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 전 한 방송비평상을 염두해 두고 쓴 <6시 내 고향> 비평.

남들이 절대 쓰지 않는 특이한 소재라서 마음속으로 가작이라도 기대했건만 보기 좋게 탈락. 이거 
쓰려고 6시 내고향 두 달치는 본 것 같음. 

하지만 내가 지금 봐도 글에 진정성이 안 느껴짐! 우연히 발견한 기념으로 업로드~

 

농어촌당 대표 <6시 내 고향>의 선전을 기대하며

- <6시 내 고향>의 현재 가치와 향후 역할 -

 

 

1. 기자님 ‘드렁허리’를 몰라요?

 얼마 전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검색어 순위에 ‘드렁허리’라는 낯선 단어가 1위에 올라있어 이게 뭘까 하는 호기심에 클릭해 보았다. 곧이어 “희귀 민물고기 ‘드렁허리’ 발견”이란 제목의 기사가 떴다. 내용인즉슨 어른 팔뚝만한 길이의 미꾸라지처럼 생긴 토종 민물고기가 경남 진주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한 촌로는 칠십 평생 처음 봤다며 고개를 내저으며 신기해했다. 그런데 난 뉴스 영상에 나온 드렁허리를 보고 그놈이 어린 시절 논두렁 근처에서 즐겨 잡았던, 그러나 노린내가 나 구워먹지 못해 아쉬워했던 ‘음지’라는 징그러운 놈인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접혀 있던 댓글 주머니를 펼쳤더니, 아니나 다를까 ‘드렁허리’는 내가 알던 충청도의 ‘음지’였고 경상도의 ‘웅어’, 전라도의 ‘드랭이’였다. 댓글을 단 누리꾼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요즘도 논두렁에서 많이 잡혀 전혀 희귀한 물고기가 아니라며 기사를 폄하했다. 그 중 내 눈에 띄는 댓글이 하나 있었다.

“기자야, 드라마만 보지 말고 6시 내 고향 좀 보고 농촌에 관심 좀 가져라”


2. 19년 ‘농어촌당’ 대표 <6시 내 고향>

 드렁허리를 모르는 기자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농어촌과 그 안의 삶에 관심을 끊은 지  오래다. 지난 수십 년 경제성장의 부작용과 피해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우리지만, 속도와 효율성을 여전히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성장을 목표로 향해 눈과 귀를 닫고 전진하고 있다. 느림과 비효율성으로 표징되는 농촌은 그래서 스피드한 우리에게서 비켜나 있다.

 ‘TV’라는 사회에서도 농어촌의 지위는 우리 삶의 그것과 비슷하다. 단시간에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눈물을 쏙 빼고, 욕망을 불살라줄 수 있는 프로그램만이 환영받는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해주는, 도시적 욕망의 언저리에 있는 프로그램이 TV사회에서 주류가 된지 오래다. “속도와 자극만이 살 길이다”라는 모토를 성공적으로 주입시키며 그 세력을 점점 확장해 나가고 있다.

 쾌락적 욕망만을 재생산하는 주류에 대항하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1991년 5월 이후 ‘농어촌당’을 이끌어 온 <6시 내 고향>이다. TV사회의 비주류로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6시 내 고향>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이제, 다소 촌스럽지만 한번 빠져 들면 나오기 힘든 이 우직한 프로그램의 매력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3. 다양한 장르의 혼재, 이게 진짜 버라이어티다

 매일 아침 피곤에 허덕이며, 경쟁에 뒤쳐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도시인에게 고향의 포근함과 느림의 미학을 전해주는 <6시 내 고향>은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단지 <6시 내 고향> 안에 포근함과 느림만 존재했다면 19년간의 방영이 가능했을까?  과연 무슨 매력이 있기에 19년이란 장시간 동안 사랑을 받아온 걸까?

 <6시 내 고향>은 어느 프로그램도 따라올 수 없는 가치 있는 정보와 내용을 풍부한 장르로 녹여내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1) 내 안에 ‘News’ 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6시 내 고향>의 주된 내용은 지역 내 특산물과 먹을거리 소개이다. 근래 신설된 수많은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전혀 ‘New’하지 않은 음식점 홍보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재, <6시 내 고향>은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하고 신선한 정보를 전달한다.

