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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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너무 너무, 정말이지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간극없이 읽다보니 생뚱맞게도 김경욱과 천명관의 작품을 단박에 구분해내지 못하고 한참을 헤맨다. 김경욱이 천명관같고 천명관이 김경욱 같다. 아니, 그 둘에게 쏟아붓는 내 애정의 농도가 같음에, 어느 누구 한 명에게만 '진짜 진짜 좋아요!' 라는 감격의 찬사를 주고 싶음 마음에 읽는 내내 안절부절 노심초사했음에 분명하다. 김진명 작가 이후로는 이런 폭발 할 듯 한 애정의 감정은 또 오랜만이라 이번 천명관의 작품 「고량화 가족」은 '당신, 정말 최고야.' 라는 확고부동한 자리매김을 하는데에 한 몫 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책의 리뷰마다 그의 또 다른 장편 소설 「고래」를 거들먹거리며 이번 작품을 두고 실망이네, 발로 썼네, 막장이네 하는데 글쎄, 난 아니올시다, 다. 내가 그를 너무 너무 좋아해서도 아니고 그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별 다섯개부터 찍고 보는 다소 마니아적인 애정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난, 문체만으로도 넘실거리는 그의 에너지와 독특하지만 매력있는 건방진 유쾌함 그리고 선천적인 천재성을 믿기 때문이다. 뭐, 굳이 표현하자면, 막장도 그가 쓰면 작품이 된다는 거다.

 

 뜨거웠던 팔월 내내 서평 도서에만 질질 끌려다니다 오랜만에 내 돈 주고 내가 구매 한 책을 읽자니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의 감정이 복 받쳐 올라 우습게도 책을 한참이나 끌어안고 있었다. 그것도 천명관의 작품이라니, 더더욱이나! 갖은 악평들을 품고 있는 책이라 그에 대한 기대치를 제로로 만들기는 쉽지 않았으나 가까스로 다독인 마음으로 책을 펼쳤을때는 공교롭게도 첫 페이지부터 억누른 감정들이 다시금 이백프로의 기대를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 역시 그다. 싶은거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폭풍 눈물이 날 듯 하다. 낄낄.

 

 이 책의 주인공은 머리가 벗겨진 마흔 여덟의 중년 남자 오인모다. 우리 아빠보다 네 살 적은 나이이지만 내가 아빠라 불러도 괜찮을 것 같은 나이의 남자다. 직업은 영화 감독이지만 무명이라 불러도 모자랄만큼 백수에 가깝다. 영화가 망하는 것 동시에 가진 모든 것들을 잃고 허망하던 때에 칠순이 넘은 엄마의 집에 발을 들이면서 그의 가족들이 한 명 한 명 머리를 들이민다. 어린 시절 가방에 벽돌을 넣고 다닐 만큼 폭력적이었던 쉰 두 살의 그의 형 오한모와 두 번의 이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끊이지않고 알고보면 속 깊은 여동생 미연. 그리고 이 셋의 부모인 이름없는 엄마와, 미연의 딸 민경이 그들이다. 각자의 기구한 사연도 사연이지만 인생의 늘그막에 엄마의 집에 얹혀사는 -절대 모여산다고 할 수 없다- 이들을 보자니, '지난 과거는 아무렴 어때, 인생의 굴곡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한데.' 라고 웃어 넘기며 그들의 평화와 눈물 펑펑 나는 가족 상봉을 기대하지만, 이들 가족의 인생의 굴곡은 평균나이 49세라는 절체절명과도 같은 위험 수위에서부터 시작한다.

 

 민경이 담배를 두고 삼촌 오인모가 벌이는 돈 거래나, 민경의 팬티를 두고 저지르를 저질스런 오한모의 추태, 미용사 미스 한이라는 여자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오인모와 오한모. - 미용사가 등장하자마다 퍼뜩 천명관의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서의 '자동차 없는 인생'이 오버랩되었다. 내용은 같으며 결론은 이번 작품에서 볼 수 있다. - 민경의 가출로 인해 도박업의 바지사장이 되어 교도소로 입소되기 전 치밀한 작전으로 인한 오한모의 도주. 그로인해 깡패들에게 납치되어 죽다 살아 난 오인모. 그리고 영화계에 몸을 담았을때 만났었던 여자와의 재회. 오인모가 혼자 중얼거렸듯이 막장 드라마의 최고봉인 배 다르고 씨 다른 출생의 비밀까지. 마지막으로 엄마의 불륜 상대였던 전파사와의 재회. 이렇게 열거해놓고 보니 기가막히고 코가 막힐듯한 일이다. 아, 빠트린것이 있다면 막장이 아닌 문학임을 잊지 않기 위해 잊을만하면 발췌되고 오한모에게 깨달음이 되었던 허밍웨이의 전집까지.

 

 이 작품의 오한모, 오인모, 오미연. 이 셋은 서로 다른 핏줄을 타고났지만 '가족'이라는 혈연아닌 의리로 한데 일그러진 결정체와도 같았다. 비단 이들 셋에게 밥을 차려주던 엄마의 죽음이 시초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보면 그럴법도하게 각자의 제자리, 안정, 평온 그리고 안녕을 되찾는다. 무언가 진득하게 묻어나는 여운을 바란 작품이 아니 듯 하니 그저 유쾌하게 웃고 만다. 아쉽게도, 읽을 당시에는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한 단편을 더 끌어온 듯한 느낌이었는데 기억을 못하겠다.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고, 거짓부렁이 그득한 이야기 같기도 한 이번 작품은 천명관의 내면적인 '무엇'이 속속들이 발효되는 듯한 기운을 감지한 듯 해 더할 나위없이 기쁘지만 천명관다운, 천명관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는 사실엔 너무도 확고한 분명함을 새겨 준 듯해 짜릿하다. 「고래」 때에 비하면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인생의 늘그막을 두고 이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가 더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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