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상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2
박지원 지음, 길진숙.고미숙.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려서부터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에도 그 흔한 어학연수나 워킹 홀리데이 등에 대한 열망에 적었다. 아니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한때 yBa(Young British Artists)에 푹 빠졌을 때는 뱅크시의 Graffiti를 찾아 런던 거리를 헤메고, Tate Modern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회를 보는 상상을 한적은 있었지만, 실행에 옮길 만큼의 절실함은 없었다. 


새로운 것과 낯선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나 동경이 적었던 걸까?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여행 없는 삶에 대해 불만도 없었고 나름 만족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 나니, 나의 정주 관성은 단순히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 부족이나 부재가 아닌 외부 세계에 대한 던져지는 두려움의 발로였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은 집이라는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공간을 벗어나 불확실성에 내 몸을 던지는 행위다. 나의 정주 관성은 예측 불가능한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기존의 세계관/가치관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수동성에서 기인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780년, 부도 명예도 없이 우울한 심정으로 40대 중반을 통과하고 있던 연암 박지원에게 중원대륙을 유람할 기회가 찾아왔다. 삼종형 박명원이 건륭황제의 만수절 축하 사절로 가게 되면서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연암을 동반하기로 한 것이다. 5월 길을 떠나 10월에 돌아오는 장장 6개월 걸친 대장정, 열하일기의 시작이다.  


여전히 오랑캐 '청'이 미개하고 후진적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박지원이었지만, 먼저 청에 가본 적이 있는 '궁핍한 벗' 박제가와 홍대용에게 전해 들은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던 차에 마침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드디어 압록강을 도강하는 배를 탈 때, 연암이 수역 에게 출사표와도 같은 화두를 던진다. 


"자네 길을 아는가(君知道乎)"

 수역 홍명복에게 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시온지?"

"길이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니야. 바로 저편 언덕에 있거든"

"'먼저 저 언덕에 오른다'는 말씀을 이르시는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야. 이 강은 바로 저들과 우리 사이에 경계를 만드는 곳일세.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라는 말이지.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 또한 저 물가 언덕과 같다네.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게 아니라 바로 이 사이에 있다는 것이지."

"무슨 뜻인지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한 법이지. 서양 사람들은 기하학의 한 획을 변증하면서 선 하나를 가지고 가르쳤다네. 그런데도 그 미세한 부분을 다 변증하지 못해 '빛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경계'라고 말했어. 이건 바로, 부처가 말한 '닿지도 떨어져 있지도 않는다'는 그 경지일세.러므로 이것과 저것.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길을 아는 이라야만 볼 수 있는 법. 옛날 장자산 같은 사람이라야 될 걸." - p 52 - 


연암이 말한 길이란 무엇일까? 우리(조선)의 관습, 철학, 가치관과 저들(청)에 대헤 가지고 있는 편견을 뛰어넘는 자유로움과 새로움의 출발점 아닐까?


도강을 하고 봉황산을 지날 때 우뚝 솟아난 산의 형세에 잠시 넋을 놓기도 했으나, 허공에 떠 있는 빛과 기운은 한양의 도봉산이나 삼각산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되놈들이나 사는 시골인 줄 알았던 마을의 북적임과 화려함에 연암은 주눅이 든다. 기존의 청에 대한 편견에 금이 간 것이다.  

등마루는 훤칠하고 대문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거리는 평평하고 곧아서 양쪽 길가로 먹줄을 친 듯하다. 담은 모두 벽돌로 쌓았다. 사람용 수레들이 길을 마구 지난다. 벌여 놓은 그릇들은 모두 그림을 그린 도자기다. 그 모양새가 어디로 보나 시골티라곤 조금도 없다. 예전에 나의 벗 홍대용에게 중국 문물의 거대한 규모와 세밀한 수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중국 동쪽 끝 촌구석도 이 정돈데 도회지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니 기가 팍 죽는다. 돌아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등줄기가 후끈거린다. 순간 나는 통렬히 반성한다.- p 73 -


하지만 여기에서 생각이 그치면 세계 최고의 여행기를 쓴 연암이 아니다. 


장복을 돌아보면 물었다.

"네가 만일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겠느냐?"

"중국은 되놈 나라잖아요. 소인을 싫습니다요."

"맙소사!"

