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행복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는 세계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그 행복이 진짜 행복인지, 다른 이들의 삶을 모를 때만 가능한 우물안 행복인지 비교체험하러 찾아 나선 사람이 있다.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 아니리라. 자신이 행복에 대하여 어떤 의문도 갖고 있지 않다면 '1년의 시간,10개의 나라,수만키로미터의 거리!'를 헤매일 필요가 없었으리라. 부제처럼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가 딱 들어맞는 이상한 기행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는 모처럼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지은이의 세계일주는 행복한 것이었다는 이야기? !
 
 하지만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어떤 사람이 행복한가가 아니라 어떤 곳에서 무슨 이유로 행복을 느끼는가다.  ( "1.네덜란드"에서 ) (29)
 
 정말, 우리는 어떠한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 걸까? 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무런 갈등없는 하루, 개인적인 부채도 국가의 문제도 모두 없어진 상태라면 내내 행복해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 글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을 들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 가장 큰 것같다. 소시민인 지금은. 결국 상황에 따라 행복의 가치기준은 변한다는 이야기? 그러하리라. 그래서 '행복'에 관한 '모순' 같은 이야기를 우리는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들 중에는 자살률 또한 높은 곳이  많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답변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세속국가다. 아, 이것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힘이 센 나라인 미국은 행복히라는 측면에서는 결코 초강대국이 아니다. 미국보다 더 행복한 나라가 많다. (31) 
 
 그렇지만 미국은 불행한 국가는 아니다. 적어도 이 책에 등장하는 '몰도바'처럼.. 어느정도의 경제적인 자립이 믿받침되면서 내부 원주민들의 강한? 결속력이 있는 땅에 사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행복함을 이 책은 보여준다. 네덜란드나 스위스보다는 부탄이나 아이슬란드인들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리라. 특히 정신적인 공동체 - 종교 또는 민족 - 의식이 강할수록 더 행복한 것 같다.이 책에서 만나는 10개의 나라중에서는  '국왕께서 친히 국민의 행복지수를 챙기신다'는 '부탄'이 가장 행복한 나라처럼 보인다. 
 
 정부는 이제 전 국민에게 의료 서비스와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부탄은 세계 최초의 금연국가다. 담배 판매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이 나라에는 군인보다 승려가 많다. 이 나라의 변변찮은 군대는 부탄 최대의 주류 제조원이다. ( "3.부탄"에서 ) (96) 
 
 주요한 모든 것이 무상으로 제공되고 군인들이 전쟁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주류를 제조하는 나라,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도 함께 외쳐본다. '전쟁 대신 술을 만들라'(96)!고.
 
 책에 등장하는 지은이가 가서 생활해본 10 곳 중 '몰도바'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행복하다고 평가되는 나라/도시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없이 살아도 행복을 충분히 느끼는 '부탄','태국','인도'같은 동쪽 나라들이 맘에들지만 지금 당장 선택하여 살 수 있다면 재미가 좀 덜하더라도 '스위스'나 '카타르'에 가서 있는자의 여유를 누려보고 싶기도 하다. ㅎㅎ 아니면 마리화나도 맘대로 피운다는 '네덜란드'는 어떨까? 결국 '몰도바','영국','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경제적인 여유만 된다면 다 괜찮다는 이야기이다.  
 
 10개 나라에서 지은이가 경험한 이야기들은 아래의 인용문으로 어설프게나마 요약될 수 있다. 정리를 하다보니 1,3,5,7,9 번째 나라들이 조금 더 따뜻하고 행복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한 번 만나보시라.
 
 네덜란드인은 무슨 일에도 관용을 베푼다. 심지어 비관용에도 관용을 베푼다. ~ 베호벤의 연구는 관용을 베푸는 사람들이 대체로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1.네덜란드"에서 ) (36)
 
 스위스인들은 가늘고 긴 삶을 산다. 그들은 남을 다라 행동하면서 만족한다. ~ 스위스인들은 어떤 것을 가리켜 경이롭다거나 굉장하다는 표현을 쓰는 일이 없다. 그냥 'cest pas mal'이라고 말할 뿐이다. 나쁘지는 않다는 뜻이다. ( " 2.스위스"에서 ) (55)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의 행복을 믿지 않습니다. 모든 행복은 관계 속에 있어요. ( "3.부탄"에서 ) (115)
 
 카타르에서 중요한 것은 규칙이 아니라, 규칙 준수를 요구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느 점이다. ( "4.카타르"에서 ) (189)
 
