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사랑은 칼날을 숨긴 종이'다.

 

 

 

" 나의 다른 책들에서처럼 어떠한 사회적 논평도 제시하지 않고, 어떠한 교훈도 입에 담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지도 않고, 인류에게 올바른 출구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

 

- 절망,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영문판 작가 서문 中

 

 

 

나는 첫인상에 대한 감응력을 뜻하는 " 첫눈의 힘 " 을 믿는 편이다. " 첫눈에 ~...... " 는 설명되거나 덧대는 과정 없이 어떤 대상을 편견없이 바라볼 때 생기는 직관'이다. 그러니깐 온갖 말이나 빳빳한 명함으로 덧씌운 이미지'가 아닌 날것에 대한 시각의 본능적 감각이 바로 첫눈이다. 시인 나태주가 < 풀꽃 > 이라는 시에서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 고 말했지만 모든 것을 관조적 자세로만 볼 수는 없다. 첫눈에 반하는 대상은 밝게 비추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아름다운 존재는 빠르게 지나간다. 롤랑 바르트의 사유를 빌리자면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존재는 스투디움에 속하고, 첫눈에 반하는 대상은 푼크툼에 속한다. 관조가 어떤 대상을 밝게 비추어 자세히 관찰하는 자세라면, 직관은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이다. 뚫는(푼크툼) 힘'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쓴 장편소설 < 롤리타 > 1부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서 가장 황홀한 도입부'였다. 소설 < 롤리타 > 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한다.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 그녀는 로, 아침에는 한쪽 양말을 신고 서 있는 사 피트 십 인치의 평범한 로. 그녀는 바지를 입으면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으로는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안에서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 롤리타, 민음사 판

 

하지만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 롤리타 > 는 " 아름다운 문장 " 으로 시작한 소설이지만 내용은 중년 남자가 열두 살 소녀에게 성적 욕망을 느낀다는 " 아름답지 않은 막장 " 이니깐 말이다. 이 정도 막장이면 임성한 드라마 작가도 놀라서 다시 볼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보코프'는 험버트 험버트'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중년 남자의 고백을 통해 아름다운 문장을 쏟아낸다. 막장'을 문장'으로 덮는 거장'의 솜씨가 뛰어나다. 사실 그가 쓴 소설에서 윤리적 올바름'이나 도덕적 교훈'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 나보코프는 이렇게 말한다. " 도대체 나는 왜 쓰는가 ? 만족을 얻기 위해서이다.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 어떤 도덕적 교훈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수수께끼를 내고 멋지게 풀이하는 것이 그저 좋을 따름이다. ( 절망, 문학동네. 작품해설에서 발췌 ) " 

 

나보코프는 문학이 민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사르트르보다는 보르헤스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소설 < 롤리타 > 는 온갖 패로디와 말장난 그리고 낱말 십자 풀이'를 통해서 독자가 문장 속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풀도록 만들어놨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마치 백인 레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당대에 태어난 젊은이였다면 챙을 구부리지 않은 모자를 쓰고 힙합 배틀에서 멋진 슬램을 보여줄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 헤이, 요 ! 일말의 주저없이 말하리. 너는 병신과 머저리. 골 빈 대가리. 두 말 하지 않으리. 세 말 하면 잔소리. 그건 깐 데 또 까는 까투리. 내 품안에서 잠든 로리. 나의 사랑스러운 롤리폴리. 우리 사랑 영원하리.  yo ! " 다음의 문장은 어떤가 ?

 

스와인(돼지) 같은 녀석, 콰인. 퀼티를 살해한 길티(죄). 오, 내 사랑 롤리타,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은 그저 단어들밖에 없구나 !

- p. 47

 

원문은 이렇다. " Quine the Swine.  Guilty of killing Quilty. " 절묘하다. 잘빠진 랩 가사 같다. 라임이 뛰어나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나보코프'는 수백 편의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랩의 라임'이 시의 운율과 같다는 사실은 모두 다 알고 있는 것 아닌가. Swine(돼지)은 Quine ( 사람 이름 ) 과 붙고,  Guilty(죄) 는 Quilty ( 사람 이름 ) 와 붙는다. 이 정도 라임이면 입에 짝짝 붙는다. 나보코프가 험버트 험버트의 입을 빌려 고백했듯이 그가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은 단어들밖에 없다. 러시아 망명자인 그가 타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소설을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전부였다. 몰락한 귀족의 신세한탄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유미주의자의 혐오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그는 모국어인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로도 작품을 썼다.

 

다양한 언어로 작품을 자유자래로 쓴다는 것은 나보코프의 천재적 언어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무국적 성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탐미적 개인주의자처럼 보인다. 그리고 주류 언어가 아닌 소수 언어로 글을 썼다는 측면에서 나보코프와 카프카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카프카가 프라하에서 체코어 대신 독일어로 작품을 썼듯이, 나보코프는 독일에서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소설을 썼고, 정작 미국에서는 러시아어로 작품을 쓰기도 했다. 들뢰즈, 가타리는 < 소수 집단의 문학을 위하여 : 카프카론 > 에서 이러한 경향을 소수 집단의 문학'이라고 말하며 카프카가 지배자 문학'을 증오했다고 지적했는데, 나보코프의 탐미적이며 유희적 성향 또한 주류적 가치와 문학에 대한 경멸처럼 보인다.

 

자서전 < 말하라, 기억이여 > 쳅터 14장 " 망명 " 에서 나보코프가 망명 기간 중 가장 흥미를 느낀 작가는 " 블라디미르 시린 " 이라고 고백한다.  시린은 자신과 동시대 사람으로 망명 중에 생겨난 젊은 작가 중에서도 가장 외롭고 거만한 자라고 그를 소개한다. 도대체 시린'이란 자는 누구일까 ? 아마, 다음 문장을 읽고 나면 당신은 웃을 것이다. 시린'은 나보코프가 독일에서 러시아어로 작품을 쓸 때 사용했던 필명이었다. 그는 망명지는 독일에서 모국어인 러시아어'로도 소설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 절망 > 은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 롤리타 > 못지않게 화려한 언어 유희가 손버릇 나쁜 풍각쟁이의 손처럼 모든 곳을 들쑤신다. 그러니깐 그의 고백은 조크'가 섞인 나르시즘'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시린의 찬미자들은 아마 너무 과할 정도로까지 그의 범상치 않은 문체와 명석한 정밀함, 기능적인 심상과 같은 것들을 중요시했다. 완강히 직설적인 러시아 리얼리즘의 기반에서 길러졌으며 허풍쟁이들을 데카당의 속임수라 블러 온 러시아의 독자들은, 거울처럼 분명하면서도 불가사의한 곳으로 이끌어 가는 그의 문장들에, 그리고 그의 책의 실제 삶이 그의 화법 속에 흘러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 말하라 기억이여, p.350

 

뭐, 이정도면 왕자병을 넘어 황태자병'이라 할 수도 있다. 그는 확실히 지나치게 도도한 인간이었지만 우리는 그 지적 우월에 대해 딱히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가 " 거울처럼 분명하면서도 불가사의한 문장 " 으로 쓴 작품들은 미미하지도, 시시하지도, 수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 탁월했으니 말이다. 주류적 가치와 주류 문학에 대한 경멸은 러시아 리얼리즘 소설의 신화적 존재인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그는 시린이라는 이름으로 썼던 < 절망 > 을 영문판으로 번역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조롱한 모양이다. < 절망 > 을 번역한 최종술은 작품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문판에서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조롱은 숨은 작가의 말이 된다. 단적인 예가 영문판에 새로 도입된 동어반복적인언어유희인 dusty and dusky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에 경멸적인 울림을 부여하는 이 언어유희가 영문판을 관류하고 있어서 .....

