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라는 책이 있기에 솔깃해서 클릭해 보았더니 나오미 클라인의 책이었다. 영어권 이름이니 '네이오미'라고 표기해야 맞을 것 같은데, '아이자이어' 벌린을 굳이 '이사야' 벌린으로 표기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성서의 표기법인 '나오미'가 굳어진 듯하다. 물론 그 이름의 유래를 감안하면 오히려 성서의 표기법이 히브리어 발음에 더 가깝겠지만.


특이하게도 클라인의 이번 책은 또 다른 '나오미'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바로 미국의 저술가인 나오미 울프인데, 국적과 외모부터 정치 성향이며 저술 내용까지도 상이한 두 사람을 대중이 종종 혼동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문득 뜨끔할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나귀님 역시 클라인의 지적처럼 두 명의 '나오미'를 종종 헛갈렸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 최악의 오역본 중 하나인 저메인 그리어의 책에서 나오미 울프의 역시나 오역된 인용문을 접하고는 '이 여자가 그 시꺼먼 책 쓴 사람인가?' 생각했었고, 거꾸로 나오미 클라인의 다른 신간을 접하고는 '이 여자가 그 해럴드 블룸한테 성추행 당했다고 폭로했다가 흡혈귀 딸년이라고 역공을 당했다는 사람인가?' 생각했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원래 좌파 진영에서 경력을 시작한 울프가 머지않아 우파, 그것도 극우 진영으로 선회해서 클라인과는 상반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인터넷이며 SNS를 통해 두 명의 '나오미'가 지속적으로 혼동되고, 울프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면 클라인까지 덩달아 대중에게 욕을 먹는 지경에 이르자, 클라인이 먼저 이 문제를 고찰하러 나섰다.


포퍼와 비트겐슈타인의 이른바 '부지깽이 논쟁'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무시하는 쪽이 승리하게 마련이니, 결과적으로는 먼저 눈을 깜박인 클라인 쪽이 패배한 셈이 아닐까. 예를 들어 '어둠의 아이유'가 마구 날뛰는 상황에 진짜 아이유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란 그저 침묵을 지키는 것밖에 없어 보이니 말이다.


물론 서문에 인용된 필립 로스의 말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가소롭고, 가소롭다기에는 너무 심각하다"는 딜레마의 상황이기는 하다. 그래서 클라인도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울프의 좌충우돌 행적을 뒤쫓으면서도, 온갖 음모론과 가짜 뉴스를 섭렵하는 과정에서 '지금 내가 왜 이걸 듣고 있는 걸까' 하고 종종 현타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대중이 유명인을 혼동하는 경우에는 대개 뭔가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아이자이어 벌린을 처칠이 어빙 벌린으로 오인한 것은 진짜 착각이었겠지만, 슈바이처가 아인슈타인으로 오인된 사례나, 브루노 마스가 저스틴 비버로 오인된 사례나, 앤 머리가 (언젠가 콘서트에서 직접 소개한 일화처럼) 티나 터너로 오인된 사례가 그렇다.


앞자리 이름만 비교적 흔치 않다는 점만 같을 뿐, 외모와 성향과 발언이 천양지차인 클라인과 울프를 혼동하는 것은 대중의 무지와 무심 때문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정확하고 섬세한 구분을 요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법전' 스님이 기고한 개고기 반대 글조차도 오랜 세월 동안 '법정' 스님의 글로 오인되었듯이 말이다.