 어둠과 싸우지 말고 끌어안아요 ( "5.아이슬란드"에서 ) (218)
 
 신뢰 부족이 바로 몰도바가 불행한 이유 ( "6.몰도바"에서 ) (290)
 
 태국 사람들은 일어난 일을 그냥 받아들인다. ~ 이번 생에서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항상 다음 생이 있고, 다음 생에서도 일이 잘 안 풀리면 또 그 다음 생이 있다. ~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 "7.태국"에서 ) (348)
 
 영국인에게 인생에서 중요한 건 행복이 아니라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다. ( "8.영국"에서 ) (363)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안돼요.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어야 해요. 생각을 많이 할수록 행복이 줄어들 거예요. 행복하게 살고, 행복하게 먹고, 행복하게 죽으면 돼요. ( "9.인도"에서 ) (444) 
 
 우리는 지금 상당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도, 항상 내일이면 더 행복한 곳, 더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탁자 위에 꺼내놓고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절대 어느 한 가지에 마음을 완전히 쏟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건 위험한 짓이다. 항상 한 발을 문 밖에 놔둔 상태로는 어떤 장소도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 "10.미국"에서 ) (468)
 
 차근차근 지은이를 따라다닌 행복 찾기 여행에서 내가 만난 것은 역시 마음의 평화가 우선이며 그 평화는 각각의 사회가 갖고 있는 '포용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비슷한 관습적인 계급제를 유지하고 있는 인도와 카타르 중에서 인도가 더 행복한 느낌을 주는 까닭이 거기 있으리라. 자, 그러면 돌이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도대체 행복이 무엇인지,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저네들처럼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는 나라에서, 정부마저 국민의 행복을 방해하는 나라에서 어찌 살아야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지, 우리 모두 생각해보자....답을 찾기는 힘들지라도...쩝...
 
 행복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어깨에 내려앉는 나비와 같다. (400)
 
2008.11.13. 밤, 종부세, 휴지조각이 되어 날라간….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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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의 시 149
허연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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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를 소개할 때, 가끔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50대의 몸과 40대의 나이와 30대의 지식, 20대의 열정 그리고 10대의 꿈을 지니고 있어 스스로도 헷갈린다고…. '소년'은 내게 이처럼 이루지 못한 꿈과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젊은날을 추억케하는 낱말이다. 그리고 여기, 그 '소년이 서 있다.' 지나간 시간을 거스르며 인정하기 싫어하며 툴툴거리며 나랑 같은 나이인 시인이 '결국 범인(凡人)으로 늙어'감을 '다행'스러워하며….
 
  처음 만난 시인이지만 나랑 같은 연배라 그런지 그의 투덜거림이 너무 정겨웁게, 오롯이 내게 다가온다.
 
 고양이와 나는 평범했다. (11)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15)
 내게 세상은 빙하시대입니다. (16)
 나는 외로웠다. (17)
 어차피 내 손목이나 내 사랑은 안중에도 없었다. (20)
 
 시집의 도입부에서부터 쏟아지는 말들은 그가 세상을, 스스로를 어찌 바라보는지 쉽게 깨닫게 해준다. 한마디로 재미없는 세상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만한 한 가지는 매 행마다 꼭 따라다니는 '~다.'라는 단정적인 말투이다. 마침표까지 꼬박꼬박 붙여가며 힘주어 그는 말한다. 
 
 난 천성이 도 닦을 놈은 못된다. 버틸 뿐이다. (22)
 
 나 역시 그러하다. '버팅기는 삶'이란 표현은 나도 즐겨쓰는 말이다. 그래, 그의 말처럼 '안된 일이지만 청춘은 갔다'(24)  그리고 그는 몰락한 이념의 시대를 씹어댄다. 그만큼 그 이념에 목매달아 했었다는 이야기이리라.
 
 신념이 필요없는 이유는 충분하다 (31)
 세상은 뒤집어지지 않았다 (33)
 아무렇지도 않게 / 모두 다 바다 위를 걷는다 / ~
 여기선 나만 / 바다 위를 걷지 못한다  (34)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이야기 하지 않아도 다 아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은 갔다. 하지만 아직 희망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기에 그는 위의 말들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 노래한다.
 
