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아니겠지만, 예전에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반인이 플라톤 대화편을 접할 기회도 흔치 않았을 뿐더러, "가혹해도 법은 법이다"라는 라틴어 격언에서 유래했다는 이 표현이야말로 어찌 보면 마치 법치주의의 원칙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처럼 제법 그럴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과거 일본의 한 법학자가 소크라테스의 사례에 나타난 실정법 존중의 정신을 "악법도 법이다"라는 표현으로 요약했던 것이 저 유명한 철학자의 실제 발언인 것처럼 와전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역설적인 사실은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고스란히 감내했고, 심지어 주위의 탈옥 권유를 물리치면서까지 그렇게 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하나인 <크리톤>은 제목과 동명인 인물이 감옥에 갇혀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를 찾아와서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크리톤은 자기가 미리 다 손을 써 놓았으니 그냥 일어나서 나가기만 하면 쉽게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권유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지금 상황에서야 탈옥이야말로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반박하면서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껏 국가와 법률의 혜택을 받으면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양쪽 모두에 반대했었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외국으로 이주하는 편이 나았겠지만, 결국 그곳에 남아서 지금까지 살았다는 것은 국가와 법률 모두를 존중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제 와서 그중 뭔가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문맥을 감안하고 보면 "악법도 법이다"도 <크리톤>에서 자세히 설명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제대로 요약하고 있는 표현인 것은 맞다. 물론 무조건적 법률 준수에 앞서 표현과 이동의 자유 같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다면, 예를 들어 과거의 한국 같은 독재 치하에서는 자칫 나쁜 법률까지도 정당화하는 핑계로 남용되기가 쉽겠지만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다른 대화편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강조하기도 했었으니 상호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고, 이와는 반대로 재판 중에 열띤 변론을 내놓았던 것이나 판결 후에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 모두 저 철학자의 전체적인 태도며 주장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반론 역시 있다.


여하간 지금은 통용되지 않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격언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 까닭은 당연히 최근의 여러 가지 사건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 심판, 야당 대표의 개인 비리 재판, 원내 3당 대표의 자녀 입시 비리 재판에서 한결같이 "악법"에 대한 비난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세 명 모두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 출신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를 더해준다.


쉽게 말해 나에게 유리하면 "현명한 판결", 불리하면 "잘못된 판결"이라는 식이니, 각자 정의와 양심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물론 법률도 절대적인 것까진 아니지만, 양심도 절대적인 것까지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다. 최근 논란이 된 뉴진스의 행보처럼 '내가 보기에는 불공정'이라 해서 뭐든 불공정이 되지는 않으니까.


지금에 와서 이런 모든 사법 불신의 사례가 나타나는 이유는 그간 권력과 재력에 좌우된 불공정한 판결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법 절차 모두를 불신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는 피고인의 입에 발린 발언도 법원 판결에 대한 신뢰를 전제하는 만큼, 판결 불복은 단순한 이의 제기 이상의 심각한 위반이다.


이번의 대통령 탄핵 재판은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 계기였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런 사법 불신이 원래 오늘날 제1야당의 근간인 운동권의 주특기였다는 점이다. 과거 군사 독재 정권을 줄곧 불신했던 까닭인지 지금까지도 사법 불신 풍조가 지배적인데, 심지어 민주당의 전직 대통령 두 명과 현직 대표가 변호사 출신임에도 그렇다.


최근 서부지법 난입 사건으로 절정에 도달한 사법 불신 풍조는 일차적으로 현직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책임이라 할 수 있지만, 민주당 대표와 원내 3당 대표의 책임 역시 적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양쪽 모두 개인 비리에 대한 재판마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하며 비난해 왔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 법치주의를 부정했다는 점은 결국 너나 없이 똑같지 않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입법가인 국회의원부터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를 일삼아 오다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물론 트럼프가 이미 수년 전에 비슷한 일을 해내기는 했지만!) 난입 사태가 벌어졌으니, 툭하면 국격 운운하는 나라에서 완전히 나라 망신이고, 이러다가는 과연 탄핵 이후에 법치주의가 재건될 수 있을지 의문마저 든다.


