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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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보면 항상 똑같은 한 지점에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도 존재하고 언제까지나 존재할, 쏟아지는 찰나의 햇빛이었다. 방울새의 발목에 달린 사슬이 눈에 띄는 것은, 혹은 잠깐 파닥이다가 항상 늘 같은 절망의 자리에 내려앉아야만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작은 생물에게 얼마나 잔인한 삶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주 가끔뿐이었다. -p, 414 (1권 中)










   

 











1,000페이지 정도의 분량만큼이나 오래 붙잡고 있어야했던 소설이었다. 이렇게 긴 소설은 자칫하면 쉽게 지쳐버릴 수 있어 속도감이 빠른 걸 선호하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느릿, 느릿.. 읽으면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페이지에 조금은 힘들었다고 서두에 밝혀두고 싶다. 그럼에도 읽기를 좀처럼 멈출 수 없었던 건 중간중간 속도감이 붙는 짜릿함. 급경사, 급커브가 한 4-5번 반복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때문이었달까.


이 책의 작가인 도나 타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꽤 유명한 작가인 듯 한데, 나에겐 《황금방울새》가 그녀와의 첫 만남이 되었다.


《황금방울새》는 완독률 98.5% 라는 걸 중요한 마케팅의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는데, 호킹지수(완독률이 낮다는 스티븐 호킹의 책 때문에, 호킹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으로 호킹지수가 높을수록 끝까지 읽은 책이라고 한다.) 라는게 독자들이 밑줄 친 부분을 보고 완독률을 측정한 거라고 하니, 이 책을 읽고나니 왜 이 책이 호킹지수가 높은지 알 것만 같다. 바로 소설의 끝무렵에서야 밑줄 칠, 멋진 말이 두두두두 쏟아져나오기 때문. 









 

황금방울새.jpg



 


▲ 도서관 반납 직전에야 사진을 안남겨둔걸 알아서, 이렇게 도서관 앞에서 급하게 부랴부랴 찍었다 :<









미술관 폭발 사고로 엄마를 잃고, 현장을 빠져나오면서 주인공 시오가 우연히 들고 나온 문제의 '황금방울새' 그림. 세상은 이 '황금방울새' 그림을 찾고, 돌려줄 타이밍을 놓쳐 계속해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이 그림에 매혹되어버린 시오의 모순적인 모습.


소설의 80%가 이 어린 주인공의 성장 소설같은 느낌이 가득한데, 작가가 이 어린아이에게 부여해준 환경이 어찌나 열악하고, 불행한지 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마약에 찌들고, 술에 취한 채, 비릿하고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방에 축 늘어져 있는 간접경험을 하고있는 것만 같았다. 


타인에게 쉽게 추천해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긴 분량도 긴 분량이거니와 추천해줘도 책 읽는 걸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읽다 중간에 포기해버릴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높게 평가해주고 싶은 것은, 성장소설을 읽고있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황금방울새 라는 그림이 얽혀있기 때문에 지루해질 떄 즈음 해서 스릴있는 장면들을 하나씩 터뜨려준다는 점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 처럼 마치 쉽게 추천해주긴 힘들지만, 막상 떠밀려서 타면 그 짧고 강렬한 짜릿함에 계속해서 찾게되는 롤러코스터와 같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했다가 퇴각하려고 할 때 노트르담 성당을 부숴버리려고 마지막 남은 병사에게 폭발 장치를 누르라고 명령했으나 노트르담 성당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버린 병사가 결국 그 명령을 따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있지만 결국엔 늙고 병들기에 유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예술작품을 통해서 간직하려한다.


어린 시오가 겪어야했던 어려운 현실,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 비상하고자 했지만 그때마다 발목이 묶여있어 날아갈 수 없는 그림 속의 황금방울새처럼 마약에 찌들고, 술에 취한 채 계속해서 어두운 현실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시오. 시오는 이 소설의 말미에서 이러한 간극을 통해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현실과 현실을 내모는 지점 사이의 간극에서. 


힘든 현실 속에서도 더 나은 환상같은 곳을 꿈꾸며 견디고, 돌보고, 애쓰며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만들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 같은 소설이었다. 