- 절망, 작품 해설 中 p.269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dusty and dusky 라고 조롱한 이 기막한 언어 유희에 박장대소했지만 한편으로는 위대한 대문호를 사랑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 대문호를 조롱한 이가 나보코프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저 조울증 환자처럼 기막힌 재치와 기가 막힌 조롱 사이를 오갈 뿐이다. 소설 < 롤리타 > 는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도도한 나보코프가 깔아놓은 장치는 꽤나 정교해서 험버트 험버트가 살해한 퀼트 씨'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일도 이 소설을 읽는 맛이다. 그것은 순전히 이 책을 읽을 독자의 몫이다. 물론 이 소설을 험버트 험버트가 롤리타를 사랑한 이야기로 해석해도 매우 뛰어난 서사시'처럼 읽힌다. 이래저래 다 좋다. ( 권택영이 번역한 민음사판과 김진준이 번역한 문학동네판 중 어느 쪽이 더 좋으냐는 질문을 받고는 했는데 민음사판는 바탕체-스럽고, 문학동네판은 명조체-스럽다. 비슷하다는 소리'다. 단, 각주를 꼼꼼하게 챙길 독자라면 문학동네판을 추천한다. 문학동네 각주가 꼼꼼하다.  )

 

< 롤리타 > 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 나는 들소와 천사들, 오래가는 그림 물감의 비밀, 예언적인 소네트, 그리고 예술이라는 피난처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너와 내가 나눌 수 있는 단 하나의 불멸성이란다, 나의 롤리타. ( p.422) "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이라 했던가. 아름다운 꽃, 열흘 붉을 리 없다는 뜻이다. 험버트가 도망쳤던 롤리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문 앞에서 지저분한 겨드랑이의 롤리타가 가망 없이 지친 17세로, 임신을 한 채 서 있는 모습을 참당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 나는 그녀를 죽이지 못한다, 물론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아시다시피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것은 첫눈에 반한 사랑이고, 마지막까지의 사랑이고,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 p.368 ) "

  

책장을 덮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험버트 험버트는 옴므 파탈일까, 아니면 롤리타가 팜므 파탈일까 ? 똑같은 질문, 험버트 험버트가 요부(妖夫)인가, 아니면 롤리타가 요부(妖婦)인가 ?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위험한 사랑이다. 강렬한 각인'은 자칫 잘못하면 고착'이 된다. 불멸하는 존재는 없다. 모두 다 한때'이다.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빨리 지나간다. 롤리타도 늙어갈 것이다. 책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이는 종이에 손을 자주 베인다. 우리는 이 상처를 통해서 쉽게 찢어지고 휘는 연성을 가진 종이'가 벼린 날'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잠시 당황하게 된다. 어쩌면 쉽게 찢어지는 종이의 연성(軟性)은 날카로운 날과 촉을 숨기기 위한, 약한 척하는, 종이의 위선'인지도 모른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깊게 사랑할수록, 뒤돌아서면 더 아프게 베인다.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자는 그만큼 아프다.  사랑에 목숨 걸지 마라. 사랑은 칼날을 숨긴 종이다.

 

 

 

 

 

 


 

 

 

 

참고한 책

 

1. 소수 집단의 문학을 위하여 : 카프카론 / 들뢰즈,가타리 / 문학과 지성사

2. 절망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문학동네 / 옮긴이 해설 참고

3. 말하라, 기억이여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플래닛 / 본문 인용

4. 롤리타 / 블라디므리 나보코프 / 권택영 옮김 본문 인용

5.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김진준 옮김 각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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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 2013-12-08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며칠 전에 갑자기 기억난 것인데, 펄벅 여사의 '대지' 제 3권에 보면 어마어마한 장면이 나옵니다.
꼬부랑 할배가 채 20살도 되지 않은 여자아이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지요.
(읽은지가 워낙 오래되서 확실하지가..)
발표연도를 따져보니 롤리타보다 20여년 앞선 로리물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9 00:19   좋아요 0 | URL
왜 옛 어른들이 자기 딸 소개할 때 과년한 딸'이라는 말 즐겨 쓰잖아요.
여기서 과년'은 여자 나이 16살을 의미합니다.옛날에는 결혼 적령기가 16살이었다고....
여자도 그렇고 남자도 그렇고 정자 난자가 가장 건강할 때가 이 나이 때일 겁니다.
이 소설 속 롤리타는 12살이지요.
하여튼... 대지'보다 몇 백 년 앞선 로리물도 있죠. 로미오와 줄리엣....
아마 이 녀석들 나이가 16살일 거예요.
참. 춘향전도 그렇군요. 이때도 16살이니....

편린 2013-12-0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생각해보니 대지를 읽은게 초등학교때였는데 저런 장면에도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았던 것 같네요.
이미 그 시절부터 저의 정신세계는 황폐했었군요.
저런 장면들보다 대지가 3권까지 있는 책이었다는게 더 놀라웠던 듯..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9 00:20   좋아요 0 | URL
생각해 보니 난 대지를 중학교 때 읽었는데, 이게 중고교 권장 독서였나요 ?
흠... 잘 기억이 안 나네...
하여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재미로 따지면 난 빙점'을 재밍쎄 읽었음..

수다맨 2013-12-09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칼날을 숨긴 종이이다... 크 이 마지막 문장이 참 소주를 생각나게 하네요. 나중에 술 마시다 안주 떨어지면 곰곰발님 문장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셔야 겠습니다. 가슴을 참 아프게 후비네요. 올해 제 고백을 걷어찬 여자도 생각나고 말이죠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9 15:59   좋아요 0 | URL
어, 그렇습니까. 사랑은 칼날을 숨긴 종이다는 특별히 안주 없이 깡소주를 마실 수다 님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겠습니다. 맘껏 뜨어먹으십시요...
그나저나 고백했는데 차이면... ㅋㅋㅋㅋㅋ 난감한데...ㅋㅋㅋ

만화애니비평 2013-12-09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험버트헙버트 변태 오지쌍~! 로리콘의 서막을 알린 일본 애니 오덕들의 아버지 중에 하나가 롤리타의 소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9 16:00   좋아요 0 | URL
하긴 험커브가 님펫에 대한 정의를 자세히 알려주기도 했죠..

세이지& 2013-12-0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필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사랑이 외로운 건
모든 걸 걸기 때문이라는..

그리고..
"모두를 잃어도 후회 않는 것.."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9 16:01   좋아요 0 | URL
글구.. 보면 조용필 노래 가사는 참 좋은 거 같습니다.
그 겨울 찻집도 그렇고...

가끔 너무 진지해서 좀 웃긴 가사도 있지만.. ㅋㅋ

엄동 2013-12-0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타"는 못 읽어봤찌만.

마지막 문단이 좋네요

사랑은 칼날을 숨긴 종이다! 캬아.


사랑은 칼날을 숨긴 종이다
.. 그 칼은 끄집어 내어 보면 양날의 검이다.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랑도
내가 더 사랑받는 사랑도
베이고 나면 아픈것은 매한가지.

그럴바엔 전 차라리 사랑에 목숨을 걸어
내가 더 깊게 사랑하는 사랑"을 할겁니다.

무디고 뭉툭한 척하는
칼날의 위선"도 종이의 그것과 같지 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9 16:03   좋아요 0 | URL
롤리타 참 좋은 소설이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문동 판은 각주가 잘 달려서 읽기 좋습니다.
읽다보면 이 작품이 왜 영미문학의 걸작인가를 알 수 이씀...

엄동 님 겨울이 되니 센티해지셔셔요..

2013-12-09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9 22:28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 전 길면 오히려 따분해할 것 같아서 한 페이지 분량으로 딱 맞춘 것인데 말입니다... ㅋㅋㅋㅋ
어서 늘려야겠습니다. 후딱 늘려야지...
정보 감사합니다. 솔직히 늘리는 건 자신있씁니다.

rendevous 2014-01-11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롤.리.타.

강신주 선생님이 한 철학자의 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걸었던 길을 걷는 거라고 하던데, 롤리타는 이렇게 발음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감히 뱉어봅니다 ^^
 
11/22/63 -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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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냐 떼'가 혓바닥을 물어뜯는 맛.

