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
이영석 지음 / 아카넷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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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한 한국인 작가가 영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을 티비 프로에서 털어놓아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런던을 여행하던 작가는 90세가 넘어 보이는 영국인 노부부에게 유창한 영어로 길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노부부는 작가의 친절에 고마워하며, 글쎄 이런 질문을 던졌단다. “영어를 참 잘 하시네요. 동방식민지(Oriental Colony)에서 오셨나요?”

작가는 순간 머리가 띵했지만, 시골에서 올라온 노부부가 지난 50년간 세상이 변한 걸 모를 수 있겠다싶어 다시 친절하게 자신은 미국에서 유학했다고 얘기해주었단다. 그러자 노부부는 이번에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럼 서부식민지(Western Colony)에서 오신 건가요?” 누가 봐도 일부러 던진 말이었다.

작가가 허언으로 유명한 사람이라 100%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위의 일화는 한국인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식민지의 상처를 안고 있는 입장으로서 그네들의 오만이 눈꼴시럽지만, 한편으로는 전 세계를 발밑에 둔 양 의기양양한 그 자신감이 부럽기도 한 것이다. 내가 곧 세계요, 보편이라는 저 여유야말로 진정 제국의 품격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영국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전혀 제국답지 못하다. 외국인 들어오는 게 싫다고 기껏 EU에서 나가기로 해놓고는, 3년이 지나도록 어떻게 나갈지를 합의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며 옥신각신하는 의원들을 보노라면 저곳이 진정 의회민주주의의 본고장인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영국인들은 자신감 넘치는 코스모폴리탄이라기보다는 두려움에 떠는 촌뜨기 같고 말이다. 제국의 위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영국은 세계를 호령하던 대제국에서 보잘것없는 섬나라로 되돌아간 것일까?

영국사 연구자인 이영석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전 세계 사람들을 자기네 식민지인으로 생각하는 오만한 영국도, 외국인에 의해 영국다움이 상처를 입을까 불안에 떠는 영국도 다 제국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의 책 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이 주목하는 건 바로 영제국의 이러한 복잡함이다. 영제국을 만든 건 체계적인 계획이나 앵글로색슨의 위대한 사명이 아니라 우연하고도 정치적인 일련의 사건과 계기였다. 세계각지에 산재한 제국의 신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방대한 네트워크에 몸을 맡겼고 말이다.

저자는 영제국의 형성과 팽창, 해체의 과정을 꼼꼼하게 추적하는 한편, 제국의 경험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인다. 책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부분은 1<19세기의 유산>이다. ‘신사 자본주의재정-군사국가라는 키워드로 영제국의 형성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생적인근대화에 실패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산업혁명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강한 로망을 품고 있는 듯하다. 산업혁명이라는 빅뱅은 서구세계에 미증유의 풍요와 가공할 파괴력을 선사했으며, 비서구가 끝내 서구에 굴복한 이유 역시 산업혁명의 유무에 기인한다는 게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의 생각일 것이다.(심지어는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역사만화가 굽시니스트조차 이러한 산업혁명 이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일군의 연구자들은 산업혁명이 과연 혁명이라 불릴 만큼 급격한 변화였는지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새롭게 산출한 거시경제지표에 따르면 산업혁명기의 경제성장률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낮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산업혁명기에도 여전히 전통적 부문이 경제를 주도했고, 새로운 발명과 기술혁신은 전통의 바다에 떠다니는 한 작은 근대적 부문에 불과했다고 일갈한다.(자세한 내용은 이영석의 삶으로서의 역사를 참고하길!)

산업혁명이 그렇게까지 혁명적이지 않았다면, 영제국의 팽창을 가능케 한 요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바로 대토지를 소유한 젠트리(신사)의 이윤추구였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영형 부농의 범주에 속할 영국의 젠트리는 일찍부터 자본제적 지대를 바탕으로 부를 축적했다. 이들은 시장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불려갈 줄 아는 탁월한 자본가였지만, 끝까지 일상적인 노동세계를 멀리하고 여가와 아마추어 정신을 중시했다. 이처럼 근면한 노동이나 적극적인 기술개발이 아니라, 자본의 투자와 임대수익으로 부를 일구는 경제활동이 바로 신사 자본주의(Gentlemanly Capitalism)’.

16세기 이래 상업적 농업의 발전과 17세기말~18세기 초 일련의 금융혁명을 거치며 귀족과 젠트리는 이전보다 더 막대한 부를 쌓아갔다. 여기에 런던 상인과 금융가들이 합세하여 영국에선 지배적 자본가 집단으로서 신사적 자본가층이 등장한다. 이들 신사적 자본가층의 주된 투자처는 당시 밥 먹듯이 전쟁을 벌이며 재정-군사국가의 길을 걷고 있던 영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였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며 기존의 재정-군사국가는 과도한 재정지출이라는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세기 중엽까지 글래드스턴주의로 알려진 일련의 재정건전화 정책이 실시된다. ‘글래드스턴주의는 국채 시장을 축소하고 연줄을 이용한 사업을 어렵게 했다는 점에선 신사적 자본가층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국내에서 껀수를 찾을 수 없게 된 신사적 자본가층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백인 자치령에 대한 투자를 시작으로, 런던의 금융자본가와 투자자들은 정교한 상거래 기법과 견고한 화폐제도를 무기삼아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해갔던 것이다.

