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라딘에 "트럼프의 인생책" 운운 하는 광고가 있기에, 도대체 어떤 책을 읽었기에 저런 괴물이 생긴 건가 궁금해서 클릭해 보니 엉뚱하게도 <손자병법>이 나온다. 알라딘의 책 소개를 읽어보니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담은 손자병법을 반드시 읽어보라"는 트럼프의 발언 인용문과 함께, 빌 게이츠와 손정의 같은 유명인이 남긴 평가도 한 줄씩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저서 <챔피언처럼 생각하라>에는 이렇게만 나온다. "맥아더도 이 책을 연구했고, 역사 속의 다른 여러 유명한 전략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즈니스스쿨의 추천 도서로서는 이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담컨대 결코 이례적이지 않다. 그만큼 귀중하고,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즉 그냥 '좋은 책이니 한 번 읽어보라' 정도였다.
물론 트럼프야 저서도 많으니 다른 곳에서는 '필독서'나 '인생책'이라고 밝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다만 우습게도 정작 미국 언론에서 그와 이 병법서를 연관지은 경우는 "트럼프는 <손자병법>을 읽어야 한다"며 거친 태도를 질타할 때가 대부분이니, 취임 직후부터 줄곧 '닥공' 모드인 미국 대통령을 이 책의 홍보에 사용한 것이 과연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나귀님은 현암신서의 <손자병법>,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의 <무경칠서>, 책세상 밀리터리클래식의 <손자병법>처럼 가급적 사례 제시 없이 원문 해석에만 충실한 것으로 번역서를 몇 가지 갖고 있다. 이번에 나온 <손자병법>을 미리보기로 살펴보니 사례 제시에 치중한 듯한데, 산만한 것은 둘째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애매모호한 문장도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에서 영웅이란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카이사르, 한니발, 나폴레옹, 세기의 명장들이 <영웅전>을 읽고 추종했던 리더의 길이 이것이었다. 손자가 말한 리더의 길, 오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25쪽) 그런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뭐, 한니발이 <영웅전>을 읽었다고?
위의 인용문에는 생략했지만, 해당 본문에는 플루타르코스(AD 46-120)와 한니발(BC 247-183)의 생몰년이 병기되었는데, 이것만 봐도 <영웅전>의 저자가 카르타고의 장군보다 더 나중임을 알 수 있다. 카이사르(BC 100-44) 역시 기원전의 인물로서 한니발과 함께 <영웅전>에 등장했었으니, 이건 마치 "조조와 유비가 <삼국지>를 읽고 추종했다"고 말하는 격이다.
애초에 "나폴레옹과 세기의 명장들"만 언급했다면 무난했을 문장에 굳이 "카이사르, 한니발"까지 갖다 붙여서 틀린 것인지, 아니면 "카이사르, 한니발, 나폴레옹, 세기의 명장들"이 "추종했던 리더의 길"에 굳이 <영웅전>을 갖다 붙여서 틀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사와 전쟁사의 전문가라는 저자의 남다른 이력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슷하게 애매한 문장은 바로 뒤에도 나온다. "수백 개의 지역으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이 통일국가와 강력한 국가, 민족주의를 이룬 데는 참혹한 내전이었던 30년 전쟁과 전 유럽을 상대로 싸운 7년 전쟁, 유럽 전체만큼 강했던 나폴레옹 전쟁이 큰 역할을 했다."(26쪽) 여기서도 "나폴레옹"과 "전쟁" 사이에 "-과의"나 "-을 상대로 싸운" 정도가 들어가야 할 듯하다.
지난번 코페르니쿠스 번역본에 붙은 서울대 교수의 해제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문장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어째서인지 요즘에는 정확하고 아름다운 문장까지는 갈 것도 없이 그냥 이해가능한 문장을 쓰는 저자도 드물어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역량 하락이 문제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출판사의 역량 하락도 문제가 아닐까 싶고.
그래서인지 최근 인기를 끄는 고전 해설서들을 보면 아무래도 얕고 급한 느낌을 받게 된다. 새로운 해석도 좋고, 친근한 화법도 좋고, 사례의 열거도 좋지만, 뭔가 천천히 음미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경영과 처세에 적용하기 앞서 군사 전략으로서 <손자병법>의 원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던 어느 군사학자의 일침이 새삼스레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