 

 

 

 

스티븐 킹 전작주의자'는 아니지만 그가 쓴 소설이나 에세이'는 대부분 찾아서 읽는 편이다. 다른 뜻은 없다. 그가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열혈 팬이기 때문에 좋아한 것도 아니고,  민주당 지지자'이기 때문에 좋아한 것도 아니다.  그냥 재미있으니깐 읽는 것이다. 그에게는 " 공포소설의 제왕 " 이라는 왕관이 꽤나 잘 어울리지만 자칫 잘못하면 공포소설만 잘 쓰는 작가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이 타이틀'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는 " 공포소설의 제왕 " 이 아니라 " 소설의 제왕 " 이다. 그리고 소설 못지않게 에세이 분야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공포소설만 쓰는 게 지겨워서 습작처럼 썼다는 < 사계 : 리타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우등생, 스탠 바이 미, 호흡법 > 는 놀라서 다시 볼 정도로 뛰어난 걸작이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독자는 없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소설가 장정일이 < 독서일기 > 에서 사계를 언급하면서 "스티븐 킹이 이 단편을 쉬어가는 의미에서 쓴 작품이라면 한국의 작가는 다 죽어야 한다." 며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고 말했을까. 빈말이 아니다. 한국의 작가들이 배워야 할 작가는 제임스 조이스가 아니라 스티븐 킹'이다. 한국 작가들이 독자는 거들떠도 안 보고, 평론가들에게 매달려 구애를 보내는 태도는 지향해야 될 덕목이 아니라 지양해야 될 대목이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는 비겁하다. 고전은 재미있기에 오래 읽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스티븐 킹은 재미와 작품성을 두루 갖춘 작가이다. 그는 교양 어투 대신 저잣거리 입말을 사용해서 작품에 생생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하지만 모두 다 그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킹의 저잣거리 입말을 개짓거리 쌍말'이라고 폄하하는 클래식한 교양인'도 있을 터이다.

 

 

녹차를 즐겨 마시며 티타임을 한가롭게 보내는 교양인이 보기에는 킹의 소설이 영 못마땅할 것이다. 스티븐 킹 특유의 저잣거리 입말이 까끌까끌하고 거친 맛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치 탄산 거품이 혓바닥을 사정없이 긁어내리는, 코카콜라 특유의 톡 쏘는 맛처럼 말이다. 스티븐 킹'이라면 이 맛에 대하여 " 피라냐 새끼들에 떼거지로 몰려와서 내 혓바닥을 물어뜯는 맛이군 ! " 이라고 묘사하지 않았을까 ? 내가 킹의 소설을 읽는 이유는 바로 그 맛 때문이다. 나는 피라냐가 떼거지로 몰려와서 혓바닥을 물어뜯는 것 같은, 그 거친 문장 때문에 매료되어 킹'을 읽는다. 이런 문장은 찰스 부코스키와 함께 독보적이지 않을까 싶다. 스티븐 킹은 작법서'라며 자세를 낮춘 인생론 < 유혹하는 글쓰기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킹의 지적은 글쓰는 요령이기에 앞서 그가 가진 평소의 철학에 가깝다. 압축미도 좋고, 세련된 은유도 좋고, 미문도 좋지만 모든 문학 작품을 한 가지 입맛에만 맞추면 쉽게 질리게 된다.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이 복수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그 지긋지긋한 군만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군만두 대신에 딤섬을 제공했다면 복수의 서사'는 용서로 끝났을 것이 분명하다. 음식도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 건강에 좋듯, 문학도 편애 없이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신작 < 11/22/63 > 은 시간 여행'이라는 그 흔한 공상과 케네디 암살 사건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엮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가 원고지 7000매 분량의 소설 [ 언더 더 돔 / 2009年 ] 을 출간한 지 2년 만에 다시 5000매 분량의 < 11/22/63 > 를 선보였다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작가 생활 40년 동안, 그가 쏟아낸 작품이 무려 500여 편이 넘는다. 이 가운데 장편만 50편이다. 이처럼 그는 천재적 재능을 갖춘 작가이면서 동시에 노력하는 작가'이다. 그는 제 2의 조르주 심농이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 과거 1958년 " 은 킹이 10살 때'이다. 문득, 열 살 무렵의 어린 소년은 무엇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가 유년 시절을 회고한 에세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킹에게 있어서 1958년은 유독 기억에 남는 해'였던 것 같다. 그는 < 유혹하는 글쓰기 > 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 그것은 1958년의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센터 초급 중학교에 다녔고, 데이브 형은 스트랫퍼드 중학교에 다녔다. 어머니는 스트렛퍼드 세탁소에서 일했는데, 세탁부 중에서 백인 여자는 어머니뿐이었다. (p.36) " 라고 말하는가 하면 " 나는 1947년에 태어났고 우리가 처음으로 텔레비젼을 구입한 것은 1958년이었다. (p.39) " 고 말한다. 그리고  가난한 어머니가 푼돈을 모아서 킹에게 로열 타자기'를 선물한 때도 그 즈음이었다. 첫 번째 텔레비젼과 첫 번째 타자기, 어쩌면 그해는 어린 킹에게는 지상 최대의 해'였을 것이다. 그는 로열 타자기로 작성한 단편 원고 한 편을 투고했다고 회상했는데 그해가 1960년이다. 출판을 목표로 한 첫 번째 소설이었다. 이처럼 < 11/22/63 > 를 관통하는 과거 1958 ~ 1963년은 작가 킹이 소설가로써 꿈을 키웠던 시발점이자 근원'이었다.

 

 

만약에  칠순에 가까운 노인이 된 그가 과거로 돌아가서 일주일 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주저없이 1958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까 ? 당신이 열 살 무렵을 회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 아마도 < 맛 > 에 대한 추억이 아닐까 싶다. 프르스트가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에서 마들렌 과자를 통해 유년을 회상하듯, 킹은 그 시절에 먹던 맛을 제일 먼저 기억했을 것이다. 우리가 유년 하면 "달고나"와 "쫀드기"를 떠올리듯이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 제이크 에핑'이 과거로 돌아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신문과 함께 간단한 음료를 파는 가게에 들려서  " 루트비어 " 라는 탄산음료를 마시는 일이었다. 루트비어는 이름과는 달리 무알콜 탄산음료로  색깔과 톡 쏘는 맛이 콜라'를 닮았다. 속살 고운 아이들이 마시기엔 피라냐가 혓바닥을 물어뜯는 맛일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루트비어'를 마시고는  "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깜짝 놀랐다. " 고 고백한다. 그 고백은 마치 여자의 가슴을 처음 만져보고는, 말캉말캉한 가슴이 솜사탕처럼 부드럽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소년의 독백처럼 들린다. 주인공 제이크 에핑은 젊은 스티븐 킹이 투영된 캐릭터'이다. ( 킹 또한 젊은 시절에 제이크 에핑처럼 교사로써 학생들에게 작문을 가르쳤다.) " 지상 최대의 해 " 로 시간 여행을 떠난 " 지상 최악의 해 " 에서 온 사내는 영화 < 터미네이터 >에서 젊은 용사로 나온 카일 리스 ( 마이클 빈 ) 를 닮았다. 영화 < 터미네이터 > 에서 카일 리스'가 지키고자 했던 이가  미래의 지도자 존 코너'였다면, 소설 < 11/22/63 > 에서 제이크 에핑이 지켜야 했던 이는 케네디'였다. 그는 과연 케네디'를 지켜낼 수 있을까 ? 킹은 시간여행자'라는 흔한 공상 소설과 차별을 두기 위해 몇 가지 다른 장치'를 마련한다. 이 장치들은 아직 이 소설을 읽은 않은 독자를 위해 아껴두련다.

 

 

언젠가 헤밍웨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야 한다 ! " 맞는 말이다. 킹은 과연 좋은 작품을 얻기 위해 이 소설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을까 ? 젊은 킹'이었다면 작품에 욕심이 많아서 생각할 틈도 없이 사랑하는 것들을 죽였을 것이다. 그가 그동안 죽인 등장인물을 생각하면 그는 지독한 인간이다. 하지만 한국 나이로 환갑이 지난 킹은 이 작품에서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 작품성 > 과 < 사랑하는 것 > 사이에서 방황한다.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죽인 것에 대한 참회일까 ?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나는 이 갈등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무시무시했던 킹'이 이제는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이며 말랑말랑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책을 덮고 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용필'에게 열광했던 단발머리 여고생이 4,50대 중년 여성이 되어 조용필 무대를 찾아와 눈물을 쏟듯, 

 

 

콧물 흘리며 스티븐 킹 소설을 밤새 읽던 내가 지금도 여전히 킹의 신작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좋아하는 작가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무한한 감동이다. 조용필을 사랑했던 중년의 팬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무대'는 항상 마지막 무대였듯이, 나에게도 킹의 최고 걸작은 항상 마지막 소설이었다. 이 작품이 비록 작품성과 사랑하는 것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멜로 드라마'로 살짝 빠졌다 해도 나에게 킹은 언제나 킹이었다. 그렇다고 킹 특유의 문장이 바뀐 것은 없다. 피라냐가 떼거지로 몰려와서 혓바닥을 물어뜯는 문장 또한 여전하다.  " 어떻게 지내쇼, 나잇살 처먹은 대머리 양반 ? 요즘 들어 뜨끈뜨끈한 닭 똥구멍에 대고 붕가붕가라도 했나 몰라 ? ( p.79) "

 

킹 할아버지 !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 소설 읽으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보내고 있습니다. 붕가붕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엄마에게 물었다가 따귀를 맞았어요. 헤헤. 하지만 괜찮아요. 그런데 다음 신작은 언제 나오나요 ?

