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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사랑한다는 거짓말 세트 - 전2권
남궁현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낮에는 헌책방에서, 밤에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스물여덟의 남편 있는 여자, 이자온.
왼쪽 중지에 심플한 반지를 끼고 남편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이 여자는 참으로 미스터리 하다.
2년여 시간 동안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그녀의 삶. 어떠한 이유로 이런 일상을 보내는지 잘 모르겠다.
별 볼일 없는 그녀의 곁을 맴도는 남자, 지건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자온과 다르게 그는 잘 나가는 변호사다. 잘빠진 외모에, 24간이 모자랄 만큼 일들에 파묻혀 지내는 고액 연봉의 변호사인 그가 애닳아 하는 것은 바로 자온이다. 자온과 건영은 8년이란 시간 동안 미적지근한 사이로 지내왔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자온에게 성큼 다가가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이제 좀 더 용기 내어 자온을 잡으려 하지만 자온은 그를 떠나고 만다.
맡은 광고마다 잭팟을 터트리는 아트디렉터이자 네이미스트 최운. 현재 친한 작가인 김두겸과 팟캐스트 '비 오는 날의 초대'를 진행 중이다. 일 열심히 하고 자기 관리 철저한 어떻게 보면 약간 초식남? 어린 시절 행복했던 부모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전원주택을 구매했다. 최근 그가 신경 쓰이는 건 사촌 형이 운영하는 헌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남편 있는 여자 자온이다. 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주며 이야기도 통하는 그 여자, 그런 그녀가 갑자기 자신의 집 옥탑방에서 4주만 지내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결국 운과 자온은 집을 공유하게 되는데..
남궁현 작가님의 책을 읽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뭔가 읽는데 엄청난 기운을 쏟을 것 같은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심호흡을 하고 어젯밤 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 시작부터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영화와 책 이야기가 마구마구 쏟아진다. 한숨이 쏟아졌지만 최운과 김두겸이 나누는 영화와 책에 관한 이야기들은 나를 즐겁게 했다. 책을 읽으며 읽어야 할 책들과 봐야 할 영화들의 목록이 늘었다는 안 비밀. '더 원'과 '새우깡과 추파춥스'를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작가님은 정말 영화와 문학 부분에서 스펙트럼이 넓으신 것 같다. 또 다른 직업이 혹시 영화평론가가 아닌가 할 정도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가면서도 진행되는데, 과거에서 현재로 바뀔 때 가끔씩 행간이 붙어져서 헷갈리기도 했다. 소개 글을 읽고는 삼각관계구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인물들이 매력적이다. 스물여덟의 자온은 남자에 대한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 그건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음에도 그의 마음을 받아들지 못했고 장시간을 힘들어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음에도 솔직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남자들이 자신에게 못 다가오도록 철벽을 두른 여자지만, 나는 이 여자가 말 못 하게 예쁘게 느껴졌다. 멋진 남자들이 등장하지만 여주인공인 자온이 좋았다.
최고로 운이 좋은 남자, 최운. 어린 시절의 짧은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어릴 적 살던 집을 구매한 운은 사랑에 냉소적인 남자다. 생에 처음으로 좋아했던 여자가 떠나고 상처가 많았기 때문에 감정 소비가 많은 사랑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그에게도 또다시 사랑은 찾아오는데 하필 상대가 유부녀다. 그녀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고, 마음이 뻗어나간다. 자온과 함께한 한 달도 안된 짧은 시간 동안 운은 자온에게 길들여졌나 보다. 입맛을 길들이면 끝 아닌가. 수년 동안 따뜻한 집 밥을 챙겨 먹지 못한 운에게 맛있는 밥과 반찬을 해주는 자온. 함부로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누군갈 들이지 않는 운이지만 자온에겐 한없이 관대하다.
혈기 왕성하던 그때 방탕한 시간의 대가는 혹독했다. 뒤늦게 자온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건영은 자온의 마음을 얻지 못 했다. 항상 자온 곁을 맴돌지만 자온은 어느 선 이상으로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자온이 봐주지 않을까 하지만 결국 자온 곁에 자신이 함께 하지 못함에 절망하고 괴로워한다. 쾌락을 좇았던 그 시간이 무척이도 후회되는 건영이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책뿐이다. 건영이 안쓰러웠다. 물론 그를 보는 자온도 괴로웠을 거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안쓰러운 캐릭터다.
'오늘만 사랑한다는 거짓말'은 취향 탈 수 있는 책이에요. 로맨스라 불릴만한 이야기가 2권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권은 인물들 각장의 이야기를 전하는 부분이 많다. 인물 간의 겹치는 부분의 적은 편이고, 뭔가 영화와 책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게 느껴지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조금만 읽고 자야지 했었는데 손에서 놓지 못하고 결국 1권을 다 읽고 잠이 들었다. 로맨스도 좋지만 나는 두겸과 운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좋겠다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럼 지금보다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지 않을까 생각하니까. 1권 중후반쯤에 두겸과 운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모든 책에는 운명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이 나에게 온 건 진짜 운명이었구나. 안 읽었으면 큰일 날뻔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만 사랑한다는 거짓말'은 로맨스 소설이라 지나치기엔 좋은 책이다.
남녀 간에 보여주는 사랑뿐만 아니라 모성애, 부성애를 느낄 수 있는 책이고, 수많은 영화와 책, 그리고 맛있는 음식으로 인해 오감을 자극하는 책이어서, 책을 읽는 중에도 궁금해서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고, 책에 등장하는 맛있는 음식들로 군침을 흘리며 주린 배를 부여잡게 했다. 운과 자온의 사랑은 어떤 엄청난 장애를 극복하는 사랑은 아니지만 따뜻하다. 어두운 골목을 지나쳐 오는 상대를 기다려주고, 직접 키운 채소로 밥을 지어 식탁을 공유하고, 이야기 곳곳에 따뜻함이 묻어난다.
후기에 '어리석은 나의 첫사랑', '엇갈린 우리의 20대', '누군가에게 한 번도 일등이 되어보지 못한 당신에게'라는 문구로 탄생한 것이 이 책이라고 작가님이 언급했다. 세 가지 모두를 내가 느꼈다는 것은 책을 잘 읽었다는 것이겠지? 어느 것 하나 거슬리지 않고 책장이 줄어들수록 아쉽기만 했던 책이다. 읽고 나서도 계속해서 그들의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가볍고, 진한 이야기에 물렸을 때 이 책을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