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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소화 지음 / 스칼렛 / 2015년 5월
평점 :
김태준(34)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한정윤(29) - 한 건축설계 사무소장
스무 살부터 오직 일에만 집중하며 달려온 9년이란
시간. 그 사이 정윤의 인생은 고속도로를 탄 듯 문제없었지만, 일에 집중한 만큼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인 엄마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엄마에게 암이란 존재가 찾아왔고, 정윤과 함께 할 시간이 얼마 없다는 소식에 정윤은 나날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
정윤에게 엄마는 자신의 고향인 봉화에 내려가 지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정윤은 그 길로 봉화에 내려와 엄마와 함께 할 집을 찾기
시작합니다.
휴식과 숙박을 할 겸 찾은 고즈넉한 고택. 지난
9년이란 시간을 돌이키며, 엄마에게 못해줬다는 자책감으로 슬픔에 젖어 있을 때 정윤에게 다가와 곁을 지키던 낯선 남자. 조용히 다가와 봉화에
머무는 동안 조용하게 지낼만한 곳을 넌지시 알려주는 남자가 이상하기도 하고,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켜줘 왠지 모르게 위로를 느끼는
정윤.
그리고 찾아간 봉화 오록리 평산 김 씨 집성촌인
평산 고택.
수묵화처럼 겹겹이 쌓인 산 밑에 평온하게 감싸인
마을. 한눈에 고택에 반해버린 정윤. 이런 곳이라면 엄마의 병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평산 고택의 주인, 김태준.
잠시 성암 고택에 들렀을 때 안주인의 부탁으로
찾았던 별채에서 한없이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떨구고 있던 정윤을 보게 되고, 그녀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
외지인을 들이지 않는 자신의 집을 소개하고, 자신의 말에 따라 집을 찾아온 그녀를 마음에 담는 태준입니다. 자신의 인연을 보면 한눈에 알게
된다고 말하던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태준은 정윤이 자신의 짝이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정윤이 자신의 집에 머무는 동안 그녀가
필요한 모든 것에 도움을 주고 싶은 태준. 그녀가 집을 구한다기에 발 벗고 나서 도움을 주고, 그녀의 궁금한 점에 막힘없이 설명을 해주는 태준.
참으로 다정합니다.
하지만 다정하기 그지없는 태준이 불편하기만 한
정윤입니다. 태준 덕분에 좋은 집을 구하게 되어 좋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았던 정윤은 성의 표시를 하려 했지만 돈으로는 받지 않겠다며
공사를 하는 동안 점심을 같이 하는 것으로 퉁치자는 태준. 엄마 때문에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때, 자꾸만 다가오려 하는 태준이
부담스럽기만 한 정윤은 직접적으로 태준에게 차갑게 굴지만 태준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이용하라 말하는 태준. 그리고 자신은 온 맘
다해 진심으로 정윤을 대하겠다고 말하는 태준으로 더 복잡해진 정윤의 머릿속.
사랑을 믿지 못하는 여자, 아니 사람을 믿지 못하는 여자,
한정윤. 그런 그녀 앞에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주겠다고 계속 다가오는 태준으로 인해서 정윤은 흔들립니다. 다정다감하게 자신을 하나하나 챙겨주는
태준에게 이럴 겨를이 없다 말하지만 마음은 태준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하면 종전에 나 자신보다, 이 사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신을 버리는
날이 올까 봐 무서운 정윤.
자신이 없는 곳에서도 세심하게 챙기는 태준에게
속절없이 흔들리는 정윤.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에 조심스럽게 한발 다가가보려고 합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솔직하게 정윤에게 고백하지만
좋아한다, 사랑한다 대답해주지 않는 정윤이지만 누구보다 태준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손을 맞잡고 고즈넉한 고택 주위를 산책하고, 봉화 유명지를
여유롭게 구경하는 태준과 정윤. 청암정을 구경하던 중 태준이 정윤에게 건네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그곳에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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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윤 씨 뒤에 있는 충재는 권벌 선생님이
기거하셨던 생활공간으로, 어지러운 현실
세계를 의미해요. 제 뒤로 보이는 청암정은 그분이 꿈꾸셨던 이상 세계를 의미하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석교는 현실과 이상을 잇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죠."
"…… 그런데요?"
"음, 아까 말한 것처럼, 이 다리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어요. 저는 상대를 위해 제 몸에 스스로 상흔을 만들어지닌 이 석교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부부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내가 이 다리가 될게요. 정윤 씨가 넘어지지
않게, 내 몸에 상처를 내고도 기뻐하면서 긴 세월 정윤 씨만 사랑하는 사람이
될게요." |
백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듯이, 태준의 진심
어린 다가감에 드디어 마음을 연 정윤. 어렵게 이어진 그들의 사이에 잠시 잠깐 태풍이 불긴합니다.
하지만 태준이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며 정윤을
기다려요. 정윤에게 말했듯이 처음 본 순간부터 온전히 정윤을 향해 뿌리를 내렸던 태준.
믿지 못하는 사랑 앞에서 항상 갈팡질팡하는 정윤과
달리, 흔들림 없었던 태준. 이 책은 태준으로 인해서 빛났던 것 같아요.
'연어'라는 제목을 보며 내가 아는 물고기 연어를
말하는 건가? 했어요. 근데 연어가 등장하지는 않네요. 물고기 연어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지만 이 책의 연어는 후기에도 등장하는 듯이 그러할
연, 고요히 웃을 어 '그렇게 고요히 웃는다'라는 뜻이에요. 책을 다 읽고 나니 이해가 됐어요. 사랑을, 사람을 믿지 못 했던 정윤이 태준을
만나서 태준에게 온전히 뿌리를 내리고 안정을 되찾는데요. 그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옛날에 그랬지 하고 담담히 정윤과 태준이 웃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산 고택과 성암 고택이 등장하는 봉화. 실제로
봉화에 가면 태준이 있는 고택을 만날 수 있을지 않을까?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준과 정윤이 함께 나눠 마셨던 약수도 맞보고
싶고, 숯불 구이도 맛보고 싶고, 달실마을도 거닐고 싶어요. 하지만 작가님 블로그를 보니 평산 고택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더라고요ㅠ
그래도 모티브로 한 곳을 봤으니 만족합니다. 남녀가 서로에게
속절없이 빠져드는 화끈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서서히 서로에게 녹아들어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는 잔잔한 이야기에요. 태준을 거부하는 정윤이 조금은
답답하기도 했지만 정윤의 배경을 알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니 염려하지 마시고 읽어보시길! 무엇보다 사랑을 나눌땐 박력있게 반말을 하는 태준이와
일상생활에서 존대를 하는 자상한 태준의 모습이 재미있네요~
하지만 아쉬운 부분 하나! 태준이 의사인 만큼 직업적인 부분의
에피소드가 등장하길 바랐는데 없어서 아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