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과학책 읽기의 즐거움
이정모 지음 / 사월의책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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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건대, 나의 꿈은 언젠가 역사SF를 쓰는 것이다. 왜 하필 역사SF냐고 묻는다면 글쎄, 내가 역사 전공자고 SF를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물론 역사소설보다는 역사SF가 그나마 팔릴 것 같아서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바로 내가 과학에 젬병이라는 사실이다! 그나마 수학은 문과치고 그럭저럭 해내는 수준이었지만, 과학은 문과 중에서도 못하는 축에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이후 과학과는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의 마인드로 데면데면하게 지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역사SF를 쓰고 싶어지다니, 이를 어이할꼬!

이렇게 성인이 되고서야 과학에 관심이 생긴 문송이(문과라서 죄송한 사람)가 나 뿐만은 아닐 게다. 어떤 문송이는 나처럼 과학을 소스로 소설을 쓰거나 웹툰을 그릴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늘 음식물쓰레기 버리듯 휙 넘겨버리던 신문의 과학면을 한 번 진지하게 읽고 싶어진 문송이도 있을 터다. 사실 남들 앞에서 자랑하기 위한 지적 악세사리로서 과학 지식을 탐하는 문송이가 제일 많겠지만, 아무래도 좋다. 무언가에 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니까.

물론 뒤늦게 과학에 재미를 붙여보려는 우리 문송이들에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과학과 담쌓고 지내온 기간이 너무 길어 도대체 어떻게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가 선정한 과학고전을 펼쳤다간 그날로 과학과 영영 이별할지도 모른다. 불쌍한 문송이들에게 필요한 건 과학에 대한 흥미를 돋울 수 있는 좋은 교양서건만, 서울대는 우리 마음도 몰라주고 프린키피아종의 기원따위를 추천해주고 있으니 원! 세상은 과학 좀 공부해보려는 문송이들에게 이토록 잔인하다.

하지만 문송이들이여, 이제는 울지 마라! 징징대지도 마라! ‘과알못이라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교양서가 나왔으니, 바로 이정모의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이다. 저자 이정모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을 거쳐 현재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유명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지만, 나는 그를 고3시절 <미생>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미생>에 등장하는 재미교포 스티브 한의 모델이 바로 이정모였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대한민국에 자연사박물관이 있다는 사실도 그의 프로필을 검색해보고 처음으로 알았다. 이런 중증 과알못이 강추하는 책이니, 얼마나 쉽고 재미있겠는가!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은 저자가 읽은 각종 과학책에 대한 서평 모음집이지만,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외칠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책은 없었다, 이것은 서평인가 신변잡기인가?” 책 뒤표지에 실린 추천사에 나와 있듯 이정모의 서평은 전적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이 키우는 앵무새가 자신을 싫어해 딱 한번 과외를 짤렸다며 분해하고(새대가리 vs. 새의 천재성), 동생이 유치원에서 사람의 소화기관에 대해 배우는 것을 본 이후로 유치원 졸업생에 대한 열등감을 키워왔다고 고백한다.(, , 의 숨겨진 과학)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시도 때도 없이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홍보하고, 자신에게 물리와 화학을 가르쳐준 종로학원의 신일생, 조용호 선생님에 대한 무한애정을 드러낸다. 책에서 종로학원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나는 끝내 선생님들 성함을 외워버리고야 말았다. 누구라도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알아버린 기분이 들 것이다. 만약 길에서 저자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삼촌,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하고 반갑게 손을 내밀 것만 같다.

이처럼 이정모는 본디 의 책을 소개하기 위해 쓰인 서평이란 글에서 를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 누군가는 과연 저자가 서평가로서의 역할에 충실한지 의문스러울 것이고, 저자의 TMI에 지레 부담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정모는 매우 훌륭한 서평가일 뿐 아니라 독자를 부담스럽게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의 서평이 훌륭한 이유는 다름 아닌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는 형식 덕분이다.

이정모는 책의 내용을 무미건조하게 요약하는 것으로 서평을 갈음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이 보고, 배우고, 느낀 온갖 것들을 끌어들여 적극적으로 책을 읽어간다. 저자가 책과 함께 웃고, 울고, 짜증내고, 위로받은 생생한 기록은 딱딱한 과학책에 개성을 불어넣는다.

