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돼지를 프로듀스
시라이와 겐 지음, 양억관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남의 이목을 중요시 여기는 기리다니 슈지의 철학은

모든 인간들에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척 연기를 하며 인기를 얻는것이다.

속으론 그들의 단순함과 무절제함을 조롱하면서 말이다.

 

그런 슈지가 어느날 전학온 끔찍하게 못생겨 왕따를 당하는

신타(信太)에게 학교에서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 확언을 한다.

 

신타를 노부타(野豚*들돼지) 캐릭터로 만들어 모든 아이들에게 귀여움을 받게 하는데

적극적인 프로듀스를 감행하겠다는 말씀!

 

이렇게 시작한 스타만들기 프로젝트는 슈지의 계획대로 척척 순탄하게 진행되는데..

 

<들돼지를 프로듀스>는 작가가 22세에 쓴 작품이라서 문장이 톡톡 튀고 유머가 남다르기 이를데 없다.

 

그 시니컬하고 오만한 말투와 재치가 넘쳐 기지가 되는

문장력은 책을 한번 펴기 시작했다면 닫기가 어렵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1/4쯤 읽었을 때는 박민규를 연상케 하는 재치와 툴툴거림이

재미도 있지만, 아직 너무나도 젊어 풋사과처럼 여겨졌다가,

 

2/4쯤 읽었을 때는 <아쿠다가와賞>정도는 받을만 하지 않겠어?

라는 생각이 들어 묘한 매력에 사로잡히다가,

 

3/4쯤 읽었을 때는 그래도 너무 젊고 철학은 부족하네.

이렇게 그냥 재치과 기술만 자랑하고 끝나기엔 뭔가 아쉬운데...라고 느끼다가,

 

다 읽고 나서는 이 젊은 작가의 재능에 감탄하게 되었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 유지하기'만큼 힘든건 없다.

사람들은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똑같은 거리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시라가와 겐의 표현처럼 인간관계는 난로같아서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데거나 타버리고,

너무 멀면 춥다는데 그 거리를 완벽하게 유지하는 건

유토피아를 꿈꾸는 소년처럼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다치는게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한다면,

당신도 어느 순간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사람'이라는

낙인을 받는 걸로 모든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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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인터넷서핑하면서 가장 자주 들여다 보는 곳 중 하나가 인터넷서점이다.

서점을 우연히 둘러보면서 하루키가 신작을 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후다닥 따끈따끈한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어둠의 저편>이후에 발간된 신작이자,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이후의 단편집!

 왜인지 나에게 <신의 아이들>에서 등장한 단편들은 기억이 잘 안난다.

 하루키의 단편집 중에서 가장 임팩트 없이 읽었던 작품이라서일까?

 

<도쿄 기담집>은 어려가자 우연이 겹치고 겹치는

이 세상을 살면서 소설같지만 결코 과장되지 않은

그럴싸한 일상생활의 특별한 일들에 대해 기술한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보다는 하루키의 다른 단편집인

<렉싱턴의 유령>처럼 매혹적인 5개의 단편들이

그 위엄과 참을 수 없는 매력들을 발산하고 있다.

 

문장과 소설의 공기 전체가 은근히 섹시하며 유혹적인

(글의 스토리와 표현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우연한 여행자>

 

덕분에 하와이 여행까지 다녀온 기분까지 선사해주었으며,

주관적인 시선과 객관적인 관점을 다시 생각하게 해줬던 <하나레이만>

 

"아시다시피 모든 물은 주어진 최단거리를 통해서 흘러갑니다.

하지만 어떤때는 물이 최단거리를 만들어가지요.

인간의 사고라고 하는 것은 그런 물의 기능과 유사합니다."라는

근사한 문장을 만나게 해준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인생에서 딱 세명 만나게 되는 진정한 의미의 여자를 고르는 남자

준페이의 자아찾기를 재미있게 그려간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마술적 사실주의를 도용한 신비주의 작품 <시나가와 원숭이>

 

이 5편을 쭈욱~ 훑으면서 공통점 찾기에 주력했는데

내가 찾은 공통점은,

'인간이 가장 상처받고 사랑받는 존재는 가족이다'라는 점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누나, 아들, 남편, 아버지, 엄마에게서

상처받고 또한 그것으로부터 자아를 찾아가는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숨겨져있어 간과할지도 모르는 이야기의 끈을  찾아보라는 필자의 메세지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과 얽혀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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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의 음표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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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와 더불어

일본의 삼대 여류 소설가라 일컬어지는 (누가 정했는지는 몰라도..)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은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그녀의 수작(數作) 중에서 우연히 이 책을 고르게 되었는데,

한권으로 전체를 예측해야할지,

한권으로 전체를 판단하기엔 시행착오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적잖은 실망감으로 다가왔다.

