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라는 책이 있기에 솔깃해서 클릭해 보았더니 나오미 클라인의 책이었다. 영어권 이름이니 '네이오미'라고 표기해야 맞을 것 같은데, '아이자이어' 벌린을 굳이 '이사야' 벌린으로 표기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성서의 표기법인 '나오미'가 굳어진 듯하다. 물론 그 이름의 유래를 감안하면 오히려 성서의 표기법이 히브리어 발음에 더 가깝겠지만.


특이하게도 클라인의 이번 책은 또 다른 '나오미'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바로 미국의 저술가인 나오미 울프인데, 국적과 외모부터 정치 성향이며 저술 내용까지도 상이한 두 사람을 대중이 종종 혼동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문득 뜨끔할 수밖에 없었는데, 왜냐하면 나귀님 역시 클라인의 지적처럼 두 명의 '나오미'를 종종 헛갈렸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 최악의 오역본 중 하나인 저메인 그리어의 책에서 나오미 울프의 역시나 오역된 인용문을 접하고는 '이 여자가 그 시꺼먼 책 쓴 사람인가?' 생각했었고, 거꾸로 나오미 클라인의 다른 신간을 접하고는 '이 여자가 그 해럴드 블룸한테 성추행 당했다고 폭로했다가 흡혈귀 딸년이라고 역공을 당했다는 사람인가?' 생각했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원래 좌파 진영에서 경력을 시작한 울프가 머지않아 우파, 그것도 극우 진영으로 선회해서 클라인과는 상반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인터넷이며 SNS를 통해 두 명의 '나오미'가 지속적으로 혼동되고, 울프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면 클라인까지 덩달아 대중에게 욕을 먹는 지경에 이르자, 클라인이 먼저 이 문제를 고찰하러 나섰다.


포퍼와 비트겐슈타인의 이른바 '부지깽이 논쟁'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무시하는 쪽이 승리하게 마련이니, 결과적으로는 먼저 눈을 깜박인 클라인 쪽이 패배한 셈이 아닐까. 예를 들어 '어둠의 아이유'가 마구 날뛰는 상황에 진짜 아이유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란 그저 침묵을 지키는 것밖에 없어 보이니 말이다.


물론 서문에 인용된 필립 로스의 말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가소롭고, 가소롭다기에는 너무 심각하다"는 딜레마의 상황이기는 하다. 그래서 클라인도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울프의 좌충우돌 행적을 뒤쫓으면서도, 온갖 음모론과 가짜 뉴스를 섭렵하는 과정에서 '지금 내가 왜 이걸 듣고 있는 걸까' 하고 종종 현타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대중이 유명인을 혼동하는 경우에는 대개 뭔가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아이자이어 벌린을 처칠이 어빙 벌린으로 오인한 것은 진짜 착각이었겠지만, 슈바이처가 아인슈타인으로 오인된 사례나, 브루노 마스가 저스틴 비버로 오인된 사례나, 앤 머리가 (언젠가 콘서트에서 직접 소개한 일화처럼) 티나 터너로 오인된 사례가 그렇다.


앞자리 이름만 비교적 흔치 않다는 점만 같을 뿐, 외모와 성향과 발언이 천양지차인 클라인과 울프를 혼동하는 것은 대중의 무지와 무심 때문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정확하고 섬세한 구분을 요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법전' 스님이 기고한 개고기 반대 글조차도 오랜 세월 동안 '법정' 스님의 글로 오인되었듯이 말이다.


여하간 클라인은 자신의 도플갱어, 또는 분신으로 간주되는 울프가 곳곳에 남긴 행적을 오랜 시간에 걸쳐 추적했는데, 이 과정에서 각자가 속한 좌파와 우파의 현재 상황까지도 도플갱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깨달은 모양이다. 즉 좌파가 뭔가를 주장할 때마다 우파는 일종의 도플갱어를 만들어내서 상대편의 주장을 '반사'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귀님이야 서문 외에는 아직 읽은 것이 없으므로 클라인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 보면 언제부턴가 좌파가 우파의 미러링에 꼼짝달싹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기도 한 듯하다. 대표적인 것이 가짜 뉴스인데, 기껏 팩트체크를 해 놓으면 유포자는 '아니면 말고' 하는 무책임한 입장을 고수하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에도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무기는 최신 기술을 이용한 소통이었는데, 어느새 SNS와 유튜브로 우파가 대거 진출하면서 온갖 가짜 뉴스를 퍼트리게 되자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좌파도 종종 어떤 사안을 실제보다 과장하는 전략으로 재미를 보았지만, 우파는 대놓고 가짜 뉴스를 퍼트려서 훨씬 더 대박을 터트렸으니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클라인이 울프와 확연히 구분되는 '그 나오미'가 되지는 못했던 것처럼, 좌파인지 진보인지 하는 세력도 지금에 와서는 우파인지 보수인지 하는 세력과의 확실한 차별화에는 실패한 것이 가장 큰 문제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중의 눈에 충분히 혼동할 만해 보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통에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귀님이 보기에는 좌파고 우파고 진보고 보수고 간에 도덕성이라는 높은 가치를 버리고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민낯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중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 경우에는 주디스 슈클라의 지적처럼 위선이 잔혹성보다 더 큰 문제인 것처럼 과장되고, 결국에는 인간 혐오와 정치적 무관심을 낳아 이번 미국 대선처럼 극우 부활의 온상이 될 테니까.


여하간 도덕성을 회복하려면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터인데, 코로나 후유증에 각종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세계 경제는 물론이고, 부동산부터 사과값, 배추값, 치킨값, 배달료에 이르기까지 난리인 한국 경제도 가까운 시일 내에 좋아질 기미는 없어 보인다. 좌파의 약세와 우파의 득세를 단순한 도플갱어 전략 하나로만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 나오미 울프는 그간의 행적으로 미루어 선동가이고 기회주의자라는 비판도 받는 모양이다.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을 때 의외로 주변의 반응이 시큰둥했다는 것도 그래서였는지 모를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비록 블룸이 울프[쓰고 보니 여기서 또다시 이 나오미와 저 나오미를 헛갈렸다! '클라인'이 아니라 '울프'가 맞다]와의 부적절한 접촉을 한사코 부정했지만, 주위의 증언에 따르면 저 문학비평가는 실제로 제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등 사생활 면에서 제법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는 점이다.


[**] 그나저나 책 소개에서 언급한 "영국에서 부커상 다음으로 권위 있는 여성문학상 논픽션" 수상 실적은 살짝 낯간지럽다. '여성문학상'(Women's Prize for Fiction) 자체가 1996년에 제정되어 역사도 짧을 뿐더러, <도플갱어>가 수상한 '여성논픽션상'(Women's Prize for Nonfiction)은 2023년에야 신설되어 나오미 클라인이 제1회 수상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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