게다가 이정모의 경험담은 단순한 썰풀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과학책을 소개하기 위한 밑밥깔기. 이를테면 아버지를 모시고 브뤼셀을 여행하다 자동차로 왕궁 후문을 가로막은 이야기를 꺼내나 싶더니, 스리슬쩍 우주를 탐구해온 과학의 역사로 넘어가버리는 식이다.(“You are here!”) 그 솜씨가 마치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럽기에, 과학책은 처음이라며 쭈뼛대던 문송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글은 너무나도 재밌다. 난 지금껏 이렇게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글쟁이는 만난 적이 없다. 도서관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틈날 때마다 이 책을 펼쳐든 지난 사흘간 나는 정말이지 꼴사납게 쿡쿡댔다. 급기야 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예민하게 신경 쓰면서 물리적 올바름(physical correctness)’은 고려하지 않느냐는 대목에서는(물리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공교롭게도 둘 다 약어가 PC!) 저자는 이렇게 남을 웃겨놓고선 뻔뻔스럽게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본론으로 넘어가버린다.

이렇듯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재기발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용까지 가볍고 얄팍한 건 결코 아니다. 저자는 짧은 지면을 요령껏 활용해 각 책의 내용을 충실히 소개할 뿐 아니라, 상식을 뒤흔드는 촌철살인 역시 야무지게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77개에 달하는 알찬 서평은 저마다 다루는 내용도, 꺼내드는 질문도 제각각이라 독자가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결국엔 하나로 수렴한다는 사실이다.

이정모가 전하려는 이야기는 간단하다. 과학은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과학이란 무엇인가?) 사실 인간은 그리 합리적이지도 않고, 복잡한 현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다.(파수꾼의 딱따기 소리) 그런 주제에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은 큰지라 과학자든 교회학교 교사든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될 걸 이상한 설명을 갖다 붙이기 일쑤다.(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생각하는 방식으로서의 과학이 중요하다. 그 어떤 사실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되, 어디까지나 주어진 자료를 근거로 이야기한다.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되, 모든 걸 다 설명하겠다는 오만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만 예정된 파국을 그나마 슬기롭게 해쳐나갈 수 있다. 유머와 위트 사이를 도도히 흐르고 있는, 저자의 일관된 주제의식이다.

저자에게 개인적인 고마움을 전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책에서 과학책에 대한 서평이 아닌 글이 딱 한 편 있으니, 바로 나는 오늘도 주례사서평을 쓴다이다. 자신이 책의 장점만을 다룬 주례사 서평을 쓰는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 글은, 역시 주례사 서평을 지향하는 내게 너무나 큰 위안을 주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남의 장점을 잘 보는 사람은 단점 역시 귀신같이 알아챈다. (일단은 내가 그렇다!) 이정모 역시 웃으면서 뼈 때리는 몇몇 구절들로 미루어 볼 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눈물콧물 쏙 빼놓을 신랄한 비판을 퍼부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주례사 서평을 고집하는 이유는, 시간과 지면의 한계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나마 좋은 과학책을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사람들은 요즘 정말로 책을 읽지 않는다. 글을 통째로 외우던 음유시인들이 금속활자의 등장과 함께 사라져갔듯, 종이책 읽는 사람들도 유튜브로 인해 멸종해버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어나 일어,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 화자라면 더더욱!

현실이 이토록 처참한지라, (번역서를 포함해) 한국어로 쓰인 괜찮은 책은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설령 책에 사소한 단점이 있다 해도 일단 사람들이 읽어야 이에 대해 얘기라도 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일단은 책이 널리 읽히는 게 먼저다. 책의 단점은 내게 개인적으로 질문이 들어올 때 얘기해줘도 늦지 않다. 요즘 들어 내 서평이 지나치게 호평 일색은 아닌가싶어 고민스러웠는데, 저자 덕에 확실히 마음을 굳혔다. 앞으로도 열심히 주례사 서평을 써서, 언젠가는 역사책은 처음입니다만이라는 제목으로 주례사 모음집을 퍼내겠다! 물론 그때까지 한국 출판시장이 버텨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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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서점기행 (보급판)
김언호 글.사진 / 한길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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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벌레를 자임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인생서점한 곳은 있기 마련이다. 나에겐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책을 고르던 공손서점과 대학생이 된 지금 종종 들르곤 하는 홍익문고가 바로 그곳이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해 빠르면 당일에도 받아볼 수 있는 오늘날 구태여 서점을 찾는 이유는, 서점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끈따끈한 신간의 제목을 훑노라면 왠지 지()의 최신 트렌드를 꿰뚫은 기분이고, 이름 모를 책에 푹 빠져있는 누군가의 모습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단골들의 취향을 꿰고 있는 서점 직원과의 수다도 빠질 수 없다.

서점이 선사하는 이러한 즐거움은 그러나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서점 자체가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신촌의 랜드마크이자 수많은 대학생의 안식처였던 홍익문고는 2012년 신촌 일대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며 철거위기에 놓였다. 다행히도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헌신적인 지원으로 홍익문고는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 위세는 예전 같지 않다. 게다가 홍익문고는 서점이 곧 건물주인, 굉장히 예외적인 사례다. 남의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절대다수의 서점들은 시민들이 채 손을 쓸 틈도 없이 쫓겨나고 말았다.