여하간 클라인은 자신의 도플갱어, 또는 분신으로 간주되는 울프가 곳곳에 남긴 행적을 오랜 시간에 걸쳐 추적했는데, 이 과정에서 각자가 속한 좌파와 우파의 현재 상황까지도 도플갱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깨달은 모양이다. 즉 좌파가 뭔가를 주장할 때마다 우파는 일종의 도플갱어를 만들어내서 상대편의 주장을 '반사'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귀님이야 서문 외에는 아직 읽은 것이 없으므로 클라인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 보면 언제부턴가 좌파가 우파의 미러링에 꼼짝달싹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기도 한 듯하다. 대표적인 것이 가짜 뉴스인데, 기껏 팩트체크를 해 놓으면 유포자는 '아니면 말고' 하는 무책임한 입장을 고수하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에도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무기는 최신 기술을 이용한 소통이었는데, 어느새 SNS와 유튜브로 우파가 대거 진출하면서 온갖 가짜 뉴스를 퍼트리게 되자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좌파도 종종 어떤 사안을 실제보다 과장하는 전략으로 재미를 보았지만, 우파는 대놓고 가짜 뉴스를 퍼트려서 훨씬 더 대박을 터트렸으니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클라인이 울프와 확연히 구분되는 '그 나오미'가 되지는 못했던 것처럼, 좌파인지 진보인지 하는 세력도 지금에 와서는 우파인지 보수인지 하는 세력과의 확실한 차별화에는 실패한 것이 가장 큰 문제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중의 눈에 충분히 혼동할 만해 보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통에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귀님이 보기에는 좌파고 우파고 진보고 보수고 간에 도덕성이라는 높은 가치를 버리고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민낯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중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 경우에는 주디스 슈클라의 지적처럼 위선이 잔혹성보다 더 큰 문제인 것처럼 과장되고, 결국에는 인간 혐오와 정치적 무관심을 낳아 이번 미국 대선처럼 극우 부활의 온상이 될 테니까.


여하간 도덕성을 회복하려면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터인데, 코로나 후유증에 각종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세계 경제는 물론이고, 부동산부터 사과값, 배추값, 치킨값, 배달료에 이르기까지 난리인 한국 경제도 가까운 시일 내에 좋아질 기미는 없어 보인다. 좌파의 약세와 우파의 득세를 단순한 도플갱어 전략 하나로만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 나오미 울프는 그간의 행적으로 미루어 선동가이고 기회주의자라는 비판도 받는 모양이다.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을 때 의외로 주변의 반응이 시큰둥했다는 것도 그래서였는지 모를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비록 블룸이 울프[쓰고 보니 여기서 또다시 이 나오미와 저 나오미를 헛갈렸다! '클라인'이 아니라 '울프'가 맞다]와의 부적절한 접촉을 한사코 부정했지만, 주위의 증언에 따르면 저 문학비평가는 실제로 제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등 사생활 면에서 제법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는 점이다.


[**] 그나저나 책 소개에서 언급한 "영국에서 부커상 다음으로 권위 있는 여성문학상 논픽션" 수상 실적은 살짝 낯간지럽다. '여성문학상'(Women's Prize for Fiction) 자체가 1996년에 제정되어 역사도 짧을 뿐더러, <도플갱어>가 수상한 '여성논픽션상'(Women's Prize for Nonfiction)은 2023년에야 신설되어 나오미 클라인이 제1회 수상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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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무난히 당선되었다. 지난번 암살 시도 모면 이후에 승리는 사실상 따 놓은 당상이 아닌가 생각했던 나귀님이었으니 그저 무덤덤했던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의 당선에 깜짝 놀란 듯한 여론이 대부분인 것 같으니 우스운 일이다.


지난번 한국 대선 결과는 윤석열이 잘해서가 아니라 문재인이 못해서였던 것처럼, 이번 미국 대선 결과 역시 트럼프가 잘해서가 아니라 바이든이 못해서였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경제와 외교부터 본인 건강 문제까지 거듭된 실책으로 패배를 자초한 셈이다.


의외라 여겨지는 한편으로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트럼프 집권 2기를 전망하는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으니 희한한 일이다. 십중팔구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 양쪽에 대한 원고를 모두 준비해 두었다가 결과 발표와 동시에 간행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후보의 저서나 전기를 간행할 경우에는 패배 시의 위험 부담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운 좋게도 당선자의 책을 간행했다면 대박이겠지만, 낙선자의 책을 간행했다면 완전 쪽박일 수밖에 없으니.


때로는 어떤 인물이 당내 경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이유만으로 서둘러 관련서를 냈다가 쪽박을 차는 사례도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2016년의 버니 샌더스였다.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한 권도 아니고 전기와 자서전까지 합쳐서 무려 다섯 권이 나왔다!


