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을 읽다 - 고전을 원전으로 읽기 위한 첫걸음 유유 고전강의 1
양자오 지음, 류방승 옮김 / 유유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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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의 가장 유명한 정의는 '누구나 알지만 그 누구도 읽지 않은 책' 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읽지 않는 것일까? 인생을 짧고 읽어야 할 책은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똑똑한 호모 사피엔스. 합리적 인간 호모 사피엔스들은 어떤 책을 먼저 읽고 나중에 읽을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이 때 판단 기준을 중요성에 비춰 본다면 반드시 고전을 먼저 읽어야 할 것이다. 사실 그런 책들은 '필독서'인만큼 이미 교육 체계 안에 들어 이고, 공식적인 교육 과정에 따라 누구나 읽게 되어 있다. 그러나 고금의 도믄 교육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교육이 있으면 곧 꾀를 부릴 수 있는 지름길이, 다시 말해 참고서가 있다는 것이다. 고전이 교육 체계 안에 편입되면 어김없이 각양각색의 2차 축약본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느 마음씨 좋은 저자는 당장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다윈을 이해하려고 굳이 500쪽이나 되는 책을 읽어야 하나요? 필요 없습니다. 30쪽이면 충분해요!"라고 말이다. 이 말에 감사하며 우리는 그 30쪽 짜리 소책자를 읽거나, 교과서 안의 '농축된' 30쪽을 읽는다. 그러나 나서 "아, 다윈은 이렇구나, <종의 기원>이 원래 이런 책이었구나!"라고 말한다. - p 25 -  

교육 체계에는 또 하나의 습관이 있다. 학습 단계에 따라 점점 축약이 심해진다. 처음에는 500쪽이 30쪽으로, 그 다음에는 30쪽이 5쪽으로 축약된다.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5쪽 주엥서 2~3쪽만 남고, 초등학교 교과서로 오면 2쪽이 한 문단으로 줄어든다. 우리는 먼저 초등학교 교과서의 그 한 문단을 읽은 뒤, 중학교에서는 2쪽을, 고등학교에서는 3쪽을 읽는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면 깨닫는다. "아, 원래 나는 다윈에 관해 몇 글자밖에 몰랐는데, 지금은 몇 배나 더 알고 있잖아. 이건 틀림없이 내가 다윈을 이해했다는 증거라고."

우리는 스스로 다윈을 읽었고, 다윈이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 - p 26 -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윈하면 떠오르는 단어 두 가지. "적자생존"과 "양육강식" 하지만 최근 리처드 도킨스, 장대익, 스티븐 제이 굴드, 데이비드 버스의 책들을 접하고 진화생물학, EVO DEVO, 진화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학창 시절 거칠 게 배웠던 다윈의 이론이 완전히 잘 못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진화가 곧 진보와 동일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돌이켜보면 과연 고등학교 시절 생물학 선생님은 과연 <종의 기원>을 읽기나 한 것일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아무튼 누구나 알지만(심지어 다윈은 얼굴마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거의 읽지 않은 <종의 기원>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찾았다가 <종의 기원>두께와 무게에 반에 반도 안되고, 책 표지 색깔도 이쁘고, 출판사 이름마저 뭔가 부담 없는(유유!), 하지만 이름은 거의 비슷한 이 해설서를 고른 것은 신의 한수 였다.

하지만 몇 장 넘겨 보다 보니 "에라 근데 강좌의 강의록을 묶어 출간한 이 책도 결국은 해설서란 명분을 달고 있긴 하지만 결국 <종의 기원>의 축약본 아니야"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자는 왜 이 책을 썼을까?(왜 강의를 했을까?)

그 책들은 수강생이 스스로 읽어야 했기 때문에 책에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설명해서도 안 되었다. 내가 제공해야 하는 것은 사상사에 대한 나의 인식에 의거해 왜 그 시대에 그런 책이 나왔는지, 왜 당시에 그런 책과 사상이 주목을 받았는지, 또 왜 그런 책과 사상이 후대까지 살아남아 '고전'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책의 내용은 책 스스로 이야기하게 하고, 나는 그 책과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책 속의 의미를 밖으로 퍼뜨리는 연결고리가 되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책의 논리를 더 쉽고 분명하게 하여 책을 읽는 이들이 책 속에서 더 다윈적으로 다각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덕분에 똑같은 시간으 들여 '고전'을 정독했더라도 그들은 여기서 좀 더 많은 수확을 얻었을 것이다. - p 17 -  


 실제 저자(양자오)는 책에서 진화론의 역사적 배경과 다윈의 가족사를 통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이 출간된 서사를 책의 서두에서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써 다윈의 시대로 독자(수강생)를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저자가 다윈의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종의 기원>을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한다.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저자의 강의 의도/목적을 통해 '좋은 해설서'라는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겠다. 좋은 해결서란 저자 말대로 원전과 독자가 만날 수 있는 연결고리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다. 물론 불가피하게 일부 원전 내용이 실릴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원전과 독대하길 기대하는 독자에게 원전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의도로써 그 역할을 다해야지, 단지 원전의 축약본(Digest)으로 존재한다면 실패한 해설서의 다름 아닐 것이다.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오히려 원전과 멀어지게 만든 "00에 읽는 논어" 류의 책들을 우리는 많이 봐 왔다. 거칠게 말하면 좋은 해설서란 결국, 해설서를 읽자 마자 원전을 구매로 이어지게 하냐 아니냐로 판별할 수 있겠다. 나는 이 책을 읽자마자 동서문화판 <종의 기원>을 구매했다.  


 그 동안 원전의 구매로 이어진 해설서를 돌이켜 보면 위에서 말한 좋은 해설서의 판별법은 얼추 들어 맞는 것 같다. 고미숙의 <열하일기>, <동의보감>해설서, 고병권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등.



 저자 양자오의 다른 저작들을 보니 <꿈의 해석>, <자본론>에 대한 해설서가 눈이 띈다. <자본론>에 대한 해설서는 여러 권 읽었지만 원전은 방대한 분량과 책의 가격때문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오의 해설서를 접한 뒤 나는 <자본론> 원전을 구매할 것인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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