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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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의학계에 대한 책을 쓴다... 이것은 얼핏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들리지만 실은 굉장히 어렵고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자기가 종사하고 있는 '업' 그 자체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설령 빛나는 부분에 대해 말한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그림자에 대한 부분도 드러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는 자기의 과오는 물론 동료들, 선배들의 실수, 오류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글을 쓰기 전에 이 내부고발자에 대한 조직의 앙갚음, '따'라든지 '부당한 대우' 등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어떤 조직, 특히 그 조직이 사회적으로 신화화되어 어떤 비판적 잣대도 들이대기 힘든 권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그 조직의 문제를 말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명의식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필자는, '완벽한 기술'로 인식되는 의학, 시술이 사실은 완전한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 있음을 알리려고, 그 미신을 깨뜨려 애쓴 공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불완전한 의학을 완전에 한걸음 가깝게 다가가게 하는 길이다.

8년간의 레지던트 경험에서 나온 풍부한 자료와, 실제 자료와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발로 뛴 흔적들을 보면서 -게다가 현장에서 의사로서의 일까지 하고 있으니- 대단한 작가의 열정 앞에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은 핑계거리도 못 된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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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 개정2판 창비아동문고 4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트 그림 / 창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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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기열라에 계신 린드그렌님

아니, 당신은 캬틀라가 포효하는 낭기열라가 아니라 사자의 심장을 가진 사자왕 형제가 뛰어내린 저 아름다운 빛의 나라 닝길리마에 계실 지도 모릅니다. 어디에 계시든, 카알과 요나탄 형제를 가끔이라도 만나실 테지요? 소피아 아줌마처럼 아름다운 둘에게 염소젖과 따뜻한 빵을 전해 주러 가시는 길이면 지구 소식을 전하러 날아간 흰 비둘기를 보았느냐고 물어주세요. 흰 비둘기 발목에 달린 편지에도 젖혀있겠지만 지구 사람들이 그리워한다고 다시 한번 말해 주세요.

참, 참. 사랑스런 카알한테는 이 말도 덧붙여 주세요. '너는 스스로가 연약하고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너야말로 진정한 사자왕 이야. 잘생기고 늠름한 요나탄도 물론 훌륭하지만 넌 늘 요나탄 곁에서 위험한 모험을 겪었고 모든 걸 지켜보았잖아. 두려웠지만, 무서웠지만 형과 함께 뛰어내린 너야말로 진정한 사자왕이야. 낭길리마에서 형과 함께 늘 행복하기를...'

린드그렌님, 우리도 곧 낭기열라에서 만나겠지요. 지구 시간으론 몇 십년이 걸릴지 몰라도 거기 시간으론 겨우 며칠이라면서요? 지구에서도 그러했듯이 자유는, 그곳에서도 거저 얻어지는게 아니라는 것 잊지 않겠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쓰레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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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스러운 토끼책 - 꿈을 키우는 책꽂이 6
야노쉬 글 그림, 김서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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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고 허술하다고만 생각했던 야노쉬의 그림이 텍스트에 녹아들어 있다. (그럼에도 그림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생각은 들지만) 왜 유럽사람들이 야노쉬, 야노쉬 하는지 몰랐다. <Das grosse Panama-Album>을 아마존에서 구입했지만 슬쩍 넘겨보곤 여태 책꽂이 속에 있었다. 회사 자료실에 신간으로 <내 사랑스러운 토끼책 Mein liebes grosses Hasenbuch>가 들어와 있길래 한번쯤 읽어 보자하는 마음으로 들고 왔다. 퇴근길에 따로 들고 나온 것이 없어 기대없이 책을 펴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지 재미있었다. 아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이거 이거 챙겨봐야 할 작가가 늘어났잖아? 야노쉬의 이름으로 번역된 우리나라 책들을 찾아서 주문해서 사서 봐야겠다. 번거로운 일이 늘어났지만 이건 아주 기꺼이, 행복하게 해치울 수 있는 일감이겠다. 야노쉬는 참 '뻔뻔한' 화자다.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간다. 엄청난 자신감이다. 동시에 아이들에게 먹히는 이야기 기술을 간파한 놀라운 본능이다.

야노쉬의 그림도 놀랍지만 그의 화술 또한 대가급이다.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2인용 자전거가 좋은 건, 친구를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거야. 나쁜 건, 그것도 역시 친구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거지.' 허걱, 뒤통수를 맞는 것 같다. 정말 쉽게 쉽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엄청시레 계산된 말법이다.