모든 인간이. 심지어는 가장 행복한 인간들도 끔찍한 끝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모두 결국에는 전부 잃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렇게 잔인한 게임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일까? -p, 475 (2권)



정말 끔찍하지만, 나는 이해한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을지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쓸쓸하고 힘든 진실이다. 가끔 우리는 어떤 것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원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달아날 수 없다.


나는 환영 뒤에 진실이 있다고 정말 믿고 싶지만, 결국 환영 너머에 진실은 없다고 믿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음이 혐실을 내모는 지점과 현실 사이에는 중간 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곳, 두 가지 다른 면이 뒤섞이고 흐릿해져서 삶이 주지 못하는 것을 제공하는 무지개의 가장자리 같은 곳이다. 바로 모든 예술이, 모든 마술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나는 모든 사랑이 존재하는 곳이라 주장하고 싶다. 혹은,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중간 지대는 사랑의 근본적인 어긋남을 설명한다. 가까이서 보면 검은 외투와 대비되는 주근깨 박힌 손, 옆으로 넘어지는 종이 개구리가 보이지만 한 발 물러서면 환상이 다시 끼어든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고 결코 죽지 않는 환상. 피파의 존재 자체가 그러한 것들―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 그곳과 그것이 아닌 것―의 놀이다. 벽에 걸린 사진들, 소파 아래에서 나온 동그랗게 말린 양말 한 짝. 내가 손을 뻗어 피파의 머리카락에 붙은 보풀을 떼어내자 그녀가 웃으면서 내 손길에 몸을 움츠리던 순간. 음악이 음과 음 사이의 공간이듯이,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 사이의 공간 때문이듯이, 태양이 특정한 각도로 빗방울에 닿아서 하늘에 색을 내뿜는 프리즘을 드리우듯이, 내가 존재하는 공간, 계속 존재하고 싶고 솔직히 말하면 그곳에서 죽고 싶은 공간은 바로 이 중간 지대, 절망과 순전한 '다름'이 만나서 숭고함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내가 이 글을 이런 식으로 쓴 것은 그렇기 때문이다. 중간 지대에 들어서야만,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 사이에 존재하는 색색의 경계에 발을 들여야만 이 세상에 살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혼잣말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이든 중요하다. 우리가 절망 속에서 스스로에게 노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 중요하다. 하지만 그림은 또한 우리가 시간을 초월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당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나의 독자에게 아주 진지하고 다급하게 할 말이 있는 듯한 기분, 내가 당신과 같은 방에 있는 것처럼 급히 말을 해야 하는 기분이다. 삶은―그것이 무엇이든― 짧다고 말이다. 운명은 잔인하지만 제멋대로는 아니라고, 자연(즉, 죽음)이 항상 이기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굽실거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항상 기쁘지만은 않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삶에 몰두하는 것, 눈과 마음을 열고서 세상을, 이 개똥밭을 똑바로 헤쳐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그리고 우리가 죽어갈 때, 우리가 유기체에서 생겨나 굴욕적이게도 다시 유기체로 돌아갈 때, 죽음이 건드릴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영광이고 특권이다. 지금까지 이 그림에 재앙과 망각이 뒤따랐다면―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이 불멸인 한 (그것은 불멸이다) 나는 그러한 불명성에서 밝게 빛나는, 변치 않는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며, 계속 존재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불 속에서 구해내고, 사라졌을 때는 찾으려 애쓰고, 보존하고, 구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아름다운 것들을 문자 그대로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고 시간의 폐허 속에서 다음 세대를 향해, 또 그 다음 세대를 향해 큰 소리로 멋지게 노래를 불러온 사람들의 역사에 나 자신의 사랑을 더한다. -p, 479~181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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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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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한 절망의 시대, 사람들의 지성과 감성이 모두 무너진 폐허와도 같은 시대, 더 이상 아무도 시를 쓰려 하지 않는 시대에, 동주의 시는 새로이 움트고 있었다. 한때 동주도 문인이라는 빛나고 아름다운 이름을 갈망한 적 있었다. 공들여 쓴 작품으로 세상과 문단의 눈길을 끌고도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이름이나 평가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자연과 사물들도 그곳까지 데려가, 일렁이는 감성들을 충분히 무르익게 하고, 때로는 예리한 지성의 바늘로 톡 건드리기도 하면서, 마침내 정제되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체에 걸러, 노트 위에 한 편의 시로 옮겨 적는 길고도 진실하고 순정한 시간. 그것이면 충분했다. 동주의 새로운 시는 절망의 어두운 그늘 속까지, 슬픔의 웅덩이 깊은 곳까지 닿아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였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맑고 고요한 눈을 잃지 않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했다. -p, 16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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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윤동주, <별 헤는 밤> 中