 

 

 

 

 

신작 언제 나오나요, 에 대한 답  :  기쁜 마음으로 스티븐 킹의 신작 소설 출간 소식을 알린다. 올 9월 < 닥터 슬립 > 이라는 장편 소설을 선보인 모양이다. 아마, 내년이면 한국 독자들도 이 소설을 접하지 않을까 싶다. 속편을 쓰지 않는다는 고집을 꺾고 이번에는 < 샤이닝 그 후 > 를 다룬 내용이라고 한다. 잭 니콜슨이 연기했던 알콜중독자이자 미치광이 잭 토랜스의 아들이 아버지 없는, 동정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서사이리라. 물론 이 눈물의 의미가 슬픔이 아닌 공포에서 연유된 것이란 사실은 안 봐도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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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2-06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책으론 아직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스티븐 킹의 신간이 나왔군요..!
그런데 제 '사계'는 아직 유효한 것입니까..? 몇 달이 지났지만.. :)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6 05:56   좋아요 0 | URL
그럼요. 만나면 드릴려고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이런 장치라도 없으면 언제 오프에서 함 보겠습니까. ( 오열 )

나탈야 2013-12-06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바와 조낸...

무슨 외국사람 이름같군뇨. 둘이 친구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06 14:15   좋아요 0 | URL
가만 들어보니 그렇군요... ㅎㅎㅎㅎㅎㅎ... 시바는 인도 사람 이름 같고
조낸은 스웨덴 사람 이름 같음.. 안녕 시바 ! 안녕 조낸 앤드 유 ?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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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가을이었던가 ? 열린 창문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나비는 내 방으로 들어와 나무의 섬유질로 만든 종이 책냄새를 맡으며 이리저리 호들갑스럽게 날아다녔다. 그날 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잠을 잤다. 나비를 가두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칼바람이 불었으리라.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며칠을 앓았다. 그렇다고 떠나버린 나비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벽 모퉁이에서 꼼짝도 않고 붙어 있는 나비를 발견했다. 날개 모양과 색깔로 보아서 며칠 전에 날아들어왔던 그 나비였다 나비가 나갔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비는 그동안 내 방에서 갇혀 있던 것이다. 사흘 동안 굶었을 생각을 하니 이만저만 미안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두 손으로 손 감옥을 만들어서 나비를 가두었다. 나비는 그때서야 자신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손 감옥으로 나비를 가두기 전에 이미 내 방에 갇혀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나비는 자신이 오래 전에 갇혔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창문을 열었다. 두 손을 펼쳤다. 나비는 잠시 내 손바닥 위에 앉아 있다가 이내 팔랑거리며 밖으로 날아갔다.

- 쇼생크 탈출 3, 당신은 독살에 갇힌 죄수다 中

 


 

 

 

 

 

 

정직한 사람에게는 소리가 난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걸어갈 때 발소리가 나는 법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대지 위를 살금살금 돌아다닌다. 보라, 달이 고양이처럼 다가온다. 정직하지 못하게스리.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프리드리히

 

 

 

 

 

속초 미라지 모텔 달방'에서 1년을 살았다. 원래는 지붕 낮고 마당 넓은 집을 찾기 전까지 잠시 머무를 요량이었다. 텃밭은 아니더라도 작은 터앝 하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에 살던 집 전세금이 집주인 사정과 묶여서 재판에 걸리는 바람에 집을 얻을 수도 없는 노릇이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모텔 달방'에서 살았다. " 달방 " 이란 모텔에서 先월세'를 달마다 미리 지불하는 형식이었다. 이곳은 주로 장기 투숙자들이 묵었다. " 달방 " 이라고 하니 이름은 꽤나 낭만적이고 근사했지만 사실 달방 세입자들은 대부분 유흥업소 여성들이나 그녀들이 매춘을 해서  번 돈을 갈취하는 기둥서방들 그리고 떠돌이 노역자가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밑바닥 인생'이었다. 대포항 방파제 공사현장에서 틈틈이 일을 했고 극장 영업이 끝나면 카페트나 의자를 소독하고 청소하는 일을 했다. 제임스 조이스나 프르스트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쓰리라던 욕심과는 반대로 나는 날마다 술을 마셨다. 

 

달방은 감방'이었다. " 둘러보아 사방 네 벽 감방에서 /  갖고 놀 만한 것이라고는 네 자지말고 없다는 것을 ( 시 독거수 부분 / 김남주 作 ) " 깨닫게 되었다. 비가 오거나 일이 없을 때에는  아침 9시에 도서관에 갔다. 그때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 바로 < 리타 헤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이었다. 영화로는 이미 숱하게 보았지만 원작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중편 분량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두 번 읽었다. 그리고 나서 시청각실'에 가서 < 쇼생크탈출 > 을 신청해서 보았다. 우울할 때마다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대부분 원작에 충실히 따랐지만 몇몇은 약간씩 다르다. 도서관 사서'로 나오는 브룩스는 소설에서는 자살이 아니라 빈민 노인수용소'에서 죽은 것으로 나온다. 소설 속 브룩스'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 브룩스의 나이는 68세였고, 거기에 관절염까지 있었다. 감옥 문을 나가면서 그는 한참을 울었다. 쇼생크가 브룩스의 세계였던 것이다. 브룩스에게 벽 밖의 세계는 15세기에 미신을 신봉하는 선원들이 생각하던 대서양처럼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감옥 안에서 브룩스는 중요인물이었다. 도서과의 사서였고 배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키터리 도서관에 가서 취직시켜 달라고 말한다고 해도, 취직은커녕 대출 카드조차 받지 못할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브룩스는 1953년에 프리포트 가까이에 있는 어느 빈곤 노인수용소에서 죽었다. ( p70 ) "

이 부분을 읽다가 잠시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3월을 며칠 앞둔 2월 늦겨울이었다. 하지만 속초에서는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계절이기도 했다.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렸다. 여름에 내리는 비는 시끄럽지만 겨울에 내리는 눈은 조용하다. 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때 창밖을 보면 영락없이 눈이 내렸다. 나는 늙은 사서 브룩스가 교도소 철문 앞에서 오랫동안 한참을 울었다는 문장 앞에서 먹먹해졌다. 그는 50년 가까이 이곳 쇼생크 교도소'에서 살았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들어와서 한평생을 이곳에서 산 것이다. 그는 자유에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규제'에 길들여진 인간이었다.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험프리 보가트가 나오는 < 카사블랑카 > 를 좋아했던 나의 옛 애인은 이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늘 낮게 속삭였었다. " 카사블랑카여, 영원하라 ! "

브룩스가 흘린 눈물은 쇼생크'와 결별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곁을 떠나는 애인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여자의 마음은 쇼생크 교도소 철문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으나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그해 봄, 나는 속초로 떠났다. 영화와 소설에서 가장 많은 차이가 나는 인물은 바로 교도소장'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새뮤얼 노튼 교도소장을 비롯해서 다양한 전임 소장들이 등장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교도소장'을 하나로 묶어 워든 노튼 교도소장'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원작에 비해 설정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나 소설 속 새뮤얼 노튼 소장은 영화와는 달리 티미'를 살해하지도 않았고 권총 자살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조용히 몰락하는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소설과 영화 중 어느 작품이 더 좋은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않겠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더 좋아 아니면 아빠가 더 좋아 라고 묻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침 9시에 도서관에 가서 <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을 두 번 읽고 나서 도서관 내 시청각실에 가서 < 쇼생크 탈출 > 을 보고 나오니 밖은 어두웠고 눈은 밝게 빛났다. 자전거를 두고 가게에 들려 소주 2병을 산 후 달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머무는 객실 옆에 사는 여자는 항상 새벽 4시에 들어왔다. 퇴근 시간으로 보아 유흥업소에 다니는 여자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105호에 입주했을 때 103여자는 다음날 입주했었다. 우리는 모텔 투숙 동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텔 장기투숙자라는 것이 그렇게 떳떳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그 여자는 늘 취해 있었다. 내가 머무는 객실 복도를 지나칠 때에는 항상 불규칙적인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의 비틀거리는 하이힐 소리를 좋아했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걸어갈 때 발소리가 나는 법이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곧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이내 조용해졌다. 간혹 변기 뚜껑을 열고 토악질하는 소리가 들렸을 뿐 여자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티븨 소리도, 누군가와 전화 통화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한 아가씨였다. 어느 날 날품을 팔고 돌아와 보니 객실 문고리'에 검은 비닐봉투가 걸려 있었다. 그 속에는 귤과 쪽지 편지'가 있었다. " 기침을 심하게 하시더군요. 귤을 사다가 생각나서 나눕니다. 빈 속에 술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세요. 103호 " 낯익은 글씨체'였다. 헤어진 옛 애인의 글씨체와 비슷해서 눈물이 났다. 