이처럼 신사적 자본가층의 활약에 힘입어 영국은 제국으로 도약했고, 그 형태는 청나라나 오스만 튀르크 등과 달리 광대한 대양을 잇는 네트워크에 가까웠다. 케이프타운, 지브롤터, 수에즈 운하, 아덴, 싱가포르, 홍콩, 밴쿠버, 포클랜드 등 세계의 주요 해양거점이 영국의 손아귀에 있었다. 이 전 지구적 연결망의 중심인 런던은 식량과 고업 원료의 중계지로서, 세계 투자 자본의 처리기지로서 은행·투자·해운·해상보험·도매무역·중개업 등 무수한 서비스 부문을 창출했다. 제국의 엔진은 세계의 공장맨체스터가 아니라 세계의 상점런던이었다.

그러나 면이 아닌 점과 선의 연결을 통해 느슨하게 유지되는 제국의 지위란 근본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존 다윈이 적절히 지적했듯, 19세기 영제국의 평화와 번영이란 수동적인 동아시아, 유럽 대륙의 세력균형, 그리고 강력하면서도 비호전적인 미국이라는 절묘한 국제정세 속에서나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실제로 독일이 유럽의 균형을 무너뜨리려 할 때, 미국이 넘치는 에너지를 바깥으로 발산하려 할 때, 일본이 영국의 주니어 파트너라는 수동적 지위에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영제국의 지위는 크게 흔들렸다.

한때는 영제국 팽창의 원동력이었던 신사 자본주의 역시 20세기에 들어와선 외려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품위 넘치는 젠트리의 이상에 집착했던 기업가들이 테일러주의나 포드주의로 상징되는 미국의 새로운 생산방식을 받아들이기 꺼려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들 대다수가 가족기업 형태로 운영되었기에 전문 관리자층을 양성하거나 기술교육을 제도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고도 인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을 보전했던 영제국은, 1956년 수에즈 위기를 기점으로 급속히 해체되고 만다. 그나마 대륙의 프랑스나 포르투갈과 달리 질서 있는 퇴진이었다는 점이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랄까?

영국인들에게 제국의 해체는 식민지배라는 죄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찬란한 옛 영광과의 쓰라린 작별이기도 했다. 이 복잡 미묘한 감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제국의 경험이 역사연구의 주제로 진지하게 다뤄지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역사가의 전문적인 분석이든 개인의 미시적인 기억이든 간에 영제국에 대한 인식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데이비드 캐너다인은 영제국이 인종적으로 불평등하다기보다는 신분적으로 불평등한 제국이었다고 지적한다. 영제국의 지배자들은 복잡하고 중층적인 자국의 신분체계를 식민지의 사회위계와 직접 연결시켰다는 것이다. 영국의 귀족과 젠트리는 백인 노동자보다는 인도의 제후에게 훨씬 친밀감을 느꼈고, 이들 식민지 토착세력에게 각종 칭호를 수여함으로써 제국의 정체성을 공유했다. 캐너다인은 이러한 경영방식을 장식주의(ornamentalism)’라고 부르는데,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을 의식한 표현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례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19세기의 역사가 존 실리는 미국과 러시아 같은 대륙세력에 맞서 영제국을 연방연맹으로 재편할 것을 부르짖었지만, 연방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백인 자치령뿐이었다. 인종주의자 실리는 인도가 영국과 문화적 공통성이 없기에 대영국에서 배제되는 편이 낫다고 단정 지었다. 비단 백인자치령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 이들이야말로 외국인에 의해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잉글랜드의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한국에도 북조선 여성에게서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난 누이의 모습을 보았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남성분들이 계시니 원!) 누군가에게 영제국의 구성원은 어디까지나 백인뿐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영제국은 다인종 귀족들이 지배하는 코스모폴리탄적 제국이었던 한편, ‘잉글랜드다움을 숭상하는 백인만의 제국이기도 했다. 이 복잡하고 모순적인 네트워크의 일부였던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종, 젠더, 신분, 계급에 따라 제국을 다르게 이해하고 기억했을 터다. 하지만 책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부족하다. 물론 저자의 말마따나 영제국의 경험과 기억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상상해 본다. 스스로를 인도를 다스리는 마지막 영국인이라 생각했지만 동시에 열렬한 내셔널리스트였던 자와할랄 네루에게 영제국은 무엇이었을까? 전형적인 영국식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면서도 (그것이 독재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을지언정) ‘아시아적 가치를 신봉했던 리콴유는? 아니 이런 엘리트들 말고, 보다 평범한 사람들은 어땠을까? 가령 1963년 이후 케냐 정부의 아프리카화정책으로 영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인도계 아프리카인들 말이다. 스코틀랜드나 웨일즈처럼 브리튼인이지만 잉글랜드인은 아니었던 사람들, 퀘벡의 프랑스어 화자들, 평생 고향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잉글랜드의 시골뜨기까지, 영제국의 기억은 어쩌면 사람 수만큼이나 다채로울지도 모르겠다.

