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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평점 :
진상은 단 하나.
애도할 상대도, 책망할 상대도, 위로할 상대도
전부 가족이라는 사실. 그뿐이다. p.326
나름의 독립을 선언하지도, 벌써 삼년째다. 골목마다 즐비했던 주택단지에서 벗어나 복도식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소박하긴 하지만 꿈꿔본 적 없던 '내 집'을 갖게 되었다. 더 이상은, 부모님의 소소한 간섭에서 벗어났다 생각하여 기뻤고 그런 부모님에게서 멀어진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가족에 관해서는 더욱이나 내 부모님에 관해서는 나는 좀 각별하다. 어릴때부터 그러했지만, 지금도 내 부모님은 불로장생 할 운명이라 생각하고 있다. 스치는 바람 한 점도 절대적으로 내 부모, 가족을 다치게 할 수 없다. 설사, 미나토 가나에게 풀어 낸 이번 작품 「야행관람차」의 사건의 당사자가 내 부모의 일일지언정. 어디까지나 내 부모, 내 가족의 문제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시대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 한 들, 시대와 개개인의 가족은 별개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 엉글어진 사이가 아니라면 모두가 타인일 뿐 제 2,3의 단체에서 조차도 끌어안을 수 없다면 모른체 살아가면 그만인것이다.
장르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나토 가나에의 「속죄」를 읽고서부터다. 연이어 그녀의 작품인 「고백」을 읽고 뒤이어 「소녀」도 구입했지만, 책장에 고스란히 꽂혀 있을 뿐 읽지 못한 채로 이번 작품 「야행관람차」를 먼저 읽었다. 그녀의 신간이라는 점도 한 몫했지만 간헐적인 문학 슬럼프도 요즘들어 심해진 탓이다. 전작들도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아이들'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엔도 가족의 버르장머리없는 히스테리 소녀 아야카와 다카하시 가족의 노력파 모범생 신지, 유명한 시립고에 다니는 히나코가 그들이다. 평범하고 조용했던 다카하시 가족의 주택에서 새어나오던 신지의 고함소리와 신지의 부모인 준코의 비명에 가까운 절규가 터져나오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살인 사건, 그것도 엘리트 의사 남편을 아름답고 조용하기만 했던 아내가, 부부간의 말다툼으로 인해 트로피로 남편의 뒷통수를 내리찍어 살해한 살인사건이다. 발칵, 고급 주택들이 자리매김 하고 있는 히바리가오카가 뒤집어진다. '히바리가오카', 그곳은 부의 상징 혹은 명문교 학생들이 모여사는 엔도 가족의 꿈이자 아야키의 히스테리의 이유이며 다카하시 가족의 엉거주춤식 무언의 강압이 존재하는 터전이다. 그곳에 오르려는 엔도 가족에게는 그저 '이웃'에 일어난 살인사건이고, 그곳을 내달리고만 싶은 다카하시 가족에게는 당장 눈 앞에 떨어진 자신들의 부모의 살인 사건이다. 소설은 '이웃'과 '가족'을 매치시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웃의 살인 사건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히스테리 아야카, 사건이 터진 날 행방불명 된 신지, 이모네집에 맡겨진 히로키 그리고 연락이 닿지 않는 또 다른 남매 요시유키. 애초부터,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몸에 맞지 않는 터전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전에 살던, 주택이 즐비했던 곳에서는 앞 집이고 맞은편 집이고 번갈아 시끄러운 싸움 소리가 난무했었다. 심지어는 냄비, 후라이팬, 가전제품 뭐든 상관없이 현관문을 통해길바닥으로 내동댕이 쳐 질 정도였다. 그때마다 내 방 창문을 슬며시 열고는 조심스레 지켜보다 소리가 잦아들면 창문을 닫고 잠이 들었다. 신고를 할까, 몇 번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면서도 안방까지 들릴 이 소리에 아무런 미동도 없이 모른체 주무시는 부모님을 보며 그저 지켜보기만 했었다. 비록, 그 맞은편 집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살고 있었음에도. 어느 한 사람의 외마디 비명이 아닌 이상 그러니까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지않는 한 내게는 그 싸움에 끼여들만한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이웃'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일지언정. 아야카의 히스테리를 견디다 못한 엄마의 갑작스런 행동을 저지시킨 또 다른 이웃인 고지마 사토코처럼 그 동네에 대한 애정 또한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있다 한 들 히로키의 친구 아유미처럼 사건 당사자가 되어버린 친구에게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일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가장 보여지기 싫고, 보여서도 안되는 일을 들킨 히로키의 마음을 어떤식으로 위로를 해야하는지 지금조차도 모르고 그런 위험 수위에 찬 일에는 닥쳐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히바리가오카로 오르는 언덕길 병을 앓고 있던 아야카에게 축적되어있던 명문교에 속하지 못한 상처와, 한계에 부딪힌 자신과 맞닥뜨린 신지의 꿈이 박탈되어지는 것은 소설을 넘어선 현실과도 같다. '치열하게, 좀 더 치열하게.' 이것이 세상이 청소년들에게 부여한 과제가 아니었던가. 좀 더 안정적인 생을 원한다면 자신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기본과 기반을 닦으라는 공통분모의 첫 걸음을 새겨놓은 것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수도 없이, 용의 꼬리가 될 바에야 차라리 뱀의 머리가 되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구태여 상위권이 아니어도 좋으니 하고 싶고, 품은 꿈이 있다면야 세상이 닦아놓은 기반이 아닐지언정 자신이 세워놓은 기준안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최고가 되라는 말이다.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소년, 소녀들의 꿈을 짓밟는 건 결코 그 부모가 되어서는 안된다. 부모 자신의 바람과 꿈이 아닌 그들의 꿈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일, 그것이 어르며 달래야 할 부모의 자식이 아닌 세상으로 내보내야하는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할 일이다. 믿음, 소망, 사랑. 타인과 엉글어지는 우리네 인생사라 해도 맹목적으로 믿어주고 소원해주고 품어주고 다가서는 것이 가족이 아닌 이상 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