 

이렇다한 특별한 문체도 없는 문장은 밋밋했고

톡톡 튀는 기지나 재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묘사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으며,

철학이나 메세지, 여운등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 한

찾아 볼 수 없는 글과 글 사이에서

피니쉬가 전혀 없는 와인을 마시는 낭패감이 느껴졌다. 

 

고등학생의 사랑에 대한 8개의 단편들이

저마다 비슷한 옷을 입고 있어서 (마치 교복처럼 느껴졌다 -_-;)

8개의 단편의 키를 도저히 잴 수 없었다는 것도 아쉬움이었달까.

 

그래서!!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을 두어권 더 읽어볼 예정이다.

누구에게라도 기회는 세번쯤 주어야하는 법이니까..

 

나중에 "이렇게 빛나는 작가를 내가 왜 폄하했던가!"하고

후회할지도 모를테니까..

 

많은 사람들이 비발디의 사계를 좋아하고,

그 음악이 그럴만한 힘이 있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법이듯이

많은 사람들이 야마다 에이미라는 작가를 인정한대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믿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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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90%까지 읽었을때는
도시에 사는 쓸쓸한 젊은이들의 밍숭맹숭한 사랑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을만큼 단조롭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머지 10%의 부분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강한 공감대를 불러 일으킨다.

마음을 여는데 나도 모를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으로 다가올 소설<동경만경>

용기내어 마음을 열어 용기내어 사랑을 얻어낼 수 있다면..




"...난, 이제까지 애정이니 사랑이니 하는 거 전혀 믿질 않았어.
그런 건 그야말로 연애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치부했지.

그런 일로 눈물을 흘리거나 오기를 부리는 여자들을 보면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구.

그런데 료스케를 만나고 나서 나도 그런 여자들 중
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소설을 읽고 나도 그런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다구.

정말 애정이니 사랑이니 하는 건 바보 같다고 여겼는데..

그런 애정을, 그런 사랑을 만난 내가 기뻤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고... 그래도 용기를 내서..."

그쯤에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안간힘을 쓰며 말을 하려고 하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마음과 마음으로 하나 될 수 있는 상대를 눈앞에 두고
지금까지 마음을 숨겨온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겨우 그런 마음을 드러내려는 순간,
상대가 너에겐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싶을 만큼 분했다.



요시다 슈이치 * 동경만경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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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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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리 길지않은 중편이 두개 묶여있는 이 책이,
국내에 소개된 요시다 슈이치의 책을 독파하는 마지막 책이 되었다.
금방 다른 책들이 뒷따라 출간되겠지만..^^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역량에 놀랐다.
<워터>는 고등학교 수영부 소년들의
우정과 성장과 사랑과 고민과 번뇌와 갈등과 비전을 그린
그야말로 파란 수영장의 물처럼 투명한 성장기 소설이라면,

<최후의 아들>은 동성애자의

좌절과 용기와 안주와 불안과 체념을 그린
색으로 치자면 짙은 그레이나 탁한 네이비같은 소설이기때문이다.

두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잠깐 어질하게 된다.
이것이 한 작가가 쓴 작품일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역량은 바로 그런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 여자, 동성애자.
화자가 누구가 됐든지 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담하게
그려낼 줄 아는 능력!

많은 의미와 비유와 숨은뜻이 있는 그의 소설을
좀더 세밀하게 읽고 분석하고싶은 마음도 있지만,
일단은 그 빛나는 능력만을 감탄하고 싶다.

일본에선 <최후의 아들> 출간된 이 책이
우리나라에선 <워터>를 앞세웠다니 재미있다.
조금더 보수적인 독자가 많은 탓일까?
<워터>도 훌륭하지만,
작품의 완성도 쪽에서는 <최후의 아들>쪽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한두편의 작품을 접하고 요시다 슈이치를 평가하지 말것!
그의 글엔 여러가지 칼라가 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오류를 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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