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코리아
김진명 지음 / 자음과모음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헤아릴 수 없지만 어림잡아 오년이라는 세월은 그리 넘치지도 부족치도 않을 것이다. 짐작컨대, 한 인터넷 서점의 친절이 아니었다면 이런 극적인 해후는 가능하지 않았음은 물론, 제 스스로 김진명 작가의 작품을 찾아 손에 쥘 일은 없었을것이다. 열여덟 혹은 열아홉의 나이에 처음 김진명 작가의 「코리아닷컴」을 만나고는 큰 충격에 사로잡혀 혼란스러움을 어쩌지 못 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연애 소설에 푹 빠져있던 내게는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린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로지 김진명의 작품만이 소설의, 책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세계에 발을 딛게 된 것이다. 작가 김진명에 대한 열망, 바로 그것과도 같은. 그의 출간 된 모든 작품을 읽어내고는 신간만이 출간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가까스로 가슴에 안겨 온 책은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담은 「황태자비 납치사건」. 그러나, 그 세계가 무너지는 것은 찰나와 같은 것이었다. 그의 작품만을 내리 읽어서인지 그의 문체라던가 이야기를 야기시키는 흐름에 익숙해진채로 만난 신간은 그야말로 '이게 뭐야!' 였다. 그의 작품임을 믿을 수 없었으며, 기대와 기다림은 결국 적잖은 실망을 안겨 주었다. 물론, 그의 슬럼프인가 싶었지만 그 후의 출간작 「도박사」도 그러했으며 그 다음 출간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김진명을 놓는 동시에 독서라는 취미도 버렸다.

 

 그러다 만난 「천년의 금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그만의 미스테리 풀이는 여전했지만 무언가 첨벙하고 떨어졌지만 다시 떠오른 그것에서는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었다. 이대로 영영 안녕이겠구나, 싶었는데 앞서 말했던 극적인 해후상봉이 이번에 마주한 「바이 코리아」에서 실현, 상기 된 것이다. 김진명만의 색깔, 호흡, 체온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까무러쳐도 좋을 오로지 그만이 지닐 수 있는 묵직한 고유성. 처음에 마주했을때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개정판인 줄 알고 신나게 읽어내렸는데 어이쿠야, 다 읽고 나서야 아니란 걸 알았다. 이상하기도 했지, 분명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핵' 싸움이었다면 이번 「바이 코리아」는 반도체 싸움이었으니.

 

 딱히, 확연하게 들어나는 주인공이라 말 할 수 있는 인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핵심적인 역활을 해낸다. 우선, 이야기의 발판이 되는 기자 정의림. 안타깝게도 면도 얘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여자인 줄 알았더란다. 페이지는 무려 백페이지를 훨씬 넘었는데 말이다. 의림의 절친한 친구의 죽음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캐치하며 추적하며 이야기는 본격적인 도입으로 들어선다. 친구의 죽음의 흔적을 따라잡던 의림이 미지의 북학인이라는 인물과 온라인으로 마주하면서 박정희의 비자금과 한국의 인재를 사고 파는 바이스로이 재단을 쫓으며 세계 반도체의 일인자라는 삼성전자의 기업과 부딪힌다. 그리고 서서히 물 위로 차오르는 천재 과학자 나영준과 이동우, 강대국 미국의 비밀기지 그리고 반도체 전쟁.

 

 한 때, 어느 만화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며 실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다.'. 그때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모른 채 흘렸는데 가히, 과학 기술이란 한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과학자, 즉 국민이 국가의 재산이라는 것. 국가의 힘이란 결코 권력과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바이 코리아」는 2010년 현재와 짙은 개연성을 품고 있다. 스스로의 힘을 갖지 못한다면 어떤식으로든 강국에 속할 수 밖에 없는 처절한 현실과 인간의 생명과 나란히 두어도 모자라질않을 금전과 되새김질을 반복해야만 하는 과거에 대한 회의와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잊은 채 인문계로만 치중하는 학습열이 그것이다. 「바이 코리아」에서는 삼성전자는 국민이 만든 기업이라 말한다. 비록 허구에 불과할테지만, 이건희 회장을 넘어 이병철 회장의 이야기는 잠재되어 있던 애국심을 끌어올리는데 최고의 소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한국인으로서의, 한국인이어서, 차오르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완화되는 절정까지 치달았으니 말이다.

 

 처음, 작가 김진명의 작품과 마주했을때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몰라 책의 내용이 진실인 양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만 했었다. 이것이 역사구나, 싶었던 거다. 찾지 못해 꽁꽁 숨겨진 역사가 아닌, 작가 김진명이 바라고 우리 대한민국이 바라고 내가 바라는 그런 역사와 진실의 진정성이 김진명의 작품에는 담겨 있는 것이다. 호소력이 그득한 문체, 동안 내가 김진명의 작품을 읽지 않던것은 바로 그 짙은 호소력이 빠져있었던 것은 아닐까. 뭇 사람들에겐 고리타분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김진명 다운,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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