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시인선으로 새로 나온 책을 알라딘 첫화면에서 광고하기에 살펴보니, 표지에 들어 있는 저자 캐리커처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거칠다 못해 뭔가 어수선한 느낌마저 주는 과거 시인들의 얼굴과는 완전히 딴판이어서 마치 다른 시리즈 같은 느낌마저 주는데, 당연히 그린이가 달라진 까닭일 것이다.


구글링해 보니 이와 관련된 설명은 이미 10년 전 <동아일보> 기사 "문지의 얼굴이 다양해졌다"(2014년 1월 20일자)에 나와 있었다. 1977년 문학과지성사의 시인선 첫 권인 황동규 시집부터 캐리커처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무용평론가 김영태와 시인 이제하가 번갈아 담당하면서 이 시리즈의 상징처럼 자리잡았다.


그러다가 300번대 후반부터 그린이가 다른 캐리커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데, 나귀님이 뭔가 달라진 느낌을 확연히 받게 된 것은 2023년에 나온 <홈 스위트 홈>이라는 시집부터였다. 문지 시인선은 맞는데 뭔가 이상해서 살펴보니 기존의 크로키와는 딴판인 만화풍의 저자 캐리커처가 들어 있기에 세대차이를 느낀 거다!


최근에는 출판사 대신 저자가 직접 그린이를 선정하기도 하는 모양이고, 드물게나마 초판의 캐리커처가 재판에서 교체되기도 하는 모양인데, 최근 각광을 받는 소설가 한강의 유일한 시집이 그런 경우였다. 2013년에 나온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초판에는 원래 작가의 지인인 한국화가가 그린 캐리커처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재판의 캐리커처는 작가의 동생이 그린 것으로 교체되었는데,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책 표지의 저자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초판 캐리커처가 초상화 느낌이라 그 시리즈의 다른 표지화와 이질적이라는 지적을 출판사와 독자로부터 받아서라고 저자가 직접 해명했다.


초판은 사실적인 정면 얼굴 묘사인 반면, 재판은 측면 얼굴 윤곽만 나오고 눈코입은 사라진 것이 특징이다. 물론 더 단순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시리즈의 다른 표지화와의 유사성을 주장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혹시 저자나 지인이 첫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것이 교체의 진짜 이유는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기존 표지화와 너무 이질적인 초상화라서 곤란했다면 굳이 수록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초상화의 수록이건 교체건 간에 결국 저자의 승인을 거쳤을 터인데, 작품이나 제목 선정에서 의견이 달랐어도 출판사보다는 작가가 최종 권한을 가질 터이니, 결국 캐리커처의 교체 역시 출판사보다 작가의 뜻일 수 있다.


풍경화와 달리 초상화는 지나치게 사실적이라 오히려 불만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다. 유명 화가가 그린 초상화를 영국 정부로부터 선물받았지만, 노쇠한 모습을 너무 잘 묘사했다는 이유로 못마땅해 한 나머지 불태워버린 처칠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한강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자기 얼굴의 사실적 묘사가 싫었을 수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저자인지 지인인지 독자인지 출판사인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해서 결국 교체한 캐리커처를 담은 초판본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는 오히려 희귀본 대접을 받는다는 점이다. 개정판이 나오면 초판 정보를 비공개하는 특성상 알라딘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중고샵에 판매가 150만 원에 올라온 매물이 있다!


여하간 나귀님이야 최근 나온 시집의 표지에 실린 만화 그림체 때문에 처음 인식한 변화이지만,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있었던 추세라니 나만 몰랐던 것인가 싶다. 물론 달라진 것은 표지화만이 아니어서 내용도 좀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나귀님이야 국내시를 평소 안 읽으니 이것도 편견이라면 솔직히 할 말은 없고...



[*] 그러고 보니 예전에 문지에서 절판 시집 재간행 시리즈인 문지시인선 R인가 하는 것을 간행하면서 유하의 <무림일기>를 내놓았기에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다가, 그 말미엔가 수록된 "기획의 말"을 읽으며 진저리를 친 기억이 난다. 그냥 '좋은 시집이 절판되었기에 아까워서 다시 냈다'고 하면 그만인데, 무슨 이유에서 현학적이다 못해 부조리하게까지 느껴지는 글을 이런저런 외국 문헌의 출처까지 줄줄이 거론하면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적어 놓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시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의도 밤하늘에 별님과 달님이 맥주 마시며 노닥거린다는 황당무계한, 또는 터무니없게 발랄했기 때문에 더 인상적이었던 어느 시의 한 구절을 수십 년 뒤까지 종종 떠올리는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요즘 시고 시론이고 간에 뭔가 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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