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문화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 쓴 <윤리21>(2011년, 사회평론)에는 말년의 마르크스가 생각한 코뮤니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서술이 나온다. 

"만약 연합한 협동조합 조직의 단체들이 공동 계획에 근거해 전국적으로 생산을 조정하고, 그렇게 해서 그것을 여러 단체들의 조정 아래에 두며 자본제 생산의 숙명인 끊임없는 무정부와 주기적 변동을 끝내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 그것은 공산주의, 다시 말해 '가능한 코뮤니즘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프랑스 내란]

의회에 의한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했던 말년의 엥겔스와 폭력혁명과 전 생산의 국유화를 주창했던 레닌과는 달리 말년의 마르크스는 진정한 코뮤니즘을 소비-생산협동조합에서 찾았다. 마르크스가 생각한 코뮤니즘이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 연합사회(Association)다. 이러한 소비-생산협동조합의 연합사회가 전 지구로 확대되어 국가를 대체하는(국가가 사멸하는) 것이 코뮤니즘이라고 봤던 것이다. 이는 곧 인간을 생산의 도구가 아닌 주체로 탈바꿈하는 사회를 꿈꾼 것이다. 이는 가라타니 고진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지상명령이 실현된 사회다. 

협동조합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병폐를 극복할 수 있는 소비-생산협동조합이 실제로 구현된 기업 형태다. "협동조합, 참 좋다"는 아직은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를 위해 협동조합의 개념과 세계 각국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와 동시에 국내 협동조합 이야기를 다루고 '어떻게 협동조합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이 함께 담겨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단어인 협동조합(Coperative)이란 과연 무엇인가? 잠시 국제협동조합연맹의 선언문의 정의를 살펴보자.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통해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자율적 단체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문(1985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부분의 기업은 이윤 창출과 이를 통한 주주이익을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다. 직원들의 애사심을 고취시키려 '회사의 주인은 우리다'라는 허울 좋은 구호를 더러 외치게 하는 회사도 있지만, 주식회사에서 회사의 주인은 엄연히 주주다. 이와는 달리 자발적으로 가입한 조합원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율, 독립적으로 소유하는 기업이다. 따라서 이익 또한 주주가 아닌 조합원이 실적에 비례해 배당 받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낯선 기업의 형태지만 유럽에서는 농업에서 금융서비스, 주택에서 건강관리, 소매점에서 재생에너지까지 경제의 모든 분야를 존재하며 큰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성지라 불리우는 이탈리아의 볼로냐만 보아도, 400여개의 협동조합이 활동하게 활동하고,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퍼센트에 이른다. 협동조합 기업의 천국이라 불리우는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은 얼마나 국민의 삶에 밀착되어 있을까?

"20년 가까이 이탈리아에서 산 교민 김현숙 씨에게도 협동조합은 친숙하다. 김씨는 "어디를 가도 협동조합을 접한다. 택시 기사도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한다. 이곳 사람들은 '시장에 간다'는 말 대신 '콥coop  간다'는 말이 입에 붙었다." 라고 말했다. '콥'은 협동조합(코페라테, cooperativa)을 줄인 이탈리아 말이다. 콥은 이탈리아의 매장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다."(page 47)

이처럼 유럽에서의 콥은 생활 속 깊숙히 침투해 있다. 우리에게 알프스의 나라로 알려진 스위스는 '소비자 협동조합의 왕국' 같은 나라다. 미그로와 코프 스위스, 두 소비자 협동조합의 식품시장 점유율은 40퍼센트에 달한다. 소비자 협동조합의 힘이 막강해 일반 기업은 맥을 못 춘다고. 협동조합의 영향력이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한 가지.

"2009년 1월, 스위스의 한 일간지는 스위스 국민 1,000명을 상대로 '스위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을 물었다. 1위는 아인슈타인이 차지했다. 3위는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 4위는 교육학자  페스탈로치, 5위는 적십자 청설자 앙리 뒤낭, 모두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그런데 2위에 오른 인물은 생소하다. 고트리브 두트바일러. 스위스의 협동조합 미그로를 창립한 사업가다. 스위스 국민은 왜 그를 아이슈타인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인물로 꼽았을까?"(page 164)

이처럼 그들에게 협동조합은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한 축인 동시에 윤리의 근간이다. 협동하여 함께 같이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완전히 잊은 듯 개개인이 앞만 보고 달려 왔다. 이제는 유럽의 그들처럼 함께 멀리 가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지금은 낯설지만 협동조합 기업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되는 그날이 온다면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대로 우리는 서로를 목적으로 보는 주체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게 되지 않을까?

"Coop is Hop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