 강물만 봐도 좋은 날이 있었는데
 낙이 사라져 간다
 늘 죽어야 하는 이유만큼 살아야 하는 이유도 있었는데
 시에는 더 이상 쓸 말이 없고
 아픈 다리를 끌고 가는 세월이 
 회식과 실적과 고지서 같은 것들에
 걷어차이며 몇 번을 주저앉는다  
 ("생태보고서 1"에서)  (41)
 
 정말 바라만 봐도 좋은 날들이 있었는데 갈수록 힘들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일까? 시절이 어수선 할수록 우리가 찾아 돌아가는 곳은 옛날의 추억 속이다. 그렇지만, 그 추억은, 
 
 사랑을 빨아올리고 혁명을 빨아올리던 잎의 기억, 아무도 쉽게 죽지 않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시름시름 말랐다. 몇은 쉽게 죽기도 했지만 그래도 잎이었던 그날이 아득한데 다들 서걱거린다. 서걱거리기만 한다. ( "서걱거리다" 에서 ) (42)
 
우리 삶은, 그의 말처럼 '서걱거리기만 한다'. 그리고 '서 있는 자리가 바뀌지 않는 이상 / 죽어도 구원은 없다'(46). 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48)  그래, '흔적은 그렇게 오래간다'(81)
 
 '혁명이나 사랑이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려야 할 나이'(82)가 되었지만 시인도 나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밥'이라는 말, 한 마디로도 울 수가 있다.
 
 세월이 가는 걸 잊고 싶을 때가 있다.
 한 순간도 어김없이 언제나 나는 세월의 밥이었다.
 찍소리 못하고 먹히는 밥.
 한순간도 밥이 아닌 적이 없었던
 
 돌아보니 나는 밥으로 슬펐고,
 밥으로 기뻤다.
 밥 때문에 상처받았고,
 밥 때문에 전철에 올랐다.
 밥과 사랑을 바꿨고,
 밥에 울었다.
 그러므로 난 너의 밥이다.
 *"밥"  (73)
 
 그는 그냥 '소년'이 아니라 '나쁜' 소년이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몸을 맡기고 그냥 묻혀 살아가기를 거부하는한. 나, 역시 그러하다. 하여 그는 '진짜 사랑'을 이렇게 노래한다.
 
 미성숙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 모든 씨앗과 열매를 포기하는 것. 죽을 이유가 충분한 것 그것이 사랑이다. ~ 그들의 사랑은 이념처럼 변덕스럽지 않다. (69)
 
 그리고 이 시집에 눈에 띄는 부분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시의 배열 순서다. 통상적으로 연작시의 경우 1,2,3 ~ 이런 식으로 순서에 맞추어 소개되지만 시인은 그마저도 거부한다. "슬픈 빙하시대 1,4,2,5,3" , "생태 보고서 2, 1"  ? 의례적인 관습의 거부, 혹은 자의적인 배열?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시인의 감성이 굳어 있지는 않으리라는, 앞으로도 더, 이처럼 뻗대며 좋은 시들을 생산해내리라는 사실을 읽어낸다면 나의 희망사항일까?  끝으로 "작품해설"에도 마지막에 언급되는 이 시집의 절창을 옮겨둔다. 나 역시 한 편의 詩만 뽑아 소개한다면 이 詩이므로.
 
 
 용달차 기사
 
 말라비틀어진 양배추가 되기 싫은 남자
 용달차를 타고 달린다.
 그가 믿는 건 가족도 아닌 용달차다.
 
 세상과 불화했던
 어느 귀퉁이 하나 성한 데가 없지만
 용달차는 힘이 세다.
 
 한때 잘나갔다던 남자는 이제
 용달차에 울고 웃는다.
 짬뽕 한 그릇 앞에 놓고도
 남자가 예견하는 건 인생이 아니라 용달차다.
 약속 한번 저버린 적 없는 못생긴 용달차다.
 
 툭하면 엔진에서 연기가 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었지만
 용달차는 금방 털고 일어났다.
 
 인생은 늘 용달차보다 하수다.
 
 *(80)
 
2008.11.11. 밤, …나는 '늘 하수다.'..쩝…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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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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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1985년, 대학 1학년....

 

그냥 스무살의 나이, 내가 알면 얼마나 알았고 내가 자라면 얼마나 자랐으랴.

그냥 좀 달라지고 싶었다.

고교생활  3년동안  좋은 친구들을 만난 것 외에 특별한 개성도 재주도 없이 자랐던 나는

돌이켜보니 초중고 12년동안 옳은 별명 한 번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겨우 고3때, 수염 안깎고 좀 터프해 보일려고 꾸지리 해가다닌 탓에 산적,또는 원시인이라는

말을 잠시 듣긴 하였지만 지금도 그 당시의 벗들을 불러 놓고 물어보면 아무도 내 별명은

모를 것이다. 없었으니까...

