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라는 잡지를 통해 이 둘의 글들을 처음 접했을 거다. 김규항의 글이 절제된 감정 속의 비장함을 드러냈다면,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풍자와 해학을 잃지 않았던 것이 진중권 문체의 일관적인 특징이었다.   

 

 

 

 

 

 

 

 

 문체는 달랐지만 보다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의 글은 20대인 나에게 사회의식과 비판의식을 동시에 길러 준 주역(?)이었다. 세월이 지나 어느 새 68운동의 주체들이 "30이 넘은 사람들은 믿지 말라"던 그 삼십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매일 <아웃사이더>가 아닌 이들 각자의 블로그를 통해 <비장함>과 <풍자>의 담긴 글을 읽으며 현실에 분노하는 동시에, 미래를 위해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 이들이 자신에게 할애된 지면을 통해 논쟁을 시작했다. 진보신당의 미래와 정체성에 대한 김규항의 한겨레 칼럼(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25949.html)이 계기였다. 김규항은 칼럼을 통해 진중권의 정치 성향(진정한 변화를 이룰 뜻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자)을 언급하며 이들의 대중성이 역으로 진보신당의 정체성에는 해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 한국사회에 몇 안되는 진보정당인 진보신당의 위기에 대한 우려와 대중성 프레임이 갇히지 않고 그들만의 정체성이 필요하다는 충고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며칠 뒤 진중권이 씨네 21 칼럼(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3029&article_id=61413)을 통해 자신과 진보신당에 날 선 펜 끝을 세운 김규항 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 부었다. 다양한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진보신당 당원들에 동일한 정체성과 동일성을 강요,규정하는 김규항의 칼럼은 너무나 복고적이며,  이러한 강요 자체가  진보신당의 당원들에 가하는 폭력이라며 논쟁에 불을 붙혔다. 

이러한 진중권의 논박이 일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지방선거에서의 진보신당의 승리, 노회찬의 승리, 심상정의 승리를 위해 밤낮 없이 뛰어다니던 자신과 진보신당 당원들의 노력에 대한 격려는 커녕 선거 참패라는 결과만을 보고 애매호모해진 정체성이 진보신당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비판하는 김규항의 글에 화나 날 만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진보정치가, 진보신당이 대중성과 정체성의 줄타기에서 그 어느 쪽으로도 제대로 도달하지 못해 선거에 참패한 것은 현실이자 사실이다. 수년 째 제기되어 온 진보정치의 위기는 MB 정권이 들어선 후 더 심각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 정치의 성공과 미래를 위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칼럼을 통해 드러낸 김규항의 글은 과연 비판 받아야 될 글인가? 이런 글 쓰기 자체가 지식인의 책무 아닐까? 

물론 이러한 글 쓰기 내용에 대한 반론과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논쟁 자체는 발전적인 담론 형성과 대안 도출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론은 반드시 <논쟁>의 형식을 띄어야 한다. 이러한 논쟁의 제 1 철칙이 있다면 성질을 배제한 언쟁의 형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규항의 말대로 '의견'이 아닌 '성질'을 드러내면 이미 글은 논쟁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중권의 반박 글은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으며, 그 중 악질 중의 악질인 '인신 공격'이라는 폭력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합리적인 논쟁이 사리지게 만들었다. 사람이 너무 센치해지는 새벽에 글을 썼는지 자신의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감정을 적나라하게 배설했다.  

진보정당의 미래를 점치고 논할 수 있는 오랜만의 좋은 논쟁거리가 그만 진중권의 '감정 배설'로 인해 끝나고 말았다. 진중권의 완패. 물론 이와 상관없이 김규항이 블로그를 통해 대응을 한다고 하니 한번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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