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처럼 한바탕의 여름 꿈 같았다. 단 하루짜리 휴가 얘기다. 월요일 하루 낸 휴가 가지고 뭘 그러냐는 핀잔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2010년이 절반이 다 지나도록 연차 하루 사용하지 못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나에겐 월요일 휴가 하루가 완소 그 자체다.
휴가를 내면 꼭 해야겠다는 To Do List가 있었다. 크게 두 가지. 우선 밀린 독서 하기. 가만 보자. "나는 언제 읽어 줄거니?" 하고 책상 옆에 나를 미치도록 원하는 책이 13권 정도다. <한국 문단사>는 지난 2월에 읽기 시작해 아직도 마무리 짓지 못했으며, 삼두근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팬이 되겠다며 구매한 <가면의 고백>도 5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먼지만 쌓여간다. 그 외에도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인생>, <테러리즘, 누군가의 해방 투쟁>, <어젯 밤>, <계급>, <발터 벤야민>, <녹색평론 5,6월 호>, <안나 카레니나>, <러시아 혁명> 모두 독서 중이다. 언뜻 나루케 마고토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의 정언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권 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많은 대기자들이 나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습기 가득한 방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To Do List의 다른 한 가지는 지루하고 비루한 회사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취미 찾기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취미는 크게 세 가지. 하나는 야구, 하나는 단편 영화 제작, 다른 하나는 독서 클럽 만들기다. 야구는 가입할 클럽을 찾아봐야 했고, 단편 영화 제작은 영화 제작을 배울 수 있는 미디어센터(미디액트 등이 있겠다)의 강좌 일정 및 가격 등을 알아봐야만 했고, 마지막으로 독서 클럽을 만들기(혹은 활동하기) 위해서는 개설 장소(네이버 카페, 다음 카페 등) 및 커리큘럼을 구상했어야 했지만, 역시나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노트북 앞에서 무언가를 찾아보고 작성하기엔 아직까지 그만큼의 열정도 없었고, 역시나 무더위가 너무 심했다.
일단 영화관을 찾기로 한 이유는 단지 더위를 잊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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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람을 포함한 오늘의 스케줄은 대략 이랬다.
1. 종각역 하차, 인사동으로 향함.
2. 인사동 야구 연습장에서 야구 한판 : 나오는 공의 갯수가 늘어난 대신 가격이 정확히 100% 올랐다.
3. 인사동 오락실에서 총 싸움 한판 : 최근에 게임을 접한 후 흥미를 느꼈지만 역시 못한다. 나는 총과 어울리지 않는 평화주의자.
4. <시네코드 선재>에서 <작은 연못> 예매
5. <시네코드 선재> 옆 테이크 아웃 커피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구매
6. 상영 전 남은 시간 동안 <나는 공산주의자다> 독서
7. <작은 연못> 관람 : 단선적인 줄거리 큰 울림, 배우와 제작진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엔딩 크레딧이 끝나기 전에 단 한명도 자리를 뜨지 않았던 7명의 수준 높은 관람객에 더 큰 존경을
8. 삼청동으로 향해 <아이스크림 와플> 음미
9. 삼청동에서 냉모밀 먹음
10. 계동 골목길 탐방 :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동네다. 내 생명을 연장시켜 줄 수 있을 것만 같이 매력적인.
적고 보니 생각한 것보다 알찼다. 특히 계동 골목길을 휘젓고 다니다 여름 휴가까지 계획했으니 특히나 더. 올 8월 휴가에는 일주일 간 <제주 올레>를 혼자 배낭을 배고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올레가 "차가 다니지 않은 도로에서 집 앞 대문까지 이어지는 작은 길"이라는 뜻이라서. 계동의 골목길을 걸었을 때의 감흥 그 이상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