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번역본이 결국 간행되었다. 지난번에 북펀드를 진행한답시고 턱하니 내놓은 샘플에서 잘못된 부분이 여러 가지 눈에 띄기에 지랄발광 나귀님이 지적질을 했었는데, 그 이후에 출판사 관계자가 오류 지적에 대해 고맙다며 수정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래서 과연 제대로 고쳤나 궁금해서 생각날 때마다 확인해 보았는데, 북펀드와 국내도서 책 소개에 들어 있던 광고 문구의 오타("인류 역사에 큰 획은 그은 불후의 명작")조차도 며칠이 지나도록 여전히 그대로여서 실망스럽더니만, 나중에 가서는 알라딘 국내도서에서 책이 완전히 사라졌다!


혹시 간행 자체가 취소된 것인가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았더니만, 인쇄 사고로 인해 출간이 연기되었다는 설명이 출판사 SNS에 있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나온 책이 이번에는 무슨 영문인지 일반 도서가 아니라 큰글자 도서로만 간행되어서 예약 구매자들이 당혹스러워하는 모양이다.


나귀님이 알기로 큰글자 도서란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특별 제작품이어서 판형도 크고, 가격도 비싸며, 일반 도서가 간행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간행된다. 비슷한 과학 고전인 <프린키피아>도 일반 도서는 정가 56,000원인데, 1년 뒤에 간행된 큰글자 도서는 상하 두 권 합쳐 78,000원이다.


그런데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일반 도서보다 큰글자 도서가 먼저 나왔으니 이상한 일이다. 혹시 인쇄 사고의 여파로 일반 도서 제작이 늦어지는 바람에 큰글자 도서만 판매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만약 그렇다면 일반 도서가 입고될 때까지 큰글자 도서도 판매를 연기해야 하지 않을까?


여하간 일반 도서를 기다리다가 큰글자 도서를 받고 당혹스러워하는 구매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책과 글자가 너무 커서 오히려 읽기가 불편하다는 점이다. 가로세로가 19x26센티미터면 주간지로 익숙한 B5 판형인데, 문제는 미리보기를 토대로 환산하면 본문 활자 높이가 0.5센티미터라는 거다.


대략 15포인트 크기에 해당하니 웬만한 단행본에서는 속표지의 책 제목이나 장 제목을 표기하는 데에나 사용할 만큼 큰 글자인데, 어린이 그림책도 아니고 천문학에 대한 고전 번역서에 쓴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급기야 856페이지에 2킬로그램이나 되는 두껍고 무거운 책이 나오고 말았다.


지금 다시 확인하니 북펀드 당시부터 B5 판형이라고 공지했던 모양인데, 그렇다면 애초부터 큰글자 도서로만 제작할 의도였을까?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해서 무슨 이득이 있을지 모르겠다. 현재의 미리보기만 살펴보아도 B5 판형보다는 오히려 그 절반인 46판형에나 어울릴 본문 형태가 아닌가.


차라리 책을 46판형으로 작게 만들던가, 아니면 B5 판형에 작은 활자와 많은 행수로 페이지를 줄였다면 불필요한 종이 낭비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구매자의 지적에 따르면 도판은 확대되지 않고 그대로라서 역시나 보기 불편하다니, 어디까지가 의도이고 어디부터가 실수인지 궁금하다.


나귀님으로서는 지난번 글에서 지적한 내용이 일부는 수정되었지만, 여전히 어색한 부분이 남은 것도 불만이다. 예를 들어 이두갑 교수의 글에서 플루타르코스가 인용한 지동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문장이 살짝 달라졌지만 여전히 주술호응이 이상한 상태고, 영어식 인명도 다 그대로이다.


<프린키피아> 때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 정도의 과학 고전 번역은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출판사의 행보를 돌이켜보면, 애초부터 하자 있는 내용을 샘플로 내놓은 것부터 시작해서, 오류를 지적해도 수용하지 않는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따라서 제아무리 과학사의 고전이고 유일무이한 번역본이라 하더라도, 분노한 어느 구매자의 말마따나 지금과 같은 형태라면 개선될 때까지 구매를 유보하는 게 낫지 않을까? 출판사 말마따나 "인류 역사에 큰 획은 그은 불후의 명작"을 왜 이런 식으로 이상하게 만들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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