야노쉬의 장기는 또 있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잠깐 등장하는 케릭터들이지만 그 성격을 아주 분명하게 설정해 놓았다는 것. 그래서 이야기는 저절로 흘러간다. 예를 들면 <토끼 엔진은 공짜>에서 친구 말은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루디가 자청해서 자전거 앞자리에 안자 생고생을 하는 것은, 루디의 성격상 자연스런 일이다. 페달을 밟느라고 너무 힘이 들어 다음날까지 누워만 있는 루디에게 슈누델이 '오늘도 튼튼한 사람이 앞에 앉아야 하는데, 어떡하니, 넌 이제 안 튼튼하잖아.'하고 약간 놀림조로 말한다. 슈누델은 이때에도 루디가 '아냐, 난 튼튼해.'하고 우기며 자리를 털고 일어날 줄 알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루디는 '네 말이 맞아. 난 안 튼튼해. (그러니까) 내가 뒤쪽에 앉을게.'하고 한발 물러난다. 루디의 이 답은 얼핏보면 지금까지 루디가 보여준 말법과 반대인 것 같다. 하지만 루디는 늘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 남의 말을 부정했던 케릭터였다. 어거지를 피우고 그렇게 자기 과시하는게 낙인 거다. 그런 식으로 자기애(自己愛)를 표현하는 애다. 그러니까 제 몸이 아픈 상황에서 무리해서 봉사를 자청할 리가 없다. 선선히 슈누델의 말을 수긍하는 척 하면서 제 몸 편한 자리에 앉겠다는 거다.

이런 식의 반전은 독자들에게 또 엄청난 즐거움을 준다. 130km를 가던 자동차가 140km로 가도 그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느릿느릿 움직이던 것이 단 1초만이라도 빠르게 움직이면 그 차이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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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억중의 읽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
김억중 지음 / 동녘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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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는다'는 말을 좋아한다. 이 세상은, 자기를 꼼꼼히 읽어 주기를 기다리는 텍스트들로 가득차 있으니 그 중 어느 한가지라도 택해서 느긋하고 찬찬히, 그러나 치열하게 읽는다는 것은 '철학'처럼, '종교'처럼 인생을 음미하는 것고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이 내 눈에 띄었던 걸까? 평소 주택이나 건축에 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던 나지만 대형 서점에서 내 눈에 걸린 이 책을 그 자리에서 사기로 했다. 실은 한번 손에 내려놓고 다른 서가를 헤매다가 이 책이 생각나서 다시 집어들게 된 것이다.

이 책 덕분에 나는, 건축물을 한발짝 떨어져서 혹은 안에 들어가서 몸으로 느끼며 바라보는 법을 조금 배웠다. '창조적인 오독'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특히 인간이 만든 구조물인 건축물에서 인간을 느껴보아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 책을 쓴 김억중이라는 분에 대해서도 감탄하게 된다. 자기 분야의 지식 뿐 아니라 갖가지 문학적인 인용, 특히 한시, 한문구절이 적합한 자리에 맞춤으로 앉아있는데 놀랐다. 앞으로도 이 분이 대중의 눈높이에서 편안하게 읽히는 이런 책을 많이 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문장과 지적인 분위기로 달리는 글 사이사이에 있는 도면과 건축 용어에 대한 해설까지 곁들여졌으면 하는 것이다. 나같이 공간감각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기호로 표현된 공간을 읽는 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편집에서 그런 점들까지 좀더 배려를 해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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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
조영남 지음 / 월간미술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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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아저씨. 아저씨가 쓰신 새 책 잘 읽었습니다. 일인데도 즐겁고 재미있었을 월미양과의 데이트, 참 부럽습니다. 흥국생명 앞에 선 '망치질하는 인간'을 보았을 때의 반가움, 흥국생명 로비 안에서 느낀 감동, 국회도서관 건물 안에 걸린 그림들을 보고 뜨악했던 경험 등등이 아저씨와 일치하는 것에 놀랐습니다. 아저씨는 이윤기 선생님 말대로 '구어체로 글쓰기의 고단자' 인 것 같아요.

미술에 내밀 명함이 없는 제가 봐도 쉽게 읽히고 공감되는 내용에다가 또 잘난 척 하지 않으면서 미술에 대한 안목으로 곁들인 설명까지... 사실 제가 조 아저씨가 이 책에서 말씀하신 모든 발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자기 목소리를 갖고 자기 눈으로 당당하게 미술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좋아보여요. 암튼 이렇게 유쾌하고 뽀다구나는 책을 만나서 기쁩니다. 조 아저씨의 또 다른 미술 여행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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