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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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뇨기를 통해 조산된

출산 전 상태의 인간이라고 말이다.

p.126

 

 

 

 퍼뜩 생각나진않지만, 분명 어떠한 계기로 인해 에밀 아자르의 「자기앞의 」과 마주한 것 같은데 도저히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경로와 동기를 추적할 수 없다. 작품 보다는 작가에게 품는 신뢰에 따라 책을 선택하는데, 에밀 아자르라는 작가는 그때 당시의 내겐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함이었고 표지 또한 스스로 선택을 하기엔 우스울 정도로 빈약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받아 들고 작가 소개란을 찬찬히 읽어 내리면서는 한껏 부푼 기대와 전율에 반응이라도 하듯 책장에 반듯이 꽂아 둔 로맹 가리의 작품을 꺼내어 훑어 보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로맹 가리의 필명이 에밀 아자르라니! 아직, 로맹 가리의 작품은 접해보지도 못했는데 필명으로 쓴 「자기앞의 」을 먼저 접해볼 수 있다는 그때의 그 심정은 다소 지배적이고 독보적인 로맹 가리의 세계에 한 걸음 내딛는 찬란함, 그것과 같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만나게 된, 「그로칼랭」. 이미 서점을 들러 로맹가리의 작품들을 닥치는대로 구입을 해 둔 상태였고 여전히 반듯이 꽂아 둔 채로 자리하고 있지만, 8월의 독서 기록을 토대로 9월의 첫 단추는 로맹 가리로 택했다.  앞서 읽은 「자기앞의 」과 비슷한 구성의 책이라 생각했는데, 비실비실 튀어나오던 멋쩍은 웃음과 함께 백페이지를 넘어서며 얕은 후회가 가차없이 가슴을 때리기 시작했다. 책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즐거이 책에 쥐었으니 이 얕은 후회는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지만, 읽는 내내 끝없는 메아리로 여즉 울려퍼지고 있다.      

 

 열렬한 포옹이라는 뜻의 이 책은, 서른 일곱의 독신 남자가 파리에서 비단뱀을 키우며 살아가는 삶의 한 단면을 그리고 있다. 비단뱀의 이름은 책의 제목 「그로칼랭」과 같다. 여행길에서 만나 데려 온 비단뱀을 자신의 집으로 들이면서 그의 삶은 자기 자신이 아닌 오로지 비단뱀 그로칼랭에게 맞추어지고 그로인해 겪게 되는 파리 시민들의 시선과 관심이나 그가 다니는 회사에서의 일상과 자못 싱그럽기까지한 그의 사랑이 모두 엇박자로 교차되어진다. 비단뱀 그로칼랭이 사라졌을 때의 겪는 고통과 -사라진 이유가, 변기통에 머리를 밀어 넣어 아래층 변기로 나왔단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너무도 기발해 한 참을 웃었다.- 같은 사환인 흑인 여자를 짝사랑하는 마음을 보기 흉할 정도의 이기적인 방식으로 품는다는 것 만 보아도 (p.195 하지만 저는 어떤 아가씨와 엘리베이터에서 부부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의 용감하기까지한 외로움은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그의 지독한 고독에서 오는 불투명한 자기 연민이 전부 비단뱀 그로칼랭과 결여되어지면서 그가 비단뱀 그로칼랭인지 비단뱀 그로칼랭이 그 자신인지 조차 확연해질 수 없을정도로 치달았을때는 이미 그는 비단뱀 그로칼랭도 아니고 그가 그이지도 못했다.    

 

 사실, 이 책의 중점은 삭제되어진 채 출간되지 못했던 '생태학적 결말' 부분에 있는데 읽을 당시에는 딱히 구분을 짓지 않고 읽은 까닭에 나는 별다른 비중을 두지 않았다. 이미 그의 사상과 치열한 고군분투가 자기 중심적이면서도 비열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그가 출산 전 상태의 인간이라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미완성의 인간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저자 로맹 가리는 미완성의 형태를, 앞서 말한 다소 지배적이면서도 독보적인 한 인간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또한, 같은 인간과의 교류를 거듭할수록 이해의 폭은 좁아지고 위선과 기만만이 옥죄어오는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비단뱀 그로칼랭과의 교감 역시 -교감이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만- 비틀어진 허상에 불과했음이 사실적이다.  존재는하지만 존재의 여부는 확실치 않은, 그러니까 그림자 없는 자신만의 비극의 드라마를 연출것과 같은것이다. 숫자 '0'과 '1', '2'를 거론하며 인간의 성향을 주시하는 부분은 주인공, 그의 삶이 그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함에 분열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백컨대, 나는 「그로칼랭」을 정독하여 읽지 못했다. 집중력이 얕은 까닭에, 정독이 아니고서는 책의 내용을 바로 받아들일 수 없음에 거의 모든 책을 주의 깊게 또박또박 읽는데 「그로칼랭」은 그러질 못했다. 부러, 책의 내용 또한 바로 보지 못한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낙태와 출산에 관한것 -구태여, 리뷰와 연결을 짓지 않음으로써- 은 리뷰에 언급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원하는 리뷰가 아닌 이상, 내 멋대로식이라도 괜찮을테지만 정독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필히, 다시 한 번 읽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몇 개의 별을 쥐어주느냐에 끝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끝내는 별 다섯개로 마무리한다. 어찌됐든, 로맹 가리는 내가 아는 프랑스 문단에서는 단연 최고일 수 밖에 없으니. 덧 붙여 보자면 개인적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들이 매력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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