나는 다음 날  < 리타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이라는 책을 사 그 속에 손편지를 넣어 103호 객실 문 옆에 두었다. " 제가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읽어보세요. 105호 " 얼굴은 알지 못하나 편지를 주고받았으니 일종의 펜팔이었다. 며칠 후 문 틈 사이로 쪽지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 저는 카사블랑카'를 좋아해요. 103호 " 우리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신을 왕래했다. 어느 날이었다. 103호 여자가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왔다. 목소리에서 쨍쨍 쇳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얼마나 울고 싶었을까 ? 얼마나 외로웠을까 ? 낯선 타관에서 얼마나 그리웠을까 ? 다음날 복도에 사람들이 분주히 다니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일꾼들이 103호 객실에서 벽지를 뜯어내고 있었다. 카운터 주인에게 103호 여자의 행방을 물었다. 카운터 직원은 말했다.

" 무슨 말이에요. 103호는 물이 새서 그동안 방을 놓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방수 공사를 하는 거예요. 이 방을 창고로 쓴 지 벌써 1년이 넘었는걸요. 103호 여자라니 무슨 말인가요 ? 환상의 여인'이라도 되나요 ? " 카운터 여자'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말을 꺼내려다 이내 말문을 닫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귀신에 홀린 듯했다. 비틀거리는 하이힐 소리와 벽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았던 쪽지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서울에 사는 친구였다. s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s는 내 옛 애인의 여동생과 사귄 적이 있는 친구였다. 그를 통해 옛 애인을 만날 수 있었다. 다음날 나는  급히 서울로 내려갔다. 장례식장에서 옛 애인의 여동생을 만났다. 어색한 침묵이 오래 지속되었다. 내가 어렵사리 언니에 대한 근황을 묻자 여동생은 망설이다 말했다.

" 언니는 자살했어요. 오빠와 헤어지고 나서 말이에요. 아직 모르고 있었군요. 좋은 소식이 아니니 굳이 헤어진 애인에게 소식을 전할 필요는 없었죠. 경찰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은 강원도에 위치한 영안실이었어요. 아마... 작년 이쯤이었지 싶어요. 강원도에는 3월인데도 폭설이 내리더군요.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직원 안내를 받고 따라간 곳은 어느 모텔이었어요. 언니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거죠. 경찰 말로는 언니가 이곳에 달방을 얻은 관계로 기간이 투숙 기간이 남아 있어서 유품 정리'를 따로 안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유품이라고는 별로 없었어요. 책 한 권에 옷 몇 벌. 그리고 껍질을 까다 만 귤이 전부였어요. 네에 ? 아.... 그 책 이름이.... 아, 그래요.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었죠. 바로 어제가 일 주기 기일'이었어요. 이제 우리 가족은 오빠를 원망하지 않아요. 결혼을 반대한 것은 우리 쪽이었으니 말이죠. 다 지난 일이잖아요.  "  

봄이 오자 나 또한 미라지 모텔을 떠났다.  떠나기 전 주머니칼로 벽 모서리 끝에 " i was here " 라고 새겼다가 다시 " we were here " 라고 고쳤다.  모텔 문을 나가면서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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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야 2013-11-13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캬... 좋다.
교도소의 철문을 굳게 닫힌 그녀의 마음으로 묘사한 부분이 특히 좋았습니다.

됐고!

네이버에 빨리 돌아오셈.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3 11:52   좋아요 0 | URL
네이버에서 이웃들에게
무시(전라도 방언 무 ) 도 아니면서 무시당하고
멸치도 아니면서 멸시당한 생각을 하면 화병납니다.
언젠가 네이버 본사 불질러서 네이버 이웃들 다 쫒을거임..

나탈야 2013-11-1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리 블로그 데이터 백업해놔야겠다. 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3 15:11   좋아요 0 | URL
그럼 백업을 공격하게씀..

히히 2013-11-15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필 [달방]으로 가셨답니까?
음기가 강한 곳이니 처녀귀신이 출몰하지요?
아~~~우
빨간종이 줄까?
파란종이 줄까?
하얀종이 줄까?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5 08:23   좋아요 0 | URL
별로 안 웃기군요. 흠흠...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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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키 호러 픽쳐 쇼 > 라는 컬트 영화를 300번 넘게 감상하고 나서 그 영화에 대한 책을 쓴 사람이 있다. ( 컬트라는 것의 정의 중 하나가 반복 관람이기는 하지만 300번이라면 도를 넘은 것이다. ) 그는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오로지 록키 호러 픽쳐 쇼'에 대해서만 썼다고 한다. 1회 감상에 1페이지 분량의 글감이 나온 셈이다. 만약에, 그가 500번 넘게 봤다면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을 쓸 수 있을까 ? 우리라면 엄두도 못낼 것이다. 1번 볼 때마다 코 파고, 1페이지'를 작성할 때마다 피, 똥, 싼, 다. 하지만 그 록키 호러 열혈 무명씨'라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 록키 호러 픽쳐 쇼 > 를 볼 때마다 " 반복 " 을 경험하지만 그는 볼 때마다 " 차이 " 를 경험한다. 이 차이는 다시 보기(반복)의 결과이다. 300번을 넘게 본 그는 볼 때마다 즐거워서 비명을 지르고,  3번째 보는 우리는 지루해서 댄스홀에서 지루박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이처럼 차이'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들은 하하하

- 록키 호러 픽쳐 쇼 中

 

 

 


 

 

 

 

 

시간과 압력에 대한 단상.

 

 

나는 한결같이 나 자신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치는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미치는 것이다.

 

- 사랑의 단상 中 동문선 176,  롤랑 바르트

 

 

 

안양 새마을 금고 강도 사건

틈틈이 회계사 시험 준비'를 했다. 시험을 준비하기 전에 선배들로부터 칠전팔기할 각오가 아니면 제풀에 지쳐서 포기하게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선배들은 종종 빈정 반 농담 반 섞어 말하고는 했다. " 곰곰발'은 키도 작은데다 집도 가난하니, 결혼정보회사 듀오 같은 곳에서 너에 대한 점수를 매기면 0점에 가까울 거이. 그러니 연봉이라도 빵빵한 직업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냐 ? "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아침에는 곰 쓸개를 씹고 저녁에는 바늘 방석 위에서 잠을 잤다. 다행히 나는 행운이 따라서 이전삼기 만에 시험에 합격했다. 가문의 영광이었다. 회계사 합격 후 결혼 정보 회사인 듀오'에 가입했다. 내 점수는 0점에서 65점으로 뛰었다. 이 점수는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최대였다. 내가 아무리 기를 써도 나라는 인간은 대한민국에서는 65점이 최고 점수였다.

90점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가 강남에 살아야 했고(10점), S대를 졸업해야 하며(10점), 키가 180은 넘어야 했다(10점). 나 같은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노력해서 수우미양가 중 미'에 해당하는 신랑감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폴레옹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그 또한 기껏해야 70점짜리 신랑감이 되었을 것이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은 60점짜리 신랑감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광화문에 있는 국내 4대 회계법인 EY한영'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내 계획은 달랐다. 내 목표는 공인회계사'가 아니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 취득은 보다 원대한 목표를 위한 작은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과정 중 하나였던 것이다.  나는 2009년 5월 경기도 안양 새마을 금고'에서 돈을 훔쳐서 달아나다가 잡혔다.  경찰에 잡히는 과정도 내 계획 가운데 하나였다.

