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화 시키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소설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읽고 난 후 엄청난 양의 사유거리를 던져주는 소설과 그렇지 못한 소설.   

이번에 읽게 된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당연 전자의 소설에 속한다. 최근에 나온 신작 '구월의 이틀'을 읽고 난 후 자꾸 장정일이란 작가의 사유세계가 나를 지배하는 것 같아 찾아 읽게 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이상의 필모그래피를 내놓지 않고 있는 감독 중 여균동 감독과 함께 가장 후속작이 기대되는 감독인, 여하튼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언뜻 본 기억이 있는 장선우 감독의 유명한 90년대 영화의 원작이다. 중학교 시절 대학생 누나가 빌려온 비디오로 몰래 한번 본 것이 전부여서, 텍스트로 접하긴 처음인 장정일의 대표 장편 소설이다.     

 

 

 

 

 

 

 

소설가 이승우가 말했듯이 모든 소설은 결국 글쓴이의 이야기이며, 어떤 식이로든 글쓴이의 자전적인 기록일 수 밖에 없다. 결국 '누군가의 사유과 관념을 훔쳐보는 은밀함'이란 매력이 사람들이 수천년 동안 소설읽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저자인 장정일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세상을 향한 자신의 주장을 쉴새없이 내뱉는다. 저자가 독자에게 배설하고자 하는 것은 90년대 초 한국이란 현실세계에서 활발히 논의되었던 사회적, 문화적 화두와 맞닿아있다. 저자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이데올로기, 자본주의 사회 안의 성과 권력 그리고 문학과 소설가의 사회적 역할 등의 수많은 화두를 스스로 던지고 스스로 답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소설은 표절작가란 낙인이 찍긴 삼류 소설가 <나>와 여덟 가족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며 은행이라는 억압된 공간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발기부전환자 <은행원>, 어린 시절 남근주의 피해자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바지입은 여자>를 큰 축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하지만 이 세명의 등장인물을 포함한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은 결국 저자의 의견을 독자들에게 피력하는 메신저에 불과한 것이다. 시인이자 희곡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이번엔 소설이란 도구를 통해 자신의 여러 사유과 관념을 독자에게 전달한 것이다.

문학이 사회를 변혁 혹은 변화 시킨다는 믿음에 대하여 이는 소설가들의 자아도취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문학과 소설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여전히 믿고 있다. 다만 그가 무학의 사회적 역할에 비관적으로 답하는 것은 문학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나대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정치, 경제, 시민사회 등 다양한 분야로 흩어져 '운동권이자 인텔리'였다는 후광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는 변절자들에 대한 조롱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또한 여타 소설 속의 일관된 매개체라 할 수 있는 '성적 욕망'을 이 소설에서도 역시 화두로 던지며 세상 사람들의 위선을 조롱하고, 쾌락의 자유를 주창한다. 그에겐 섹스란 초등학생이 받아쓰기 만점을 맞으면 찍어주는 '참 잘했어요' 도장과 같으며, 삶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그 무엇이다.  

 다양한 인물과 다양한 사건이 뒤엉켜있고, 결말도 급진적이어서 전체적으로 다소 판타지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저자의 풍부한 사유세계와 사회문화적인 박학다식함을 엿볼 수 있는, 최근에 본 것 가운데 으뜸이 되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ps. 너무 오랜 전에, 그리고 너무 어린 나이(?)에 감상했던 영화라서, 문성근(나)과 정선경(바지입은 여자)을 제외하곤 그 외의 등장인물들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은행원>은 여균동이었나?  아님 <색안경>이 여균동이었나? 암튼 다시 한번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이젠 이런 파격적이고 의식있는 영화는 안 나올 것인가? 

ps2. 소설을 보다 보니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영화 속 이름이 선댄스다. 어라 선댄스라면 미국 최고 권위의 선댄스 영화제의 그 선댄스 아닌가? 로버트 레드포드가 후원하여 시작되었다는 그 선댄스 영화제. 그 소설 속 주인공 선댄스가 선댄스 영화제의 그 선댄스가 맞나 싶어, 박학다식하고 친절한 네이버에 물어보니 역시 맞다. 인간이란 역시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사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한 작은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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