서점에게 미래는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는 세계 각지의 서점을 찾았고, 그 기록을 묶어 세계서점기행을 냈다. 저자는 유럽과 미국, 동아시아의 서점들을 순례하며 여전히 꿈틀거리는 인문정신의 생명력을 느낀다. 800년의 세월을 품은 고딕성당을 개조해 만들어진 네덜란드의 도미니카넌 서점, 수많은 예술가를 키워낸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1989년 톈안먼 광장의 자유·저항정신을 이어가는 베이징의 완성서원, 어린이와 여성, 환경을 귀히 여기는 세상을 꿈꾸는 도쿄의 크레용하우스까지, 세계의 서점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책읽기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책과 서점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저자가 찍은 서점들의 사진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으리라.

물론 현실은 녹록치 않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독립서점 미드타운 스콜라를 꾸려가는 에릭 파펜푸세와 캐서린 로런스 부부가 건네는 이야기는 짧지만 뼈가 있다.

독립서점은 대를 이어 운영하기가 쉽지 않아요. 정신노동이자 육체노동이거든요.”

그렇다, 서점운영은 육체적으로 매우 고될 뿐 아니라 정신을 좀먹기까지 한다. 특히나 지금처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현실에선 더더욱! 지식을 얻는 수단이 문자매체에서 영상매체로 옮겨가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책을 펼치기보다는 유튜브를 검색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무턱대고 서점 문을 닫지 말라고 부탁할 수도 없다. 인문정신의 토양인 서점을 지켜나갈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뜬금없겠지만, 서점을 좀먹은 정보통신기술이야말로 결국 서점을 되살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김언호 대표가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한 정보통신기술이 서점을 되살린다니,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힌 도미니카넌 서점을 폐점위기에서 구해낸 것도 4000명 넘는 페이스북 회원들이었다. 뉴욕의 맥널리 잭슨 서점이 제작해주는 나만의 책은 구글에 의해 데이터베이스화되어있고 말이다.

1997, 프랜시스 케언크로스는 거리의 소멸이란 책에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이 얼굴을 맞댈 필요성을 사라지게 하리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클릭 한 번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음에도 굳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오프라인은 굳이 따지자면 대체재라기보다는 보완재다. 나 역시 SNS를 통해 새로 나온 책이나 유명 저자의 강연회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한다. 한길사가 운영하는 인문예술공간 <순화동천>이나 과학전문서점 <갈다>, 인문사회서점 <니은책방> 또한 인터넷 공간을 통해 저자와 독자의 만남을 주선하고, 각종 강연과 전시를 홍보하고 있다.

오늘날 서점이 처한 현실은 분명 좋지 않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점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방법은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타듯 온라인을 이용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과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

상하이의 명문서점 지펑을 창립한 옌보페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서점이란 시대정신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공간이다. 서점이란 태생적으로 시민사회다.”

서점은 본래 출판사이자 살롱이었고, 사람들은 이 복합적인 문화공간에서 온갖 불온한 생각을 공유하고 연대의식을 키워갔다. 옌보페이의 말마따나 서점은 고립적인 개인과 경직된 국가사이에 놓인, 자유롭고 비판적인 시민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매개였다. 근대의 도래와 함께 사회 각 분야가 전문화되며 서점은 순수하게 책만을 파는 공간으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를 내다보는 지금, 서점은 오히려 출판사이자 살롱이었던 옛 시절을 적극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우리에겐 여전히 서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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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
이영석 지음 / 아카넷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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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한 한국인 작가가 영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을 티비 프로에서 털어놓아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런던을 여행하던 작가는 90세가 넘어 보이는 영국인 노부부에게 유창한 영어로 길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노부부는 작가의 친절에 고마워하며, 글쎄 이런 질문을 던졌단다. “영어를 참 잘 하시네요. 동방식민지(Oriental Colony)에서 오셨나요?”

작가는 순간 머리가 띵했지만, 시골에서 올라온 노부부가 지난 50년간 세상이 변한 걸 모를 수 있겠다싶어 다시 친절하게 자신은 미국에서 유학했다고 얘기해주었단다. 그러자 노부부는 이번에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럼 서부식민지(Western Colony)에서 오신 건가요?” 누가 봐도 일부러 던진 말이었다.