 매주 월요일에 방송되는 ‘고향식객’은 각 지방에서 전래되어 오지만 이제는 사라져가는 전통 먹을거리를 소개하는 코너다. 지난 4월 6일 자 이 코너에 소개된 ‘연사자반’은 찹쌀을 삭혀 반찬으로 만드는 전남 남원에서만 유래되어 오는 음식으로 만드는 데만 한 달이 걸리는 우리 고유의 슬로우 푸드이자 로컬 푸드다. 4월 2일 자 ‘건강이 탱클탱클’ 코너에 소개된 충남 청양의 ‘맥문동’이라는 약초 역시 <6시 내 고향>이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없는 특산물이었다. 그 이름마저 직설적인 월요일 고정 코너 ‘고향 늬우스’는 사소한 것 같지만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는 읍 ․ 면 단위의 뉴스를 전달하며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재미와 지역 정보를 동시에 전달해 준다.

 이뿐만 아니라 친환경 농법으로 키운 참외(4월 7일 자) 등과 같은 내용은 농어민들의 실질적인 소득증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영농정보이다. 이는 특산물 정보를 얻는 도시인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넘어 농어민을 위한 정보 제공 프로그램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처럼<6시 내 고향>에서는 9시 뉴스에서는 볼 수 없는 지역 공동체 뉴스가 담겨 있고, 사라져 가는 우리 특산물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로컬 푸드에 대한 정보가 듬뿍 담겨 있는 ‘6시 News’다.


 2) 내 안에 ‘연예오락’ 있다

 무엇보다 <6시 내 고향>의 핵심은 재미다. 억지웃음은 찾아볼 수 없다. 코너 시작 전 책읽  듯 대사를 읊는 지역주민들의 어색한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천진한 웃음을 유발한다. 개그맨 유재석의 순발력에 비견되는 김종하, 배동성, 이병철 리포터의 능청스러움과 지역주민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친화력은 <6시 내 고향>을 그 어떤 오락 프로그램보다 더 유쾌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와 더불어 ‘장터 청백전’, ‘활력충전 9988’ 등의 코너에서 보여 온 매끄러운 구성력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볼 수 있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으로서 손색이 없다.

 특히, 지역 시장을 돌며 시장 상인들의 재능과 끼를 엿보는 ‘장터 배 장사대회’는 <전국노래자랑>에서도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이 시장 상인들의 활력과 더해져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취지를 그대로 살린 ‘활력충전 9988’은 부부간, 이웃간 화합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게임을 선보이며 건강한 웃음을 유발한다.


 3) 내 안에 ‘시사교양’ 있다

 <6시 내 고향> 안에는 역사 다큐가 있었고, 자연 다큐가 있었으며, 가슴 찡한 휴먼 다큐도 존재했다. 경북 예천 석동영 소나무(4월 2일 자)는 비록 한 그루의 나무지만 상속받은 토지면적이 6,600제곱미터에 달해 세금도 내고 지역 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연을 가진 기이한 소나무이다. 이와 같은 향토역사를 소개함으로써 <6시 내 고향>은 거시적인 역사는 아니지만 점점 잊혀져가는 지역 내 향토역사의 정보를 전달하는 문화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각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 숲길과 그곳의 풍광을 고스란히 전달했던 ‘강산별곡’, 가슴 아픈 사연을 가졌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 고향 희망가요> 등의 코너는 신선한 정보와 재미를 넘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4) 어디에도 없는 ‘공동체’가 있다

 갈수록 개인화되는 도시 사회에는 거의 사라져버린, 하지만 여전히 농어촌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공동체의식이다. 이는 농어촌을, 아니 우리 사회를 현재까지 있게 한 가장 큰 원천이자 에너지이다. 공동체란 무엇인가? 바로 관계의 힘이다. 예전부터 우리 고향마을에는 공동체가 살아 있었고, 이 상호부조 덕분에 먹을 게 부족해 힘든 시절에도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보리를 얻어먹을 수 있는 옆집 갓난이네가 있었고, 가족이 아니어도 선뜻 모내기를 도와주었던 윗동네 개똥이네가 있었다.

 <6시 내 고향>에는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와 같은 우리 고향마을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전통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가덕도의 숭어들이 잡이(4월 9일 자)를 할 때는 조명을 비춰주는 사람과 몸을 부대끼며 망을 끌어올리는 여러 마을 사람들이 필요하다. 절대 혼자 할 수 없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공생해야만 가능한 작업방식인 것이다.

