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행열차 태학산문선 302
이태준 지음 / 태학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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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실어 남쪽 어딘가 꽃 피는 마을로 데려다 주는 열차가 아니라, 내가 그리워 하는 이들과 내 추억이 묻혀 있던 그곳에서 출발하여 내게 향해 오는 열차.. 남행열차다.  이태준이라는 이름은 내게 <문장강화>로 알려져 있는 작가다. 글을 쓰는 자세와 방법에 관한 서술이 현대적 감각으로 씌어져 있으므로 지금 읽어도 꽤 괜찮아서 쉽게 읽힌다. 글에 있어서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문장강화>는 염상섭과 이상, 그리고 무명의 작가들의 글을 적절한 곳에 위치시켜, 감칠맛을 더해 주었다.

남행열차는 순전히 파란여우님의 리뷰를 보고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현대를 대표하는 문장가'라는 나름대로의 타이틀을 부여한 후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처음에는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문장강화와 같은 작법에 관한 책을 낸 사람치고는 너무 일상적이고 소시민적이고 소박하고.... 알라딘 서재의 여러 님들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듯하고.. 파란여우님이 소개한 <무서록>을 보면 화려한 맛을 볼 수 있으려나?

그런데, 읽을수록 담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백한 맛은 처음에는 좀 심심한 듯 싶어도, 씹을수록 그 맛이 깊게 느껴진다. 조실부모한 후, 저 먼 북쪽에 그들을 묻고 철원에 근거를 두고 살아가는 그는 남쪽에 사는 사람이다. 남쪽에 사는 그는 부모님과 추억을 두고 온 눈 많은 북극의 겨울을 그리워 한다. 하매  눈을 실어 나르는 남행열차를 보며 아버지 생각에 어머니 생각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사실, 내게 왜 어머니가 없나?를 읽고는 저미는 그리움을 그와 같이 느꼈다.

자연과 삶을 사랑하는 그의 글은 자기고백의 글이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이 가지는 마음도 소박하게 잘 드러나 있다. 수채화 같다는 파란여우님의 말이 참 맞다.

116페이지  "오래 살고 싶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가을을 지나 농익은 능금처럼 인생으로 한번 흠뻑 익어보고 싶은 것이다..... 오래 살아 보고 싶은 새삼스런 욕망을 느낀다. "

짧고  굵게 화려하게 살겠다는 요즘 사람과 달리 인생의 맛을 느껴 보려고 오래 살아 보자는 것..

나도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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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가득 2005-02-1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아침내 내리던 비가 이제야 그치네요.. 햇살도 비추이고... 좋은 하루 보내길 바래요.. 그리고 오래 살려면 무엇보다 운동은 해야겠지요? 오늘부터 걷기를 해 보려구요.. 학교 운동장 돌기.. 저녁이 되면 땅이 좀 마르려나..
 
탐서주의자의 책 -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사.철 기록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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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할 때 지식과 정보의 보고, 선인들과의 정신적 대화가 가능한 곳으로밖에 볼 줄 모르는 내게 표정훈의 이 책은  책에 대한 부담감을 싸악 씻어내 주어 책을 좀더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는 것 많고 기억력 좋은 그가 박학다식의 모습이 아니라, 말이 많아 오히려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선배처럼 느껴져서 그의 다양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동안 저절로 킥킥거려졌다.

탐서주의자?

아름다움에 심취하는 탐미주의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탐서주의라니, 이거 고상한 단어를 끌어와 자신의 지적 수준을 과시하고 나의 기를 죽이는 그렇고 그런 책 아닐까 싶었는데 그런 걱정을 한 번에 날려 주어서 개인적으로 그의 글쓰기가 참 마음에 든다.  책과의 만남은 정신적인 것인 줄 알았더니, 에로틱하기도 하네..어쩜 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그리도 끝이 없을 수 있는지..

오늘 내가 이 책 한 권과 만나기 위해 빅뱅 이후 억겁의 세월에 걸쳐 우주가 쉼없이 운행되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우주적 착각..

윗글을 읽고도  난 한참이나 낄낄거리다가 진지하게 나의 책에 대한 기억을 돌아 보았다. 내가 저렇게 환호하면서 간절한 기쁨으로 만난 책이 있었던가? 그냥 좋구나, 좋았었구나.. 정도로 밋밋하고 덤덤하게 좋은 구절, 좋은 책을 읽고 대하고, 쉽게 잊어 버리고, 내가 그 책을 읽기는 했었는데라는 막연한 느낌을 가지는 게 나와 책의 인연이며 독서 습관이었다. 알라딘의 서재를 기웃거리면서는 참 많은 사람들이 탐서주의자에 가깝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책과의 만남을 좀더 진지하게 가져 나도 이 글의 작가가 느끼는 저런 느낌을 꼭 느껴 보고 싶다.