 

대학에 들어가며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다짐하였고

- 아마도 지그 지글러의 [정상에서 만납시다]를 본 영향도 컷으리라 -

1985년 3월 2일, 입학과 동시에 인사를 나눈 학과 동기들을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다 먼저 손 내밀고 술 먹으러 가자 한 것이 내 삶을 바꿔놓았다.

 

나는 그 날 이후로 과에서 좀 설치는 녀석으로 대우를 받았었고 그 여세를 몰아

특별활동 - 당시에는 써클이라 부르던 - 으로 <극예술 연구회> 동아리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학과 학생회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그때가 1985년 이었다.

 

 

Ⅱ.  그 해 봄날

 

<극예술 연구회>에는 나의 소심한 성격을 바꿔보려고 들어갔는데 과연 도움이 될 듯하였다.

공연준비를 도우며 배우는 것도 있었지만, 학과 동기 선배들과는 또 다른 각 과에서 모인

선배들이 전해주는 매력은 대학생활의 낭만이었다.

특히 무용과 선배들은 당연 선망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결국 연극반, <극예술 연구회>를 한 학기만에 접고 말았다.

까닭이야 여럿 있었지만 공식적인 이유는 "학생회"활동과 병행하기에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이었고  - 사실 힘든 시간들이었다.

1985년~1987년까지 이어진 민주화 운동 속에 당연히 나도 있었으니까 -

속 까닭은  5~6월쯤 진행되던 첫 무대에 설 기회가

심한 사투리 탓에 좌절된 것이었다.

 

이제서야 고백하지만 당시 나는 꽤나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연극에 대한 열정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자신이 무대에 서지 않는 연극은

또 무엇이냐며 비겁하게 줄행랑을 쳤던 것이다.

 

그 날 이후 연극관람은 가급적 자제하였지만 책으로, 극본/희곡으로는 나름대로 열심히

극을 만나곤 하였다. 그래야만 삶의 작은 위로가 될 것처럼 여겨졌기에....

 

 

Ⅲ.  김정환, [햄릿]

 

젊은날 내 가슴을 울리던 시인 중 한 사람이 김정환이었다.

지금도 그의 시집이 내 책장에 몇 권 꽂혀 있고 나는 그의 초기시들 몇 편을

아내에게 연서로 보내기도 하였다.

 

 가을에 - 김정환

우리가 고향의 목마른 황토길을 그리워 하듯이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내게 오래오래 간직해준
그대의 어떤 순결스러움 때문 아니라
다만 그대 삶의 전체를 이루는,
아주 작은 그대의 몸짓 때문일 뿐
이제 초라히 부서져 내리는 늦가을 뜨락에서
나무들의 헐벗은 자세와 낙엽 구르는 소리와
내 앞에서 다시 한번 세계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내가 버리지 못하듯이
내 또한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하찮게 여겼던 그대의 먼지, 상처, 그리고 그대의 생활 때문일뿐
그대의 절망과 그대의 피와
어느날 갑자기 그대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져 버리고
그대가 세상에서 배앗긴 것이 또 그만큼 많음을 알아차린다해도
그대는 내 앞에서 행여
몸둘바 몰라 하지 말라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치유될수 없는 어떤 생애때문일 뿐
그대의 진귀함 때문은 아닐지니
우리가 다만 업수임 받고 갈가리 찢겨진
우리의 조국을 사랑하듯이
조국의 사지를 사랑하듯이
내가 그대의 몸한 부분, 사랑받을 수 없는 곳까지
사랑하는 것은

 

가슴을 때리던 이러한 서정과 변혁의 시대를 노래하던 환희가 어울려 빚어낸

그의 시집 [기차에 대하여](1990)는 아직도 즐겨보는 시집중의 한 권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번역을, 그것도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손을 대어 우리 곁에 다가 왔다.

그냥 [햄릿]이라면 만나지 않았으리라. 읽지 않고도 다 안다고 생각하였기에.

김정환 시인이 새롭게 번역한 [햄릿]은 도대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라는 생각에

선뜻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선명한 붉은색 표지에 간결한 제본, 맘에 들었다. 책을 펼치고 읽어내려가니, 먼저

다가오는 것이 읽는 맛이 까끌까끌 하다는 것.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기존에 보아왔던 번역과는 다른게 읽기가 수월치 않다.

 

그동안 너무 부드럽게 다듬어져온 책들만 보아서인가? 이것 참 만만치 않네 하며 따라간다.

