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치 : 자기의 약점, 잘못 또는 무가치함이 남들 앞에 탄로되었다고 생각할 때 일어나는 감정
사실 '로쟈'라는 이름은 나에겐 '수치'라는 단어로 연상된다. 로쟈를 실제로 만나 모욕을 당했냐고? 물론 아니다. 그의 박학다식한 글을 접한 후 스스로의 무식함에 한 동안 치를 떨었으니 사전적 의미의 '수치'를 제대로 경험한 셈이다. 

로쟈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어느 신문에 인문학에 대한 기사에 소개된 다음 카페 '비평고원'였을 게다. 얕은 지식의 소유자지만 누구보다 인문학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나로써는 새로운 놀이터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 놀이터. 미끄럼틀, 그네만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무서워 탈 엄두도 못내는 자이로드롭, 자이로스윙 등으로 넘쳐났다. 

니체, 헤겔은 그렇다치자.(물론 이 유망한 철학자의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러시아 문학 번역비평은 뭐고 지젝은 또 뭔가. 얕은 지식을 꾹꾹 누르며 버텨 봤지만 어느 순간 희박한 공기로 둘러쌓여진 그들만의 공간인 '비평고원'은 내 놀이터로써는 부적합해 보였다. 물론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놀이터에서 나는 크리스토프 하인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만나게 되었고, 러시아 문학에 대한 곁다리 지식도 습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로쟈의 깊이 있는 지식과 이해하기 어려운 문체에 나는 수치감을 느꼈으며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비평고원에 더 이상 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쟈의 인문학 서재'로 오랜만에 접한 로쟈. 내가 알던 로쟈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책 속에는 나에게 수치심을 안겨 주었던(?)  니체, 헤겔, 지젝, 러시아 문학비평도 있었지만 나의 관심사인 김훈, 김규항도 있었고 심지어 김기덕(!)도 존재했다. 비평고원은 그렇다 쳐도 그의 알라딘 서재는 충분히 내 놀이터가 될 가능성이 보였다. '수치의 감정'은 책을 읽는 순간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바뀌었다. 러시아 문학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전에 사두었던 지젝의 책을 다시 펼쳐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물론 이러한 '열망의 감정'이 얼마나 오래 갈진 의문이지만 로쟈는 이미 내 마음속의 또 '한명의 Mento'로 자리잡았다. 그의 넘쳐나는 지식의 양과 끊임없는 노력에 자연스레 무릎이 굽혀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