책과 글에 덮여 살다 보면 좀 찌들기도 하련만  작가를 소개한 표지 사진을 보니 두루뭉술한 얼굴이 귀엽고도 사람 좋아 보인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고 살아서 그런가.. 이 책은 사랑에 깊이 빠진 사람이 그의 연인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과 추억을 풀어 놓듯이 신이 나서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연인의 이야기에 자신이 도취되어 말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든다. 그에 덩달아 나도 즐겁다.

그에게 부러운 점이 있다면 아버지의 서재 관련 부분이다. 생계 유지에 비하면 독서는 그 순서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저 뒤의 순번을 가진다. 먹고 사는 것을 가장 큰 이슈로 삼아 근근이 살았던 우리 집은 내가 책을 사지 않으면 교과서 외에는 책이란 걸 집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아.. 그래도 부모님이 참고서는 사 주셨구나. 내가 소설 나부랭이라도 살라치면 엄마는 말했다. " 그거 한 번 읽고 말걸 뭐하러 사노? 돈도 없는데.." 그 말씀은 책의 가치를 잘 모르는 나로서도 공감하는 부분이어서, 책을 사는데 늘 망설임을 주었다. 그래도 당시 삼중당 문고판 책들이 잘 나올 때라, 덜 미안한 마음으로 그런 책들을 읽기는 한 것 같다.

이 책을 이리저리 보면서 나는 왜 읽는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책이 있다면? 책과 관련된 나의 남을 만한 기억은? 책의 용도는 다양하구나. 책이 나에게 해 준 것들... 에 대해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도 보았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만한 책이다 - 표정훈의 탐서주의자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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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가득 2005-02-0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기대보다 실망했다는 분도 있던데, 저는 정말 재밌게 읽었답니다.
- 눈을 뜨니 책이 있었다로 시작하는데 멋있지 않나요?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태학산문선 103
이옥 지음, 심경호 옮김 / 태학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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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의 <미쳐야미친다>에 실린 이옥의 글 -  연초연기와 향연기 - 를 보고 뭔가 깨달음이 있어 이옥의 산문집을 읽게 되었다. 그 글이 쉽지 않게 읽혔듯이 이옥의 글은 내포된 뜻이 깊어서인지 이해하기기 상당히 어렵다. 힘과 노력을 들여 읽는 중이다. 몇 번을 더 뒤적여 봐야 진정한 감이 올 듯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없어서 먼저 발을 내 디딘다.

최근에 연암 박지원의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읽고 상당히 고무되었었다. 고도의 비유와  함축이 경이로왔었는데, 이옥의 글에서도 유사한 발견을 한다.  그런데 연암선생의 글이 더 훌륭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연암의 책값이 좀더 나가고 그 값에 걸맞게 해석을 아주 자세히 해 주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나의 고전 읽기가 원본의 번역에 더해, 곡진한 해설을 필요로 하는 초보 단계에 있으므로, 내가 더 열심히 읽고 생각해야겠지만, 이와 같은 고전시리즈가 한층 업데이트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옥의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종례의 규범의식에 대한 반발을 통해 참다운 개성을 글속에 담으려 한 실험정신이 가득한 것이었다고 한다.  내가 그를 좀 다르게 느끼는 것은 그의 글을 통해서는 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정조의 문체 반정을 통하여 곤욕을 치렀다는 것 외에 결혼은 했는지, 벼슬은 했는지, 어떤 변화를 꿈꾸며 행동했는지  당시 사람 - 정약용, 박제가, 이덕무 - 들의 글은 생활을 바탕으로 글이 존재했는데, 이옥은 오직 글을 쓰기 위해 존재한 사람처럼 그렇게 느껴진다.

옮긴이 심경호 선생은 이옥의 친구 김려라는 사람의 말을 빌어 그의 시문에서는 기이한 생각과 감정이 마치 누에 고치가 실을 토하는 샘물 구멍에서 물이 용솟음치듯 흘러나온다 라는 글로 이옥이 타고난 글쟁이였음을 또한 말해 주고 있으니 이옥의 글은 그의 생애보다 그의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잘 잡아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보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과 세상을 관찰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을지도 모른다. 폭포와 바람소리를 극복하고 포용한 진정한 예술가 송실솔, 권력에 움츠리지 않는 칼의 명인, 백성들을 돌아볼 줄 아는 협객 장복선, 노류장화 사당패 및 불행한 열녀 이야기, 남존여비의 극치를 달리던 당시에 다섯 아들을 두고도 오히려 각종 세금으로 슬퍼해야 하는 하층민의 삶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흰 봉선화, 거미가 치는 그물, 개구리와 벼룩, 바다, 연기 등 사물에 대한 관심과 관찰은 우리가 살아가며 보는 세상에 확대, 비유하여  깨달음과 새로운 시각을 주기도 하니, 그가 단지 글쟁이에만  머물러 그 역할을 못한 것은 아니다.

