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 - 우울증 걸린 런던 정신과 의사의 마음 소생 일지
벤지 워터하우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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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나 생각지 못한 두께에 놀랐고 3일 만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있음에 또 한 번 놀랐다. 그 시간에 비해 여운은 길게 남아 여전히 책 속에 있는 듯 그때의 마음을 선명히 돌아볼 수 있다.

 지난 7, 8월은 하고 있던 일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자 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입원과 수술을 하게 된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병원을 오가는 사이 정신없이 뜨겁던 한여름이 지나고 우리는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도착한 9월 앞에서 알 수 없는 조급함과 우울감에 휘청이고 있을 때 이 책이 내게 말을 건넸다. '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고.


 이렇게 몰입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화가 나고 씁쓸하고 부끄러워지다 가슴이 찡했다. 벤저민의 어머니가 반복하는 '목가적인 유년'이란 말에 울분이 솟았고, 생산되는 '비정상'에 대해 생각했다. 날씨처럼 찾아온 마음에게 이름을 붙이고 약물을 처방하고 분류하는 상황, 목적과 현실에 바뀌는 병명들이 괴로웠다. 환자의 말은 때론 예리하게 다가와 누가 환자이고 의사인지 가늠할 수 없게 했다. 그 사이에서 벤저민이 느꼈을 죄책감,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들. 체념하며 적응하는 일을 나도 경험한 적이 있다. 마음을 더할수록 위태로워졌고 어찌할 수 없는 괴로움에 무너졌던. 해결 방법은 없었다. 무뎌지거나 떠나야 했다. 돌봄은 몸으로 마음으로 소진이 많은 일이다. 돈이 아닌 의미를 보고 하는 일. 스스로의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이 꼭 지켜질 수 있다면 좋겠다. 여전히 먼 이야기 같지만.


 시간이 흘러 벤저민의 상처가 드러나고 그가 먼저 손을 내밀어 가족을 품었을 땐 답답하고 화가 났다. 당시엔 잘 몰랐었는데 그건 나를 향한 마음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을 마주하는 일. 지난여름 엄마 곁에서 비슷한 시간을 지나온 것 같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 재생되던 나의 여름에서 그때의 나를 만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듯 인사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애쓰고 고생했다고. 나에게 손을 흔들어줄 수 있었다. 벤저민이 스스로에게 건넨 화해처럼.

 분명한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정답을 찾으려 애써왔다. 다시 또다시, 정답을 찾는 쳇바퀴 같은 삶. 하지만 곁에 남는 건 정답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마음도 삶도 몇 개의 단어로 단정할 수 없다. 살아갈 날들이 착각된 명명에 끌려가지 않도록 잘 붙들고 살고 싶다. 누구의 삶에도 함부로 단정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면서.


 어느새 웃는 얼굴 뒤에 쓸쓸함과 슬픔을 알아보는 나이가 되었다.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황폐한 마음을 숨긴 채 어른이 된 이가 결국 누군가의 상처를 알아보고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슬픔에서 태어나 한 사람에게서 한 사람으로 건네지는 온기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고개를 들었을 때 지하철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 저마다의 고단함을 견디고 치유하며 살아가고 있을 그들이 눈이 시리도록 선명해 마음이 벅찼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곳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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