극우 지지자를 위시한 탄핵 반대 세력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법원이고 법관이고 간에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실정인데,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서 일단 내려진 판결들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개인들에 의해 무효화되고 손상되었는데도, 그런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서 여전히 존속할 수 있을 것 같은가?"(50b) 


어쩌면 이 대목에서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에 내재한 위험을 지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는 마치 현재 극우 세력의 난동과도 유사하게 대중 선동의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어빙 스톤 같은 사람은 소크라테스를 반민주주의자라 비판했지만, 저 철학자를 죽인 당시의 정치 상황 자체도 그리 민주적이지는 않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함으로 재판을 받은 소크라테스는 비교적 경미한 처벌로 끝날 법한 상황에서 직접 변론하며 '어그로'를 끌어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 동기를 놓고 해석이 분분한데, 혹시 민주주의의 타락 가능성을 목숨 바쳐 경고한 것은 아닐까? 현재 민주적 절차조차 각자의 목적에 악용하는 권력자와 지지자의 모습을 보면, 새삼 그가 무엇을 걱정했는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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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트럼프의 인생책" 운운 하는 광고가 있기에, 도대체 어떤 책을 읽었기에 저런 괴물이 생긴 건가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엉뚱하게도 <손자병법>이 나온다. 알라딘의 책 소개를 읽어보니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담은 손자병법을 반드시 읽어보라"는 트럼프의 발언 인용문과 함께, 빌 게이츠와 손정의 같은 유명인이 남긴 평가도 한 줄씩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저서 <챔피언처럼 생각하라>에는 이렇게만 나온다. "맥아더도 이 책을 연구했고, 역사 속의 다른 여러 유명한 전략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즈니스스쿨의 추천 도서로서는 이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담컨대 결코 이례적이지 않다. 그만큼 귀중하고,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즉 그냥 '좋은 책이니 한 번 읽어보라' 정도였다.


물론 트럼프야 저서도 많으니 다른 곳에서는 '필독서'나 '인생책'이라고 밝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다만 우습게도 정작 미국 언론에서 그와 이 병법서를 연관지은 경우는 "트럼프는 <손자병법>을 읽어야 한다"며 거친 태도를 질타할 때가 대부분이니, 취임 직후부터 줄곧 '닥공' 모드인 미국 대통령을 이 책의 홍보에 사용한 것이 과연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나귀님은 현암신서의 <손자병법>,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의 <무경칠서>, 책세상 밀리터리클래식의 <손자병법>처럼 가급적 사례 제시 없이 원문 해석에만 충실한 것으로 번역서를 몇 가지 갖고 있다. 이번에 나온 <손자병법>을 미리보기로 살펴보니 사례 제시에 치중한 듯한데, 산만한 것은 둘째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애매모호한 문장도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에서 영웅이란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카이사르, 한니발, 나폴레옹, 세기의 명장들이 <영웅전>을 읽고 추종했던 리더의 길이 이것이었다. 손자가 말한 리더의 길, 오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25쪽) 그런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뭐, 한니발이 <영웅전>을 읽었다고?


위의 인용문에는 생략했지만, 해당 본문에는 플루타르코스(AD 46-120)와 한니발(BC 247-183)의 생몰년이 병기되었는데, 이것만 봐도 <영웅전>의 저자가 카르타고의 장군보다 더 나중임을 알 수 있다. 카이사르(BC 100-44) 역시 기원전의 인물로서 한니발과 함께 <영웅전>에 등장했었으니, 이건 마치 "조조와 유비가 <삼국지>를 읽고 추종했다"고 말하는 격이다.


애초에 "나폴레옹과 세기의 명장들"만 언급했다면 무난했을 문장에 굳이 "카이사르, 한니발"까지 갖다 붙여서 틀린 것인지, 아니면 "카이사르, 한니발, 나폴레옹, 세기의 명장들"이 "추종했던 리더의 길"에 굳이 <영웅전>을 갖다 붙여서 틀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사와 전쟁사의 전문가라는 저자의 남다른 이력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슷하게 애매한 문장은 바로 뒤에도 나온다. "수백 개의 지역으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이 통일국가와 강력한 국가, 민족주의를 이룬 데는 참혹한 내전이었던 30년 전쟁과 전 유럽을 상대로 싸운 7년 전쟁, 유럽 전체만큼 강했던 나폴레옹 전쟁이 큰 역할을 했다."(26쪽) 여기서도 "나폴레옹"과 "전쟁" 사이에 "-과의"나 "-을 상대로 싸운" 정도가 들어가야 할 듯하다.