지난 1, 저자는 페이스북에 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을 끝으로 새로운 주제를 찾아 자료를 모으고 학술논문을 쓰는 작업은 이제 그만두겠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역시 아쉽다. 이 책은 그간 저자가 걸어온 여정의 화려한 피날레라기보다는, 이어질 연구의 위대한 서막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제국의 형성과 팽창, 해체를 꼼꼼하게 분석한 이 책을 주춧돌삼아 본격적으로 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을 탐구해주십사 부탁드리는 건, 아무래도 너무 무리일까? 글쎄, 20대 젊은이를 겸허하게 만드는 저자의 성실함과 학문적 열정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 한 작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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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책할까요 - 내 인생에 들어온 네 마리 강아지
임정아 지음, 낭소(이은혜) 그림 / 한길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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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웹툰을 훑다보면 단연 눈에 띄는 건 이전보다 확연히 증가한 반려동물 웹툰이다. 푸들과 동거하는 만화, 개와 고양이가 말을 안 들어서 주인을 노곤하게 하는 만화, 개를 낳은 만화 등, 네이버만 해도 반려동물을 다룬 웹툰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스러울 정도다. 흥미로운 점은, 수많은 반려동물 웹툰들이 하나같이 한 생명과 함께 사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변훈련이나 예방접종 같은 사소한 일부터 노화와 죽음까지, 웹툰에서 묘사되는 반려동물과의 삶은 (비록 유머러스하게 포장될지언정) 수고와 고통의 연속이다. 도서관에 눌러앉은 길고양이에게 가끔 닭가슴살이나 건네주는 나로서는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던가 하고 놀랄 때가 많다. 하긴, 한 생명을 책임지는데 힘들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출간된 임정아의 우리 산책할까요역시 함께 사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스패니얼 잡종인 까미와 하얀 푸들인 바람이와 샘이, 그 자식인 별이까지, 네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한 저자의 30년 여정은 우리의 생각처럼 몽글몽글한 핑크빛으로 가득하진 않다. 오히려 실수와 좌절, 고통의 연속이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자가 처음부터 강아지들에게 좋은 반려인이었던 건 아니다. 까미의 출산이 임박했을 때, 1회 광주비엔날레와 단풍이라는 유혹을 떨칠 수 없었던 저자는 까미를 집에 두고 훌쩍 남도여행을 떠나버린다. 차가운 부엌 바닥에서 끙끙대던 까미는 끝내 문살을 부수고 안방으로 들어와 새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에서 별이를 키울 때는 별이가 짖지 못하게 하려고 전기충격을 주는 짖음 방지기를 사기도 했고, 성대 제거 수술을 위해 동물병원 진료까지 받기도 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 실수의 연속이다.

그래도 깨지는 만큼 단단해진다고, 저자는 실수를 통해 점차 헌신적인 반려인으로 거듭난다. 특히 앞을 보지 못하는 바람이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저자의 모습은 경외감이 들 정도다. 물론 저자도 사람인지라, 바람이를 매일같이 산책시키고 혹 어디 부딪힐까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다. 오죽하면 , 힘들어. 너무 힘들어하고 한탄까지 하겠는가.

하지만 강아지를 돌보며 저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기도 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동생 생각에 슬퍼하던 저자는 자신의 눈물을 핥아주는 샘이 덕에 기운을 차린다. 별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저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으로 좇아간다. 마치 화가가 꼼꼼하게 모델을 관찰하듯이 자신을 지켜보는 별이에게 저자는 애틋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할 만큼, 강아지들은 저자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저자는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리고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강아지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던 것이리라. 살날도 얼마 안남은 개 그냥 보내주는 게 어떠냐는 주위의 참견에 저자가 저 애들이 어렸을 때 저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었어요. 이젠 제가 돌볼 차례죠라고 차분히, 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하는 장면은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사랑은 어렵다. 눈이 보이지 않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듯 조심스럽고 수고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상대방이 내게 선사하는 기쁨과 설렘, 경이로움 역시 그로 인해 마음 졸이고 고생하는 시간이 있기에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사랑의 어려움이야말로 기쁨이요, 행복이다. 예쁜 모습에 혹해 무턱대고 입양한 강아지를, 고작해야 베란다의 허브를 물어뜯는다는 이유로 과수원 하는 친척집에 보내버리는 사람들에게 저자가 건네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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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 하는 일본 -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
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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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담컨대, 이 책을 펼친 당신은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이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도 그럴 것이, 도쿄대학 학사/석사/박사라는 엘리트 코스를 거친 저자는 시종일관 독자를 무시하고 이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저자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허무맹랑할 수가 없다. 글쎄, 세계 최초로 근세(Early Modern)’를 맞이한 지역이 중국 송나라란다.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이야기한 역사의 종언이란 다름 아닌 전 세계의 중국화라니,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역사학의 최신 성과랍시고 자랑스레 떠벌이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그야말로 으앙 울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 오만하고 불친절하며 허무맹랑한 책이 일본에서 30만 부 이상 팔려나갔으며, 도쿄대학 구내서점에서 판매율 1위를 기록했다면 믿겠는가? 게다가 미야지마 히로시와 박훈 등 저명한 동아시아 연구자들이 하나같이 이 책에 놀라움 섞인 호평을 내리고 있다면? 어떤가, 속는 셈 치고 한 번 읽어보고 싶지 않은가? 그래서 책 제목이 뭔지 뜸 들이지 말고 말하라고? 바로 요나하 준의 중국화하는 일본이다.

중국화하는 일본이란 제목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이 책의 내용은 일본이 중국에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종속되고 있다는 일본 넷우익의 주장과는 백만 광년정도 떨어져 있다. 그렇다고 전쟁 안하는 시대를 예찬하고 유라시아를 주유하는 모 선생님처럼 나이브한 중국예찬론으로 기울지도 않는다. (혹 오해를 살까봐 말해두는데, 나는 이 분을 세간의 평가에 비해선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요나하가 이야기하는 중국화, 일본사회의 존재방식이 중국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요나하는 그간 일본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인 근세(Early Modern)’가 실은 전 세계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근대의 전반기라 이야기한다. 근세가 처음으로 도래한 지역이 바로 송나라 시대의 중국이며, 이 때 도입된 사회체계가 오늘날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그럼 송나라 이래 이어져온 중국사회의 존재양식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요나하가 생각하는 중국화란 쉽게 말해 경제와 사회는 철저히 자유화하되, 사람들의 생각만큼은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국화된 세상에선 정치와 도덕이 일체화되어 있기에, 보편이념에 의거해 최고지도자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보편이념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또한 사회는 일체의 중간단체 없이 최고지도자와 무수한 개인만으로 이루어진 소용돌이형으로 재편된다.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 출세할 수 있지만, 동시에 굶어죽을 자유 역시 부여받은 개개인은 조금이라도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넓고 얕은인적 관계를 맺는데 몰두한다.