 '가을의 벌레소리'란 글에 보면 수 많은 글을 써내는 자신의 글쓰기의 의미를 회의하는 내용이 있다. 일상의 반복처럼 일상적으로 쓰게 된 글들에 대해 근복적으로 돌아보는 과정이다. 왜 쓰는가라는 물음은 그에게는 아마도 뭇사람들의  왜 사는가와 같은  알기 힘든, 꼭 집어 대답할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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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한 내 방 태학산문선 109
허균 지음, 김풍기 옮김 / 태학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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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글을 읽을 때면 언제나 변화무쌍하면서도 신선한 그의 사유를 날 것으로 맛볼 수 있어서 좋다.

<누추한 내 방>이라는 허균의 산문집을 엮어 옮긴 김풍기 선생의 말씀이다. 선생의 말씀에 공감이 가긴 하지만 불우한 그의 생애를 들여다 보니 인간적으로 참 외로왔겠구나.. 홀로 정신은 맑고 높았겠으나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고 부유하였으니 그 쓸쓸함의 끝은 어디였을까 싶어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누추한 내 방'이라는 글에서 그는 "사람들이 누추하여 거처할 수 없다지만, 내가 보기엔 신선이 사는 곳이다. 마음 안온하고 몸 편안하니 군자가 산다면 누추한 게 무슨 대수랴" 라는 글로 마음껏 독서하며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는 작은 방에서의 자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자유로운 기질과 변화 무쌍한 사고가 좁은 방안에서만 머물 수 있었을까? 소년 홍길동을 대변해서 말하듯 대장부로 태어나 그 능력과 뜻을 펴지 못함은 곧 죽음과 같은 것인데 말이다. 그리하여 결국 혁명을 꿈 꾸었으나 그 또한 꿈으로 남았고, 시장 바닥에서 능지처참이라는 끔찍한 형을 당하여 후세에 두고두고 대역죄인으로 기억되던 그이다.

 

작은 방안에서의 사유( 앉아서 유목하기)는 안빈낙도와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허균에게는 말이다. 방대한 독서를 통한 생각의 갈무리 - 그것은 좀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꿈을 꿀수록 현실에서 멀어져 그 괴리로 인한 고독한 좌절의 깊이는 얼마였을까? 또 형과 누이 아내와 아들을 차례로 잃어 가면서 홀로 감당해야 하는 그 고통은 또 얼마였을까? 한석봉, 이정 권필과 같은 쟁쟁한 같은 시대의 벗들이 있었음에도 도연명,이태백,소동파와 같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이를 벗 삼을 수밖에 없었던 그는 또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을까싶다.

 

대장부의 삶 - 곤궁함과 현달함은 제 스스로 분수가 있는 법이니 하늘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타향에서 만난 그대 - 저는 그대를 보내고 성곽에 올라 홀로 봉생정 위에 외로이 앉았더랬습니다.

술 한 잔 하러 오시게, 속절없이 봄날은 간다, 등의 척독을 통해 외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벗을 간절히 원하는 허균의 모습이 보이지만, 종당에 맞는 외로움은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주어진 한 생애를 살면서 외롭지 않게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싶지만, 생각이 깊을수록, 꿈이 높을수록, 세상과 맞지 않을수록, 생의 쓸쓸함과 고독함은 더 강하고 아프게 남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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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2-06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좋아하는 허균과 출판사 태학사의 책을 연이어 읽으신 봄날님이 너무 좋아요.아, 이것도 편애라 하시면 그렇게 여겨 주시길. 뭐 어때요.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나요?^^..누추한 내 방...허균의 절개와 고독감이 물씬 묻어나는 제목입니다.

햇살가득 2005-02-07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 여우님의 외로워서 쓴다라는 그 구절이 생각났어요.. 그 말이 요즘 실감난답니다. 글자의 힘이 대단하죠? 몇 글자 치다보면 외로움이 조금은 치료되거든요. 그러다가 더 깊어지기도 하지만요.. 저도 파란여우님이 진짜 좋답니다.
 