지난번 코페르니쿠스 번역본에 붙은 서울대 교수의 해제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문장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어째서인지 요즘에는 정확하고 아름다운 문장까지는 갈 것도 없이 그냥 이해가능한 문장을 쓰는 저자도 드물어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역량 하락이 문제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출판사의 역량 하락도 문제가 아닐까 싶고.


그래서인지 최근 인기를 끄는 고전 해설서들을 보면 아무래도 얕고 급한 느낌을 받게 된다. 새로운 해석도 좋고, 친근한 화법도 좋고, 사례의 열거도 좋지만, 뭔가 천천히 음미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경영과 처세에 적용하기 앞서 군사 전략으로서 <손자병법>의 원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던 어느 군사학자의 일침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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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재판 관련 뉴스를 접하다 보니 이른바 '오염된 증거'에 대한 언급이 반복되는 듯하기에, 문득 예전에 읽은 토니 힐러먼의 단편 내용을 떠올리게 되었다. 황금가지의 <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2권에 수록된 "치의 마녀"라는 작품인데, 애초에 남녀 모두에게 쓸 수 있는 단어인 "주술사"(witch)를 "마녀"로 옮긴 것부터 시작해서 오역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번에 '수상쩍을 만큼 한 가지에 꽂힌 출판사들' 운운 하는 글에서 '사슴 대가리 여자'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언급했지만, 미국의 추리소설가 토니 힐러먼(1925-2008)은 젊은 시절 나바호 인디언 보호 구역에 갔다가 그곳의 풍습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서, 원주민 경찰 콤비 '조 리프혼'과 '짐 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범죄 소설 시리즈를 35년간 18권 간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중 6권 <고스트웨이>, 8권 <시간의 도둑>, 11권 <카치나의 춤>, 17권 <스켈리톤 맨>, 18권 <셰이프시프터>가 간행되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모두 절판이다. 흥미롭게도 고려원에서 간행된 6권과 11권을 제외한 나머지 책의 번역자는 원로 영문학자 설순봉인데, <고스트웨이>에는 이 저자에 대해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는 역자의 설명이 나온다.


'리프혼과 치' 시리즈는 그 제목에서부터 인디언 고유의 풍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고스트웨이'는 푸닥거리의 일종을, '시간의 도둑'은 유물 절도범을, '카치나의 춤'은 제사를 위한 춤을, '스켈리톤 맨'과 '셰이프시프터'는 무시무시한 초자연적 존재를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디언의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야 그 재미를 더욱 만끽할 수 있겠다.


또 하나 염두에 둘 점은 주인공들이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만 활동하는 원주민 경찰관이기 때문에, 워낙 소규모일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경찰관에게는 얕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미드에서도 지역 경찰과 FBI의 알력이 종종 묘사되는데, '나바호 경찰'은 그보다 좀 더 안습한 처지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청학동 경찰'이나 '마라도 경찰' 정도 느낌이라고 할까.


앞서 언급한 <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2권의 "치의 마녀"도 인디언 고유의 미신과 외부 세계의 편견을 범죄 소설 특유의 설정과 버무린 독특한 작품이며, 단편이라는 점에서는 장편으로만 이루어진 '리프혼과 치' 시리즈의 외전 정도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는 원주민 경찰 콤비 가운데 '짐 치 경장' 혼자서만 등장한다.


주인공인 나바호 경찰 소속 짐 치 경장은 최근 나바호 지역민 사이에서 '주술사'('마녀'로 오역!)로 지목되어 곱지 않은 눈길을 받는 외지인에 관해 수사하던 중에 그 지역 담당자인 FBI 요원 제이크 웰스의 호출을 받는다. 알고 보니 문제의 외지인은 범죄 조직의 피라미 가운데 하나였다가 검찰 증인으로 돌아서면서 FBI의 관리 하에 은둔 생활 중인 인물이었다. 


