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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생육기 ㅣ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5
심복 지음, 권수전 옮김 / 책세상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작가의 자전적 기록물이라는 부생육기는 뜬 구름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인생살이를 붙들어 기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다. 18세기 청대의 인물인 심복의 글은 하도 생생해서 지금의 시대에도 경쟁력 있다. 박지원의 문장론처럼 '지금, 여기, 자신의 목소리'로 글을 썼으므로 그러했으리라 짐작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삶의 희로애락이 놓여 있는 곳은 같다. 사람으로 인하여 행복하고, 또 그를 잃어 괴로워하고, 그런 과정을 겪은 후에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며 남은 생을 이어간다. 결국, 자기를 완성시켜 자유롭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그 속을 채워 주는 것은 역시 사람과의 관계이며 사랑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심복과 운이는 외사촌 사이로, 어려서부터 마음을 나누어 혼인을 한다. 천상배필이라 취미도 맞고 문장도 맞아 부부이면서 벗도 된다. 남녀 차별의 역사가 인종 차별의 역사보다 오래 되고, 극복하기도 어렵다는데 1763년생 동갑인 이들에게는 그런 흔적이 없다. 물론 아내가 알아서 남편을 위해 첩을 구해주는 오버액션을 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람에게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아내 운이는 시댁과의 불화로 미움을 받아 마음의 병이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보통 이런 갈등이 있으면 부부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지만, 단단한 사랑과 우정으로 묶인 이들은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신뢰을 키워 나간다. 남편의 자상함과 아내의 귀여운 발랄함이 엿보이는 상세한 상황 묘사도 좋다.
사랑하는 아내 운이가 죽은 다음, 아들 마저 잃는 심복은 가까운 친구의 배려로 절에 들어가 살게 된다. 그곳에서 글을 쓰며 지난날을 기록하고 남은 날을 견디기 위한 마음 다스리기 모드에 돌입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아내, 마음 통했던 벗을 잃었으니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스스로를 위안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양생!! 좋아하는 것을 삼가고, 음식을 삼가고, 분노를 삼가고, 추위와 더위를 삼가고, 사색을 삼가고, 번뇌를 삼가는 것이다. 곧 마음에 휴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몸을 치료하기 보다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 낫고, 남이 치료하는 것보다 자신이 치료할 수 있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마음 다스리기는 살아가기의 다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