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아니겠지만, 예전에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반인이 플라톤 대화편을 접할 기회도 흔치 않았을 뿐더러, "가혹해도 법은 법이다"라는 라틴어 격언에서 유래했다는 이 표현이야말로 어찌 보면 마치 법치주의의 원칙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처럼 제법 그럴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과거 일본의 한 법학자가 소크라테스의 사례에 나타난 실정법 존중의 정신을 "악법도 법이다"라는 표현으로 요약했던 것이 저 유명한 철학자의 실제 발언인 것처럼 와전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역설적인 사실은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고스란히 감내했고, 심지어 주위의 탈옥 권유를 물리치면서까지 그렇게 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하나인 <크리톤>은 제목과 동명인 인물이 감옥에 갇혀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를 찾아와서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크리톤은 자기가 미리 다 손을 써 놓았으니 그냥 일어나서 나가기만 하면 쉽게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권유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지금 상황에서야 탈옥이야말로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반박하면서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껏 국가와 법률의 혜택을 받으면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양쪽 모두에 반대했었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외국으로 이주하는 편이 나았겠지만, 결국 그곳에 남아서 지금까지 살았다는 것은 국가와 법률 모두를 존중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제 와서 그중 뭔가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거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문맥을 감안하고 보면 "악법도 법이다"도 <크리톤>에서 자세히 설명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제대로 요약하고 있는 표현인 것은 맞다. 물론 무조건적 법률 준수에 앞서 표현과 이동의 자유 같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다면, 예를 들어 과거의 한국 같은 독재 치하에서는 자칫 나쁜 법률까지도 정당화하는 핑계로 남용되기가 쉽겠지만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다른 대화편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강조하기도 했었으니 상호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고, 이와는 반대로 재판 중에 열띤 변론을 내놓았던 것이나 판결 후에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 모두 저 철학자의 전체적인 태도며 주장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반론 역시 있다.


여하간 지금은 통용되지 않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격언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 까닭은 당연히 최근의 여러 가지 사건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 심판, 야당 대표의 개인 비리 재판, 원내 3당 대표의 자녀 입시 비리 재판에서 한결같이 "악법"에 대한 비난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세 명 모두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 출신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를 더해준다.


쉽게 말해 나에게 유리하면 "현명한 판결", 불리하면 "잘못된 판결"이라는 식이니, 각자 정의와 양심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물론 법률도 절대적인 것까진 아니지만, 양심도 절대적인 것까지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다. 최근 논란이 된 뉴진스의 행보처럼 '내가 보기에는 불공정'이라 해서 뭐든 불공정이 되지는 않으니까.


지금에 와서 이런 모든 사법 불신의 사례가 나타나는 이유는 그간 권력과 재력에 좌우된 불공정한 판결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법 절차 모두를 불신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는 피고인의 입에 발린 발언도 법원 판결에 대한 신뢰를 전제하는 만큼, 판결 불복은 단순한 이의 제기 이상의 심각한 위반이다.


이번의 대통령 탄핵 재판은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 계기였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런 사법 불신이 원래 오늘날 제1야당의 근간인 운동권의 주특기였다는 점이다. 과거 군사 독재 정권을 줄곧 불신했던 까닭인지 지금까지도 사법 불신 풍조가 지배적인데, 심지어 민주당의 전직 대통령 두 명과 현직 대표가 변호사 출신임에도 그렇다.


최근 서부지법 난입 사건으로 절정에 도달한 사법 불신 풍조는 일차적으로 현직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책임이라 할 수 있지만, 민주당 대표와 원내 3당 대표의 책임 역시 적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양쪽 모두 개인 비리에 대한 재판마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하며 비난해 왔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 법치주의를 부정했다는 점은 결국 너나 없이 똑같지 않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입법가인 국회의원부터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를 일삼아 오다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물론 트럼프가 이미 수년 전에 비슷한 일을 해내기는 했지만!) 난입 사태가 벌어졌으니, 툭하면 국격 운운하는 나라에서 완전히 나라 망신이고, 이러다가는 과연 탄핵 이후에 법치주의가 재건될 수 있을지 의문마저 든다.


극우 지지자를 위시한 탄핵 반대 세력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법원이고 법관이고 간에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실정인데,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서 일단 내려진 판결들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개인들에 의해 무효화되고 손상되었는데도, 그런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서 여전히 존속할 수 있을 것 같은가?"(50b) 


어쩌면 이 대목에서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에 내재한 위험을 지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는 마치 현재 극우 세력의 난동과도 유사하게 대중 선동의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어빙 스톤 같은 사람은 소크라테스를 반민주주의자라 비판했지만, 저 철학자를 죽인 당시의 정치 상황 자체도 그리 민주적이지는 않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함으로 재판을 받은 소크라테스는 비교적 경미한 처벌로 끝날 법한 상황에서 직접 변론하며 '어그로'를 끌어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 동기를 놓고 해석이 분분한데, 혹시 민주주의의 타락 가능성을 목숨 바쳐 경고한 것은 아닐까? 현재 민주적 절차조차 각자의 목적에 악용하는 권력자와 지지자의 모습을 보면, 새삼 그가 무엇을 걱정했는지 알 것도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