수 있었을 때에는 주지 못했으니, 또다시 늙어서 받기만 하는 입장이 되자,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는 남에게 준 것 없이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싶어 민망하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인심 쓰면 되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제는 곁에 남아 연락하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으니 이래저래 한심한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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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펀드 중에 "일본에 철학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들어간 광고가 있기에 흥미를 느껴 클릭해 보니 도서출판 길에서 간행 예정이라는 <열도 철학사>라는 책이었다. 저 질문은 예전에 조동일이 <우리 학문의 길>에서인지 제기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또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에서 번역자인 김석근이 나름대로 답변을 제기했었다고도 기억한다.


그런데 <열도 철학사>의 북펀드 페이지에 나온 소개글을 읽다 보니 황당한 오타가 눈에 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즉 '열도'에 갖힌 일본 철학자의 문제의식은 고스란히 '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갇힌'을 '갖힌'으로 쓸 만큼 맞춤법을 몰라 큰일이라더니, 이제는 책 만드는 사람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인문학의 허상'에 대한 의문이 머리를 스칠 수밖에 없다. 번역이 잘못되고 문장이 이상해도 뭔가 잘도 의미를 이끌어내니, 사실상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놈들의 쑥덕공론 야바위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열도 철학사>의 소개글만 봐도 온갖 어마어마한 개념어를 쏟아내다가 결국엔 '갖힌'으로 마무리한 셈이니까.


해외 저자라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자국 언어나 문화에서나 통할 뿐인 개념을 무리하게 확장하려다가 헛발질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희랍어와 라틴어의 어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국어의 말장난까지도 들먹이며 어떤 개념어를 설명하는 경우가 그런데, 중국 한자와 일본 신조어 어원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 학계에는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서출판 길은 마르크스와 베버를 비롯한 인문학 고전을 전문적으로 간행하는 출판사이기는 한데, 번역과 편집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사실이 이번 오타로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장 아메리의 저서인 <죄와 속죄의 저편>이 특히나 심각한 오역본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출판사를 옮겨 재간행된 신판은 그런 오역을 수정했는지 궁금하다.


번역 나쁜 것은 편집으로 어찌어찌 고칠 수 있지만, 편집 나쁜 것은 멀쩡한 번역조차 엉망진창으로 바꿔버릴 수 있으니 오히려 더 나쁘다고 봐야 한다. 옛날 을유문화사의 전설적인 편집부장 안춘근은 워낙 아는 게 많다 보니 웬만한 대학 교수들조차 그 앞에 가면 주눅이 들었다던데, 그 정도까지야 아니더라도 편집자라면 어느 정도 실력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 글을 쓰고 나서야 다시 확인해 보니, 조동일의 문제 제기에 대한 김석근의 답변은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역자후기가 아니라 <일본의 사상> 서두의 해제에 들어 있었다. 다만 그 답변 역시 핵심은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서두에 수록된 김용옥의 해제를 인용한 것이므로, '일본에 철학사가 있는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라면 김석근의 해제와 김용옥의 해제 모두를 읽어 볼 만하겠다. 그나저나 김석근의 설명만 놓고 보면 한국에서는 '철학'이라 부르는 것을 일본에서는 '사상'이라 부르는 것이므로, 용어 사용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에 불과해 보이는 반면, 막상 김용옥의 추가 설명을 읽다 보면 '철학'과 '사상'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실상은 다른 것이므로, 결국 '일본에 철학사가 없다'는 지적도 아주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여하간 나귀님도 최근 창비의 '한국사상선' 완간을 계기로 '사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저런 궁금증을 품었던 참이니, 이참에 관련 자료를 더 뒤적여 보든지 해야겠다. 이래저래 남의 '갖힌'을 흉보느라 정신이 팔려 정작 글의 내용을 '틀닌' 나귀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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