내 마지막 목표는 안양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이었다. 당시 언론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공인회계사 자격 시험에 합격한 엘리트가 은행 강도로 돌변했다는 사실은 매력적인 기삿거리'를 제공했다. 심지어는 이명박 각하'도 월례 회의 때 이 사건을 거론하며 요즘 젊은이들의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는 구치소 수감 중 그 소식을 들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 너나 잘하세요! " 내 목표는 교도소에 수감되어서 교도소장의 회계'를 봐주다가 세탁한 돈을 갖고 탈출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이 목표인 사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 쇼생크 탈출 > 에 대한 썰'을 풀어야 한다.

 

교화되셨습니까 ?

< 아비정전 > 을 40번 넘게 보았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72664 ) 하지만 이 " 오따꾸적 열정 " 은 억지에 가까웠다. 세 번째 감상까지는 황홀했으나 열 번'을 넘기자 이 영화가 서서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번 넘게 본 이유는 기록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나는 거들먹거리는 정성일 키드'를 만나면 사용할 요량으로 아비정전 40회 관람'을 히든 카드로 준비한 것이었다.  반은 모니터로 보았고 나머지 반은 스크린을 통해 보았다. < 아비정전 > 은 왕가위 영화제나 장국영 추모제를 통해 자주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제를 찾아다니면 보았던 것이다.  부산, 전주, 부천 영화제를 돌아다녔다. 40번 넘게 보았다는 말에 정성일 키드'들은 내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다함께 외쳤다. " 곰곰생각하는발,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 "

하지만 나는 이 행위'를 두고두고 후회했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황홀은 점점 무덤덤한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끝이 보이는, 오래된 연인 사이에서 감지되는 권태 말이다. 열정이 독이 된 케이스'였다.   이 사건 이후로는 한 영화'를 반복적으로 보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 정성일 키드的 허세 " 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틀어졌다. 영화 < 쇼생크 탈출 >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이 영화에 욕심을 냈던 것은 아니었다. 케이블 티븨 OCN 영화 채널에서 상영할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 영화에 홀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열 번을 넘기고, 스무 번을 넘겼다. 그리고 이제 서른 번째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의무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 아비정전 > 과는 달리 보면 볼수록 더욱 재미있고 숨겨진 의미도 더욱 풍부해지는 영화였다. 

 

달착지근한 맛

스물아홉 번째 영화와 서른 번째 영화 감상은 서로 달랐다. 내가 서른 번째 영화 감상에서 건져올린 주제는 교화와 지질학이었다. 가석방 심사평가위원회는 장기수 레드 ( 모건 프리먼 ) 에게 뻔한 질문을 던진다. " 교화되셨습니까 ? " 레드는 취업 면접관 앞에 선 취업 준비생'처럼 판에 박힌 입사 지원 동기를 쏟아낸다. " 그럼요. 헤헤. 30년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지난날을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헤헤. 심사평가위원회 나리님들, 그 전의 레드가 아닙니다요. 헤헤. 철저한 교화'를 통해 전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헤헤. 나가면 착하게 살겠습니다. 헤헤. "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기각'이다. 가석방 대상에서 탈락한 것이다. 10년이 흐른 후 다시 한번 가석방 대상'이 된 레드는 가석방 심사평가위원회 앞에서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 교화 ? 교화되었냐고 내게 묻는 거요 ? 이따위 프로그램은 국가가 당신들에게 직업을 주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하지. 이곳에서 40년을 살았소. 날마다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소. 눈을 감으면 그때 일이 악몽처럼 생각났소. 그리고는 이내 후회가 찾아왔지....... 어리석은 행동이었으니 말이오. 이 속내는 당신들 앞에서 알랑방구나 꿔서 잘보이기 위한 게 아니오. 난... 정말 날마다 후회를 했지. 하지만 내게 교화되었냐고 묻는다면 달리 할 말이 없소. 난 그냥 나일 뿐이오. "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문득 < 사랑의 단상 / 롤랑바르트 > 이 떠올랐다. 롤랑바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 " 나는 한결같이 나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치는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미치는 것이다. " 지난날을 후회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교화된 것은 아니다. 후회는 후회일 뿐이고, 교화는 교화일 뿐이다. 원석을 다듬어서 보석'으로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연마에 가까운 관리'일 뿐이다.

모든 인간은 타락한다. 롤랑바르트가 한 말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비정상은 불변의 결과이고 정상은 가변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전자는 순수한 것이고 후자는 타락한 것이 된다. 미치지 않은 채 어른이 된 자는 모두 타락한 자'이다. 틀린 문장이나 비문은 교정 작업을 거쳐 수정하면 되지만 마음은 원고지에 쓰여진 비문이 아니라 심장에 새겨진 문장이기에 지울 수 없다.  < 쇼생크 탈출 > 은 모든 대사'가 기억에 오래 남을 명대사들이다. 오래 씹으면 달착지근한 맛이 나는 칡뿌리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 꿈은 앤디 ( 팀 로빈스 ) 처럼 살아가는 것이 되었다.  계획대로 나는 안양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내 감방에는 리타 헤이워드 대신 한가인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였다. 그곳에서 나는 교도소장이 불법적 행위를 통해 몰래 가져온 돈을 세탁했다. 전두환 비자금'으로 구권 만 원짜리 다발이었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피하는 것

내가 하는 일은 돈을 세탁한 후 다리미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냄새 제거를 위해 페브리스'를 뿌렸다. 그 돈은 불특정다수의 계좌에 이체한 후 다시 한 계좌로 모였다. 백 억이 넘는 돈이었다. 천둥 번개가 매섭게 내리치는 날이었다. 철문이 닫히고 취침 점호가 끝나자 안은 어두웠다. 나는 어둠 속에서 벽에 걸린 한가인'을 오랫동안 주시했다. 이때 번개가 내렸다. 안이 환해졌다. 하나, 둘, 셋....  천둥소리는 정확하게 셋을 센 후 들려왔다. 다시 번개가 내렸다. 하나, 둘, 셋.... 우르릉 쾅쾅 ! 내가 한가인을 볼 수 있는 시간은 3초가 전부였다. 나는 낮게 속삭였다. " 굿바이, 올리비아 핫세 ! " 하지만 운명이란 기묘한 것이다. 계획에 없던 돌발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벽을 뚫고 나가자 건물의 내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갖 하수관으로 뒤엉킨 곳이었다.

나는 밖으로 연결되는 하수관을 뚫기 위해 무거운 돌을 집었다. 번개가 내리고 나면 천둥이 치리라. 번쩍이는 불꽃이 조용히 어두운 교도소 건부 내부를 밝게 빛냈다. 하나, 둘, 셋 !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에 맞춰 무거운 돌을 힘껏 내리쳤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수관은 생각보다 쉽게 부서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나는 구멍이 뚫린 오수관 속으로 들어가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다가 그만 정신'을 잃었다. 똥에서 나오는 메탄 가스 중독 때문이었다.  시바 !!!  똥 때문에 망치다니 !  나는 다시 안양 교도소'에 갇혔다. 형은 20년으로 늘었다. 이 글은 교도소 內 도서관'에서 작성하는 중이다. 믿기 싫은 놈은 믿지 않아도 된다. 이번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것은 딱 하나'다. 똥을 조심해야 된다는 것.  만고 진리가 아닐까 ? 사회생활 할 때에는 괄약근 부실에 따른 치질'로 고생 꽤나 했는데

교도소에서 똥오줌이 흐르는 오수관에 갇혀서 의식을 잃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래저래 내 인생을 가로막는 것은 괄약근이었다. 건물을 거대한 유기체로 보자면 오수관은 똥오줌이 흐르는 괄약근이 아니었던가 ? 내게 있어서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피하는 오브제'가 되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한결같이 나 자신이다. 오늘 점심 때 교도소에 딸린 식당에서 숟가락을 훔쳤다. 영화 속에서 레드는 말했다.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가 지질학을 시간과 압력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했을 때 격하게 동의했다.