카멀라 해리스도 의외로 자서전이 2021년에 일찌감치 번역되어 있었는데, 알라딘 판매지수를 보니 대선 특수까지는 없었던 모양이다. 십중팔구 해리스 당선과 함께 출간될 예정이었다가 이제 흐지부지되어 버린 국내외 저자들의 책도 한두 권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번 집권 1기에 간행된 저서가 여러 권이라서 이제 굳이 다시 나올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앞서 말했듯이 집권 2기를 전망하는 시의적인 책들이 여럿 나오는 모양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성격상 앞으로 뭐가 될지는 닥쳐봐야 하겠다.


그나저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귀님도 트럼프 초선 때에 <불구가 된 미국>이라는 저서를 하나 사다 놓긴 했었다. 동네 헌책방에 갔더니 여러 권 쌓여 있기에 살펴보니, 뒤표지에 무려(!) 로버트 레드포드의 추천사가 들어 있기에 신기해서 사왔던 거다.


알고 보니 레드포드의 추천사는 어느 토크쇼에 나와서 한 돌려까기였는데, 그걸 트럼프가 잽싸게 가져다가 마치 그 배우의 진심인 척 써먹은 것이라 한다. 훗날 트럼프의 대표 전략으로 자리잡은 가짜 뉴스 생성 및 유포의 선례 가운데 하나였던 셈일까.


물론 나귀님도 트럼프를 좋아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나 구경이나 하자 싶어 구입하기는 했지만 막상 시간을 투자하기는 아까워서 책더미에 파묻고 내버려 두었는데, 결국에는 책을 버리기도 전에 트럼프가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진즉 내다버렸더라면 트럼프 2기라는 대참사도 없었을지 몰랐겠다 자책하며 이번에는 진짜로 버리려고 책더미를 뒤지니, 트럼프 책 밑에 깔린 존 맥케인 자서전이 문득 눈에 띈다. 이번 대선 결과에 아마 저 양반도 무덤에서 홱 돌아눕지 않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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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시인선으로 새로 나온 책을 알라딘 첫화면에서 광고하기에 살펴보니, 표지에 들어 있는 저자 캐리커처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거칠다 못해 뭔가 어수선한 느낌마저 주는 과거 시인들의 얼굴과는 완전히 딴판이어서 마치 다른 시리즈 같은 느낌마저 주는데, 당연히 그린이가 달라진 까닭일 것이다.


구글링해 보니 이와 관련된 설명은 이미 10년 전 <동아일보> 기사 "문지의 얼굴이 다양해졌다"(2014년 1월 20일자)에 나와 있었다. 1977년 문학과지성사의 시인선 첫 권인 황동규 시집부터 캐리커처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무용평론가 김영태와 시인 이제하가 번갈아 담당하면서 이 시리즈의 상징처럼 자리잡았다.


그러다가 300번대 후반부터 그린이가 다른 캐리커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데, 나귀님이 뭔가 달라진 느낌을 확연히 받게 된 것은 2023년에 나온 <홈 스위트 홈>이라는 시집부터였다. 문지 시인선은 맞는데 뭔가 이상해서 살펴보니 기존의 크로키와는 딴판인 만화풍의 저자 캐리커처가 들어 있기에 세대차이를 느낀 거다!


최근에는 출판사 대신 저자가 직접 그린이를 선정하기도 하는 모양이고, 드물게나마 초판의 캐리커처가 재판에서 교체되기도 하는 모양인데, 최근 각광을 받는 소설가 한강의 유일한 시집이 그런 경우였다. 2013년에 나온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초판에는 원래 작가의 지인인 한국화가가 그린 캐리커처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재판의 캐리커처는 작가의 동생이 그린 것으로 교체되었는데,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책 표지의 저자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초판 캐리커처가 초상화 느낌이라 그 시리즈의 다른 표지화와 이질적이라는 지적을 출판사와 독자로부터 받아서라고 저자가 직접 해명했다.


초판은 사실적인 정면 얼굴 묘사인 반면, 재판은 측면 얼굴 윤곽만 나오고 눈코입은 사라진 것이 특징이다. 물론 더 단순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시리즈의 다른 표지화와의 유사성을 주장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혹시 저자나 지인이 첫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것이 교체의 진짜 이유는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기존 표지화와 너무 이질적인 초상화라서 곤란했다면 굳이 수록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초상화의 수록이건 교체건 간에 결국 저자의 승인을 거쳤을 터인데, 작품이나 제목 선정에서 의견이 달랐어도 출판사보다는 작가가 최종 권한을 가질 터이니, 결국 캐리커처의 교체 역시 출판사보다 작가의 뜻일 수 있다.


