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야 (양장)
전아리 지음, 안태영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리도 밝고 활달한 표지를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책을 받아들고는 예쁘다, 예쁘다를 연발했더란다. 우악스러울 듯 촌스러운 여자의 모습이 이 책의 주인공 스물 아홉의 김정운이다. 이 책의 리뷰는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정작 책을 받아들고보니 처음 마주하는 생경함에, 거북스러운 느낌마저 들이닥쳐 한참이나 겉표지를 매만지다 고른 숨을 뱉고는 책을 펼쳐들었다. 뭐,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듣도 보도 못한 작가와의 첫 만남이 으레 그러했고 제목에서 우러나오는 책의 내용이란 그저, 누구나 한 번쯤은 학창 시절에 겪었을 법 한 연예인에 대한 갈망과도 같은 유치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내 스케치는 밑그림에 불과했고 주인공 정운과 발을 맞추어 걷자니 불현듯 강렬한 연애 감정이 달아올라 몹시도 그리워졌다, 지난 사랑 전부가, 말이다.

 

 회사의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정운은 갓 들어 온 새내기 사원보다 더 못한 위치에 머무르며 사내의 갖가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스물 아홉의 위험 수위의 여자다. 지독하게 외모가 못났다거나 몸의 장애가 있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싫은 소리하나 되받아치는 경우가 없고 되도록이면 복작스레 결속되어지는 것을 제 스스로 손사래를 치는 성격이다. 마음을 나눈지 이개월이 지나서야, 만나던 연인이 유부남이었음을 알게되어도 함빡 울고나면 툭툭 털고 일어나 대책없이 아이돌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그런 여자다. 그런 여자가 스물 아홉이란다. 세상에,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아니, 정말 이런 여자가 있기는 있는걸까. 삼촌팬은 들어봤어도 이모팬은 들어 본 적 없는데 너무도 당당하고 적극적인 모습에 마냥 웃을 수 밖에 없었던게 사실이다. 나 또한, 학교를 땡땡이를 쳐도 좋을 그런 연예인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교복 입고 방송국앞에 주저앉아 좋아하던 연예인의 머리카락이라도 볼까 몇 시간이고 줄기차게 기다려본 적이 있는데 지금, 스물 아홉의 여자가 그걸 하겠다고? 쿡쿡. 그런데 이 여자 진짜 한다. 나 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정도의 적극성으로 팬클럽의 선두로까지 행진한다. 그 뿐인가? 현재까지의 삶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듯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랑,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랑을 만나기까지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택 할것인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택할것인가. 이렇게 놓고 보면 정운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택한다. 두 사람 모두 정운이 아이돌을 쫓아다니던 시기에 함께 만났던 사람이었고, 사랑이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 이루어지는 과정은 차마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애달프고 가슴이 콩닥거리기에, 쉽사리 책을 중간에 놓을 수도 그렇다고 그녀의 속앓이를 함께 앓을수도 없는 안타까움에 그냥 둘 다 버려버리라고 소리치고 싶었던게 사실이다. 아마, 단박에 나의 어느 시절과 오버랩이 되어버려 어쩔 수 없이 내려진 결과에 승복하고 무너져내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을테다. 또한, 내가 걸음을 맞추어 걷고 있는 정운은, 모난 곳 없이 예쁘기 그지 없어 사랑받아 마땅한 여자로 비춰진다는것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곳곳에 심어져있는 그녀의 모습을 다소 괴팍하게 그려 놓았어도 그것과는 상반되어지는 그녀의 말투라던가 행동들이 마냥 귀엽기만 했음이 사실이다.

 

   주인공에게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은 손에 꼽을만 하다고 나는 자신 할 수 있다. 그것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속에 탄생시킨 주인공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애착 감정도의 높낮이가 구분되어진다는 것 또한 난 자신 할 수 있다. 애정 가득 쉴새없이 페이지를 넘기다 문득 다른 책들에 비해 문체가 참으로 신선하고 통통 튄다 싶었는데 보지 못하고 넘어 온 작가 소개를 보아하니 팔육년생이란다. 과연 내가 이 소개를 먼저 보았다면 이 책을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있었을지가 의문스러우면서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그래도 하며, 솔직한 심정으로 아쉬움을 토로해보자면- 부족하지않게 정운의 발을 맞추면서도 단 한번도 흐트러지지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스물 다섯이 결코 스물 아홉이 될 수는 없다는 것. 그녀로서는 충분하다 할 수 있겠지만 빈틈이 고스란히 들어나는 건 찰나다. 아직 전아리, 그녀로서도 넘을 수 없지만 허무를 수 있는 벽이 있다는 건 지당한 현실이겠지만 내가 굳이 뭐라 할 입장은 아니다. 내가 스물 아홉이 아니니 전아리, 그녀가 그려주는 스물 아홉의 익살스러운 인생과 사랑이, 그것, 이라고 느꼈으니 말이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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