작가가 허언으로 유명한 사람이라 100%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위의 일화는 한국인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식민지의 상처를 안고 있는 입장으로서 그네들의 오만이 눈꼴시럽지만, 한편으로는 전 세계를 발밑에 둔 양 의기양양한 그 자신감이 부럽기도 한 것이다. 내가 곧 세계요, 보편이라는 저 여유야말로 진정 제국의 품격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영국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전혀 제국답지 못하다. 외국인 들어오는 게 싫다고 기껏 EU에서 나가기로 해놓고는, 3년이 지나도록 어떻게 나갈지를 합의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며 옥신각신하는 의원들을 보노라면 저곳이 진정 의회민주주의의 본고장인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영국인들은 자신감 넘치는 코스모폴리탄이라기보다는 두려움에 떠는 촌뜨기 같고 말이다. 제국의 위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영국은 세계를 호령하던 대제국에서 보잘것없는 섬나라로 되돌아간 것일까?

영국사 연구자인 이영석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전 세계 사람들을 자기네 식민지인으로 생각하는 오만한 영국도, 외국인에 의해 영국다움이 상처를 입을까 불안에 떠는 영국도 다 제국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의 책 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이 주목하는 건 바로 영제국의 이러한 복잡함이다. 영제국을 만든 건 체계적인 계획이나 앵글로색슨의 위대한 사명이 아니라 우연하고도 정치적인 일련의 사건과 계기였다. 세계각지에 산재한 제국의 신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방대한 네트워크에 몸을 맡겼고 말이다.

저자는 영제국의 형성과 팽창, 해체의 과정을 꼼꼼하게 추적하는 한편, 제국의 경험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인다. 책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부분은 1<19세기의 유산>이다. ‘신사 자본주의재정-군사국가라는 키워드로 영제국의 형성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생적인근대화에 실패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산업혁명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강한 로망을 품고 있는 듯하다. 산업혁명이라는 빅뱅은 서구세계에 미증유의 풍요와 가공할 파괴력을 선사했으며, 비서구가 끝내 서구에 굴복한 이유 역시 산업혁명의 유무에 기인한다는 게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의 생각일 것이다.(심지어는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역사만화가 굽시니스트조차 이러한 산업혁명 이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일군의 연구자들은 산업혁명이 과연 혁명이라 불릴 만큼 급격한 변화였는지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새롭게 산출한 거시경제지표에 따르면 산업혁명기의 경제성장률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낮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산업혁명기에도 여전히 전통적 부문이 경제를 주도했고, 새로운 발명과 기술혁신은 전통의 바다에 떠다니는 한 작은 근대적 부문에 불과했다고 일갈한다.(자세한 내용은 이영석의 삶으로서의 역사를 참고하길!)

산업혁명이 그렇게까지 혁명적이지 않았다면, 영제국의 팽창을 가능케 한 요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바로 대토지를 소유한 젠트리(신사)의 이윤추구였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영형 부농의 범주에 속할 영국의 젠트리는 일찍부터 자본제적 지대를 바탕으로 부를 축적했다. 이들은 시장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불려갈 줄 아는 탁월한 자본가였지만, 끝까지 일상적인 노동세계를 멀리하고 여가와 아마추어 정신을 중시했다. 이처럼 근면한 노동이나 적극적인 기술개발이 아니라, 자본의 투자와 임대수익으로 부를 일구는 경제활동이 바로 신사 자본주의(Gentlemanly Capitalism)’.

16세기 이래 상업적 농업의 발전과 17세기말~18세기 초 일련의 금융혁명을 거치며 귀족과 젠트리는 이전보다 더 막대한 부를 쌓아갔다. 여기에 런던 상인과 금융가들이 합세하여 영국에선 지배적 자본가 집단으로서 신사적 자본가층이 등장한다. 이들 신사적 자본가층의 주된 투자처는 당시 밥 먹듯이 전쟁을 벌이며 재정-군사국가의 길을 걷고 있던 영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였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며 기존의 재정-군사국가는 과도한 재정지출이라는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세기 중엽까지 글래드스턴주의로 알려진 일련의 재정건전화 정책이 실시된다. ‘글래드스턴주의는 국채 시장을 축소하고 연줄을 이용한 사업을 어렵게 했다는 점에선 신사적 자본가층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국내에서 껀수를 찾을 수 없게 된 신사적 자본가층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백인 자치령에 대한 투자를 시작으로, 런던의 금융자본가와 투자자들은 정교한 상거래 기법과 견고한 화폐제도를 무기삼아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해갔던 것이다.

이처럼 신사적 자본가층의 활약에 힘입어 영국은 제국으로 도약했고, 그 형태는 청나라나 오스만 튀르크 등과 달리 광대한 대양을 잇는 네트워크에 가까웠다. 케이프타운, 지브롤터, 수에즈 운하, 아덴, 싱가포르, 홍콩, 밴쿠버, 포클랜드 등 세계의 주요 해양거점이 영국의 손아귀에 있었다. 이 전 지구적 연결망의 중심인 런던은 식량과 고업 원료의 중계지로서, 세계 투자 자본의 처리기지로서 은행·투자·해운·해상보험·도매무역·중개업 등 무수한 서비스 부문을 창출했다. 제국의 엔진은 세계의 공장맨체스터가 아니라 세계의 상점런던이었다.

