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순
양귀자 지음 / 살림 / 199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 모두, 인간이란 이름의 일란성 쌍생아가 아니었던가 하는 자각. 생김새와 성격은 다르지만, 한 번만 뒤집으면, 얼마든지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일 수 있는 우리.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인생을 살아 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 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p, 280 (작가노트 / '모순―생의 비밀을 찾아서' 中)
늘어지는 주말을 보낸 후, 조금 더 늘어지고 싶은 몸을 애써 움직이느라 훨씬 더 부산스러운 월요일. 출근하는 가족들을 배웅하고나니 수업이 없는 나에겐 주말보다 더 여유롭게 느껴지는 월요일이다.
이번 학기는 일주일에 이틀만 학교에 나가니 방학때보다 책을 펼칠 시간이 더 많아질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도서관에서 2주에 한번씩 꼬박꼬박 빌려오는 4권의 책뿐만 아니라 책장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조용히 잠자고 있던 책들에게도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개강 첫 날, 비는 시간이 많을 것 같아 버스를 놓치면서까지 읽을 책을 골랐다. 그렇게 고른 책은 심오한 제목 탓에 5년 이상 책장에서 꺼내질 않았던 이 책,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이다.
4학년에 타과생. 아는 사람이 없는 나에게 수업이 일찍 끝나 비는 시간은 고역이다. 뿔뿔이 흩어진 동기들 카톡방에서 아무리 수다를 떨어봐도 한계가 있고, 수명을 다해가는 내 핸드폰 배터리는 순식간에 사라져만 간다. 그래서 중간중간 수업이 빌 때면 맨 뒷자리로 자리를 옮겨서 닳아버린 핸드폰 배터리는 잠시 충전시켜두고 책을 펼쳤었다. (왕따가 따로없다.......)
읽는 내내 나라고 생각하며 읽었더니 정이 들어버린 '안진진'.
그녀가 모습이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인 자신의 엄마와 이모를 보며 인생에 대해 어떤 해석을 했고 결국에 살아가기로 선택한 인생은 어떤 것이었나. 그렇게해서 살아가기로 선택한 인생을 탐구하며 결국 만족할 것인가, 후회할 것인가.
모든게 다 똑같았던 엄마와 이모. 심지어는 결혼한 날까지 같았지만 그 결혼으로 인해 달라진 두 인생.
수시로 집을 나가 돈이 필요할 때만 집에 들어오는 남편과 문제를 일으키는 자식들과 살아가며, 시장에서 양말을 팔아서 번 돈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문제를 해결하며 부산스럽게 살아가는 엄마의 인생과 잘 가꾸어진 집에서, 뭐든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착실한' 남편과 '착실한' 자식들을 바라보며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모의 인생
'뽀끌래 미용실'에서 갓 볶아서 나온 뽀글뽀글한 머리를 한 엄마와 꾸준한 관리로 자연스러운 웨이브가 있는 머리를 한 이모를 보며, 또 살아가기 위한 생존 독서(예를 들면 '일본어 첫걸음' 같은)를 하는 엄마와 낭만을 찾기 위한 독서(소설류)를 하는 이모를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한테 이모를 엄마라고 소개해야 했던 안진진.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해보이는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상대적으로 '내 인생은 왜이리 못났을까' 치부해버리는 일들이 많은 요즘, 결국엔 각자가 각자의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도 타인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취업걱정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내 인생이지만, 지금 당장은 지금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친구들에겐 '월요일에 수업 없어? 부럽다...' 하며 부러움을 사고 있는 내 인생처럼 말이다.
자신과 비슷한 '김장우'와 자신과는 확연하게 다른 인생을 사는 '나영규'. 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안진진의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소설의 끝에서 그녀의 선택이 나에겐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안진진이라면 안진진대로 야무지게 해낼 것만 같았다.
