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이 사무실에 쌓아 놓았던 책을 정리하겠다며 매일 한두 권씩 가방에 담아 와서 안방에 풀어놓는데, 가만 보니 한동안 눈에 띄지 않던 <고정희 시 전집> 두 권도 들어 있었다. 수년 전에 바깥양반이 뜬금없이 이 책 없느냐고 찾기에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이미 절판이고 중고 가격도 천정부지로 솟구친 상태라서, 이건 아무래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책인가보다 싶을 정도였다.


혹시 다른 데에는 좀 더 저렴한 중고가 있나 싶어 구글링하다 보니, 발행처인 또하나의문화에서 수년 전에 독자 요청으로 소량을 재간행했고, 기존 서점 유통망이 아니라 출판사로 문의하는 독자에게만 직접 판매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바깥양반이 전화를 걸어 보았더니, 마침 재고가 있다기에 정가에 배송료까지 고스란히 송금하고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이미 다시 수년이 흐른 지금에도 재고가 남아 있는지 여부는 나귀님도 알 수 없지만, 여하간 그렇게 해서라도 책을 구할 수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필요한 사람은 출판사에 직접 알아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오랜만에 알라딘에서 그 책을 다시 검색해 보았더니 가뜩이나 비쌌던 중고 가격이 더욱 터무니없이 올라 있기에 혀를 내두르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나서 날름날름 적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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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데리다와 모스 전기를 구입한 이후에 혹시 살 만한 게 더 있나 싶어서 정가 인하 도서 코너를 꾸준히 들여다 보고 있는데, 거기 올라온 재정가 도서 중에는 살짝 이상해 보이는 것도 있다.


전통문화연구회의 <역주 맹자주소 3>이 바로 그 책인데, 전4권 가운데 유독 제3권만 정가 인하를 했다는 것도 이상하고, 그나마 인하된 가격이 원래 정가의 3%에 불과한 1천 원이라는 것도 이상하다.


전4권 가운데 유독 이 낱권만 판매가 부진해서 정가 인하를 했다 치더라도, 그렇게 할인한 가격이 다른 낱권 정가와 별 차이가 없는 상황이라 판매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으니 역시나 이상하다.


그러니 착오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엉뚱한 책을 정가 인하했거나, 아니면 재정가를 잘못 책정했거나, 아니면 매번 알라딘/출판사의 설명이 그렇듯 나귀님 눈깔이 잘못된 것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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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작가나 작품의 전집이나 세트 중에는 책등에 이미지를 집어넣어서 책장에 나란히 꽂았을 때에 장식으로서의 가치를 높인 경우가 있는데, 가끔은 고가의 한정판 말고 일반 단행본 중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사용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이번에 체홉에 관해 끄적이고 나니 범우사의 체홉 선집 역시 책등에 저자의 얼굴은 넣은 경우였음을 뒤늦게 깨닫고 책장에서 꺼내 본 김에 기념으로 사진을 한 번 찍어 올려본다. 



예전에 푸른숲에서 나왔던 김성동 소설집 역시 저자의 얼굴을 책등에 넣은 경우였기에 역시나 사진을 찍어 올려본다. 


그 외에 문학동네에서 나왔던 최인호 단편 전집도 책등에 저자의 얼굴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이건 좀 흐릿하달까, 선명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서 굳이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사실은 귀찮...) 


저자의 얼굴이 아닌 이미지로는 예전에 고려원에서 나왔던 테즈카 오사무의 <붓다> 책등에 와불의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라든지, 비교적 최근에 나온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에서 책등에 SF다운 이미지가 있었던 (그러나 중간부터 생겨난 것이어서 제1권 초판을 구입한 독자는 책등이 그냥 하얄 거다) 것도 기억이 나는데, 역시나 굳이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역시나 귀찮...) 


외국의 경우에는 해리 포터 신장판 박스 세트도 이런 디자인을 만드는 모양인데, 우리나라의 책에서도 시시껄렁한 팬시용품 나눠주지 말고 책 자체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이와 비슷한 시도가 많았으면 좋겠다.(하지만 결론은 또 플라스틱 쓰레기 나눠주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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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햇볕도 괜찮아 보이고 비 예보도 없기에 시트 한 장 손빨래 해서 옥상에다 널었더니 십 분도 안 되어서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걷으러 올라갔다가 물에 빠진 나귀님이 되어 내려왔다.


