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전혜린 - 그리고 다시 찾아온 광기와 열정의 이름, 개정판
정도상 지음 / 두리미디어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막연하리만치 혼란스러웠다.

 전혜린, 그녀와 나 사이에는 7년이라는 암흑과도 같은 굶주린 세월이 죽어있었다. 매번 삶의 극단까지 내몰릴때마다 그녀의 이름을 수 십, 수 백번도 더 되뇌이며 약에 취해 술에 취해 그녀의 책을 펼쳐,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를 소리내어 읊조렸었다. 오로지 그것만이 내가 딛고 있는 이 지반을 버티게 해주는 기둥이 되었으며 청춘 그 자체의 근본, 내 삶의 근원이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녀말고는 내 아픔의 통념들을 이해시키고 위로할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나치게 나를 비약시키는 것에 일조했음이다. 불투명했던 청춘을 단연코, 전혜린화 시켜 존재의 상실감과 생의 파국만을 향해 내달렸음은 물론, 수 없이 많은 밤을 불면증으로 지새우며 쉼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삶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과연 그것이 이대로도 괜찮은가.' 그리고 '나는 왜 사는가.'. 끊이없는 이어지는 정답없는 질문들, 그것은 아프게 낙화하는 낙엽만큼이나 스산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문득, 리뷰를 끄적이다 다시 술에 취해 전혜린의 에세이인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를 꺼내들고는 아무곳이나 펼쳐 들었다. 지독히도 싫어했던 책에 대한 아낌에도 불구하고 그때에는 무던히도 급했는지 눈이 시린 형광색이 난무하다 못해 손목을 긋는데에 일조했던 샤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세상에, 너무도 우스워 집었던 책을 던져버렸다. 얼마나 많은 청춘의 흔적들인가, 싶었던거다. 또한 얼마나 숱한 아픔들이 서려있는지 시퍼런 멍자욱들이 가득했다. 내가 다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지금 손에 쥔 정도상의 「그 여자 전혜린」을 곧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까, 아니었다. 두 번은 전혜린을 끌어안아서도 살아있는 문장으로도 만나서도 안되었다. 단연, 기억함. 그에 그쳤어야했다. 적어도 나에겐 요절한 그 여자 전혜린은 1세기에 단 한번 태어날까 말까한 천재, 완벽한 소설 하나 남기고자 했던 집념의 여자, 그렇게 남아있음이 옳은것이었다. 전혜린, 이름 자체만으로도 심장이 울리는데 어떻게 그녀의 삶에 다시금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데도 힘겨워 금새 온 몸에 전율이 일었지만 문득 잊고 있던 것 .. . 이건 그저 허구일뿐이라는, 진정 그녀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결국 정성스레 읽던 책을 도중에 덮어버리게 만들었다.

 

 읽는 내내 작가의 말을 먼저 읽어버릴까, 생각하다가 소설의 허구성을 전제로했다는 작가의 말을 읽어버리면 그냥 거기서 책을 끝까지 읽지 않게 되버릴까하는 초조함에 내키지않는 마음으로 기어코 그녀의 죽음을 마주하고는 염려 가득한 작가의 말을 보는데 왈칵 눈물이 치밀었다. 그래, 작가가 소설로 끌어낸 전혜린은 전혜린이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그녀는 결코 쉼 없이 좌절하지도 않았으며 실패한 사랑에 전부를 내던지지도 않았으며 구원 받지 못한 생에 미련을 두지도 아니했다. 보다 더 치열했으며 보다 더 훌륭했고 이성이 아닌 정신적인 멘토임이 분명했다. 비록, 요절로 인해 시대의 초상으로 잊혀지지않을 청춘의 전설로 남겨지겠지만 시대가 흐르고 무심히 지나가도, 이 여자 전혜린은 결코 잊어서도 안되는 모든 청춘의 '첫' 걸음이 되어주기를 그리하여 생에 대한 열렬한 열정으로 뿌리 내려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줄도 내비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이건 전혜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쾌하기 때문이다. 제목에 걸린 전혜린이라는 이 이름만 아니었다면 난 결코 이 책을 읽지 않았을것이다. 오로지 그녀의 이름, 그 이름을 따라 책을 들었을 뿐 허구 가득한 소설을 읽고자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혜린을 기억하는 뭇 사람들의 평은 어떠할지는 모르겠지만 별점 역시 전혜린이라는 이름에 주는 것이지 이 책에 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두 번은, 전혜린의 이름으로 마케팅한 책은 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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