그리고 다시 드는 생각, 허 참, 읽다보니, 대사를 읊조리듯 읽고 있다. 물론 속마음으로이지만...

 

하지만 네 아버지도 아버지를 잃었음이니,

그 아버지는 또 그 아버지를 잃었고, 살아남은 자는

자식된 도리로 얼마 동안

순종의 슬픔을 치러야 하는 법. ( "1막2장"에서 ) (21)

 

따라가며 나도 마치 연극 속의 배우가 된 듯 하다.

그리고 이 대사가 특히 가슴에 와닿은 것은

마침 이 대사를 읽기 시작할 때쯤 친한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리라.

 

김정환의 번역은 글을 글 자체로만 훑고 지나갈 수 없도록한다.

그래서 극의 효과를 올리도록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그의 시를 읽고 있을 때처럼...

 

죄지은 자 미치게 하고 죄 없는 자 간담을 서늘케 하리.

모르는 자 어리둥절케 하리. 그리고 정말 당혹케 하리. ( "2막2장"에서 ) (83)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마음에 더 숭고한 태도는, 고통으로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디는 것인가,

아니면 무기를 쳐들어 난관의 바다에 맞서는,

그리고, 거부하며 그것을 끝장내는 것인가, 죽는다,잠든다 -

그뿐, 그리고 잠든다는 말이 끝장,  ( "3막1장"에서 ) (89)

 

김정환은 "역자 해설"에서 '셰익스피어 문학은 자연의 비유에서 인간의 비유로 넘어가는

대목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지만, 그렇기 때문에 비유 또한 너무 매끄럽게 다듬지 않았다.'

(212) 고 예기하는데 내가 느낀 껄끄러움이 그 탓이라면 나도 제대로 [햄릿]을 만난 것일까?

 

이야기를 하다보니 또 하나의 고백이 더해진다.

그러고보니 제대로 [햄릿]이라는 책을 만난 적이 몇 번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집에 있는 "동화출판공사"의 70년대판 [세계문학전집]에서 한 번 보고는 이번이 제대로 만난

거의 처음의 [햄릿]이라는 사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지만 뭐, 이런 일이 한 두번 이랴.

 

워낙 유명한 작품들은 마치 다 알고 있고 다 만나본 것 같은데 제대로 만나보면

이번이 처음이라는 놀랍지만 당연한 사실들을 이번에도 경험하는데 아마도 단순히

개인의 기억탓만은 아니리라.

 

우리 주변에 퍼져있는 지식과 추억의 혼재, 특히 내가 잘 저지르는,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사물을,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훈련을 제대로 해보지 않았었기에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처럼 읽지 않고도 다 아는 것처럼 되는 것이리라.

 

결국, 진실을 알고도 복수를 망설이던 햄릿으로 인하여 사건은 더 확장되고

아버지도, 삼촌도, 어머니도, 사랑하는 연인도,그의 가족들도 모두 죽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에 이르러서야 나는 책을 덮는다.

 

우리네 삶에 대한 '난해'함이라고 역자 김정환은 짚어주지만

뭐, 꼭 [햄릿]이 아니어도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이 책에서 만나는 [햄릿]의 고뇌가 갖고 있던 선입견처럼 아주 심각하고

무겁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점에서는 다행이다.

 

이 말은 우리삶의 무게가 그만큼 무거워졌다는 이야기이자,

이 책이 씌어지던 시대로부터 400년이 지난 지금에는

이 정도의 비극은 감내할 수 있다는 무덤덤함이리라.

 

오늘도 우리는 [햄릿]처럼 고뇌하는 삶을 산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모자라게 느껴지는 세상이 되었나보다. 젠장...

 

나는 또 어떤 계기가 오면 오래전 그 날로 돌아가 잊어버린 내 기억의

한 자락을 꺼내어 이처럼 갈무리해둘 수 있을까?