이 중국형 사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만약 중국형 사회라는 낯선 존재에게서 내가 사는 사회의 향기를 느꼈다면, 당신은 꽤나 촉이 좋은 사람이다. 요나하는 197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기실 전 세계의 중국화에 불과하다고 일갈하기 때문이다. 2019년의 한국은 너무나도 모범적인신자유주의 국가이므로, 우리가 중국형 사회에 기시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정말로 세계가 중국화했다기보다는 요나하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중국화라는 개념을 연상한 것이겠지만, 일단은 못 본 체 넘어가주기로 하자.

그런데 이 도도한 중국화의 물결을 꿋꿋하게 거스르는 국가가 딱 하나 있으니, 바로 일본이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끄트머리에 외따로 자리한 일본은 감히역사의 필연이자 보편인 중국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에도시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독자적인 사회체계를 건설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일본형 사회는 중국형 사회와는 정반대로 굴러간다. 정치와 도덕은 분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직함과 실권이 일치하지 않는다. 사회는 수많은 중간단체로 구성되어 있어 박스의 집합 같은 느낌을 준다. 개인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지만, 평생 자기 신분을 벗어날 수 없다.

요나하는 중국화 세력과 일본화 세력의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이 일본의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두 세력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서로가 꿈꾸는 세상이 너무나 다를 뿐 아니라, 각각이 완결된 정책 묶음이기 때문이다. 각 사회는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지만, 만약 양자를 종합해 장점만을 취하고자 할 경우 외려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마치 커다란 멜론이 포도처럼 풍성히 열리기를 기대하며 두 과일을 조합했지만, 실제로는 작은 포도가 멜론처럼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호시 신이치의 단편 리온처럼 말이다. 요나하는 이를 부론(일본어로 포도와 멜론의 합성어)’이라고 부르며, 그 대표적인 사례로 쇼와 전기의 일본과 북조선을 꼽는다.

요나하의 주장은 척 보기에도 문제가 많다. 사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오로지 중국화와 일본화라는 이항대립으로만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지 않은가! 가령 요나하가 중국 역사에서 일본형 사회를 건설한 둘 뿐인 시기로 꼽은 명나라와 마오쩌둥 시대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살펴보자. 두 사회 모두 상업을 억제하고 농본주의 정책을 폈다는 점에서는 에도시대 일본과 유사하다. 하지만 에도시대와 달리 명나라와 마오 시대의 중국은 최고지도자인 황제와 주석이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또한 두 사회는 모두 보편이념을 내세워 개개인의 생각을 강하게 통제했을 뿐 아니라, 이를 자국 밖으로 전파하기까지 했다. 명대 동아시아에선 조공-책봉관계로 상징되는 전형적인중화질서가 가장 안정적으로 작동했으며, 마오 시대의 중국 역시 제3세계의 맹주로서 수많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을 이끌었다. 쇄국정책으로 일관한 에도시대 일본과는 달랐다. 명나라와 마오 시대의 중국은 일본형 사회라기보다는, 요나하가 부론이라 이야기한 쇼와 전기의 일본이나 북조선에 훨씬 가까웠던 것이다.

명나라는 대략 300년 좀 안 되는 기간 동안 존속했고, 북조선 역시 미국의 고사작전에도 아직까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명나라나 마오 시대 중국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인민의 정신과 물질생활 모두 강하게 통제했던 조선왕조는 무려 500년을 이어갔다. (요나하는 조선왕조를 전형적인 중국형 사회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자신의 분석을 엄밀히 적용한다면 부론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니깐 쇼와 일본과 조선이라는 부론은 썩 바람직하진 않을지언정 나름대로 안정적인 체제인 것이다. 물론 부론의 안정성을 인정하는 순간, 중국화와 일본화라는 이항대립은 설명력을 잃는다.

이처럼 요나하가 제시한 중국화-일본화의 이항대립은 조선왕조의 사례만 거론해도 크게 흔들릴 만큼 불안하다. 곳곳에 오류와 억지, 비약이 가득한 허점투성이의 책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허점들이야말로 중국화하는 일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숨구멍이다.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채겠지만, 정작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데는 애를 먹는다. 요나하가 만든 모델이 성기긴 해도 꽤나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요나하의 도발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다른 책들을 읽어갈 수밖에 없고, 그의 모델을 완전히 부정하기보다는 보완하고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나의 경우는 앞서 조선왕조를 근거로 요나하가 부론으로 이해한 사회체계가 실은 꽤나 안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화-일본화라는 모델 자체의 부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중국화와 일본화라는 두 점으로 이루어진 선분 위에 조선화(쇼와화나 북조선화로 치환해도 무방하다)라는 점을 찍어 삼각형을 만드는 식으로 기존 모델을 보완한 것에 가깝다.