 

" 1966년, 앤디 듀프레인'은 쇼생크 교도소를 탈옥했다. 찾아낸 것은 진흙투성이 죄수복과 비누 한 조각 그리고 암석 망치였다. 굴을 파는 데 60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앤디는 20년 안에 해냈다. 앤디는 지질학을 좋아했다. 그의 세심한 성격과 잘 맞았나 보다. 빙하기와 수백만 년에 걸친 산맥의 생성.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대한 연구이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압력과 시간 그리고 입구를 감출 큰 포스터...... "

- 엘리스 레드 레딩의 독백 中

 

 

지질과 치질

사전적 의미에 구애 받지 않고 같은 성질의 낱말을 하나로 묶는 내 오랜 습관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 지질학 > 과 < 치질학 > 은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엉뚱한 주장에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 지질학 > 이 시간과 압력이 토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 치질학 > 은 시간과 압력이 항문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무서운 치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과 엉덩이에 힘을 주는 압력의 세기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나는 둘 다 조절에 실패했다. 화장실에서 책을 읽느라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변기 위에 앉아 있었고, 변비 탓에 항상 엉덩이에 힘을 주다 보니 괄약근에 지나친 압력이 발생해서 과부하가 생기고는 했다. 남근은 전립선 기능 저하'로 기능을 상실한 지는 이미 오래. 내 몸에 붙어 있는 마지막 근육인 괄약근마저 치질로 망가졌으니 나라는 인간은 무근적 존재'였다.

시간과 압력에 실패하는 순간,  당신은 생전 처음 보는 대장항문과 의사 앞에서 엉덩이를 벌려야 한다. 더군다나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남성이라고 가정했을 때) 대장항문과 의사가 여성이라면 치질이 때로는 호환 마마'보다도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앵무새처럼 생긴 20대 여자 의사'는 내 항문에 손가락을 넣으며 말했다. " 똥구멍이 국화무늬'네요. 호호호호호. " 그때 내가 느낀 수치심'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이 고통은 나폴레옹만이 안다. 그도 악성 치질로 고생한 위인이었으니 말이다. 호사가들이 풀어놓은 썰에 의하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센티만 낮았어도 세계는 달라졌을 것이고, 나폴레옹이 악성 치질만 아니었어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한다. 치핵이 괄약근 밖으로 빠져나온 치질 환자가 말을 타고 달린다고 상상해 보라.

그는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지만  적어도 그의 항문만큼은 " 시간과 압력 " 에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와 나폴레옹의 공통점은 괄약근 때문에 인생 망친 케이스'였다. 스핑크스,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 오늘 내가 훔친 숟가락은 밥을 먹는 도구가 아닌 시간과 압력에 반기를 드는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벽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웨하스 과자로 지어진 집에 불과하다. 이 정도 강도면 10년이면 뚫는다. 느낌 아니까. 나는 한다면 하는 놈이다. 이 글을 두고 허풍이네 뭐네 지랄하지 마라. 탈출하면 제일 먼저 당신을 찾아가마. ( 2013.11.10. OCN 방영, 관람 )

 

* 스핑크스의 어원이 바로 괄약근이다. 오이디푸스에 등장하는 괴물은 똥구멍 괴물이다.

 

 

 

 

추신

마이리뷰에 < 별책부록 : 쇼생크탈출 > 을 따로 뽑았다. 볼 때마다 감상을 적을 생각이다. 볼 때마다 관점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 1. 쇼생크와 여성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86271  2010.07.12

▶ 2. 쇼생크와 야구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87416  2011.01.01

▶ 3. 쇼생크와 나비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90523  2011.11.23

▶ 4. 쇼생크와 왼팔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91172 2012. 11.22

▶5. 쇼생크와 카사블랑카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93984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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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3-11-11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정상은 불변의 결과이고 정상은 가변의 결과이다, 마음은 원고지에 쓰여진 비문이 아니라 심장에 새겨진 문장이기에 지울 수 없다... 유머와 통찰이 섞여 있는 글을 보면서 오늘도 크게 배웁니다.
레드가 자식 뻘인 심사평가위원들에게 차분히 대답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압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에겐 듀프레인의 저 기가 막힌 탈출 방법보단, 레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 가슴에 깊게 와 닿았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1 12:20   좋아요 0 | URL
제가 쇼생크 탈출에 대한 글을 한 40개 모아서 책으로 낸다면 사볼 용의 있으신가요 ?
쇼생크 한 편에서 뽑을 수 있는 게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여요.
지질학에 대한 부분은 사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만...
제가 치질을 앓고나서 아... 시바... 딱 보는데 시간과 압력 부분에서 그만 넋을 놓고 보았습니다.
지질과 치질은 비슷하구나... 하고 말이죠.
다음에 다시 보면 또 다른 대사가 보일 겁니다. 요거 한 40편 모아서 책으로 내야겠어요..

수다맨 2013-11-1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책으로 내신다면 사겠습니다 ㅎㅎ 인증샷 올리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1 12:28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 ㅎㅎ.. 천일야화처럼 이런 식으로 한 40화 정도 모아서 책으로 엮어야 겠어요.
이참에 디비디도 사야겠습니다. 이왕 사시는 거 한 10권 사주십시요..헤헤...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헤헤..

수다맨 2013-11-11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직 학생이라 큰돈은 없습니다^^;;;; 5권까지는 사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1 22:07   좋아요 0 | URL
농담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ㅋㅋㅋㅋㅋ.
 

 

 

 

 " 꼴찌를 위한 변명 " 시리즈 2탄

 

 

 

 

힘줄과 고독

 

 

당신이 결혼 따위 생각하지 않는 여자였으면 좋겠어 우리 그냥 연애만 하자 사랑이 현실에 갇히는 건 끔찍해 결혼은 천민들의 보험일 뿐이야 진부해 그냥 연애만 하자 서로의 눈을 바라보자구 구속하는 일 따위 구역질난다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야지 밤에 내게 전화하는 건 구속받는 기분이어서 싫더라 주말에 약속 잡는 사람들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정서적 난민 같아 주말엔 책을 읽고 음악을 들어야지 당신은 내게 뭔가 요구하지 않을 사람 같아서 참 마음에 들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은 폭력이야 천박해 그러니 우리 쿨하게 연애하자구 참, 내가 전화 받기 곤란할 만큼 바쁜 사람이란 거 알지 ? 전화는 항상 내가 먼저 할게 사랑해 이런 느낌 처음인 것 같다 우리 좀더 일찍 만날 걸 그랬지 ?

 

- 유부남 전문, 시집 상처적 체질

 

 

 

 


 

 

 

마초란 근육 있는 남자'다. 시인 류근'은 마초다. 잘생긴 얼굴에 상대를 홀릴 만한 말'을 가졌으니,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눈물바람을 낸 여자 많았을 것이다. 고래 힘줄 같은 정력으로 잘록한 허리를 거칠게 휘어감으면 여성들은, 아... 탄산음료 같은 황홀한 탄성이 쏟아지리라. 시에 등장한 사내는 사랑이 현실에 갇히는 건 " 끔찍해 " 하고, 결혼 제도는 " 진부해 " 하며, 서로의 사생활은 " 존중해 " 야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는 쿨하고 리버럴해서 좋다. 하지만 주말에 약속을 잡는 사람들 정말 " 이해 " 할 수 없다고 할 때부터 뭔가 좀 이상하게 흘러간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은 폭력이어서 " 천박해 " 라고 하더니 전화 받기 곤란할 만큼 바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시적 화자'는 이내 전화는 자신이 항상 먼저 하겠다며 " 사랑해 " 라고 매조지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곧 이 욕망이 매우 뻔뻔하다는 사실에 웃고 만다.  결혼 제도가 진부다고 말하는 남자는 유부남이다. 한때 마초였던 꼰대의 희망사항이었던 것이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같은 힘줄은 주로 연애'를 할 때나 사용될 뿐이지 정의의 문제'와는 무관한 근육'이다. 행동하는 양심'은 두근두근'에서 나온다. 염통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염통이 쫄깃쫄깃해야지, 변두리 회 센터 수족관 속 개불처럼 흐물흐물하거나 이명박 각하처럼 꾀죄죄하면 생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다. 이처럼 힘줄'을 너무 단련하면 이두박근'은커녕 이명박근(혜)이 되기 십상이다. 이상적인 < ① 마초' > 는 고독해야 한다. 힘줄과 고독이 6 : 4 정도로 배합되면 좋다. 여기에 염통이 가지고 있는 양심'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그보다 섹시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 ② 속물' > 은 힘줄은 있는데 고독은 없는 놈이다. 여자와 술을 마실 때마다 외롭다며 술잔을 한입에 터프하게 터는 놈은 진짜 마초가 아니다. 외로움'이란 피동적 결과이고 고독'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속물이란 외롭다는 핑계로 여성이 가지고 있는 모성 본능을 자극하려는 계략일 뿐이다. 이상적인 마초는 여자를 지키려고 하고 찌질한 속물은 여자를 건드리려고만 한다.