 

2008.10.31.  밤, 흔들리는 가을이다. 그래도 좋다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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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 늦가을 노래

 

  저문 날, 저문 언덕에 서면
  그래도 못다한 것이 남아 있다
  헐벗은 숲속 나무 밑, 둥치 밑에
  스산한 바람결 속 한치의 눈물 반짝임으로
  마지막인 것처럼, 가랑가랑 비는 내리고
  그래도 손에 잡힐듯
  그리운 것이 있다
  살아남은 것들이여 부디
  절규하라 계절이 다하는 어느 한숨의 끝까지
  우리들 사랑노래는 속삭여지지 않는다
  기억해다오 어느 외침의 미세한 부활과
  절망과 거대와
  그리고
  어떤 질긴 사랑의 비린 내음새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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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대학 1 - 어린이들을 위한 교양의 모든 것
울리히 얀센.울라 슈토이어나겔 엮음, 클라우스 엔지카트 그림, 김서정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대학교수님들이 - 물론 우리나라는 아니고 ~ - 아이들을 위하여 특강을 한단다. 그것도 1+2=3 이라는 명백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공룡은 왜 멸종하였을까요?" , "왜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은 부자예요?" , "학교는 왜 그렇게 지겨워요?" 라는 조금 난해하고 선뜻 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하여 '일곱 살에서 열두 살 사이의 아이들' !(10) 에게 이야기를 한다. 지금 뭐하자는거야고 묻고 싶어질 것이다. 아이들이 그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우려는 배우기 싫어하는 우리같은 어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매주 화요일마다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강의실을 채웠고 다들 지식에 목말라하였다는 사실, 놀랍고 또 부러울 따름이다.
 
 '어린이 대학'에서 거둔 가장 아름다운 성과는 아이들이 얼마나 지식에 목말라 하며 오락프로그램 없이도 진지하게 듣는지, 얼마나 놀랍도록 참을성이 많은지 하는 점을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 "처음 열린 '어린이 대학' " 에서 ) (11)
 
 이제 남는 것은 이 강의의 수준이라기보다는 멀리 남의나라에서 진행된 이 기획이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아마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여러 곳에서 이와 비슷한 강의가 진행중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경우의 수가 미미하기에 아직 내가 모르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아이랑 어버이가 함께 와서 듣고 배우며 커가는 사회, 우리에게도 가능하리라….
 
 돌이켜보면 몇 년전부터 "희망의 인문학"이라고 하여 노숙자에게 인문학 강의를 배우도록 하여 삶의 의욕을 고취시키는 '클레맨트 코스'라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진행중인데 이와는 도 다르지만 비슷한 개념이 바로 어린이에게 이와 같은 교양대학을 여는 것이리라. 삶이란 무엇인가, 왜 학교가 존재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린이도 노숙자도 어버이도, 우리 모두에게 당연히 중요하고 필요한 일일테니까….
 
 책에 등장하는 8가지의 이야기 꼭지는 나도 모르는 내용들이 꽤나 되었고 특히 마지막 질문과 답변인 "이슬람교도들은 왜 양탄자 위에서 기도해요?" 부분은 우리가 얼마나 종교의 편향 속에서 살아가는지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한다. 이슬람교도들이 '다섯기둥'(213)이라 부르는 계명도 처음 만난 내용이다.  " 신앙고백 / 기도 / 단식 / 기부금 / 메카 순례 여행 "으로 요약되는 다섯기둥은 신앙고백과 메카 순례를 뺀 나머지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실천하면 좋은 계명이다. 그래, '나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어떤 종교를 믿든 똑같습니다.'(227) 라는 말이 전적으로 옳다.
 
   대학교수들이 들려주는 상세하고 전문적이지만 쉬운 목소리의 이야기와 더불어 충분히 곁들여져있는 보충 자료와 그림들, 그리고 마지막에 더하여져 있는 "어린이 대학 교수님들은 어떤 연구를 할까요?"(229) 에서 만나는 각 학문의 특성과 직업적 전망들까지..알차고 또 푸짐하다. 아마도 그래서 [어린이 대학]이 한 권에서 마무리 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발간되는 것이리라. 하여 이 책은 또 다른 형태의 백과사전으로 가정마다 필수적으로 구비하여 두고두고 보아도 좋은 그런 책이 된다. 다만 끝부분에 '찾아보기'가 있다면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 그럼, 또 질러야 하나? 
 
 어쩌면 우리는 뭔가 다른 방법으로 평등과 정의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를 나누어주고, 그 대신 감사를 받는다는 성 마르틴 원칙이 좀더 적합할지도 모릅니다. ( "왜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은 부자예요?" 에서 ) (95)
 
 
2008.10.24. 밤, '성 마르틴 원칙'의 자세한 내용을 찾아 해메었으나 ~ 
                 어디에도 없군요….궁금합니다…쩝..
 
들풀처럼
 * 이슬람 교도들이 양탄자 위에서 기도하는 이유, 기도하기 전에 신발을 벗는 이유는 바로 순결 때문입니다. ~ 그것은 의식이며, 의미 깊은 행동입니다.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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