서울대학교의 박훈 교수 역시 중국화-일본화라는 요나하의 모델이 공업화와 대의제 의회, 민주주의와 같은 근대적요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요나하의 작업이 유럽중심주의 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시도라고 평가하며, 이를 보완하여 군현사회(중국화)’봉건사회(일본화)’라는 독자적인 모델을 제시한다.(박훈, 봉건사회’ - ‘군현사회와 동아시아 근대시론(試論), 동북아역사논총57, 2017)

굳이 요나하의 모델을 수정·보완하려 애를 쓰지 않더라도, 중국화하는 일본이 선사하는 즐거움은 무궁무진하다. 예컨대 한국의 역사를 중국화-일본화의 도식으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은 1971년의 제7대 대통령 선거는 일본화()와 중국화()의 역사적 대결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선거에서 승리한 박정희는 이후 쇼와화(유신체제)의 길을 걸으며 몰락했고 말이다. 이처럼 중국화와 일본화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이 채워나갈 여지가 많은 매력적인 모델이다. ‘역사덕후들이라면 열광해 마지않을, 흥미롭지만 결코 만만치는 않은 장난감이라고나 할까?

중국화하는 일본은 오랫동안 일본사회를 지배해 온 편견에 대한 미러링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근대 이후 일본의 지식인들은 아시아에서 오직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발견혹은 창조하는 한편, 중국을 아시아적후진성과 낙후성, 저발전을 상징하는 집합체로 전락시키는데 골몰했다. 좌와 우를 막론한 많은 일본인들이 자기네 나라가 전 아시아를 지도해야 할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말이다. 일본의 리버럴 세력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였던 애정과 존경 역시, 그가 일본의 학생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빼놓는다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요나하가 중국화하는 일본을 퍼낸 2011,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전대미문의 대재앙이 발생했다. 그러나 국가는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기는커녕 문제를 더 키워놓을 정도로 무능했다. 영원히 누릴 것만 같았던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라는 지위 역시 중국에게 빼앗겼다. 요나하의 말마따나 일본인은 갑작스레 풍요롭고 행복한 일본의 종언에 직면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지속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자명해졌다. 하지만 정작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이 암담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요나하는 그간 일본 지식인들이 애용해온 일본과 중국의 이항대립이라는 틀을 반전시킨다. 일본을 특수후진의 자리로 떨어뜨리고 중국을 보편선진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비록 중국일본이라는 구분을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요나하의 파격은 분명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어주었으리라고 확신한다.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상대방이 실은 나보다 훨씬 앞서있었다는 이야기만큼 확실한 충격요법은 없기 때문이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와 시험을 통해 인격자를 등용하는 과거제, 어느 것이 더 나은가?”라고 거침없이 질문하는 저자의 과격함은 분명 많은 독자들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나하의 도발은 역덕에게는 흥미진진한 지적 자극이요, 일본인에게는 차분한 성찰의 촉매이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풍요로운 오류황폐한 진실보다 소중할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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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 돌베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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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진부하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연애소설만큼.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낡은 말에 기꺼이 속아주는 이유는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정말로 첫눈에 반해서라기보다는, 그럴 수 있는 상대방이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마치 주문처럼 저 말을 되뇌고 또 되뇐다. 하지만 그런 마법 같은 일이 과연 실제로 벌어질까? 설사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서 강렬한 스파크가 튄다 해도, 그걸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보지 않은지라 이런 말 꺼내기 민망하지만, 사랑이란 익숙한 존재가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생전 처음 느끼는 낯설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잠시, 나는 어떻게든 그를 알아보려 아등바등한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만 늘어갈 뿐임에도 이 공부가 전혀 헛되게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알아가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고,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이전과는 다른 빛깔로 채워져 간다.

낯설음에 놀라워하고, 알아감에 기뻐하는 이런 사랑은 비단 사람만을 향하지 않는다. 사람은커녕 생물도 아니고, 심지어는 형체조차 없다 해도 우리는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출간된 권보드래의 31일의 밤역시 3.1 운동이라는 사건을 이렇게나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권보드래의 오랜 팬으로서, 나는 그가 언제쯤 자신의 숙제라 이야기하던 3.1 운동의 문화사를 퍼낼지 늘 애가 달던 터였다. 책을 읽고 나서야 나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그가 이런 글을 쓰려고 그토록 오랜 시간 공을 들여왔음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 본인도 이야기하듯 31일의 밤3.1 운동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앎을 더하고자 쓰인 책은 아니다. 학술서가 아니기에 서술은 때때로 중구난방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의 목소리에 감정이 한껏 실려 있는 대목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감히 이야기하건대, 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은 바로 이러한 두서없음이다. 저자는 기존의 미끈한 내러티브를 답습하는 대신, 3.1을 둘러싼 복잡하고 모순적인 목소리들을 모두 끌어안는다. 고작해야 유관순 누나에 머물러 있던 우리의 3.1 이해는 불안과 희망, 냉소와 기대, 욕망과 숭고가 뒤엉킨 무수한 꿈들 앞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3.1 운동을 새롭게 알아가기 위해, 그럼으로써 그를 보다 깊게 사랑하기 위해 저자는 렌즈를 돌려가며 줌아웃과 줌인을 반복한다. 세계사의 맥락 속에 3.1을 위치 짓는 동시에, 개개인의 삶 속에서 3.1이 어떤 의미였는가를 파고드는 것이다. 오지 않은 미래를 끌어와 이 자리에 펼쳐 보이는 11<선언>에서 이미 지나간 과거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44<후일담>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세계와 개인을 분주히 오고가며 3.1 운동에 너비와 깊이를 부여한다.

저자에 따르면 1910년대는 세계적인 혁명의 시대였다. 1910년 멕시코혁명을 시작으로 1911년 신해혁명과 1917년 러시아혁명, 1918년 핀란드와 독일, 헝가리혁명에 이르기까지 세계각지에서 기성체제를 타파하려는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운동이 잇따라 발생했다. 또한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은 당시 사람들에게 단순한 종전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문명을 자임하며 전 세계에 오만하게 군림하던 유럽은 누구보다 추하게 자멸했다.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은 각각 자유의 제국과 정의의 제국을 자임했다. 체코, 아일랜드, 인도, 이집트 등 세계 각지의 식민지와 속령에서 독립의 움직임이 들끓었다.