그러나 면이 아닌 점과 선의 연결을 통해 느슨하게 유지되는 제국의 지위란 근본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존 다윈이 적절히 지적했듯, 19세기 영제국의 평화와 번영이란 수동적인 동아시아, 유럽 대륙의 세력균형, 그리고 강력하면서도 비호전적인 미국이라는 절묘한 국제정세 속에서나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실제로 독일이 유럽의 균형을 무너뜨리려 할 때, 미국이 넘치는 에너지를 바깥으로 발산하려 할 때, 일본이 영국의 주니어 파트너라는 수동적 지위에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영제국의 지위는 크게 흔들렸다.

한때는 영제국 팽창의 원동력이었던 신사 자본주의 역시 20세기에 들어와선 외려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품위 넘치는 젠트리의 이상에 집착했던 기업가들이 테일러주의나 포드주의로 상징되는 미국의 새로운 생산방식을 받아들이기 꺼려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들 대다수가 가족기업 형태로 운영되었기에 전문 관리자층을 양성하거나 기술교육을 제도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고도 인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을 보전했던 영제국은, 1956년 수에즈 위기를 기점으로 급속히 해체되고 만다. 그나마 대륙의 프랑스나 포르투갈과 달리 질서 있는 퇴진이었다는 점이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랄까?

영국인들에게 제국의 해체는 식민지배라는 죄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찬란한 옛 영광과의 쓰라린 작별이기도 했다. 이 복잡 미묘한 감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제국의 경험이 역사연구의 주제로 진지하게 다뤄지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역사가의 전문적인 분석이든 개인의 미시적인 기억이든 간에 영제국에 대한 인식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데이비드 캐너다인은 영제국이 인종적으로 불평등하다기보다는 신분적으로 불평등한 제국이었다고 지적한다. 영제국의 지배자들은 복잡하고 중층적인 자국의 신분체계를 식민지의 사회위계와 직접 연결시켰다는 것이다. 영국의 귀족과 젠트리는 백인 노동자보다는 인도의 제후에게 훨씬 친밀감을 느꼈고, 이들 식민지 토착세력에게 각종 칭호를 수여함으로써 제국의 정체성을 공유했다. 캐너다인은 이러한 경영방식을 장식주의(ornamentalism)’라고 부르는데,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을 의식한 표현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례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19세기의 역사가 존 실리는 미국과 러시아 같은 대륙세력에 맞서 영제국을 연방연맹으로 재편할 것을 부르짖었지만, 연방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백인 자치령뿐이었다. 인종주의자 실리는 인도가 영국과 문화적 공통성이 없기에 대영국에서 배제되는 편이 낫다고 단정 지었다. 비단 백인자치령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 이들이야말로 외국인에 의해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잉글랜드의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한국에도 북조선 여성에게서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난 누이의 모습을 보았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남성분들이 계시니 원!) 누군가에게 영제국의 구성원은 어디까지나 백인뿐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영제국은 다인종 귀족들이 지배하는 코스모폴리탄적 제국이었던 한편, ‘잉글랜드다움을 숭상하는 백인만의 제국이기도 했다. 이 복잡하고 모순적인 네트워크의 일부였던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종, 젠더, 신분, 계급에 따라 제국을 다르게 이해하고 기억했을 터다. 하지만 책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부족하다. 물론 저자의 말마따나 영제국의 경험과 기억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상상해 본다. 스스로를 인도를 다스리는 마지막 영국인이라 생각했지만 동시에 열렬한 내셔널리스트였던 자와할랄 네루에게 영제국은 무엇이었을까? 전형적인 영국식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면서도 (그것이 독재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을지언정) ‘아시아적 가치를 신봉했던 리콴유는? 아니 이런 엘리트들 말고, 보다 평범한 사람들은 어땠을까? 가령 1963년 이후 케냐 정부의 아프리카화정책으로 영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인도계 아프리카인들 말이다. 스코틀랜드나 웨일즈처럼 브리튼인이지만 잉글랜드인은 아니었던 사람들, 퀘벡의 프랑스어 화자들, 평생 고향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잉글랜드의 시골뜨기까지, 영제국의 기억은 어쩌면 사람 수만큼이나 다채로울지도 모르겠다.