풍경화와 달리 초상화는 지나치게 사실적이라 오히려 불만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다. 유명 화가가 그린 초상화를 영국 정부로부터 선물받았지만, 노쇠한 모습을 너무 잘 묘사했다는 이유로 못마땅해 한 나머지 불태워버린 처칠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한강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자기 얼굴의 사실적 묘사가 싫었을 수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저자인지 지인인지 독자인지 출판사인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해서 결국 교체한 캐리커처를 담은 초판본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는 오히려 희귀본 대접을 받는다는 점이다. 개정판이 나오면 초판 정보를 비공개하는 특성상 알라딘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중고샵에 판매가 150만 원에 올라온 매물이 있다!


여하간 나귀님이야 최근 나온 시집의 표지에 실린 만화 그림체 때문에 처음 인식한 변화이지만,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있었던 추세라니 나만 몰랐던 것인가 싶다. 물론 달라진 것은 표지화만이 아니어서 내용도 좀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나귀님이야 국내시를 평소 안 읽으니 이것도 편견이라면 솔직히 할 말은 없고...



[*] 그러고 보니 예전에 문지에서 절판 시집 재간행 시리즈인 문지시인선 R인가 하는 것을 간행하면서 유하의 <무림일기>를 내놓았기에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다가, 그 말미엔가 수록된 "기획의 말"을 읽으며 진저리를 친 기억이 난다. 그냥 '좋은 시집이 절판되었기에 아까워서 다시 냈다'고 하면 그만인데, 무슨 이유에서 현학적이다 못해 부조리하게까지 느껴지는 글을 이런저런 외국 문헌의 출처까지 줄줄이 거론하면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적어 놓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시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의도 밤하늘에 별님과 달님이 맥주 마시며 노닥거린다는 황당무계한, 또는 터무니없게 발랄했기 때문에 더 인상적이었던 어느 시의 한 구절을 수십 년 뒤까지 종종 떠올리는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요즘 시고 시론이고 간에 뭔가 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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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원전> 개정판이 나왔다기에, 항상 선명한 미리보기를 제공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들어가서 서문을 살펴보니 한 가지 이상한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일반 독자를 위한 쉽고도 명확한 과학 해설의 사례로 이 책에 수록된 할데인의 에세이를 거론한 대목이다.


편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할데인은 그 에세이에서 동물의 크기를 설명하며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에 나오는 18미터 키의 거인 바울과 페간은 걸음을 걸을 때마다 넓적다리가 부러졌을 것이므로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단 두 문단의 설명만으로 명확히 보여주었다"(14-15쪽)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번연의 작품에 나오는 거인의 이름이 "바울과 페간"이 아니라 "포프와 페이건"(Pope and Pagan)이며, 문자 그대로 "교황과 이교도"를 상징한다는 점이다. "바울"(Paul)은 오히려 신약성서의 사도 가운데 한 명인데,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악의 상징이라 잘못 썼는지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사소한 실수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제깐에는 "출간 20주년 기념 컬러판 양장본 에디션"을 내놓았답시고 요란하게 광고하는 상황에서 구판에 있던 오류가 신판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은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런 오류는 단 한 가지만이 아니라는 점 역시 문제다.


서문에는 데이비드 보다니스가 "파스퇴르의 대중을 혐오하는 성향과 그가 밝혀낸 질병과 박테리아 사이에 관련성을 찾으려고"(25쪽) 했다는 설명도 있는데, 실제로는 "파스퇴르의 대중을 혐오하는 성향과 그가 밝혀낸 질병과 박테리아'의 관계' 사이에 관련성을 찾으려고"라고 번역해야 맞다.


즉 파스퇴르의 '대중 혐오 성향'(A)과 파스퇴르가 발견한 '질병과 박테리아의 관계'(B)가 있고, 보다니스가 (A)와 (B)의 '관련성을 찾으려고' 했다는 뜻이다. 관계/관련성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니 윤문 과정에서 누락시킨 것이 아닐까 짐작되는데, 그렇게 되면 의미가 달라진다고 봐야 한다.