이처럼 혁명의 에너지가 넘쳐나던 1910년대, 일본의 지배에 놓인 조선만은 유독 고요하고 안온했다. 뜻밖에도 식민통치는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총독부는 조선인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기쁨을 누리는 소박한 양민(良民), 개인과 가족 외에는 일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착실한 선민(善民) 되기를 요구했다. 게으르고 불결한 조선인이라는 모욕을 받아들인다면, 공적인 일에 목소리를 내려는 욕구를 억누른다면, ‘내지가 위험에 처할 경우 가장 먼저 내쳐질 신세라는 사실에 눈을 감는다면 충분히 괜찮은 세상이었다.

그러나 침묵은 결코 무기력한 순응을 의미하지 않았고, 지난 10년간 차곡차곡 쌓여간 저항의 에너지는 결국 19193월 한꺼번에 폭발했다. 조선의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과 가족을 넘어 다양한 타자들과 연대했고, 비로소 사회를 상상할 수 있었다. 식민권력은 일체의 사회단체를 허용치 않았기에 운동을 지휘할 지도부가 부재했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대표자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했다. 바야흐로 너도나도 대표를 자임하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오직 자신만이 자신을 대표하는 세계의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저마다의 꿈을 그야말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화정을 지지했지만, 독립을 지키고 정국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선 왕정복고가 불가피하다 여기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공화정이라 해도 그 구체적인 모습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을 것이다.

비단 정체(政體)에 대한 이야기만 오고간 것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을 근거로 서구문명의 종언을 고하는 거대담론과 공동묘지가 아닌 선산에 부모를 묻겠다는 소박한 요구가 같은 시공간에 나란히 존재했다. 사람들은 일제의 폭력근대의 폭력모두에 저항했고, 양자를 굳이 구분하려 들지 않았을 뿐더러 그럴 수도 없었다. 독립(獨立), 개조(改組), 도의(道義), 공존(共存), 균분(均分)과 같은 말들이 희망과 불안을 머금은 채 거리를 부유했다.

물론 가능성은 가능성으로만 남았을 뿐, ‘개벽은 결코 도래하지 않았다. 조선은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고, 세계 역시 공존공영의 길로 나아가지 못했다. 3.1 운동과 함께 터져 나온 무수한 말과 글들도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3.1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중심과는 다른 주변의 근대를 개척하고자 고군분투한 생생한 증언록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주변의 근대는 수탈개발이라는 이항대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주변이 황폐화되었든 윤택해졌든 간에 이를 실현한 x변수는 결국 중심이라는 점에선 수탈개발이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주변의 모던함에 주목하는 문화사나 중심(제국)과 주변(식민지)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제국사라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긴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중심의 역사를 그대로 주변에 이식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권보드래는 이 x(중심/제국)y(주변/식민지)라는 도식 자체에 손을 대지는 않는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는 게 보다 정직한 표현일 것이다. 중심의 그림자를 애써 걷어내려는 시도는 결국 꼴사나운 자기연민이나 광기에 찬 폭주로 이어지기 마련이므로. 대신 그는 y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벡터에 주목한다. x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해서 y가 이를 그대로 답습하는 건 아니다. y, 즉 주변이라는 위치 자체로부터 비롯된 힘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변은 거의 언제나 중심에 비해 미숙하고, 중심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위치 덕에 주변은 중심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3.1을 전후해 터져 나온, 설익었지만 생생히 살아 있는 목소리들이야말로 한반도의 근대인 것이다. 김수영의 말마따나 우리는 이 근대에 거대한 뿌리를 박아야 한다, 3한강교의 철근기둥도 좀벌레의 솜털로 느껴질 만큼 거대한 뿌리를.

아울러 다른 주변과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단순히 3.1 운동이 5.4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는 식으로 xy의 도식을 그대로 반복할 게 아니라, 세계 각지의 y들이 만들어낸 변화무쌍한 벡터를 넓은 시야로 아울러야 한다. 저자가 3.1에 닿기 위해 프랑스혁명과 아이티혁명,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 라틴아메리카와 인도차이나의 역사를 공부한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친구가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결국 그와 함께 있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친구도 필시 어느 소설이나 영화에서 들었던 것이겠지만, 이제 와서 출처는 그리 중요하지 않지 싶다. 31일의 밤을 읽으며 나는 한반도의 근대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물 수 없으면 짖지도 말라던 윤치호나 민족개조를 외친 속물교양 이광수뿐 아니라, 일제가 나무를 꺾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무명씨까지 말이다.