 <6시 내 고향>에서 다뤄지는 수많은 코너들의 기저에는 ‘공동체’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집단의 ‘정’이란 가치 말이다.


4. 지속가능한 우리 고향을 위하여

 1) 대표님에겐 ‘생태적 감수성’이 부족해요

 이처럼 <6시 내 고향>은 여전히 공동체가 살아 있고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흥과 활력이 넘쳐나는 농어촌의 포근한 모습을 충실히 전달해왔다. 이로 인해 심신에 지친 우리 도시인들에게는 큰 위안과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6시 내 고향>에 비춰지듯 우리의 농어촌은 따뜻하고 아름답기만 할까? 그렇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속도’와 ‘성장’이라는 주술과 망령이 농어촌 구석구석까지 깃든지 오래다.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매끈한 특산물을 생산하고, 작농 기간을 단축시켜 소득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성장 단계별로 수많은 농약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논밭이 파괴되고 있으며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식물은 죽어가고 있다. 우리 시골의 풍경은 ‘발전이 덜된 지역’으로 등식화되어 지역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6시 내 고향>에서는 이렇게 파괴되고 변해가는 농어촌 현실은 찾아 볼 수 없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어떤 코너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6시 내 고향>의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는 기본 제작방침 중 한 가지가 “농어촌의 현안과 변모하는 모습, 바람직한 발전방향 제시”다. 이 제작방침처럼 미래지향적이며 지속가능한 농어촌을 원한다면 농민들에 의해 벌어지는 농촌 내 환경오염 문제, 지역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파괴되어 가는 농어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이 <6시 내 고향>에는 필요하다. 이는 곧 파괴되어 가는 우리 농어촌 현실에 눈 감지 않고, 누구의 편도 아닌 자연의 편에 선 ‘생태적 감수성’을 가진 프로그램으로서의 역할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2) ‘농어민을 위한’ 공약을 보여주세요

 농어업이 직업으로서 매력을 잃은 지는 오래며, 농어촌에 가면 60~70대 노년층이 마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이제 그다지 새롭지 않다. 끈끈했던 공동체 의식 역시 예전 같지 않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20~30년 후의 우리 농어촌은 자취를 감추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지금 농어촌은 생존이라는 심각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6시 내 고향>의 임무가 더욱 막중해지는 이유다. 도시민을 위한 향수자극 프로그램을 넘어 농어민을 위한 대안제시 프로그램으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농어촌의 적나라한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지역 농어업이 발전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느슨해진 공동체 회복을 모색해야 한다.

 대안 제시는 단순히 농어촌이 잘 살 수 있는, 소득증대를 위한 정보제공의 차원에서 그쳐선 안 된다. 유기농법을 토대로 어떻게 하면 농업을 발전시키고, 지역공동체를 활용하여 어떻게 하면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지 ‘how'에 대한 답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 제작진은 전문가들과 머리를 싸매고 심도 높은 토론을 거쳐 다방면으로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농업전문가, 생태학자, 농민이 함께 주체가 되어 진행하는 유기농 농법교육 코너, 지역 특산물의 효율적 유통판로 개척을 위한 유통전문 코너, 지역관광 상품 개발을 위한 컨설팅 등의 전문 코너가 필요할 것이다. 

 느슨해진 지역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여전히 끈끈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는 마을 소개 코너, 지역 내 갈등을 찾아 해결을 모색해주는 ‘공동체 회복 프로젝트’ 코너 등이 그 예다. 

 <6시 내 고향>은 농어촌을 떠난 도시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젠 농어민의, 농어민에 의한, 농어민을 위한 프로그램으로서의 역할강화가 필요하다. 농어민이 잘 살고 행복할 때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도시민 또한 위안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시민을 위한 프로그램과 농어민을 위한 프로그램 사이의 역할갈등을 끝내야 한다.

 이처럼 <6시 내 고향>은 사라져가는 우리 농어촌의 복원을 목표로 실현가능한 ‘공약’을 제시할 수 있는 농어촌 전문 프로그램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현재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19년 ‘농어촌당’ 대표 <6시 내 고향>이 유일해 보인다. 대표님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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