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북펀드 중에 "일본에 철학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들어간 광고가 있기에 흥미를 느껴 클릭해 보니 도서출판 길에서 간행 예정이라는 <열도 철학사>라는 책이었다. 저 질문은 예전에 조동일이 <우리 학문의 길>에서인지 제기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또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에서 번역자인 김석근이 나름대로 답변을 제기했었다고도 기억한다.


그런데 <열도 철학사>의 북펀드 페이지에 나온 소개글을 읽다 보니 황당한 오타가 눈에 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즉 '열도'에 갖힌 일본 철학자의 문제의식은 고스란히 '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갇힌'을 '갖힌'으로 쓸 만큼 맞춤법을 몰라 큰일이라더니, 이제는 책 만드는 사람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인문학의 허상'에 대한 의문이 머리를 스칠 수밖에 없다. 번역이 잘못되고 문장이 이상해도 뭔가 잘도 의미를 이끌어내니, 사실상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놈들의 쑥덕공론 야바위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열도 철학사>의 소개글만 봐도 온갖 어마어마한 개념어를 쏟아내다가 결국엔 '갖힌'으로 마무리한 셈이니까.


해외 저자라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자국 언어나 문화에서나 통할 뿐인 개념을 무리하게 확장하려다가 헛발질을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희랍어와 라틴어의 어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국어의 말장난까지도 들먹이며 어떤 개념어를 설명하는 경우가 그런데, 중국 한자와 일본 신조어 어원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 학계에는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서출판 길은 마르크스와 베버를 비롯한 인문학 고전을 전문적으로 간행하는 출판사이기는 한데, 번역과 편집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사실이 이번 오타로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장 아메리의 저서인 <죄와 속죄의 저편>이 특히나 심각한 오역본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출판사를 옮겨 재간행된 신판은 그런 오역을 수정했는지 궁금하다.


번역 나쁜 것은 편집으로 어찌어찌 고칠 수 있지만, 편집 나쁜 것은 멀쩡한 번역조차 엉망진창으로 바꿔버릴 수 있으니 오히려 더 나쁘다고 봐야 한다. 옛날 을유문화사의 전설적인 편집부장 안춘근은 워낙 아는 게 많다 보니 웬만한 대학 교수들조차 그 앞에 가면 주눅이 들었다던데, 그 정도까지야 아니더라도 편집자라면 어느 정도 실력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 글을 쓰고 나서야 다시 확인해 보니, 조동일의 문제 제기에 대한 김석근의 답변은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역자후기가 아니라 <일본의 사상> 서두의 해제에 들어 있었다. 다만 그 답변 역시 핵심은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서두에 수록된 김용옥의 해제를 인용한 것이므로, '일본에 철학사가 있는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라면 김석근의 해제와 김용옥의 해제 모두를 읽어 볼 만하겠다. 그나저나 김석근의 설명만 놓고 보면 한국에서는 '철학'이라 부르는 것을 일본에서는 '사상'이라 부르는 것이므로, 용어 사용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에 불과해 보이는 반면, 막상 김용옥의 추가 설명을 읽다 보면 '철학'과 '사상'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실상은 다른 것이므로, 결국 '일본에 철학사가 없다'는 지적도 아주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여하간 나귀님도 최근 창비의 '한국사상선' 완간을 계기로 '사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저런 궁금증을 품었던 참이니, 이참에 관련 자료를 더 뒤적여 보든지 해야겠다. 이래저래 남의 '갖힌'을 흉보느라 정신이 팔려 정작 글의 내용을 '틀닌' 나귀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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