잘못 쓴 거 아니냐고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부끄럽지만 제대로 쓴 게 맞다. 그동안 내가 마음을 주고 관심을 쏟아온 대상은 어디까지나 윤치호나 이광수 같은 사람들이었다. ‘트랜스내셔널한 코스모폴리탄으로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내 모습이 이들 식민지 지식인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윤치호와 이광수는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라 나랑 비교하는 게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윤치호와 이광수는 물론이고, 이들을 좌절케 하고 끝내는 흑화시킨 식민지 조선 역시 사랑하려고 한다. 주변이라는 좌표로부터 비롯된 가능성과 한계를 낯설게 봄으로써 한반도의 근대를, 나아가 한국어 화자로서의 나를 조금 더 좋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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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 회사의 본질 -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
김종철 지음 / 개마고원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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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단연 가오나시(顔無). 이름 그대로 얼굴 없는 요괴인 가오나시는 반투명한 검은 몸 위에 표정 없는 가면 하나를 덩그러니 달고 있는데, 누군가를 삼켜 목소리를 빌려야만 말을 할 수 있다. 영화에서 가오나시는 가짜 사금으로 주인공 치히로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만, 물욕이 없는 치히로는 이를 거절한다. 분노한 가오나시는 여관 종업원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며 폭주한다. 결국 치히로가 건넨 쓴 경단을 먹고서야 가오나시는 모두를 토해내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 이제 영화를 약간 비틀어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자. 치히로는 가오나시에게 여관의 물질적 피해와 종업원들이 겪을 트라우마에 대한 보상을 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글쎄 가오나시가 쓰고 있던 가면을 툭 던지면서 모든 건 이 가면이 한 일이라고 발뺌하는 게 아닌가! (, 가오나시는 말을 못 하니깐 손가락으로 가면을 가리키기만 했을 것이다.) 치히로의 얼빠진 표정이 스크린에 비치는 순간 관객들은 그대로 극장을 빠져나왔을 것이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문을 닫는 시점은 10년 정도 앞당겨졌을 것이다. 가면한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다니,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

그런데, 영화 시나리오로도 써먹을 수 없는 이 얼토당토않은 일이 현실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면 믿겠는가?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유병언 일가, 60여 명의 직원들이 백혈병림프종 등의 암으로 사망했지만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는 삼성가 등, 대기업의 대주주는 매우 적은 지분으로 막대한 권한을 누리지만 사회적 책임으로부터는 사실상 자유롭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주위의 모든 걸 게걸스레 집어삼키면서 필요할 땐 가면을 내세워 교묘히 책망을 피해가는 가오나시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인 것이다.

김종철의 금융과 회사의 본질은 회사(정확히는 유한책임 주식회사)라는 이름의 가오나시에게 가차없이 매스를 들이대며 그 기원과 본질을 탐구하는 역작이다. 영미권의 정통정치사상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저자는 회사의 본질이란 다름 아닌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라고 이야기한다.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라니, 관념에 불과한 권리를 어떻게 생물처럼 교배할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이만큼 회사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한 표현은 없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칠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동서고금 어디에나 존재해왔던 계약권과 달리, 재산권은 로마법 이외의 법체계에서 찾기 어려운 독특한 권리다. 팽창에 팽창을 거듭하던 로마제국은 정복지의 주민들을 노예로 삼았는데,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마련된 법적 권리가 바로 Dominium이다. 이후 로마의 노예경제가 발전하며 Dominium노예의 주인에서재산 일반에 대한 권리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 기원에서 알 수 있듯 Dominium은 소유물을 마치 노예를 부리듯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며, 소유에 대한 사회의 인정을 필요치 않는다는 점에서 허구적이다.

로마의 지배계급은 이 재산권을 국가기구를 통해 법적으로 정당함으로써 막대한 토지와 노예를 손에 넣었고, 심지어는 세금마저 사적으로 갈취했다. 그러나 이토록 탐욕적인 로마사회에서도 한 사람이 재산권과 계약권을 동시에 누릴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해 내가 계약을 통해 누군가에게 재산을 양도한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재산을 남에게 넘겼으면서도 여전히 그것이 내 것인 양 행세한다면 이는 횡령으로 간주되었다. 현대인이 보기에도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라니, 무슨 슈뢰딩거의 재산도 아니고!

그러나 이 상식은 13세기 잉글랜드에서 처음으로 뒤집히기 시작한다. 원래부터 잉글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중앙집권적인 국가였고, ‘분권적인봉건제조차 잉글랜드에선 노르만 정복왕조의 국가재편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같은 봉건제라 해도 이웃 프랑스와 달리 잉글랜드의 모든 땅은 원칙적으로 왕의 것이었다. 당연히 영주에겐 이런 저런 제약과 의무가 따라붙었고,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을 경우 사후 토지를 왕에게 반환해야 했다.

토지에 대한 재산권은 누리면서도 이에 따른 사회적 의무는 지고 싶지 않았던 잉글랜드의 영주들은 토지를 제삼자에게 파는 것도 아니고 안파는 것도 아닌 기묘한 방법을 고안한다. 바로 재산권을 양도하되 매달 배당금을 받을 뿐 아니라 자신의 동의 없이는 토지를 함부로 처분할 수 없게끔 합의하는 것이다. 이를 신탁(trust)이라고 한다. 신탁을 통해 재산권과 계약권은 융합의 토대를 마련했다. 있는 자들에겐 무한한 권리를 누리되 책임은 0에 수렴하게끔 살아갈 길이 열렸고 말이다. (역시 세상의 온갖 추악한 협잡질은 영길리 놈들이!!)

토지라는 인큐베이터를 거쳐, 재산권과 계약권은 17세기 런던의 금세공업자들 손에서 보다 세련된 융합을 시작한다. 금세공업자들은 자신에게 금을 맡기는 사람에게 약속어음을 발행해 주었다. 이는 예금주가 금에 대한 소유권을 금세공업자에게 넘기는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동시에 금세공업자는 약속어음을 받은 사람에게 언제나 돈을 찾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줬다.(요구불 지급) 그렇다면 금세공업자는 소유권을 넘겨받은 게 아니라 그저 남의 재산을 보관해줄 뿐이라고 볼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이종교배를 통해 금세공업자들은 하나의 예금에 대해 이중의 재산권을 창조해냈다. 금은 금세공업자의 것인 동시에 예금주의 것이기에, 같은 돈을 금세공업자도 쓰고 예금주도 쓴다. 게다가 금세공업자들이 발행한 은행권은 이를 지참한 누구든 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뻥튀기된 돈은 더 넓은 곳에서, 더 수월하게 퍼져나간다. 현대 금융과 화폐의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17세기 말에 이르러,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를 위한 단단하고 영구적인 토대로서 근대적 인격(Person) 개념이 탄생한다. 영어의 Person은 한국어에는 없는 말인데, 본래 무대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던 그리스어 Persona에서 유래했다. 그러니까 인격이란 인간 그 자체라기보다는, 텅 빈 가면과도 같은 추상적 관념이다. 흥미로운 점은 17세기 잉글랜드의 자유주의자들이 사람을 인격과 재산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파악했다는 사실이다.

