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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처럼
전서진 지음 / 로코코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서의현(34) - 한의사
한이령(26) - 기간제
보건교사
이령의 나이, 열셋.
초등학교 6학년, 그 나이 때 저도 그랬어요.
나라를 지키는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를 보냈었죠.
나는 그때 어땠더라? 하고 새삼 기억을 되짚어
봤는데,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그냥 나라를 지키시느라 수고하신다 했던 것 정도.
주인공인 이령과 의현은 위문편지로 연이 닿게
돼요.
스물하나, 늠름하게 나라를 위해 입대를 한
의현 앞으로 위문편지가 옵니다.
조카와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반듯반듯한
글씨체로 야무지게 내용 전달을 하는 이령.
힘들었던 군 시절을 돌이켜보면 생각나는 거라곤
이령의 편지였을 정도로, 언제부터인가는 여자친구의 편지보다 이령의 편지가 더 기다려질 정도로 애정이 깊어진 두 사람.
이령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넷 중학생이
되고도 두 사람은 편지로 우정을 나누죠.
그런데 어느 날 이령이의 편지가 뚝 끊기고
연락할 방법이 없어진 두 사람은, 나라를 지키는 멋진 아저씨와 바이올린을 켜는 야무진 여자아이의 사이로 남게 됩니다.
이령의 나이, 스물여섯.
간호사로 일하던 병원을 그만두고 기간제 보건
교사로 연고도 없는 경남 산청으로 떠난 이령.
서울에서 겪었던 고통스러운 일상을 멀리하고,
쫓기듯 급하게 떠나온 산청에서의 삶은 여유롭고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시간을 보내는 이령.
이령이 아는 사람도 없는 산청에 오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어릴 적, 위문편지를 통해 이야기를 나눴던 국군 아저씨의 고향으로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이라고 했기에 그냥 떠나왔던
겁니다.
그런데 기간제 교사로 지내던 이령은 뜻밖의
소식을 알게 됩니다.
산청에 알아주는 서 한의원의 막내가 바로
자신이 예전에 위문편지를 썼던 서의현이라는 것을요.
혹시나 그가 알아줄까 하는 생각으로 한의원으로
찾아갔지만 의현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죠.
의현의 나이, 서른넷.
대대로 한의사 집안답게, 의현 역시 한의사가
되었고, 현재는 서울의 한방병원에서 한의사로 일하는 중입니다.
주말이면 노쇠하여 이따금씩 힘에 부쳐하시는
아버지와 형을 돕기 위해 고향인 산청으로 내려와 진료를 보는데요. 어느 날, 형과 이야기를 나누던 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왠지 기분 좋은 만남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온 그녀의 이름이 의현의 가슴 한구석에 콕 박혀 예전의 기분 좋은 일들이 떠오르게 하네요.
자신의 군 시절의 기분 좋은 기억의 주인공은
여자아이였습니다. 소식이 끊겨 너무나도 궁금했던 여자아이가 의현의 앞에 아이가 아닌 여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일만 하며 즐거운 일 하나 없던 무감각한
그의 삶에 툭 튀어나온 특별한 만남, 한이령.
'풀 내음이 날 것 같던 어린이는 프리지아 같은 여자가 되어
나타났다.'
'늘 아다지오였던
의현의 마음은 이령을 보는 순간 알레그로로 바뀐다.'
이령을 만난 후로, 여자가 좋아할 만한
무언가를 찾게 되고, 이령을 생각하며 조용히 미소를 짓게 되는 의현.
의현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웠던 서울에서의
기억을 뒤로 한채 의현이 산청으로 내려오는 금요일을 기다리고, 의현을 생각하며 웃음 짓는 이령.
그리고 서로를 향한 그들의
고백.
'열세 살 한이령이
아니라, 스물여섯 살의 여자인 한이령을 좋아하는 것 같아.'
'저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서른네 살 서의현을요.'
주말부부가 아닌 주말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
5일 만에 만나니 더 애틋하겠죠?
나란히 영화를 보기도 하고, 조금은 촌스러운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잘 나가다가 삐딱선을 타네요. 기분 좋게,
두근두근, 간질간질한 귀여운 그들의 연애에 이물질이 낀것 같이 불편한 여조의 등장.
두 사람 사이에 갈등 구조를 넣고 싶으셨나
봅니다. 그러나 별로였어요. 차라리 여조와의 에피소드보다 의현과 의현의 아버지의 에피소드가 들어갔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읜 의현과 의현을 낳고 죽어버린 아내를 지켜본 남편. 자신과 아내의 피를 물려받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들이지만 반대로 의현을 낳고
아내가 죽었기 때문에 아들인 의현을 보며 항상 사랑과 미움이 공존했을 아버지와 어미를 죽이고 태어난 아이가 자신이라 생각하고 생일이면 예쁜 초가
꽂힌 케이크가 아닌 어머니의 제사상을 보며 자라온, 자신에게 더욱더 엄격했던 아버지에 서운하면서도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진 의현. 로맨스 다음으로
궁금했던 부분인데 따로 크게 에피소드가 등장하지 않더라고요.
위문편지, 제가 그랬듯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인연을 의현과 이령은 십여 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 평생을 함께 하게 되었네요.
에피소드를 시작할 때마다 등장하는 두 사람이
나눴던 위문편지의 내용이 에피소드에 재미를 더해주는 장치가 되었어요.
귀엽고, 간질간질한 사랑 이야기 지금 읽기에
딱입니다. 설렜네요. 설렌 가슴을 누가 안아줘야 할 텐데.. 오늘도 저는 혼자입니다.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