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를 소개할 때, 가끔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50대의 몸과 40대의 나이와 30대의 지식, 20대의 열정 그리고 10대의 꿈을 지니고 있어 스스로도 헷갈린다고…. '소년'은 내게 이처럼 이루지 못한 꿈과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젊은날을 추억케하는 낱말이다. 그리고 여기, 그 '소년이 서 있다.' 지나간 시간을 거스르며 인정하기 싫어하며 툴툴거리며 나랑 같은 나이인 시인이 '결국 범인(凡人)으로 늙어'감을 '다행'스러워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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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난 시인이지만 나랑 같은 연배라 그런지 그의 투덜거림이 너무 정겨웁게, 오롯이 내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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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와 나는 평범했다. (11) |
|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15) |
| 내게 세상은 빙하시대입니다. (16) |
| 나는 외로웠다. (17) |
| 어차피 내 손목이나 내 사랑은 안중에도 없었다.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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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의 도입부에서부터 쏟아지는 말들은 그가 세상을, 스스로를 어찌 바라보는지 쉽게 깨닫게 해준다. 한마디로 재미없는 세상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만한 한 가지는 매 행마다 꼭 따라다니는 '~다.'라는 단정적인 말투이다. 마침표까지 꼬박꼬박 붙여가며 힘주어 그는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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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천성이 도 닦을 놈은 못된다. 버틸 뿐이다.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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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그러하다. '버팅기는 삶'이란 표현은 나도 즐겨쓰는 말이다. 그래, 그의 말처럼 '안된 일이지만 청춘은 갔다'(24) 그리고 그는 몰락한 이념의 시대를 씹어댄다. 그만큼 그 이념에 목매달아 했었다는 이야기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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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념이 필요없는 이유는 충분하다 (31) |
| 세상은 뒤집어지지 않았다 (33) |
| 아무렇지도 않게 / 모두 다 바다 위를 걷는다 / ~ |
| 여기선 나만 / 바다 위를 걷지 못한다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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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이야기 하지 않아도 다 아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은 갔다. 하지만 아직 희망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기에 그는 위의 말들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 노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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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물만 봐도 좋은 날이 있었는데 |
| 낙이 사라져 간다 |
| 늘 죽어야 하는 이유만큼 살아야 하는 이유도 있었는데 |
| 시에는 더 이상 쓸 말이 없고 |
| 아픈 다리를 끌고 가는 세월이 |
| 회식과 실적과 고지서 같은 것들에 |
| 걷어차이며 몇 번을 주저앉는다 |
| ("생태보고서 1"에서) (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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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바라만 봐도 좋은 날들이 있었는데 갈수록 힘들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일까? 시절이 어수선 할수록 우리가 찾아 돌아가는 곳은 옛날의 추억 속이다. 그렇지만, 그 추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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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빨아올리고 혁명을 빨아올리던 잎의 기억, 아무도 쉽게 죽지 않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시름시름 말랐다. 몇은 쉽게 죽기도 했지만 그래도 잎이었던 그날이 아득한데 다들 서걱거린다. 서걱거리기만 한다. ( "서걱거리다" 에서 ) (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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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은, 그의 말처럼 '서걱거리기만 한다'. 그리고 '서 있는 자리가 바뀌지 않는 이상 / 죽어도 구원은 없다'(46). 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48) 그래, '흔적은 그렇게 오래간다'(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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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이나 사랑이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려야 할 나이'(82)가 되었지만 시인도 나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밥'이라는 말, 한 마디로도 울 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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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가는 걸 잊고 싶을 때가 있다. |
| 한 순간도 어김없이 언제나 나는 세월의 밥이었다. |
| 찍소리 못하고 먹히는 밥. |
| 한순간도 밥이 아닌 적이 없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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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보니 나는 밥으로 슬펐고, |
| 밥으로 기뻤다. |
| 밥 때문에 상처받았고, |
| 밥 때문에 전철에 올랐다. |
| 밥과 사랑을 바꿨고, |
| 밥에 울었다. |
| 그러므로 난 너의 밥이다. |
| *"밥"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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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냥 '소년'이 아니라 '나쁜' 소년이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몸을 맡기고 그냥 묻혀 살아가기를 거부하는한. 나, 역시 그러하다. 하여 그는 '진짜 사랑'을 이렇게 노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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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성숙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 모든 씨앗과 열매를 포기하는 것. 죽을 이유가 충분한 것 그것이 사랑이다. ~ 그들의 사랑은 이념처럼 변덕스럽지 않다. (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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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 시집에 눈에 띄는 부분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시의 배열 순서다. 통상적으로 연작시의 경우 1,2,3 ~ 이런 식으로 순서에 맞추어 소개되지만 시인은 그마저도 거부한다. "슬픈 빙하시대 1,4,2,5,3" , "생태 보고서 2, 1" ? 의례적인 관습의 거부, 혹은 자의적인 배열?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시인의 감성이 굳어 있지는 않으리라는, 앞으로도 더, 이처럼 뻗대며 좋은 시들을 생산해내리라는 사실을 읽어낸다면 나의 희망사항일까? 끝으로 "작품해설"에도 마지막에 언급되는 이 시집의 절창을 옮겨둔다. 나 역시 한 편의 詩만 뽑아 소개한다면 이 詩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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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달차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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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비틀어진 양배추가 되기 싫은 남자 |
| 용달차를 타고 달린다. |
| 그가 믿는 건 가족도 아닌 용달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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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과 불화했던 |
| 어느 귀퉁이 하나 성한 데가 없지만 |
| 용달차는 힘이 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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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잘나갔다던 남자는 이제 |
| 용달차에 울고 웃는다. |
| 짬뽕 한 그릇 앞에 놓고도 |
| 남자가 예견하는 건 인생이 아니라 용달차다. |
| 약속 한번 저버린 적 없는 못생긴 용달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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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툭하면 엔진에서 연기가 나기도 했지만 |
| 그럴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었지만 |
| 용달차는 금방 털고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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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늘 용달차보다 하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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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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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11. 밤, …나는 '늘 하수다.'..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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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