지난 1, 저자는 페이스북에 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을 끝으로 새로운 주제를 찾아 자료를 모으고 학술논문을 쓰는 작업은 이제 그만두겠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역시 아쉽다. 이 책은 그간 저자가 걸어온 여정의 화려한 피날레라기보다는, 이어질 연구의 위대한 서막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제국의 형성과 팽창, 해체를 꼼꼼하게 분석한 이 책을 주춧돌삼아 본격적으로 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을 탐구해주십사 부탁드리는 건, 아무래도 너무 무리일까? 글쎄, 20대 젊은이를 겸허하게 만드는 저자의 성실함과 학문적 열정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 한 작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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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책할까요 - 내 인생에 들어온 네 마리 강아지
임정아 지음, 낭소(이은혜) 그림 / 한길사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 웹툰을 훑다보면 단연 눈에 띄는 건 이전보다 확연히 증가한 반려동물 웹툰이다. 푸들과 동거하는 만화, 개와 고양이가 말을 안 들어서 주인을 노곤하게 하는 만화, 개를 낳은 만화 등, 네이버만 해도 반려동물을 다룬 웹툰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스러울 정도다. 흥미로운 점은, 수많은 반려동물 웹툰들이 하나같이 한 생명과 함께 사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변훈련이나 예방접종 같은 사소한 일부터 노화와 죽음까지, 웹툰에서 묘사되는 반려동물과의 삶은 (비록 유머러스하게 포장될지언정) 수고와 고통의 연속이다. 도서관에 눌러앉은 길고양이에게 가끔 닭가슴살이나 건네주는 나로서는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던가 하고 놀랄 때가 많다. 하긴, 한 생명을 책임지는데 힘들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출간된 임정아의 우리 산책할까요역시 함께 사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스패니얼 잡종인 까미와 하얀 푸들인 바람이와 샘이, 그 자식인 별이까지, 네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한 저자의 30년 여정은 우리의 생각처럼 몽글몽글한 핑크빛으로 가득하진 않다. 오히려 실수와 좌절, 고통의 연속이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자가 처음부터 강아지들에게 좋은 반려인이었던 건 아니다. 까미의 출산이 임박했을 때, 1회 광주비엔날레와 단풍이라는 유혹을 떨칠 수 없었던 저자는 까미를 집에 두고 훌쩍 남도여행을 떠나버린다. 차가운 부엌 바닥에서 끙끙대던 까미는 끝내 문살을 부수고 안방으로 들어와 새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에서 별이를 키울 때는 별이가 짖지 못하게 하려고 전기충격을 주는 짖음 방지기를 사기도 했고, 성대 제거 수술을 위해 동물병원 진료까지 받기도 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 실수의 연속이다.

그래도 깨지는 만큼 단단해진다고, 저자는 실수를 통해 점차 헌신적인 반려인으로 거듭난다. 특히 앞을 보지 못하는 바람이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저자의 모습은 경외감이 들 정도다. 물론 저자도 사람인지라, 바람이를 매일같이 산책시키고 혹 어디 부딪힐까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다. 오죽하면 , 힘들어. 너무 힘들어하고 한탄까지 하겠는가.

하지만 강아지를 돌보며 저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기도 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동생 생각에 슬퍼하던 저자는 자신의 눈물을 핥아주는 샘이 덕에 기운을 차린다. 별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저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으로 좇아간다. 마치 화가가 꼼꼼하게 모델을 관찰하듯이 자신을 지켜보는 별이에게 저자는 애틋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할 만큼, 강아지들은 저자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저자는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리고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강아지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던 것이리라. 살날도 얼마 안남은 개 그냥 보내주는 게 어떠냐는 주위의 참견에 저자가 저 애들이 어렸을 때 저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었어요. 이젠 제가 돌볼 차례죠라고 차분히, 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하는 장면은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사랑은 어렵다. 눈이 보이지 않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듯 조심스럽고 수고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상대방이 내게 선사하는 기쁨과 설렘, 경이로움 역시 그로 인해 마음 졸이고 고생하는 시간이 있기에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사랑의 어려움이야말로 기쁨이요, 행복이다. 예쁜 모습에 혹해 무턱대고 입양한 강아지를, 고작해야 베란다의 허브를 물어뜯는다는 이유로 과수원 하는 친척집에 보내버리는 사람들에게 저자가 건네는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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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 하는 일본 -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
요나하 준 지음, 최종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장담컨대, 이 책을 펼친 당신은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이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도 그럴 것이, 도쿄대학 학사/석사/박사라는 엘리트 코스를 거친 저자는 시종일관 독자를 무시하고 이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저자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허무맹랑할 수가 없다. 글쎄, 세계 최초로 근세(Early Modern)’를 맞이한 지역이 중국 송나라란다.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이야기한 역사의 종언이란 다름 아닌 전 세계의 중국화라니,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역사학의 최신 성과랍시고 자랑스레 떠벌이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그야말로 으앙 울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 오만하고 불친절하며 허무맹랑한 책이 일본에서 30만 부 이상 팔려나갔으며, 도쿄대학 구내서점에서 판매율 1위를 기록했다면 믿겠는가? 게다가 미야지마 히로시와 박훈 등 저명한 동아시아 연구자들이 하나같이 이 책에 놀라움 섞인 호평을 내리고 있다면? 어떤가, 속는 셈 치고 한 번 읽어보고 싶지 않은가? 그래서 책 제목이 뭔지 뜸 들이지 말고 말하라고? 바로 요나하 준의 중국화하는 일본이다.