근대 자유주의의 기틀을 다진 로크는 통치론에서 “Every man has a property in his own person”이라고 자신의 주장을 간명히 요약했다. 그간 이 문장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체/일신/인신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다라고 번역되어 왔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사람은 그의 인격 안에 어떤 재산이 있다야말로 올바른 해석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로크는 사람=인격+재산이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이 때 재산은 비단 물질 뿐 아니라 사람의 신체와 재능, 심지어는 자유와 생명까지 포괄한다.

재산의 범주에 사실상 유·무형의 모든 것들이 들어간다고 했을 때, 그럼 인격은 무엇인가? 인격이란 이들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며 자유롭게사고 팔 수 있는 행위자다. 행위자로서의 인격은 자신의 노동을 섞는 행위를 통해 무제한으로 재산을 불려갈 수도 있지만, ‘합법적인계약을 거친다면 그 어떤 재산도 처분할 수 있다. 심지어는 신체와 생명까지 말이다! 인격의 결정아래 재산으로서의 자유를 팔아치우는 노예제는 이렇게 정당화된다. 노예에게 남겨진 페르소나는 사실 행위자는커녕 존재하지도 않는 텅 빈 가면에 불과함에도.

잉글랜드의 자유주의자들은 사람에게서 추출해낸 페르소나라는 인공물을 이제 공동체에게까지 덧씌우기 시작한다. 그 결과로서 탄생한 게 바로 근대 은행과 주식회사, 그리고 대의제이다. 공동체는 단순히 사람들의 집합을 넘어선 불멸의 인격(法人)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이 인격은 권력자들이 유사시에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방패막이에 불과하다. 주식회사의 대주주는 평소에는 회사라는 가면을 쓰고 지극히 주인답게행동한다. 하지만 회사가 망하면 대주주는 재빨리 가면을 벗어버리고 자신은 저 가면과 그저 계약을 맺었을 뿐이라고 발뺌한다.

대의제 의회의 국회의원 역시 자신이 곧 국가 자체인 양 거들먹거리면서도, 뭔 일만 터졌다하면 자긴 국민의 뜻을 대표했을뿐이라며 징징댄다. 게다가 이제 국가는 왕 개인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는 인격이기 때문에, 과거라면 왕의 죽음과 함께 탕감되었을 부채 역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는 불멸의 빚쟁이, 불멸의 액받이 무녀로 전락한다.

강자는 인격이란 가면을 필요에 따라 썼다 벗었다하며 끊임없이 재산을 불려가고, 약자는 인격 하나 덩그러니 손에 쥔 채 모든 걸 빼앗긴다. 이 비정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저자는 기본자산제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인격뿐 아니라 최소한의 자산 역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개인의 일부로 남겨두자는 것이다. 마치 팔과 다리, 장기와 같은 신체처럼 말이다. 기본자산은 어떠한 채무변제 의무로부터도 자유롭지만, 동시에 개인 역시 이를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비생산적으로 소비할 수 없다.

저자가 내건 기본자산제라는 대안은 근대 영미 정치사상에 대한 그의 비판만큼이나 급진적이다. 그렇기에 글을 읽으며 그 신박함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과연 이를 실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비관적으로 본다면, 기본자산제의 미래는 결국 21세기 판 정전제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23세기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에서 200년 전의 극심한 양극화를 설명할 때 양념처럼 끼워 넣는, 실현되지 못한 대안 중 하나로 치부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그 때도 학교라는 제도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남아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많은 책들이 현실을 탁월하게 분석, 비판해놓고 정작 해법에 대해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생각했을 때, 기본자산제라는 대안은 매우 소중하다. 일단은 이러한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다. 200년 뒤 고등학생들이 저자를 실패한 개혁가 조광조로 기억할지, 새 체제의 설계자 정도전으로 기억할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책의 제목과 디자인이 너무나 구리다! 작년 국민일보기사에선 페르소나와 정치란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밍숭맹숭한 제목을 달고 나온 걸까? 표지도 너무 평범하다. 이래서야 그저 그런 영미권 경제학자가 쓴 그저 그런 자본주의 비판서의 그저 그런 번역서 같지 않은가! 나였다면 제목은 페르소나와 정치로 그대로 밀고 가고, 표지에는 텅 빈 가면 뒤 불온한 그림자가 우글거리는 그림을 실었을 거다. 지난 3월에 나온 이 책에 대한 서평이 고작해야 세 개(그나마도 한 개는 출판사에서 쓴 거다!)밖에 안 되는 건 전적으로 출판사 탓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2쇄부터는 다른 제목과 표지를 달고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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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고원 2020-12-1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렇게 충실한 리뷰라니~~ 감사!

사족: 책의 표지와 제목은 이미 책을 읽어 내용을 아는 독자가 아니라 책을 읽기 전 독자의 눈에 들기 위한 것이랍니다. <페르소나와 정치>라는 제목이나 가면과 불온한 그림자가 등장하는 표지라면, 아마도... ‘겉과 속 다른 위선적 막장 정치(가)‘ 같은 이야기를 다룬 너무 뻔한 책을 독자들은 연상하기 십상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