궁핍한 날의 벗 태학산문선 101
박제가 지음, 안대회 옮김 / 태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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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북학의>를 읽다가  중간에 그만 둔 적이 있다. 그러고 역사를 전공한 선배에게 <북학의> 정말 별로에요.. 온통 청나라 문물 칭찬만 하고, 우리 것은 다 비루하다고 하니 도무지 주체사상이란 거 찾아 볼 수가 없어요.. 흐응.. 그랬더니 선배 왈  " 당시의 우리 삶이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힘들었다잖아. 그리고 걸칠 옷도 없이 동물처럼 살았으니, 목숨 부지하려면 대대적이 개혁이 필요했지. 전환적인 사고..청나라 것이 무조건 좋다는 그런 말이 아닐 걸.."

이제야 이 글을 읽는다.  다음은 '북학의를 임금님께 올리며'라는 글의 일부다.

신은 이 산골 고을의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해 보았습니다. 백성들은 화전을 일구고 나무를 하느라고 열 손가락 모두 뭉툭하게 못이 박혀 있지만 입고 있는 옷이라고 해야 십 년 묵은 해진 솜옷에,집이라고 해야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서 들어가는 움막에 지나지 않습니다. 먹는 것은 깨진 주발에 담긴 밥과 간도 하지 않은 나물뿐입니다.-

그러고 나니 <북학의> 도 선배의 말도 다 이해가 간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벗어나지 못하는 궁핍한 삶.. 개인의 게으름 탓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로 인한 것이므로 개혁과 혁명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안 되는 그런 필요성을 절감한 울분어린 혁명가의 애끓는 부르짖음이었던 것이다.

제목이 참 좋다. 궁핍한 날의 벗..

천하에서 가장 친밀한 벗으로는 곤궁할 때 사귄 벗을 말하고 우정의 깊이를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는 가난을 상의한 일을 꼽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궁핍한 날의 벗'이라는 이 글은 그의 친구 백동수가 살기를 도모하여 서울을 떠나 강원도 인제로 가는 길의 서글픔을 표현한 글이다.

내 주변에 워낙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이 글이 날 자꾸 돌아보게 한다. 사람이 참 하기 어려운 말 중의 하나가, 예나 지금이나 '돈좀 꿔주게' 인가 보다. 말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들어주는 것도 참 어렵다. 

또 인용하고 싶은 말
머리가 세도록 오래 사귄 친구라도 처음 만난 것처럼 서먹서먹하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사귄 친구라도 옛 친구와 다름없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면서, 나와 너무나 다른 지경에 처한다. 결혼한 여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에 비해 할 이야기가 참 많아 보인다. 그들 사이에서 난, 할 말이 없고 또 할 말을 잃는다. 10대와 20대를 함께 보낸 그네건만, 당분간은 멀리 하고 싶다. 반면, 나와 함께 지금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지금 생각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소중해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여자들은 진정한 우정이라는 게 있나?" 라고 내게 묻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그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다.

책은 박제가의 이리저리 흩어진 여러 산문들을 한 곳에 묶어 만든 책이다. 여러 친구들이 박제가에게 부탁한 그들 책의 서문도 있고, 친구 이야기, 시와 그림 이야기, 시대의 변화를 바라는 이야기, 섬세한 필체의 기행문 .글도 잘 쓰고, 그림에도 능하고, 풍류도 아는 문화인인 동시에 우정과 의리와 혁명을 꿈꾸는 그는 정말 멋진 남자다.

- 박지원에게 놀러갔더니, 스물일곱살이나 많은 그가 뜻 맞는 친구를 만났다면 손수 밥을 해준 이야기, 결혼하는 날 부인이 뒤따르는 데도 친구집을 쭈욱 둘러 보는 일 (남편으로선 별로), 고결한 선비 이덕무에 대한 남다른 애정, 술을 절제하라는 진심어린 벗에의 충고, 어느 것 하나에 몰두하는 아름다움, 자기에 대한 말을 쉽게 하지 말라는 인간적 당부....

한자로 쓰여진 글들을 잘 번역해 놓아 읽기는 쉽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박제가가 요즘에 태어났나면 딱 '선동가(煽動家)'였겠다라는 것.
- 우리나라가 가난한 것은 다들 과거에 나아가 벼슬을 하려고 하는 유생들이 지나치게 많아서이다. 그들 수를 줄여라, 수레를 이용하라,기이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예것만 고수하면 그만이가? 등등 세상의 변화를 바라며 세상에 요구를 끊임없이 한다.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가 산 시대와 사회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를 통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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