중국화하는 일본이란 제목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이 책의 내용은 일본이 중국에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종속되고 있다는 일본 넷우익의 주장과는 백만 광년정도 떨어져 있다. 그렇다고 전쟁 안하는 시대를 예찬하고 유라시아를 주유하는 모 선생님처럼 나이브한 중국예찬론으로 기울지도 않는다. (혹 오해를 살까봐 말해두는데, 나는 이 분을 세간의 평가에 비해선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요나하가 이야기하는 중국화, 일본사회의 존재방식이 중국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요나하는 그간 일본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인 근세(Early Modern)’가 실은 전 세계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근대의 전반기라 이야기한다. 근세가 처음으로 도래한 지역이 바로 송나라 시대의 중국이며, 이 때 도입된 사회체계가 오늘날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그럼 송나라 이래 이어져온 중국사회의 존재양식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요나하가 생각하는 중국화란 쉽게 말해 경제와 사회는 철저히 자유화하되, 사람들의 생각만큼은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국화된 세상에선 정치와 도덕이 일체화되어 있기에, 보편이념에 의거해 최고지도자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보편이념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또한 사회는 일체의 중간단체 없이 최고지도자와 무수한 개인만으로 이루어진 소용돌이형으로 재편된다.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 출세할 수 있지만, 동시에 굶어죽을 자유 역시 부여받은 개개인은 조금이라도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넓고 얕은인적 관계를 맺는데 몰두한다.

이 중국형 사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만약 중국형 사회라는 낯선 존재에게서 내가 사는 사회의 향기를 느꼈다면, 당신은 꽤나 촉이 좋은 사람이다. 요나하는 197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기실 전 세계의 중국화에 불과하다고 일갈하기 때문이다. 2019년의 한국은 너무나도 모범적인신자유주의 국가이므로, 우리가 중국형 사회에 기시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정말로 세계가 중국화했다기보다는 요나하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중국화라는 개념을 연상한 것이겠지만, 일단은 못 본 체 넘어가주기로 하자.

그런데 이 도도한 중국화의 물결을 꿋꿋하게 거스르는 국가가 딱 하나 있으니, 바로 일본이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끄트머리에 외따로 자리한 일본은 감히역사의 필연이자 보편인 중국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에도시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독자적인 사회체계를 건설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일본형 사회는 중국형 사회와는 정반대로 굴러간다. 정치와 도덕은 분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직함과 실권이 일치하지 않는다. 사회는 수많은 중간단체로 구성되어 있어 박스의 집합 같은 느낌을 준다. 개인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지만, 평생 자기 신분을 벗어날 수 없다.

요나하는 중국화 세력과 일본화 세력의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이 일본의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두 세력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서로가 꿈꾸는 세상이 너무나 다를 뿐 아니라, 각각이 완결된 정책 묶음이기 때문이다. 각 사회는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지만, 만약 양자를 종합해 장점만을 취하고자 할 경우 외려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마치 커다란 멜론이 포도처럼 풍성히 열리기를 기대하며 두 과일을 조합했지만, 실제로는 작은 포도가 멜론처럼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호시 신이치의 단편 리온처럼 말이다. 요나하는 이를 부론(일본어로 포도와 멜론의 합성어)’이라고 부르며, 그 대표적인 사례로 쇼와 전기의 일본과 북조선을 꼽는다.

요나하의 주장은 척 보기에도 문제가 많다. 사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오로지 중국화와 일본화라는 이항대립으로만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지 않은가! 가령 요나하가 중국 역사에서 일본형 사회를 건설한 둘 뿐인 시기로 꼽은 명나라와 마오쩌둥 시대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살펴보자. 두 사회 모두 상업을 억제하고 농본주의 정책을 폈다는 점에서는 에도시대 일본과 유사하다. 하지만 에도시대와 달리 명나라와 마오 시대의 중국은 최고지도자인 황제와 주석이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또한 두 사회는 모두 보편이념을 내세워 개개인의 생각을 강하게 통제했을 뿐 아니라, 이를 자국 밖으로 전파하기까지 했다. 명대 동아시아에선 조공-책봉관계로 상징되는 전형적인중화질서가 가장 안정적으로 작동했으며, 마오 시대의 중국 역시 제3세계의 맹주로서 수많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을 이끌었다. 쇄국정책으로 일관한 에도시대 일본과는 달랐다. 명나라와 마오 시대의 중국은 일본형 사회라기보다는, 요나하가 부론이라 이야기한 쇼와 전기의 일본이나 북조선에 훨씬 가까웠던 것이다.