때마침 소경 하나가 지나간다. 어깨에는 비단 주머니를 둘러메고 손으로는 월금을 뜯는다. 나는 크게 깨달았다.

"저이야말로 평등안(平等眼)을 가진 것 아니겠느냐."- p 73 -  


실제 눈으로 보니 더 없이 화려하고 조선을 압도하는 선진화된 청나라에 시기하는 마음과 부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던 연암이지만, 이 또한 청의 겉모습에 지나지 않을 뿐, 청의 진정한 모습은 아니라는 말은 장복이에게 우화적으로 말하며 흔들리는 마음에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한다. 


여행을 떠난 지 보름 가까이 된 7월 8일 연암을 요동 벌판의 지평선에 압도되어 '호곡장론'이라는

빼어난 사유와 이에 걸맞는 명문을 탄생시킨다. 그 동안 조선 땅에서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끝 없는 지평선에 압도당한 연암은 실존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벅찬 감동에 빠져든다.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디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이렇게 외쳤다.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중략)


"이제 이 울음터가 저토록 넓으니, 저도 의당 선생과 함께 한번 통곡을 해야 되겠습니다그려. 그런데 통곡하는 까닭을 칠정 중에서 고른다면 어디에 해당할까요?"


"그건 갓난아이에게 물어봐야 될 것이네. 그 애가 처음 태어났을 때 느낀 것이 무슨 정인지. 그 애는 먼저 해와 달을 보고, 다음으로는 눈앞에 가득한 부모와 친척들으 보니 그 얼마나 기쁘겠는가. 이 같은 기쁨이 늙을 때까지 변함이 없다면, 본래 슬퍼하고 노여워할 이치가 전혀 없이 즐겁게 웃기만 해야 마땅한 것 아니겠나. 그런데 도리어 분노하고 한스러워하는 감정이 가슴속에 가득하여 끝없이 울부짖기만 한단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지. 삶이란 성인이든 우매한 백성이든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또 살아가는 동안에도 온갖 근심 걱정을 두루 겪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스스로 울음을 터뜨려서 자기 자신을 조문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갓난아기의 본래 정이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야.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는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오서 손도 펴 보고 발도 펴 보니 마음이 참으로 시원했겠지. 어찌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저 갓난아기의 꾸임없는 소리를 본 받아서, 비로봉 꼭대기에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 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의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이."


"이제 요동벌판을 앞두고 있네. 여기부터 산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헤 한 점도 산도 없는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야. 이 또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 - p 136 - 


요동을 광활한 평원을 본 연암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태초의 시공간에 들어선 경이로움을 느끼며, 반대급부로 좁디 좁은 조선 땅을 떠올렸을 것이다. 한 바탕 울어볼만하다는 심정의 표현은 그런 존재론적 사자후,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백탑시파의 수장으로 한양에서 박제가와 홍대용, 이덕무 등과 술과 시로 교류한 이곳의 연암과 도강을 거쳐 연경 그리고 다시 건륭제가 있는 열하를 왕복하며 청의 다양한 도시와 사람과 교류한  저곳의 연암은 몸뚱이는 동일한 사람이지만, 그 내면은 천양지차 다른 사람이다. 이곳의 연암이 변방에 갇힌, 편견에 사로잡힌 좁은 의미의 연암이었다면, 길을 알고 길을 건너 저곳을 다녀온 연암을 (물리적/심리적인) 변방을 벗어나, 다시 태어난 연암인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어라"는 임제록의 구절처럼 기존 가치관과 세계관을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 올 초에 읽은 열하일기를 오랜만에 다시 떠올린 건 EBS가 기획한 '김연수의 열하일기'라는 다큐를 보고 나서다. 연암이 거쳐 갔던 도시들의 발자취를 따라 소설가 김연수가 여행하며, 그곳의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고 연암을 흔적을 찾는 서사를 지닌 근사한 여행 다큐다. 말(馬)이 아니더라도 말의 가장 유사한 대체재인 모터사이클를 타고 여행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있지만,여진히 대중적이지 않은 소설가와 누구나 알지만 읽어본 이 거의 없을 고전의 콜라보를 현실화 시켰다는 것만으로도 EBS에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래는 다큐 홍보글인 듯한 EBS 블로그

http://ebsstory.blog.me/22084509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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