 

그런데 이 속물'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부류가 있다. < ③ 꼰대'>남근도 근육이라고, 괄약근도 힘이라고 믿는 무리'이다.  힘줄(力)을 칼(刀)처럼 휘두르는 인간이다. 반면 힘줄도 없고 연어처럼 펄떡이는 염통도 없는 무리는 잉여 인간이 된다. < ④ 잉여' >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숨기거나 보상받기 위해서 허세와 뻥으로 망가진다. 나는 아무래도 힘줄도 없고 심장박동도 약한 무리에 속하는 부류인 듯싶다. 사실 내게도  남근과 괄약근'이라는 미약한 근육'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나마도 쓸모가 없게 되었다. 부실한 괄약근은 치질'을 낳았다. 대장항문과 의사 선생'은 늘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리고는 했다. " 치질이란 게 그렇습니다. 허허, 너무 오래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지 마세요 !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치질을 악화시킵니다. 아참, 그리고 오래 서서 있으면 치질에는 정말 최악이란 사실도 알고 계시죠 ? "

 

앉으나 서나 치질 생각에 고통스러웠던 나는 속으로 쌍욕을 했다. " 씹새끼.... 바닥에 앉아도 안 된다, 의자에 앉아도 안 된다, 서서 있어도 안 된다 ?! 아예, 공중부양을 해라고 해라, 인간이 붕어 새끼냐, 시바 !! " 의사는 내 속도 모르고 열심히 전문 지식을 뽐냈다. " 치질와 요통은 직립을 하게 된 인간에게 생긴 병이지요. 더군다나 치질은 의자에 앉아서 오랫동안 생활을 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운명적인 병입니다. 치질로 인해 괄약근이 망가졌다고 해도 선생님에게는 우람한 남근이 있으니 너무 상심 마십시요. 뭐라고요 ?! 전립선 기능 저하라고요 ? (혼잣말로) 가지가지하는구나. 맙소사. 그래도 시도 때도 없이 케겔 운동을 하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당신 앞에 벌거벗은 여자가 앙탈을 부려도 남근에 힘 주지 마세요.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괄약근이지 남근이 아니니깐 말이죠. "

 

어찌 되었든 나는 괄약근마저 없는 인간이었다. 류근이 유근( 有筋 : 힘줄 근 ) 이라면, 나는 괄약근도 망가지고 거시기도 부실하니 무근( 無筋 : 힘줄 근 )이면서 동시에 무근( 無根 : 뿌리 근 )이었다. 시바, 뒷방 늙은이처럼 이게 무슨 지랄병인가. 의사 선생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인간에게 꼬리'가 달렸다면 치질로 인한 질병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 라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다. 꼬리 근육을 열심히 움직이면 당연히 괄약근 운동에 도움을 주어서 치핵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불행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마초와 꼰대'는 < 쪽 > 을 중요시한다. 양심은 팔아도 쪽 팔린 건 못 참는 부류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쪽 팔리면 하와이 간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사자성어는 < 어두육미 > 다. " 성님, 그래도 생선은 대가리가 맛있지라, 잉. " 힘을 숭배하는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이 바로 대가리 찬양‘이다.

 

미래 권력에게 줄 서기 위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은 대가리'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신체 가운데 가장 많은 구멍’이 쏠린 부분 또한 대가리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파리가 죽은 자의 내부에 제일 먼저 접촉하는 부분이 대가리다,  얼굴이다, 구멍이다.  파리는 눈, 코, 입, 귀’를 통해 내부로 잠입하여 금쪽같은 새끼를 낳는다. 그러므로 대가리는 부패의 위풍당당 개선문‘이다. 그래서 권력이란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아닐까 ?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물고기의 대가리이지만 추동하는 힘‘은 꼬리’에서 나온다. 꼬리를 흔들지 않으면 진전은 없다 ! 언행일치‘란 대가리로 방향을 설정하고 꼬리로는 물살을 힘껏 가르는 행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식인 대부분은 머리로 방향을 설정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꼬리를 치는 힘’은 부족하다. 막상 행동해야 될 시기‘가 오면 꼬리를 내린다. 

 

만약에 인간에게 꼬리가 달렸다면 인류는 어떻게 진화되었을까 ?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만 꼬리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얼굴은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고개를 외면하거나 웃는 시늉을 해도, 꼬리는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모든 감정이 들통난다. 무서우면 꼬리를 내리고,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며, 화가 나거나 싸움을 하려고 하면 꼬리를 높이 쳐든다. 그러니깐 꼬리는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 다혈질 이드‘ > 이고, 얼굴은 참고 참고 또 참는 < 캔디형 초자아’ > 다.   동료 직원에게 성적 호감을 느낀 여직원이 속마음을 숨긴 채 “ 전, 당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요 ! ” 라며 내숭을 떤다고 치자.  하지만 꼬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여름에 부채질하는 노인의 부채처럼 꼬리’가 한들한들 흔들린다면 ? 

 

혹은 상사가 실없이 던진 농담에 박장대소하는 박 대리의 꼬리‘가 물에 젖은 양말처럼 우울하게 축 늘어져 있다면 ?  전철 안에서 예쁜 여자를 보고 꼬리가 발딱 선다면 ? 꼬리는 감정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골치 아픈 요물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 솔직한 기관은 꽤나 매력적이다. 인간에게 꼬리가 달린다면 < 내숭의 사회 > 는 사라질 것이다.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는 명약관화하니 인류는 보다 솔직한 사회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 알고 보니 당신은 나의 배경을 사랑한 것이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소 > 류’의 신파 멜로 드라마‘는 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꼬리를 보고 사랑을 찾는 사회.  왠지 모르게 꽤 근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꼬리/꼴등’도 대우받는 사회가 올까 ?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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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0-2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쫄깃쫄깃하다..!
간만에 곰곰발님 글 다운 글을 접한 기분.. :)

시도 재밌네요. 맨 처음에 저 '유부남'이란 단어가 뭔가.. 했다능.
유부남,은 제게 참 낯선 단어에요. 하하.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7 21:09   좋아요 0 | URL
심장이 쫄깃쫄깃한 인간이 진짜 인간이지요.
심장이 이명박처럼 흐물흐물한 인간이 가장 제 입장에서는 쫌 그렇습니다.....ㅎㅎㅎㅎㅎ

류근 시 의외로 재미있게 읽협니다. 재미있어요...ㅎㅎㅎㅎㅎㅎ.

나탈야 2013-10-2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명박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www.phpschool.com/gnuboard4/bbs/board.php?bo_table=talkbox2&wr_id=874574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8 21:50   좋아요 0 | URL
이명박근.... ㅋㅋㅋ 센스가 좀 돋보이죠 ? ㅎㅎ.
그나저나 따님과 고구마 캐셨던데 남은 것 좀 같이 먹읍시다 ~
내일 모레 모임 때는 게이스럽게 입고 가겠습니다.

엄동 2013-10-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동감입니다

곰곰발님 글도 찰져서 쪅쪅 달라붙지만

저 류근님 정말 웃기네요

와놔 유부남들이란!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8 21:52   좋아요 0 | URL
유근 시집 꽤 웃깁니다.
이 시 말고도 다 흥미쥔쥔합니다.

즐거운 인생 2013-10-2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어요. 곰곰발 님은..님은..님은 언어 유희의 대가!
갑자기 류근의 상처적 체질을 사서 볼까나..싶은 마음이 마구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9 18:49   좋아요 0 | URL
아프로는 유희왕이라 불러주세요.
류근 시집 말랑말랑하고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