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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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명) 아주 사무치게 미워함. 또는 그런 마음.

사무치다 (동) 깊이 스며들어 멀리까지 미치다.


 미움은 자기검열의 대상이기에 끊임없이 숨기고 누르며 덮어놓는다. 꺼내고 싶지만 꺼낼 수 없는, 쌓이고 쌓여 가장 무겁고 묵은 내면의 짐이 된다. 어느새 스며들고 퍼져 형체도 없는 파괴력을 갖는다. 증오가 된다. 책을 읽으며 증오라는 감정이 나와 무관하지 않고 가깝게 느껴져 두려웠다. 증오의 사례들은 잔혹하며 증오가 증오의 대상을 제거하는 것으로 혹은 다른 대상이나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일상에 널린 부정적 감정을 연료로 자라나 사악하고 계산적인 행동을 보이며 복잡한 공격성을 띤다. 우발적인 것이 아닌 은밀하고 치밀하게 표출되며 상대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근거 없는 비난을 행동의 정당성으로 삼는다.


증오는 간단하게 묘사할 수 없는 복합적 감정인 동시에 일종의 사회적 상호작용이다. -p.18


 책은 그동안 범죄 혹은 정신질환과 연결되어 있던 증오의 감정을 분석하며 구체화시킨다. 증오의 탄생과 뿌리, 진실과 특징, 그와 이웃한 공격적 정서들과 사랑과 증오의 부조화인 애증. 뿐만 아니라 증오와 혐오가 확산되며 소셜 미디어 혐오 댓글과 정치적 선동에 악용되는 현재까지. 어느새 사람 사이에 만연한 얼굴 없는 증오들은 관계의 단절과 개인을 고립을 가져와 삶의 무력감을 유발한다. 이로써 새로운 증오가 계속 탄생한다. 저자는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증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고자 한다. 실체를 알아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오를 비난과 한탄의 대상으로 삼기보단 서로를 파괴하는 증오를 멈추고 좋은 방향으로 함께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잔인하고 격정적이며 냉혹하다 할지라도 증오는 일상의 사소함에서 시작된다. -p.53


 증오는 '무력감'으로 오며 '의지, 갈망, 열심, 결심 같은 중요한 심리적 동기가 틀어막히면' 발생한다. '증오는 긍정적 반응의 결여로 인한 실망으로 촉발'된다.


부모의 미소나 가족의 격려처럼 애정이 담긴 관심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부드러운 힘이다. 인정과 격려, 칭찬을 아끼지 않는 교육은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 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 현장은 이런 따뜻함에 인색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상호 존중과 품격 있는 만남이 중요하다. 인간은 평생 누군가 자신을 소중히 여겨 주고 믿어 주기를 갈망한다. 간단히 말해서 핵심은 언제나 사랑이다. -p.54


 감정의 굶주림을 느낄 때 사람은 공격성을 드러낸다. 감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서 무력감에 사로잡혀 이런 상황에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상대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증오라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감정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p.56) 어쩌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사랑받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는 폭력과 증오마저도.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들이 품은 칼날이 증오라는 생각에 슬펐다. 증오 범죄와 자기혐오, 디지털 분노로 이어지는 사회적 문제에서 맞닥뜨리는 건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끔찍한가를 확인하고 처벌에 혈안이 된 또 다른 증오다. 증오 범죄는 결코 타협될 수 없지만 그 이면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던 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숨어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증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우리는 증오를 인정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증오와 마주 서야 한다. 그것이 파괴력을 갖기 전에 침묵 밖으로 꺼내고 응대하며 공감해야 한다. 이는 마지막 두 챕터, 증오 극복 10단계, 증오로 얼룩져 가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법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소통을 통해서만 상대의 생각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다. 그럴 때야 비로소 상대는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전체 면모에서 파악되는 한 인간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p.257


 '무시하고 외면하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는 증오를 끌어안고 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감정은 외면할수록 힘을 갖는다. 속 끓이며 삭이려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고 떠나보내야 한다. '오직 공감 앞에서 증오는 목표와 의미를 잃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를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심리와 사회적 원인을 함께 고려하며 증오를 맞이하려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한다. 개인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개인과 개인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고 서로에게 일방적인 공감을 강요하는 일이 되어선 안된다. 다양한 개인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함께하는 공동체로 소통하며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개인의 가치를 존중받고 인정받기 위해선 또 다른 개인이 함께 있어야 한다. 증오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이 그 우위에 서는 듯하지만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또 다른 증오가 될 뿐이다.


살아있는 시한폭탄이 될 것인가. 

사랑이 될 것인가.


 이 괴리가 큰 만큼 감정에겐 인간을 그러한 존재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판단하지 않는 관심과 공감. 서로에게 필요한 건 존중과 배려다. 혐오와 증오를 멈추는 것이 강력한 제재와 힘이 아닌 따뜻한 관심과 공감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스스로에게도 그러한 마음으로 나의 감정을 적절히 꺼내 표현하고 흘려보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증오에 대한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주 작은 일상 속 감정의 씨앗으로 태어나 불꽃이 되어 사그라지는 한 사람을 알게 된 듯 느껴진다. 누구나의 마음 안에 크고 작게 존재하는 증오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게 되어 안심이 되는 한 편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일기도 한다. 그 모든 것 아래 사랑이 있음을 나는 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언제나 용서와 평화를 선택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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