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중들에 의해 자유주의자라 불리우는, 혹은 스스로 자유주의자연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정확히 10년 전만 해도 고종석은 강준만씨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 자유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한 마디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십대 초반 여느 대학생이 그렇듯) 굶주린 늑대마냥 제 입맛에 맞는 이데올로기 혹은 정념의 고기 덩어리를 찾아 이리 저리 방황 하던 나 또한 그의 명성을 듣고 <서얼 단상>, <코드 훔치기>등의 저서를 찾아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20대의 젊음은 경사 15도의 완만한 개혁이 담긴 철학에는 만족하지 못했고 경사 90도 이상의 급진적이고 자극적인 그런 이념들을 설파하는 지식인에 더 끌렸다. 그렇게 내 기억속엔 "바른 말을 하는 언어학자 출신 고종석"은 한켠으로 퇴장하고 말았다.  

그렇게 근 10년이 흘렀고, 나는 그 누구 못지 않게 10도 이하의 지극히 평범한 이념적 각도, 그 언저리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10년 전 그대로) 여전히 경사 15도의 완만한 개혁적 철학을 지닌 고종석의 소설을 손에 들었다. 

나의 이념적 각도는 급격하게 하강했고,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딱 그 자리에 존재했다. 나는 변해있었고, 그는 한결 같았다.  

그의 한결 같음에 나는 부끄러운 동시에 반가워 어쩔 줄 몰라했다. 여전히 그는 박학다식했으며, 한국에서 자연언어를 가장 잘 쓴다는 문장가라는 상찬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문체는 담박하고 유려하다.  

소설 <독고준>은 기자 출신이자 언어학 박사인 고종석의 역사에 대한 비평(혹은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팜플렛이라고 할수도 있겠다)이자, 책에 대한 서평인 동시에,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그의 이러한 견해를 표현하긴 위한 형식에 불과하다. 소설 속 독고준의 딸인 "원"도 사실은 독고준(혹은 저자인 고종석)의 글들은 갈무리하고 보충해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에서 눈에 띄는 건 시대적 사건(역사)대한 저자의 정치적 견해와 수많은 문학 작품(특히 시가 많다)에 대한 서평들이다. 이 둘이 고종석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두 가지 키워드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고종석은 그 어떤 지식인보다 정치적이지 않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을 억압하고, 집단적 정념과 사상을 강요하는 지리멸렬한 시대가 그의 정치적 견해를 발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적으로 문예학 사전에서 '소설'을 "산문 형식으로 쓴 긴 분량의 허구적인 이야기"라고 정의한 그 '소설'과는 어느 정도 구분되어 진다. 

또 다른 정체성인 <언어학자>로서의 고종석의 모습은 시, 소설, 철학에 조예가 깊은 소설가 <독고준>으로서 발현된다. 김수영, 한택수부터 로맹가리, 사르트르 심지어 유시민, 진중권까지. 그의 독서 편력은 글로 표현되는 모든 장르에 관심의 안테나를 드리운다. 그리고 서평을 통해 전달되는 깊이있는 통찰력까지. 문학가로서의 고종석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이번 소설은 단지 소설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아깝다. 한때 유행했던 단어인 종합 예술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해 보인다. 오랜만에 맞딱드린 고종석은 변함이 없었고, 여전히 그의 문체는 간결했고 핍진성이 뛰어났다. 

p.s : 궁금한 점 혹은 흥미로운 점은 소설 속의 대부분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반면, 강준만 선생은 왜 현우림이란 가명으로, 그리고 오규원 시인은 오서경이란 이름으로 등장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들과 친분이 있는 작가의 언어유희일까? 뭘까?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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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2-06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을 읽고 있어요 반갑네요 ㅋ

서재를 둘러보니까 저랑 비슷한 시기에 알라딘을 시작했군요

묘한 친밀감이..... 아무튼 이 리뷰 보니까 저는 이렇게 촘촘하고 좋은 감상문

쓸 자신이 없어지네요 ㅎㅎㅎ

에로틱번뇌보이 2010-12-1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매버릭꾸랑님~ '독고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리뷰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