서문에서 가장 마음에 든 대목은 페미니스트의 과학 경시 풍조를 꼬집은 곳이었는데, 여기에도 오역이 있었다. 구판과 신판 모두 과학 저술가 에블린 팍스 켈러(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저서에는 "이블린 폭스 켈러"로 표기)를 가리켜 "가장 강경한 여권운동가 중 한 사람"(26쪽)이라고 옮겼다.


그런데 원문은 "가장 설득력 있는 페미니스트 비평가 중 하나"(one of the most cogent of the feminist critics)라는 뜻이다. 즉 컬러가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그나마 말이 통하는 합리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에만 경도된 것이 아니라 과학의 가치도 역시나 중시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켈러가 "유전학자 바버라 맥클린톡의 자서전을 집필"(26쪽)했다고 나오는데, 원문에는 자서전이 아니라 "전기를 집필"(a biographer, 전기작가)했다고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 책 <유기체와의 교감>의 부제도 "20세기 유전학 혁명의 선구자 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이다.


인명 표기 중에서 가장 눈에 거슬린 것은 구판과 신판 모두 프랑스의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의 이름을 영어식인 "헥터 베를리오즈"로 표기했다는 점이다. 음악에 투신하기 전에 잠시 의학을 전공했다는 이유에서 해부학 실습에 관한 회고를 골라 짧게 수록했기 때문이다.


소련 과학계를 말아먹은 것으로 악명 높은 "트로핌 리센코"도 구판에는 "트로핌 라이센코"라고 영어식으로 표기했던데, 신판에서 "헥터"가 그대로인 것으로 미루어 "라이센코"도 그대로이지 않을까 싶다. 자세히 들여다본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이니, 도대체 뭐가 또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여하간 절판본의 재간행이라니 반갑기는 하지만, 컬러 도판 추가 외에 문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니 굳이 새로 살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중고도 많이 올라와 있으니, 저렴한 값에 하나 사도 내용 면에서나 오역 면에서나 큰 차이까지는 없을 것 같다.


이와 유사한 책으로 앨런 라이트먼이 편저한 <과학의 천재들>이라는 것이 있는데, 제목을 잘못 지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논문 22편을 편역한 가치 높은 자료다. 즉 플랑크, 아인슈타인, 러더퍼드, 허블, 플레밍, 왓슨과 크릭 등의 논문을 전문이나 발췌로 수록해 놓았다.


여성 과학자로는 헨리에타 리비트와 바버라 맥클린톡의 논문도 들어 있다. 나귀님은 예전에 <코스믹코믹>이라는 만화를 보다가, 거기 나오는 두 주인공 펜지어스와 윌슨의 (아울러 간발의 차이로 노벨상을 놓친 디키의) 논문이 <과학의 천재들>에 수록된 것을 보고 좋은 책임을 알게 되었다.


<지식의 원전>을 읽고 나서, 비록 내용은 다양하지만 분량이 너무 짧아서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 독자가 있다면, <과학의 천재들>을 보며 조금 더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이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인터넷 서점 예스24를 통해 중고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신판은 번역자가 "지식의 원전 번역팀"이라고만 나오기에 뭐가 다른가 싶어 살펴보니 사실은 구판 번역자 그대로이고, 다만 그 사이 달라진 각자의 소속 단체명만 바꾼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광렬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미래기술연구본부에서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로 옮겼다.


정병기 박사는 동 연구원 재료연구부에서 차세대반도체연구소로, 이순일 교수는 아주대학교 분자과학기술학과에서 물리학과로 옮겼으며, 방금성 교수는 가톨릭대학교 수학과 앞에 "전"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으로 미루어 이미 은퇴한 모양이다. 박정수 박사와 김문영 번역가는 여전히 현역이다.