쓰여있는 문장들이 하나같이 예쁘고 곱다. 인생을 통찰하는 문장들인 것 같아, 모두에게 공감을 살거라 확신했다. 이 책으로 필사를 해도 멋질 것 같았고.. 내가 읽었던 책이 지금은 절판된 구버전(?)임에도 132쇄판이었다니. 알면 알수록 정이가는 이 소설에 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걸까, 놓쳤던 시간만큼 앞으로 더 아껴주고 싶은 소설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삶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씹을 줄만 알았지 즐기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에피소드란 맹랑한 것이 아니라 명랑한 것임에도. -p, 10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삶의 공식인가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었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p, 45~46
가족 중 누구 하나의 불행이 너무 깊어 버리면 어떤 행복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없는 법이었다. -p, 121
철이 든다는 것은 말하자면 내가 지닌 가능성과 타인이 가진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나 또한 내 어머니처럼 이종 사촌들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도저히 대범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와 달랐던 점은 이종 사촌들에 대한 질투심을 감쪽같이 잘 숨기며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그것마저 숨기지 못하고 여기저기 질질 흘렸다면, 만약 그랬다면 내 인생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완벽한 실패작이었을 것이다. -p, 130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애에 되풀이 나타나는 불행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극복되었다.
불행의 과장법, 그것이 어머니와 내가 다른 점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진저리를 치는 부분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과장법까지 동원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 기껏해야 불행뿐인 삶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몸서리를 칠 수는 있지만. -p, 139~140
그렇지만 나라면 주리처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p, 158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 아니었다.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픈은 그것인가, 자, 여기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어쩌면 내 것이 당신 것보다 더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내 불행에 비하면 당신은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닌가…….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p, 171
"왜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어요?"
카메라가 없으면서도 버릇처럼 이쪽 저쪽으로 구도를 잡아 보며 한참 동안 꽃 옆을 떠날 줄 모르는 김장우.
"있으면 찍으니까. 보지는 못하고 찍기만 하니까."
"그래요. 맞는 말이에요."
나는 김장우의 말을 이해했다.
"이유야 또 있지. 안진진이 있잖아. 옆에서 말도 해주고 같이 웃어주고 쉴새없이 숨소리를 내는 안진진이 있어서 순간순간이 충만할 텐데 뭣 때문에 카메라를 가져오겠니. 나는 이번 여행에서 사랑하는 꽃이름을 불러 주는 대신 안진진의 이름만 열심히 부르기로 결심했어."
대답 대신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말할 줄 아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젯밤처럼 오늘 밤도 안진진이 내 옆에서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 거라는 사실… 실감하기 어려워. 나, 아까부터 그런 생각 했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는 것을, 그런 줄도 모르고 혼자 너무 외로웠구나, 하는 생각…이젠 그런 생각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되지? 괜찮지?"
그래도 된다고 말을 하지는 않았다. 괜찮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나란히 숲길을 걷고 있는 그와 나 사이의 간격을 확실하게 좁혔을 뿐이었다. 어깨가 맞닿았으므로 손을 맞잡고 있기는 불편했다. 적절하게도, 김장우는 그 순간 내 어깨에 팔을 둘러 우리들의 자세를 확실하게 조절하였다. 나는 그에게 기대어 숲 향 그윽한 오솔길을 걸었다. 사실을 말하면 나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중이었다. 이것이 사랑인가. 서로가 서로에게 한 쪽 어깨를 빌려 주고 기대는 것, 이것이 사랑일까…….
나영규에게는 없는 것, 그것이 확실히 김장우에게는 있었다.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 있다. 끝까지 달려가 보고 싶은 무엇, 부딪쳐 깨어지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 무엇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힘이 사랑이라면,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손을 잡았다. -p, 176~177
나는 이런 말을 알고 있다. 인생은 짧다고,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고. 아버지는 참으로 긴긴 인생을 살았다. 그것이 진정 아버지가 원했던 삶이었을까. -p, 245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p, 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