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원전> 개정판이 나왔다기에, 항상 선명한 미리보기를 제공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들어가서 서문을 살펴보니 한 가지 이상한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일반 독자를 위한 쉽고도 명확한 과학 해설의 사례로 이 책에 수록된 할데인의 에세이를 거론한 대목이다.


편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할데인은 그 에세이에서 동물의 크기를 설명하며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에 나오는 18미터 키의 거인 바울과 페간은 걸음을 걸을 때마다 넓적다리가 부러졌을 것이므로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단 두 문단의 설명만으로 명확히 보여주었다"(14-15쪽)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번연의 작품에 나오는 거인의 이름이 "바울과 페간"이 아니라 "포프와 페이건"(Pope and Pagan)이며, 문자 그대로 "교황과 이교도"를 상징한다는 점이다. "바울"(Paul)은 오히려 신약성서의 사도 가운데 한 명인데,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악의 상징이라 잘못 썼는지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사소한 실수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제깐에는 "출간 20주년 기념 컬러판 양장본 에디션"을 내놓았답시고 요란하게 광고하는 상황에서 구판에 있던 오류가 신판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은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런 오류는 단 한 가지만이 아니라는 점 역시 문제다.


서문에는 데이비드 보다니스가 "파스퇴르의 대중을 혐오하는 성향과 그가 밝혀낸 질병과 박테리아 사이에 관련성을 찾으려고"(25쪽) 했다는 설명도 있는데, 실제로는 "파스퇴르의 대중을 혐오하는 성향과 그가 밝혀낸 질병과 박테리아'의 관계' 사이에 관련성을 찾으려고"라고 번역해야 맞다.


즉 파스퇴르의 '대중 혐오 성향'(A)과 파스퇴르가 발견한 '질병과 박테리아의 관계'(B)가 있고, 보다니스가 (A)와 (B)의 '관련성을 찾으려고' 했다는 뜻이다. 관계/관련성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니 윤문 과정에서 누락시킨 것이 아닐까 짐작되는데, 그렇게 되면 의미가 달라진다고 봐야 한다.


서문에서 가장 마음에 든 대목은 페미니스트의 과학 경시 풍조를 꼬집은 곳이었는데, 여기에도 오역이 있었다. 구판과 신판 모두 과학 저술가 에블린 팍스 켈러(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저서에는 "이블린 폭스 켈러"로 표기)를 가리켜 "가장 강경한 여권운동가 중 한 사람"(26쪽)이라고 옮겼다.


그런데 원문은 "가장 설득력 있는 페미니스트 비평가 중 하나"(one of the most cogent of the feminist critics)라는 뜻이다. 즉 컬러가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그나마 말이 통하는 합리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에만 경도된 것이 아니라 과학의 가치도 역시나 중시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켈러가 "유전학자 바버라 맥클린톡의 자서전을 집필"(26쪽)했다고 나오는데, 원문에는 자서전이 아니라 "전기를 집필"(a biographer, 전기작가)했다고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 책 <유기체와의 교감>의 부제도 "20세기 유전학 혁명의 선구자 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이다.


인명 표기 중에서 가장 눈에 거슬린 것은 구판과 신판 모두 프랑스의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의 이름을 영어식인 "헥터 베를리오즈"로 표기했다는 점이다. 음악에 투신하기 전에 잠시 의학을 전공했다는 이유에서 해부학 실습에 관한 회고를 골라 짧게 수록했기 때문이다.


소련 과학계를 말아먹은 것으로 악명 높은 "트로핌 리센코"도 구판에는 "트로핌 라이센코"라고 영어식으로 표기했던데, 신판에서 "헥터"가 그대로인 것으로 미루어 "라이센코"도 그대로이지 않을까 싶다. 자세히 들여다본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이니, 도대체 뭐가 또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여하간 절판본의 재간행이라니 반갑기는 하지만, 컬러 도판 추가 외에 문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니 굳이 새로 살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중고도 많이 올라와 있으니, 저렴한 값에 하나 사도 내용 면에서나 오역 면에서나 큰 차이까지는 없을 것 같다.


이와 유사한 책으로 앨런 라이트먼이 편저한 <과학의 천재들>이라는 것이 있는데, 제목을 잘못 지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논문 22편을 편역한 가치 높은 자료다. 즉 플랑크, 아인슈타인, 러더퍼드, 허블, 플레밍, 왓슨과 크릭 등의 논문을 전문이나 발췌로 수록해 놓았다.


여성 과학자로는 헨리에타 리비트와 바버라 맥클린톡의 논문도 들어 있다. 나귀님은 예전에 <코스믹코믹>이라는 만화를 보다가, 거기 나오는 두 주인공 펜지어스와 윌슨의 (아울러 간발의 차이로 노벨상을 놓친 디키의) 논문이 <과학의 천재들>에 수록된 것을 보고 좋은 책임을 알게 되었다.


<지식의 원전>을 읽고 나서, 비록 내용은 다양하지만 분량이 너무 짧아서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 독자가 있다면, <과학의 천재들>을 보며 조금 더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이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인터넷 서점 예스24를 통해 중고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신판은 번역자가 "지식의 원전 번역팀"이라고만 나오기에 뭐가 다른가 싶어 살펴보니 사실은 구판 번역자 그대로이고, 다만 그 사이 달라진 각자의 소속 단체명만 바꾼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광렬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미래기술연구본부에서 첨단소재기술연구본부로 옮겼다.


정병기 박사는 동 연구원 재료연구부에서 차세대반도체연구소로, 이순일 교수는 아주대학교 분자과학기술학과에서 물리학과로 옮겼으며, 방금성 교수는 가톨릭대학교 수학과 앞에 "전"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으로 미루어 이미 은퇴한 모양이다. 박정수 박사와 김문영 번역가는 여전히 현역이다.


마지막으로 정경심 박사가 있는데, 신판에는 학위를 취득한 "애버딘대학교 영문학"이라고 표기했지만 구판에는 과거 근무지를 반영해 "전 서경대 영어과 정경심 교수"라고 했으니, 이번에는 "전 동양대 교양학부 정경심 교수"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도 그걸로 제일 유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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