마지막으로 정경심 박사가 있는데, 신판에는 학위를 취득한 "애버딘대학교 영문학"이라고 표기했지만 구판에는 과거 근무지를 반영해 "전 서경대 영어과 정경심 교수"라고 했으니, 이번에는 "전 동양대 교양학부 정경심 교수"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도 그걸로 제일 유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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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번역본이 결국 간행되었다. 지난번에 북펀드를 진행한답시고 턱하니 내놓은 샘플에서 잘못된 부분이 여러 가지 눈에 띄기에 지랄발광 나귀님이 지적질을 했었는데, 그 이후에 출판사 관계자가 오류 지적에 대해 고맙다며 수정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래서 과연 제대로 고쳤나 궁금해서 생각날 때마다 확인해 보았는데, 북펀드와 국내도서 책 소개에 들어 있던 광고 문구의 오타("인류 역사에 큰 획은 그은 불후의 명작")조차도 며칠이 지나도록 여전히 그대로여서 실망스럽더니만, 나중에 가서는 알라딘 국내도서에서 책이 완전히 사라졌다!


혹시 간행 자체가 취소된 것인가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았더니만, 인쇄 사고로 인해 출간이 연기되었다는 설명이 출판사 SNS에 있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나온 책이 이번에는 무슨 영문인지 일반 도서가 아니라 큰글자 도서로만 간행되어서 예약 구매자들이 당혹스러워하는 모양이다.


나귀님이 알기로 큰글자 도서란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특별 제작품이어서 판형도 크고, 가격도 비싸며, 일반 도서가 간행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간행된다. 비슷한 과학 고전인 <프린키피아>도 일반 도서는 정가 56,000원인데, 1년 뒤에 간행된 큰글자 도서는 상하 두 권 합쳐 78,000원이다.


그런데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일반 도서보다 큰글자 도서가 먼저 나왔으니 이상한 일이다. 혹시 인쇄 사고의 여파로 일반 도서 제작이 늦어지는 바람에 큰글자 도서만 판매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만약 그렇다면 일반 도서가 입고될 때까지 큰글자 도서도 판매를 연기해야 하지 않을까?


여하간 일반 도서를 기다리다가 큰글자 도서를 받고 당혹스러워하는 구매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책과 글자가 너무 커서 오히려 읽기가 불편하다는 점이다. 가로세로가 19x26센티미터면 주간지로 익숙한 B5 판형인데, 문제는 미리보기를 토대로 환산하면 본문 활자 높이가 0.5센티미터라는 거다.


대략 15포인트 크기에 해당하니 웬만한 단행본에서는 속표지의 책 제목이나 장 제목을 표기하는 데에나 사용할 만큼 큰 글자인데, 어린이 그림책도 아니고 천문학에 대한 고전 번역서에 쓴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급기야 856페이지에 2킬로그램이나 되는 두껍고 무거운 책이 나오고 말았다.


지금 다시 확인하니 북펀드 당시부터 B5 판형이라고 공지했던 모양인데, 그렇다면 애초부터 큰글자 도서로만 제작할 의도였을까?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해서 무슨 이득이 있을지 모르겠다. 현재의 미리보기만 살펴보아도 B5 판형보다는 오히려 그 절반인 46판형에나 어울릴 본문 형태가 아닌가.


차라리 책을 46판형으로 작게 만들던가, 아니면 B5 판형에 작은 활자와 많은 행수로 페이지를 줄였다면 불필요한 종이 낭비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구매자의 지적에 따르면 도판은 확대되지 않고 그대로라서 역시나 보기 불편하다니, 어디까지가 의도이고 어디부터가 실수인지 궁금하다.


나귀님으로서는 지난번 글에서 지적한 내용이 일부는 수정되었지만, 여전히 어색한 부분이 남은 것도 불만이다. 예를 들어 이두갑 교수의 글에서 플루타르코스가 인용한 지동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문장이 살짝 달라졌지만 여전히 주술호응이 이상한 상태고, 영어식 인명도 다 그대로이다.


<프린키피아> 때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 정도의 과학 고전 번역은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출판사의 행보를 돌이켜보면, 애초부터 하자 있는 내용을 샘플로 내놓은 것부터 시작해서, 오류를 지적해도 수용하지 않는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따라서 제아무리 과학사의 고전이고 유일무이한 번역본이라 하더라도, 분노한 어느 구매자의 말마따나 지금과 같은 형태라면 개선될 때까지 구매를 유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출판사 말마따나 "인류 역사에 큰 획은 그은 불후의 명작"을 왜 이런 식으로 이상하게 만들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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