명나라는 대략 300년 좀 안 되는 기간 동안 존속했고, 북조선 역시 미국의 고사작전에도 아직까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명나라나 마오 시대 중국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인민의 정신과 물질생활 모두 강하게 통제했던 조선왕조는 무려 500년을 이어갔다. (요나하는 조선왕조를 전형적인 중국형 사회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자신의 분석을 엄밀히 적용한다면 부론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니깐 쇼와 일본과 조선이라는 부론은 썩 바람직하진 않을지언정 나름대로 안정적인 체제인 것이다. 물론 부론의 안정성을 인정하는 순간, 중국화와 일본화라는 이항대립은 설명력을 잃는다.

이처럼 요나하가 제시한 중국화-일본화의 이항대립은 조선왕조의 사례만 거론해도 크게 흔들릴 만큼 불안하다. 곳곳에 오류와 억지, 비약이 가득한 허점투성이의 책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허점들이야말로 중국화하는 일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숨구멍이다.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채겠지만, 정작 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데는 애를 먹는다. 요나하가 만든 모델이 성기긴 해도 꽤나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요나하의 도발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다른 책들을 읽어갈 수밖에 없고, 그의 모델을 완전히 부정하기보다는 보완하고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나의 경우는 앞서 조선왕조를 근거로 요나하가 부론으로 이해한 사회체계가 실은 꽤나 안정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화-일본화라는 모델 자체의 부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중국화와 일본화라는 두 점으로 이루어진 선분 위에 조선화(쇼와화나 북조선화로 치환해도 무방하다)라는 점을 찍어 삼각형을 만드는 식으로 기존 모델을 보완한 것에 가깝다.

서울대학교의 박훈 교수 역시 중국화-일본화라는 요나하의 모델이 공업화와 대의제 의회, 민주주의와 같은 근대적요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요나하의 작업이 유럽중심주의 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시도라고 평가하며, 이를 보완하여 군현사회(중국화)’봉건사회(일본화)’라는 독자적인 모델을 제시한다.(박훈, 봉건사회’ - ‘군현사회와 동아시아 근대시론(試論), 동북아역사논총57, 2017)

굳이 요나하의 모델을 수정·보완하려 애를 쓰지 않더라도, 중국화하는 일본이 선사하는 즐거움은 무궁무진하다. 예컨대 한국의 역사를 중국화-일본화의 도식으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은 1971년의 제7대 대통령 선거는 일본화()와 중국화()의 역사적 대결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선거에서 승리한 박정희는 이후 쇼와화(유신체제)의 길을 걸으며 몰락했고 말이다. 이처럼 중국화와 일본화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이 채워나갈 여지가 많은 매력적인 모델이다. ‘역사덕후들이라면 열광해 마지않을, 흥미롭지만 결코 만만치는 않은 장난감이라고나 할까?

중국화하는 일본은 오랫동안 일본사회를 지배해 온 편견에 대한 미러링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근대 이후 일본의 지식인들은 아시아에서 오직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발견혹은 창조하는 한편, 중국을 아시아적후진성과 낙후성, 저발전을 상징하는 집합체로 전락시키는데 골몰했다. 좌와 우를 막론한 많은 일본인들이 자기네 나라가 전 아시아를 지도해야 할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말이다. 일본의 리버럴 세력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였던 애정과 존경 역시, 그가 일본의 학생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빼놓는다면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요나하가 중국화하는 일본을 퍼낸 2011,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전대미문의 대재앙이 발생했다. 그러나 국가는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기는커녕 문제를 더 키워놓을 정도로 무능했다. 영원히 누릴 것만 같았던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라는 지위 역시 중국에게 빼앗겼다. 요나하의 말마따나 일본인은 갑작스레 풍요롭고 행복한 일본의 종언에 직면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지속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자명해졌다. 하지만 정작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이 암담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요나하는 그간 일본 지식인들이 애용해온 일본과 중국의 이항대립이라는 틀을 반전시킨다. 일본을 특수후진의 자리로 떨어뜨리고 중국을 보편선진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비록 중국일본이라는 구분을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요나하의 파격은 분명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어주었으리라고 확신한다.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상대방이 실은 나보다 훨씬 앞서있었다는 이야기만큼 확실한 충격요법은 없기 때문이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와 시험을 통해 인격자를 등용하는 과거제, 어느 것이 더 나은가?”라고 거침없이 질문하는 저자의 과격함은 분명 많은 독자들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나하의 도발은 역덕에게는 흥미진진한 지적 자극이요, 일본인에게는 차분한 성찰의 촉매이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풍요로운 오류황폐한 진실보다 소중할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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