문제는 그 증인이 나바호족 출신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FBI가 인디언 보호 구역을 은신처로 삼은 것이었다. '사과를 숨기려면 같은 사과들 사이에 두면 된다'는 백인들의 예상과 달리, 정작 그 지역 원주민 사이에서는 그 외지인이 유독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백인이 보기에는 다 같은 사과 같겠지만, 원주민들은 어떤 사과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할 수 있으니.


급기야 지역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겪는 갖가지 불운을 새로 온 남자의 탓으로만 돌린다. 레스코프의 <괴물 셀리반>에 묘사되었듯 농사를 망친 것도, 가축이 죽은 것도, 사람이 아픈 것도 다 누군가의 주술 때문이며, 문제의 주술사는 바로 새로 온 남자일 수밖에 없다는 식이었다.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 치 경장이었지만, 신고가 들어오니 출동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만 해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던 치는 제이크와 대화를 지속한 끝에 비로소 상대방의 숨은 속내를 간파한다. 문제의 나바호족 검찰 증인은 조만간 이송되어 재판에 나설 작정이었는데, 알고 보니 판결을 좌우할 만큼의 결정적인 증언까지는 보유하지 않은 피라미인 관계로, 자칫 그를 증인으로 소환한 검찰이 도리어 웃음거리가 될 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마침 FBI에서는 문제의 증인이 나바호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다는 점에 착안, 타인의 방문이나 협박으로 인해 변심했을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려 든다. FBI 요원이 나바호 경찰을 부른 이유도 증인의 '오염' 가능성에 대한 발언을 유도해 내기 위해서였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치는 제이크의 의도를 간파하자마자 확답을 주지 않은 채 슬그머니 물러선다.


사건 발생부터 추리와 해결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두 사람의 대화 위주인 내용 전개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FBI의 증인 보호 절차가 원주민 사회의 미신이며 미국 사회의 편견과 맞물릴 때에는 어떤 역설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범죄물의 클리셰를 뒤집는 독특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문제는 번역이 워낙 엉망이라 대명사를 잘못 이해하는 등 종종 헛다리를 짚다 보니, 양측의 대화를 통해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단지 이 작품만이 아니라 책 전체가 문제로 보이는데, 예를 들어 함께 수록된 렉스 스타우트의 단편에서는 대사 가운데 한 행이 누락되어 앞뒤가 안 맞는 부분도 있어서, 결국 구입한 독자만 손해이다!


앞서 말했듯이 "치의 마녀"를 떠올리게 된 까닭은 최근 대통령 탄핵 재판에서 '오염된 증거'에 대한 주장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상 계엄의 위헌성과 몰상식이 뚜렷한 상황에서 일부 절차나 증거에 대해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은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해 보인다. 마침 오늘 최종 변론이 마무리될 예정이라니, 머지않아 결과가 정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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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알라딘에 2025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광고가 있기에, 부영그룹이 인수했다는 문학사상사가 드디어 본격적인 업무를 재개했나보다 생각하고만 넘어갔었다. 그런데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보니 발행처가 '다산책방'으로 나온다. 그제야 이상문학상 주관사가 바뀌었음을 상기하게 되었는데, 십중팔구 지난번 저작권 양도 강요 논란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알고 보니 부영그룹은 문학사상사 전체가 아니라 <문학사상> 잡지만, 다산책방은 이상문학상만 각각 인수했다니, 결국 온전했던 출판사가 문학상, 잡지, 단행본으로 뿔뿔이 흩어진 셈인가 싶다. 다만 부영은 과거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 건축물을 철거하며 문화적 식견 부족을 드러낸 바 있어 미심쩍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잡지 쪽에는 벌써 논란이 생긴 듯하다.


그래도 여전히 "이상문학상" 하면 "문학사상사"가 떠오르는 까닭은 한편으로 당연히 반세기 동안 이어진 전통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이어령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이어령은 문학사상사의 창립자인 동시에 이상 연구를 개척한 평론가 가운데 한 명이었으니, 결국 그 작가의 이름에서 따온 문학상을 제정한 것 역시 개인적 관심의 연장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임종국이 편저한 최초의 '이상 전집'(1956) 다음으로 간행된 '이상 전작집'(1977-1978)은 이어령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설립한 문학사상사에서도 '이상 문학전집'(전5권, 1989-1993)과 김윤식의 <이상 연구> 등 관련서를 꾸준히 내놓은 모양이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권영민의 <이상문학대사전> 외에는 모두 절판된 듯하다.