그래도 소금 가마 짊어지고 나가지 않은 것이 어디냐고 나름 럭키덩키를 시전하다 보니, 마치 언제 그랬느냐고 약올리는 듯 구름이 싹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서 햇볕이 다시 쨍쨍해진다.


문득 며칠 전에 읽은 로렌 레드니스의 책 제목처럼 "아주 기묘한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알라딘 중고샵에서 같은 작가의 <방사성>을 구입하고 호기심이 생겨 덩달아 구입한 책이었다.


두 권 모두 그래픽노블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만화책의 형식보다는 오히려 그림책의 형식에 더 가까워 보이므로, 차라리 성인용 그림책이라고 분류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주, 기묘한 날씨>는 제목에도 드러난 것처럼 추위, 비, 안개, 바람, 열, 하늘, 일기예보 등 날씨와 관련된 주제에다가 다양한 일화를 곁들여서 쓴 개별적인 에세이를 총12장에 걸쳐 수록했다.


감성적인 내용 대신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하여 여러 사람과 사건의 흥미로운 면모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나귀님 구미에 딱 맞는 느낌이었다. 웃음기를 뺀 빌 브라이슨이라고나 할까.


<방사능>은 "마리와 피에르 퀴리의 사랑과 결별"이라는 부제로 알 수 있듯이 퀴리 부부의 전기이며, 그 사이에 원자폭탄이며 체르노빌 같은 다른 여러 사건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는 방식이다.


두 권 모두 말미에 인용 출처를 정확히 표시하고 추가 설명까지 덧붙인 것을 보니, 차라리 저자가 뛰어난 글재주를 살려 본격 논픽션에 집중하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귀님이 보기에는 그림책 두 권 모두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그림'이란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럭키로렌쯤 되면 비난이 아니라 극찬이라는 것을 알아듣고 좋아하지 않을까...



[*] 그나저나 <방사성>은 오타도 있고 오역도 있다. <아주, 기묘한 날씨>는 번역이 무난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 약력에서 저자의 전작 두 권의 제목과 부제를 뒤섞어서 <세기의 소녀, 도리스 이턴 트래비스의 생애>, <방사능과 지그펠드 폴리스의 마지막 살아 있는 별, 마리와 피에르 퀴리>, <낙진과 사랑 이야기>라고 마치 세 권처럼 옮긴 황당한 오역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자세히 뜯어 보면 또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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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에서 미쉬나 번역서를 부록 포함 전7권으로 간행한다기에 신기한 일이다 싶었는데, 나중에 다시 검색해 보니 유대교 연구자인 백석대학교 변순복 교수의 미쉬나 번역서가 역시나 부록 포함 전7권으로 간행된 상태였다. 그것도 후자는 올해 4월 출간, 전자는 8월 출간이라 불과 4개월 사이에 번역본이 2종이나 나오는 셈이다.


한쪽은 단독 번역이고 다른 한쪽은 공동 번역이지만, 애초에 아무나 쉽게 읽을 수 없는 원저의 특성상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뚝딱 작업이 이루어졌을 리는 없고, 최소한 수년의 노력이 들어갔을 법하다. 그러니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지, 아니면 나귀님 같은 일반인으로서는 알 길 없는 학계의 어떤 경쟁의 결과물인지 궁금해진다.


이미 갖고 있는 허버트 댄비와 제이콥 뉴스너의 영역본을 꺼내 뒤적여 보니 양쪽 모두 900페이지와 1100페이지에 달한다. 히브리어 원문까지 덧붙이면 충분히 지금처럼 전7권 3천 5백 페이지, 또는 전7권 5천 2백 페이지에 달하는 번역본이 나올 법도 해 보인다. 미쉬나만 이 정도이니 게마라까지 합치면 수십 권에 달할 듯하다.


