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운동만큼 전 세계사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영향을 많이 끼쳤던 사건이 있었을까? 68 운동이 벌어졌던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현대 정치, 경제 체계 및 문화는 사실 상 68 운동에서 그 기원을 찾아도 될 만큼 68 운동 사상은 이후 이들 국가 제도와 그 곳 국민들의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68 운동은 1960년대 후반 유럽, 아메리카, 동유럽, 일본 등지에서 권위주의 타파, 기성 질서에 대한 거부, 그리고 새로운 창의성과 상상력의 구호를 내걸고 전개된 역사적 사건을 의미한다.(p.12) 그럼 68 운동의 원인을 무엇이었을까? 그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책 안에 언급되어 있는 68 운동의 원인을 간단히 살펴보면,

첫째, 대학의 문제 - 대학 공간의 협소함, 대형 강의의 범람, 암기와 주입식에 의존하는 교수, 행정의 집중화와 관료주의, 교수와 학생들 간의 위계적 관계, 대학 교원 수의 부족 등에 대한 불만이 학생들 사이에 점점 더 쌓여갔다. 이러한 환경에서 학생들은 대학 생활에서 자유를 느끼기보다는 숨 막히는 타율성을 강요받을 수 밖에 없었다.  

둘째, 세대 간의 갈등 - 경험과 연륜이 되는 사회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구조 속에서 젊은이들은 답답함을 느꼈으며, 기성 세대의 권위주의에 불만이 쌓여갔으며, 이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셋째,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 - 안정과 권위를 주장했던 우파(집권세력)과 유연성이 부족한 좌파에 대한 환멸이 쌓여갔으며, 명분이 없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다. 더 나아가 제 3세계의 해방으로까지 관심을 넓혀 갔다.  

 그럼 68 운동은 어떤 성격을 띄었을까? 

첫째, 68 운동은 지속적인 축제였다. 실제로 1968년 5월 프랑스에서는 수많은 구호와 주장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이 운동은 예전의 가치가 붕괴되고 '포스트 산업' 사회의 서막이 열리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또 이 축제는 엄격한 위계제와 규율에 대한 저항을 그 기치로 내걸고 있었다.  

둘째, 무정부주의적이었으며 초현실주의적 전통에 매우 충실했다. 68 운동에서 학생들은 "파괴의 열정은 일종의 창조적 희열"이라는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이자 혁명가 바쿠닌의 말을 상기하면서 '선거는 어리석은 자들을 위한 함정이다', '불손하고 파렴치하다는 것은 새로운 혁명의 무기다', '혁명적 사고란 없다. 오직 혁명적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벽에 새겼다. 

셋째, 68 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사회 전역에 퍼진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권위주의는 학교에서의 권위,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권위, 국제 사회에서의 강대국의 권위, 여성에 대한 권위, 회사에서의 사장의 권위가 모두 속한다.  

넷째, 욕망과 상상력의 해방을 외쳤으며, 꿈꾸었다.   

다섯 째, 유럽 68세대의 요구에는 물질주의적 소비 사회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었다. 

68운동의 개론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이 흥미로웠던 점은 68 운동의 기원과 원인, 성격과 성과를 열거한 후 마지막 장에 68운동과 2008년 여름 한국의 촛불 집회의 유사성을 논했다는 점이다.  촛불집회가 68운동과 같이 학생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기성 정당의 조직적 틀을 거부했다는 점, 시위가 축제와 결합했다는 점 등이 그 유사성을 뒷받침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68운동이 일어났던 프랑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는 운동 이후 교육, 정치, 사회, 경제 각 분야에서 일말의 성과와 변화가 일어났지만, 촛불 집회 이 후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권위주의가 판치고 있으며, 소비사회에 대한 찬양이 난무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귀를 틀어 막고 (촛불 집회에서 시위대들이 요구했던) 최소한의 소통 조차 하지 않고 있는 디스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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