그렇다 보니 "이상문학상 = 문학사상사"라는 오랜 고정관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이 문학상의 새로운 주관사가 된 출판사에 대해서 한 가지 아이러니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건 바로 올해부터 '이상문학상'을 주관하고 작품집을 내는 '다산책방'에서 지금까지 간행한 도서 중에 '이상'과 관련된 책이 정작 하나도 없더라는 점이다!


물론 다산책방의 모회사 '다산콘텐츠그룹' 산하에는 다산북스, 다산라이프, 다산초당, 다산에듀, 다산사이언스, 다산어린이뿐만 아니라 놀, 오브제, 유영, 에픽, 사무사, 브라이트, 클랩북스, 콘택트 같은 지회사가 있다니, 잘 찾아보면 그룹 전체에 한 권쯤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참고로 '다산기획'과 '다산글방'은 훨씬 더 오래 된 별개의 출판사이다).


어쩌면 문학상의 주관사 변경이 너무 갑작스레 이루어지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그랬을 수도 있다. 게다가 설령 다산책방에서 이런 아이러니를 이미 의식하고 새로운 '이상 전집'을 기획 중이라 하더라도, 기존 전집을 검토하고 미발굴 작품을 찾아보고 해설을 작성하는 등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감안하면 하루아침에 급조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일까지는 아닐 테니까. 


이쯤 되면 '동인문학상' 주관사 '조선일보사'에서도 '김동인' 책을 안 낸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사실은 원래 <사상계>에서 제정한 그 문학상을 1980년대 중반에 인수한 직후 조선일보사에서도 <김동인 전집> 전17권을 간행한 바 있었으니, '김수영 전집' 간행사인 민음사가 '김수영 문학상' 주관사인 것과 유사하다 하겠다. 


또 한편으로는 김수영 시를 읽어보지 않았다나 좋아하지 않았다나 했는데도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며 자조한 장정일의 사례도 있고, 훨씬 더 대중적인 사례로는 '홍철 없는 홍철팀'이란 것도 있으니, 굳이 이상 책 없는 출판사라 해서 이상문학상을 주관할 자격이 없다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어쨌거나 솔직히 문학사상사나 부영그룹보단 나을 테니까.


특히 부영그룹은 작년에 갑자기 <문학사상>의 간행을 취소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즉 이전까지 사주의 저서를 간행하는 데에만 이용된 출판 부문인 우정문고를 통해 <문학사상> 2024년 10월호를 간행함으로써 재창간에 나서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해 놓고, 막상 출간일 직전에 가서 간행을 취소하고 침묵만 지키는 바람에 문단과 출판계에서 구구한 추측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재창간호 수록 작가 중 하나인 황석영이 시국 선언에 참여한 까닭에, 현직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복권된 부영그룹 사주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막판에 출간을 막은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이게 사실이라면 불과 두 달 후에 벌어진 비상 계엄과 탄핵 심판 등의 사태까지 감안했을 때 <문학사상>의 재창간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봐야 하겠다.


만약 재창간과 동시에 수록 작가와 작품을 옹호하며 현 정권과 갈등을 빚는 모습만 보여주었더라도, 이후의 정치적 격변 상황에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을 입증하는 사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며 <문학사상>도 멋진 재기에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문학을 알지도 못하는 기업의 횡포로 가뜩이나 금이 간 명성에 먹칠까지 더한 셈이니 딱한 일이다.


물론 남들은 못하겠다고 포기한 문학상이며 잡지를 굳이 떠맡은 출판사며 재벌의 선의를 굳이 폄하하려는 의도까지는 아니다. 다만 한편으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자랑을 일삼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정작 나라를 대표하는 문예지며 문학상을 고작 반세기도 유지하지 못한 이 나라의 문화적 척박함인지 천박함인지를 새삼스레 되새겨 보았을 뿐이다.