생각난 김에 정리하자면 (나귀님도 종종 헛갈리는데) 토라(오경)에 포함되지 않은 랍비들의 구비 전승, 즉 구전 토라가 미쉬나이고, 이 미쉬나에 대한 주석이 게마라이다. 예를 들어 미쉬나에서 어떤 규례가 나오면 게마라에서는 그 규례에 대한 여러 랍비의 다양한 해석들이 소개된다. 미쉬나와 게마라를 합쳐서 탈무드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탈무드>라고 하면 마빈 토케이어라는 미국인 랍비가 저술한 책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일본에 오래 살았던 저자의 경력을 감안하면 원저 자체가 일본어로 저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거기 수록된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아마 탈무드 가운데 게마라에 나온 일화에다가 기타 전승의 내용을 보충한 것으로 짐작된다.


예를 들어 몸이 하나에 머리가 둘인 샴쌍둥이가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를 알려면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뿌리고 반응을 살피라는 우화를 보자. 탈무드 게마라에는 장자 대속의 규례와 관련된 예제로 샴쌍둥이에게 한 사람 값을 받을지 두 사람 값을 받을지에 대한 논의가 나오지만, 정작 뜨거운 물을 뿌린다는 내용까지는 없다.


반면 탈무드의 기반인 미쉬나는 다양한 규례를 모은 것이다 보니 배경 지식 없는 일반 독자로서는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토케이어의 책 같은 재미를 기대했다면 더욱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앤 카슨이 인용한 "워낙에 좁아서 여러 번 해도 늘 처음 같은 암컷 영양의 음문" 비유도 미쉬나가 아니라 게마라에만 나온다.


미쉬나 자체는 여섯 권, 심지어 영역본의 경우처럼 단권에 담을 만큼 분량이 적은 편이지만, 게마라까지 합치면 상당한 분량이어서 토케이어는 탈무드를 빌려달라는 이방인 친구에게 "자동차를 가져와서 싣고 가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회고한다. 탈무드 자체가 서적 수십 권 분량이라, 그 무게만 해도 수십 킬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랍비만 읽는 전문 서적이다 보니, 이방인 중에는 탈무드를 일종의 마도서로 착각한 경우도 있었다. 최근 나온 나치 시대의 일상사 가운데 하나에도 '유대인은 탈무드라는 악마의 책을 본다'는 독일인의 증언이 나와서 쓴웃음을 자아내는데, 따지고 보면 탈무드를 처세서로만 여기는 우리나라의 통념도 오해이긴 마찬가지다.


탈무드를 익힌 유대인 랍비의 뛰어난 언변에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혀를 내두른 바 있다. 한 번은 그가 대중 강연을 마치자마자 젊은 보수파 유대인 랍비 둘이 찾아와 다짜고짜 물었다. "전기는 불입니까?" 유대교의 율법에서는 안식일에 불 사용이 금지되었으므로, 전기가 불인지 아닌지에 대해 확답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과학에 전통을 맞춰가는 대신 전통에 과학을 맞추려는 대놓고 시대착오적인 태도에 흥미를 느낀 파인만이 이런저런 질문으로 상대방을 모순에 빠트리려 시도했지만, 두 랍비는 수천 년의 전통을 무기 삼아 마치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잘도 빠져 달아났다고 전한다. 결국 파인만도 랍비 앞에서는 꼼짝없이 항복을 선언했다 하던가.


그나저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로 논란이 지속되는 지금, 유대교 랍비 전통의 정수인 미쉬나가 간행된다는 점은 살짝 아이러니하다. 결국 미쉬나란 기존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할 수 없는 각종 돌발 상황을 가정하고 유연한 해결을 모색한 결과물인 듯한데, 어째서 지금 이스라엘은 맹목적인 원칙만 고수하는 것일까.


유대인의 이방인 혐오증은 구약성서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었지만, 이와 반대로 미쉬나에는 평화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가난한 이방인에게도 배려하라는 등의 유연한 조언들(예를 들어 나쉼/기틴 5.8)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이스라엘이 드러내는 오만과 탐욕이라면 미쉬나가 아니라 하느님이 와도 못 말릴 것 같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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