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 집무실. 기자들과 비보도를 전제한 외교 현안 간담회 자리에서 당국자가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의 책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5월에 미국서 출간돼 이미 세간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중국에 대하여(On China)>였다.

이 책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1971년 방중해 마오쩌둥, 저우언라이를 만난 이후 40여년간 중국을 50차례 이상 드나들며 최고 지도자들과 대화해 온 키신저의 중국론이다. 중국 지도자들의 면면, 변화와 발전의 동력, 바람직한 미중 관계의 미래를 담은 이 책은 갈수록 중국 외교의 비중이 커지는 우리 외교 당국자도 참고할 대목이 적지 않았던지 원서가 지난해 외교부에서 필독서처럼 읽히는 분위기였다. 중국의 성장과 변모를 권력의 핵심에 근접해 누구보다 오랫동안 지켜본 그가 구순(九旬)을 눈앞에 두고 쓴 이 책이 9일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민음사 발행)로 국내 번역 출간됐다.

북한 붕괴 가능성 열려있다

키신저는 책에서 미래 중국의 역할과 미중 관계를 언급하며 해결해야 할 중요한 요소로 북한 핵문제를 빠트리지 않았다. 북한의 핵 개발이 알려지고 처음 10년 동안 중국은 그것을 미국과 북한이 직접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여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 안보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그는 지적한다. 더불어 중국은 '60년 전 전쟁을 치러서 방지하려 했던' 북한의 붕괴가 현실이 되는 것도 두려워하고 있다.

키신저는 북한 상황의 예측불가능성에 주목한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2011년 현재, 이 나라를 다스리는 가족의 우두머리는, 국제 관계의 경험은커녕 공산주의식 관리의 경험조차 전무한 스물일곱 살의 아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혹은 알 수 없는 요소들 때문에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만약 이 같은 비상사태에 직면할 경우 관련 국가들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는 상황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를 예방하는 것이 미중 대화의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및 남북한을 포함한 6자 회담의 가장 중요한 일부'로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우언라이 지성ㆍ품성 겸비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인물평도 적잖은 재미를 준다. 첫 방중 때 자신을 맞아준 저우언라이에 대해 키신저는 '60여년의 공직 생활에서 저우언라이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를 '키는 작지만 우아한 자태며 표정이 풍부한 얼굴에 번득이는 눈빛', 그리고 '탁월한 지성과 품성으로 좌중을 압도'하며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인물로 평가했다. 마오쩌둥이 어떤 모임이든 휘두르고 지배하는 쪽이며 열정으로 반대편을 압도하려 했다면, 저우언라이는 모임 속으로 스며들어 지성으로 설득하거나 허를 찔렀다고 평한다.

덩샤오핑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톈안먼 시위가 종결된 방식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면서도 그가 중국을 환골탈태시키기 위해 15년 동안 짊어졌던 '어마어마한 임무를 봤다'면서 개혁ㆍ개방 노력을 평가했다. 공산주의자들을 움직여 권력을 분산시키고, 고립된 중국을 세계를 향해 움직이도록 하고, 무엇보다 중미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점을 높이 샀다. 장쩌민에 대해서는 상대방과 접촉하면서 유대를 만들어내고 상대방이나 부하들의 견해까지도 자신의 견해와 꼭 같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취급해 자신이 만나 본 중국 지도자들 가운데 '중화 타입과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이며 '코스모폴리탄'이라고 평했다.

미중 관계 제로섬게임 아니다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를 섬세하고 간접적인 전략으로 우위를 만들어 나가는 '바둑식 전략' 등으로 해석하는 키신저가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는 향후 중미 관계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언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중미 사이의 중대한 경쟁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 사회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인권 문제로 얼굴을 붉힐 때도 있지만 상호 교류의 전체 범위 안에서 그 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전망한다.

그리고 향후 중미 관계의 적절한 이름표를 파트너십보다는 공진화(共進化)로 불러야 할 것이라고 했다. 두 나라 모두 국내의 긴급한 사항을 추구하고 가능하면 협력하며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호 관계를 조정한다는 뜻이다. 위기 상황에 대한 토론을 승화시켜 저변에 깔린 원인을 제거하는 더욱 포괄적인 틀을 만들기 위한 시도도 이런 노력의 중요한 일부다. 그 좋은 예가 한반도 문제를 동북아 전체의 한 부분으로 접근해 논의하는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중국 문제를 자문하는 '키신저협회' 등을 운영하며 여전히 현역 민간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될 것'이라고 결론 짓는다.

 

2011.1.9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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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즈음 오프라인 서점에서 하얀 표지에 무심하게 'on china' 라고 써있는 굉장히 두꺼운 책을 발견했었는데 이제서야 번역이 되어 나왔다. 번역상의 실수는 영어잘하시는 분들이 짚어 주시겠지만 글 자체의 성격이 술술 읽힐만한 글은 아닌듯 싶다. 개인적으로 키신저의 저서들이 더 번역되어 나오기를 바라는데 특히 'DIPLOMACY' 의 번역본이 꼭 나왔으면 좋겠다. 추가로 중국과 미국 관계에 대해 조망한 책 몇권을 추가한다. <팍스 시니카> <중국과 미국의 헤게보니 전쟁>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 할 수 없나> 인데 이 중에서 하나만 읽으라면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전쟁'을 읽겠다. (발췌독으로 읽긴했다.. 추천목록이 다소 서구편향적이기는 하다..)

 

 

 

 

 

 

 

 

 

 

 

 

 

 

 

1.18일 현재 도서관을 돌다 도움이 될

만한 두 권을 추가한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베이진 컨센서스>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빗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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