[*] 그런데 도서 수집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부영의 <문학사상> 발행 취소 소식에서 한 가지 눈이 번쩍할 만한 부분이 있다. 출간을 앞두고 전격 취소되기는 했지만, 납본용으로 잡지 20부를 사전 제작해서 일부는 언론사에 홍보용으로도 보냈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상태로 재창간호가 사장되고 만다면 그 사전 제작본 20부는 희귀본인 것은 물론이고, 그 전후의 복잡한 사정까지 감안해 보면 이래저래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물론 <문학사상> 재창간호가 나중에라도 결국 간행될 수는 있겠지만, 그럴 경우에는 분명 발행날짜가 수정될 수밖에 없을 터이니, 2024년 10월호라고 찍힌 사전 제작본의 가치는 그대로 고정될 수밖에 없다. 납본용이라면 20부 가운데 절반 정도는 도서관 제출과 출판사 비치 등으로 소진되었을 것이고, 나머지 10부 정도가 언론사에 배포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과연 이후에 어떤 경로를 통해 어디로 흘러 나오게 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고나 할까. 어쩐지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기는 하지만, 한국 문단이나 출판계에는 별로 공헌하지 못할 것 같은 부영도 도서 수집가들에게는 뭔가 좋은 일을 한 가지는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문득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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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좋소냥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짤이 있다. 공사장의 노란 안전모를 쓴 고양이 한 마리가 구부정한 자세로 뭔가를 가리키며 "좋아!" 하고 외치는 모습을 만화체로 묘사한 것인데, 원래는 일본의 어느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든 캐릭터였지만 이런저런 변형을 거쳐서 나중에는 공사 현장의 안전 불감증을 풍자하는 용도로 사용되어 유행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소기업'의 폄칭인 '좆소'나 그 완곡어인 '좋소'를 붙여서 "좆소냥이"나 "좋소냥이", 또는 원래 명칭대로 "현장냥이"로도 통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접하고 보니 예전에 한 만화가가 알코올 중독으로 본업을 때려치고 노숙자로 살다가 가스 설비 용역 회사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변신했을 때에 그린 유사한 안전 홍보 만화가 생각났다.


그 만화가란 일본의 부조리 및 로리(!) 만화의 대표 작가인 아즈마 히데오(1950-2019)이다. 만화를 그만 두었던 암울한 시절을 회고한 <실종 일기>를 보면, 한동안 노숙자로 지내다 갱생을 위해 가스 설비 일을 하면서도 끼(?)를 숨길 수 없었던지, 가스 설치 기사를 안전모 쓴 생쥐로 ("좋소생쥐"?) 묘사한 만화를 그려 해당 업계 소식지에 투고했다고 나온다.


우리나라에 간행된 아즈마 히데오의 작품은 <실종 일기> 두 권이 전부이지만, 사실은 그의 삽화를 수록한 SF도 한 권 출간된 적이 있다. 바로 <시공을 지배한 사나이>라는 작품인데, 미국의 수학자 겸 소설가인 루디 러커의 1984년 작품이다. 러커라면 철학자 헤겔의 6대손으로도 유명한데, 우리나라에 나왔던 책은 현재 요것 하나 말고는 다 절판된 듯하다. 


나귀님도 우연히 알라딘 중고샵을 통해서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루디 러커의 이름에 혹해 구입해 보았더니만 외관부터 그다지 미덥지가 않은 데다, 만화풍의 삽화까지 들어 있어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림체가 뭔가 낯익다 싶어서 혹시나 하고 검색해 보았더니만, 꽥, 진짜로 이 책의 일어판에 아즈마 히데오가 삽화를 담당했다고 나온다!


결국 이 책도 일본어 중역본일 가능성이 높아 한동안 방치해 두었고, 그렇게 시간이 가다 보니 이제는 책더미 맨 아래 깔려 꺼내기도 쉽지 않게 되었는데, 이참에 생각나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내용은 좋지만 번역은 최악'이라는 누군가의 서평이 달려 있다. 그래도 아즈마 히데오의 팬이 있다면 한 권 갖고 싶어 할 것도 같긴 한데... 과연 팬이 있기는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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