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월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이날,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에서 원주민들은 떨쳐 일어났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은 이날 멕시코 정부와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자본주의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외친다. “이제는 충분하다.”

사파티스타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래, 원주민들에게 가해진 수백년에 걸친 억압과 착취를 거부했다. 그리고 토지와 정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선언했다. 혁명이 박제가 된 시대, 이들의 ‘창조적 반란’은 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 새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들은 반자본주의 투쟁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봉기’한 지 15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휩쓰는 지금, 사파티스타들은 누구였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파티스타는 라틴아메리카 민족해방 운동을 계승한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유형의 정치를 예고하는 것인가? 구조적 불평등과 극심한 빈곤이 낳은 결과물인가, 동일성 정치의 표현인가? 혁명가들인가, 개량주의자들인가? 포스트모던 게릴라들인가, 아니면 무장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인가? 이들은 급진적 정치의 불꽃을 점화시켰지만, 급진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사빠띠스따의 진화>는 ‘최초의 탈근대 혁명’이라 불리는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한 기존의 평가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새로운 이론화를 시도한다. 원제는 ‘사파티스타 반란과 급진정치에 대한 시사점’이다. 검은 스키마스크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문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에 대한 낭만적 접근과는 차원이 다른 정치철학적 논의를 전개한다.  

“사파티스타의 ‘망각에 맞서는 전쟁’의 전개를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급진적 정치운동과 활동들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한 사회·역사적 작업 틀을 개발”하려 시도한다. 지은이에게 “우리의 투쟁은 민족 없는, 인종 없는 사회주의를 위한 것이며, 우리는 혁명을 위한 욕망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건’, 상황주의자들의 ‘상황 창조’, 카스토리아디스의 ‘자율 기획’,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헌권력’ 등의 개념이 분석과 이론화에 동원된다.

지은이는 사파티스타들이 “자율 기획과 그들이 만들어낸 사건적 상황 모두에 적합한 충실한 주체들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새로운 돌파구가 이 운동의 과거 실패를 뛰어넘어 멕시코 안에 강력한 반자본주의 전선을 건설할지,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가 말한 것처럼 멕시코 노동계급의 다양한 부문들을 통합할지 여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혁명적 민주주의 담론이 원주민 공동체에 스며들도록 해준 원주민 문화와 언어적 요소들에 대해 고찰할 필요성도 제기한다. 지은이가 2001년 사파티스타 자율지대를 아홉 달 동안 방문하면서 작성했던 현장노트가 녹아들어 있다.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론화를 통해 지은이는 희망한다. “더 많은 저항, 더 많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단절들, 더 많은 혁명적 경로들이 열리기를.” 
 

2009.4.30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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