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무난히 당선되었다. 지난번 암살 시도 모면 이후에 승리는 사실상 따 놓은 당상이 아닌가 생각했던 나귀님이었으니 그저 무덤덤했던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의 당선에 깜짝 놀란 듯한 여론이 대부분인 것 같으니 우스운 일이다.
지난번 한국 대선 결과는 윤석열이 잘해서가 아니라 문재인이 못해서였던 것처럼, 이번 미국 대선 결과 역시 트럼프가 잘해서가 아니라 바이든이 못해서였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경제와 외교부터 본인 건강 문제까지 거듭된 실책으로 패배를 자초한 셈이다.
의외라 여겨지는 한편으로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트럼프 집권 2기를 전망하는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으니 희한한 일이다. 십중팔구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 양쪽에 대한 원고를 모두 준비해 두었다가 결과 발표와 동시에 간행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후보의 저서나 전기를 간행할 경우에는 패배 시의 위험 부담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운 좋게도 당선자의 책을 간행했다면 대박이겠지만, 낙선자의 책을 간행했다면 완전 쪽박일 수밖에 없으니.
때로는 어떤 인물이 당내 경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이유만으로 서둘러 관련서를 냈다가 쪽박을 차는 사례도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2016년의 버니 샌더스였다.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한 권도 아니고 전기와 자서전까지 합쳐서 무려 다섯 권이 나왔다!
카멀라 해리스도 의외로 자서전이 2021년에 일찌감치 번역되어 있었는데, 알라딘 판매지수를 보니 대선 특수까지는 없었던 모양이다. 십중팔구 해리스 당선과 함께 출간될 예정이었다가 이제 흐지부지되어 버린 국내외 저자들의 책도 한두 권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번 집권 1기에 간행된 저서가 여러 권이라서 이제 굳이 다시 나올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앞서 말했듯이 집권 2기를 전망하는 시의적인 책들이 여럿 나오는 모양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성격상 앞으로 뭐가 될지는 닥쳐봐야 하겠다.
그나저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귀님도 트럼프 초선 때에 <불구가 된 미국>이라는 저서를 하나 사다 놓긴 했었다. 동네 헌책방에 갔더니 여러 권 쌓여 있기에 살펴보니, 뒤표지에 무려(!) 로버트 레드포드의 추천사가 들어 있기에 신기해서 사왔던 거다.
알고 보니 레드포드의 추천사는 어느 토크쇼에 나와서 한 돌려까기였는데, 그걸 트럼프가 잽싸게 가져다가 마치 그 배우의 진심인 척 써먹은 것이라 한다. 훗날 트럼프의 대표 전략으로 자리잡은 가짜 뉴스 생성 및 유포의 선례 가운데 하나였던 셈일까.
물론 나귀님도 트럼프를 좋아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나 구경이나 하자 싶어 구입하기는 했지만 막상 시간을 투자하기는 아까워서 책더미에 파묻고 내버려 두었는데, 결국에는 책을 버리기도 전에 트럼프가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진즉 내다버렸더라면 트럼프 2기라는 대참사도 없었을지 몰랐겠다 자책하며 이번에는 진짜로 버리려고 책더미를 뒤지니, 트럼프 책 밑에 깔린 존 맥케인 자서전이 문득 눈에 띈다. 이번 대선 결과에 아마 저 양반도 무덤에서 홱 돌아눕지 않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