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로서 장정일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서평집 <공부>시리즈로 통해 파생된 독서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추천한 책이 실망감을 안겨 준적도 드물었다. 이러한 이유로 시사인에 연재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도 꼼꼼히 챙겨보는 책이다.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 안보>는 시사인 400호에 연재된 독서일기에 소개돼서 읽게 된 책이다. 

장정일은 허울 좋은 인문학 열풍을 비판하며 아래와 같이 일갈한다.

바람직한 사회는 예컨대 천안함-세월호 사건 직후, 거기에 대한 논픽션이 20여 권이나 쏟아져 나오는 사회다. 그 가운데 어느 한 권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술자리 화제가 되고 저녁 9시 뉴스를 열고 닫는 인사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준비된 논픽션 작가가 있어야 하고, ‘쟤들은 문학을 할 능력이 없어서 저런 걸 쓰는 거야’라는 편견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소설보다 논픽션 독자가 많아져야 한다. 그런 뒤에야, 문학 지망생을 경유하지 않고 처음부터 논픽션 작가가 목표인 양질의 논픽션 작가가 나올 수 있다.

논픽션은 민주 사회를 지키는 보루이며, 나아가 공공의 가치를 지키는 데 필요한 무기다. 독서에 진도(進度)라는 게 있다면, 이런 믿음과 상응하는 노작을 검토하고 지지하면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실체와 만나는 것이다.


이런 논지 하에 장정일은 최근에 읽은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 안보>를 추천한다. 진짜 안보를 걱정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대선 불법 댓글 사건의 주범인 국정원과 기무사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은 그들이 벌인 일이 국가 안보를 위한 거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행동은 한낱 조직의 안위에 불과한 가짜 안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북한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는 가짜 보수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MD(미사일 방어체체)나 차세대 전투기 도입사업 등의 막전막후, 동북아 4국의 이해 관계 등을 심도있게 알 수 있는 좋은 읽을 거리였다. 


개인적으론 맨 마지막 챕터인 '한반도 통일, 독일 통일로부터 배운다'가 가장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 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남한과 북한이 통일에 합의한 후 과연 통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북한 정권의 핵심 인물들을 인권유린이나 경제적 몰락의 혐의로 처벌 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문제이며 해결이 쉽게 도출되지 않는 문제인 것 같다. 김정은과 통일에 합의하고, 김정은을 처벌할 수 있느냐의 문제.


 "통일을 대박이다"라는 관념적인 레토릭을 남발하는 대통령의 화두를 미시적으로 하나씩 접근하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미리 차근 차근 준비하지 않으면 통일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관념어로만 남게 될 것이다.  



최근 동북아에선 "OO가 위협이다." "OO가 위협이 아니다"이런 얘기들이 많은데요. 국제정치학에 구성주의라는 이론도 있지만, 결국 위협이라는 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물리적으로 아무리 강해도 내가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있고, 거꾸로 힘은 별로 강하지 않은데 내가 위협으로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인식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거죠. 최근 대표적인 건 결국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겠죠. 중국이 미국이라고 하는 패권국에 도전해서 미국이 만든 기존 질서를 바꾸려고 하는 수정주의 세력이냐, 아니면 현존 질서에 순응하는 세력이냐, 바로 여기에 모든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고요. 이것 때문에 지금 새로운 질서, 새로운 위협이 또 생겨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는 것이죠.(Page 200)

제가 만난 중국의 대다수 정책결정자나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중국은 수정주의 세력이 아니라고 얘기해요. 그러니깐, 그건 미국과 일본, 특히 워싱턴과 도쿄에 있는 보수적인 학자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인벤션(Invention), 창조물이라는 겁니다. 중국 공산단의 가장 큰 목표는 2020년 까지 소강사회 건설, 즉 대다수의 중국 사람들이 유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횔르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 대외적으로 평화관계, 대내적으로 사회조화관계가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Page 201)

일본의 동북아 전문가가 저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 일본처럼 장기불황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과 다른 게 딱 한가지 있다"고요. "그게 뭡니까?"그러니깐 "북한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만큼 나라밖에 있는 경제학자들조차도 한국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유력한 땅이 북한에 있고 북한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으로 가는 길에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이러한 지정학적, 혹은 지경학적 기회 자체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자폐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Page 254)

사실 문제는 뭐냐 하면, 그러한 비전이 이른바 종북, 또 공안통치와는 양립을 못 한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남북긴장과 안보 불안이 조성되어야만 종북몰이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 금강산 관광객이 늘어나고 개성공단이 확장되는 상황에서는 종북공세를 못 하거든요. 그러니깐 국내정치가 결국 발목을 잡는 겁니다.(Page 254)

이와 관련해서 키신저 박사가 한 얘기가 재미있습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작고 약한 나라다. 인구 2000만의 나라를 상대로 해서, 세계 최강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남한까지 있는데, 이걸 외교로 풀 수 없다면 외교라는 것은 그럼 어디다가 쓰는 것이냐?"(Page 258)

`통일 후에 이런 인권 문제 또는 경제적 몰락에 대한 책임자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하는 것은 통일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에 따라서 상당히 차이가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권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기 어려운 것으로, 인권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들을 100% 처벌하기란 사실 힘든 것 같습니다. 독일 같은 경우에는 1990년 통일 직후에 이런 인권 문제 가해자를 처벌하고 과거사를 청산하는 과정이 굉장히 빨리 진행됐습니다. 그러다 보니깐 굉장히 소수의 사람만이 처벌을 받게 됐고 아직까지도 많은 희생자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독일 안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고 사회 전반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조금 미흡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정치인들이 협상하고 문제를 논의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고 사회 전반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Page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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