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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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일단 무서운게 싫다. 영화는 물론 책 또한 질색한다. 내 친구들을 보면 무서운 영화가 나왔다하면 개봉날짜에 맞추어 발빠르게 움직이지만 나는 항상 열외 대상이다. 학창시절, 멋 모르고 엑소시스트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가 실신 지경까지 이르는 바람에 그 후로는 공포 영화는 내게 열외의 대상이 되는 장르였다. 책이라고 다를 거 없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퇴마록」이 그것이다. 재미와 스릴과 공포가 맞물린 작품이라 책을 덮기도 싫고, 그렇다고 끝까지 읽을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아 밤에는 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안타깝지만, 낮에도 읽다가 무서워 그만 책을 포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내가, 이 미스터리 호러물을 제법 담담히 받아 들인 건 1년도 채 되지 않은 근래의 이야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카페에 가입을 하면서 모르던 작가와 작품을 알아가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던거다. 그리고 그곳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알게 된다. 미스테리 호러물이라, 읽기에는 겁나고 읽지 않으려니 카페 모든 회원들이 알고 있을 법한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에 대한 미적거리는 감정에 개정판으로 나온 「레몬」을 다짜고짜 주문해버렸다. 그때 나는 그 책을 완벽히 읽고 난 후, 딱 한 마디만 내 뱉은 기억이 있다. ' 아, 이 사람 혹시 천재? ' 라고. 더불어, 이제는 「퇴마록」도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던거다.

 

 이번 작품 「다잉아이」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대면하는 3번째 작품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중에 고작 2작품을 앞서 읽었지만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구성을 감히 말하자면, 뻔한 이야기도 뻔하게 진행시키지 않는다에 있었다. 그를 떠나서 다른 미스테리 호러물의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보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에 있어서는 히가시노 게이고, 그가 단연 최고가 아닐까 싶다. 미스테리 호러물에 관해서는 책장에 꽂힌 작품만 보아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가장 많다. 읽은 책 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은 까닭은 언제든지 책에 대한 흥미가 사그라들때 읽으려는, 어떠한 대책과도 같은 방편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내리 읽을수도 있겠지만 그러다보면 분명 미스테리물에만 관심을 가져, 읽던 소설도 내팽켜 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때, 판타지와 무협지소설에 빠졌을때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내겐, 판타지나 무협지 미스테리는 오로지 흥미로움으로 남겨두는 것, 그것이 내 일상을 깨트리지않는 길이라는 것도 안다. 워낙에 자기중심적이라 한 가지에 빠지면 다른 것에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일도, 잠도, 먹는것 또한 규칙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최신 작품이다 보니 다른때와는 다르게 기대치가 하늘을 박차고 올랐다. 주말을 기해 붙들었던 책이었다면 분명 밤을 꼬박 새고도 남았음이다. 이것이 바로 미스테리라는 장르가 갖는 불가항력적인 힘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한 여자가 교통 사고로 끔찍하게 죽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해자는 주인공, 신스케. 그러나 그는 사고가 일어났던 시각의 일들을 일시적으로 상실하게 된다. 시간이란 것이 참으로 부지런하여 유유히 기억들도 그에 맞추어 흘러간다지만 그 날 그때의 부분적인 기억 상실은 신스케에게 또다른 충격을 주게 된다. 바텐더로 일하는 그의 가게에 술을 마시러 들른 사람에게 가격당하여 쓰러져 가까스로 목숨은 부지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신스케는 차라리 모르고 지냈음이 더 나았을 뻔한 사실들과 정면 돌파하게 된다. 점차 되살아나는 기억들과 맞물려 교통사고의 가해자는 신스케 혼자가 아니였다는 사실과, 만나던 여자의 정체 그리고 그 날의 운전 역시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교통사고, 그리고 뒤이어 일종의 거래가 존재하던 그 날의 사건. 어느 드라마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교통사고를 낸 당사자가 도망을 가거나 옆 조수석에 앉았던 사람이 대신 사고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를 말이다. 그런일이 가능하기는한지 의아함에도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돈'이라는 권력이다. 잘못된 일에 눈을 감아주고 그 일에 관해 대신하여 처벌을 받는다는 댓가의 조건은 오로지 돈으로 국한된다. 이런일들이 그저 드라마나 소설의 허구에 묻힌 소재에 그친다고 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이 댓가라는 실타래에 꼬여 위험을 자처하거나 죽음에 처하기도 한다.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지만, 강단있게 사건을 헤쳐나가는 신스케의 마지막 거래라는 것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결국 그런 이 었구나 싶었던 거다. 돈으로 일단락되었던 사건이 다시금 부풀어 오르며 또 다시 돈으로 묻혀지려는 그 모종의 거래가 이 소설안에 있다. 살고자했던 죽어 가던 여자의 눈이 야기시킨 사건의 잔해들이 다시금 모여 진실성을 갖게 된다.

 

 사실, 앞서 읽은 「레몬」과 「변신」에 비하면 그닥 자극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면서도 손톱만큼의 애정으로 본다면 그 점이 아쉽기도 하다. 그의 무시치 못 할 흡입력 강한 필력에 비해,  익히 알고있는 김난주씨의 번역에도 불구하고 문체 자체는 결론적으로 허공에서 헤엄치 는 공기 빠진 풍선과도 같았다 할 수 있다. 어떨지모르겠지만 김난주하면 에쿠니 가오리가 떠오르는 것은 자동 반사적인것과 같아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는 그닥 어울리지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읽은 김난주씨가 번역한 「다잉아이」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맞다.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으나 다소 글자들이 날리는 듯한 느낌은 책을 읽은 후에도 여전했으니 말이다. 9월 끄트머리에서 그의 작품을 한 권 더 읽어야겠다. 그의 작품은 늘, 다음을 기약하는 여운과도 같은 것임은 한 층 더 고조됨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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