시인 윤동주의 짧은 생을 그린 소설을 읽었다. 

안그래도 짧은 생, 그 중에서도 그의 22살부터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29살까지의 짧은 생을 들여다보자니 마음이 퍽퍽하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치 하에 있던 30년이라는 시기. 중고등학생 때 역사를 공부하는 동안에는 1910년대, 20년대, 30년대의 각 특징만 달달달 외우느라 그 시기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30년이라는 시간은 한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의 아이가 어느정도 자라서 학교에 다닐, 그런 긴 시간이더라.


한컴타자연습을 통해 타자연습을 했던 내 또래들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친근할지도 모르겠다. 타자 속도 500을 넘기기 위해서 타다다닥 빠르게 쳐내려가던 그 글을 교과서에서 볼 땐 다들 '어? 이거 한컴타자' 했을텐데. 이렇게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윤동주는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일제 치하에 있는 우리나라를 겪었고, 29년이라는 짧을 수 밖에 없었던 생의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는 걸 이 책을 읽다보면 알게되며 울컥울컥 감정이 치밀어오르고 만다.





외국 문학을 공부하고 도서관의 책들을 두루 읽다 보니, 새삼 발견되는 게 있었다. 연전에 있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말과 글이 다르고 지내는 곳이 달라도,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점이다. 자신이 놓인 시대와 사회의 제약 속에서도, 사람들은 삶이 던져 주는 질문을 붙들고 열심히 해답을 찾으며 살아간다.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자신의 삶에서 다 풀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음 세대에게 넘겨준다. 이 세상에 사유하는 인간이 스러지지 않고 남아 있는 한,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시대를 이어 가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거쳐 가며,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질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의 나라도 빼앗고,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모욕하는, 심지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생명마저 빼앗아 버리는 야만의 시대라해도……. -p, 252~253




시대적 상황 탓에 나이보다 더 철이 들었던 그였지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그저 20대일 뿐이라 더 안타까웠다.

  

안소영 작가님의 프로필을 보니 이 책 <시인 동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이덕무, 정약용 등 역사적인 인물의 삶을 그리는 책을 참 많이 쓰셨더라. <시인 동주> 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작품만을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소개하려는 인물에 대하여 얼마나 철저하게 분석을 하는지. 역사적인 사실 뿐 아니라, 성격이나 행동까지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어떤 시를 썼는지, 자연스럽게 묻어나있는 소설이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 윤동주 문학을 공부하는 중고등학생들이나, 일제시대의 상황이 당시의 지성인, 학생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고싶은 학생들에게 아니,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해준다면 좋겠다.







책상 위에 펼쳐진 노트에는 마무리하느라 한창 고심 중인 시 한 편이 적혀 있었다. 동주는 시를 종이 위에 쓰고, 고치고, 다듬는 과정이 별로 없었다. 마음에 고이는 생각들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관찰하다가, 어느 순간 넘실넘실 차올라 오면 언어로 빚어 몇 번이고 입 속에서 되뇌고 공글리며 운율을 입혀 보다가, 이만하면 되었다 싶을 때 비로소 노트 위에 단정한 글씨로 또박또박 써 나갔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될 때까지, 동주의 마음속에서는 무수한 격랑이 일건만 좀처럼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번에 시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아 벗들은 감탄했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구성한 시와, 노트에 정리하여 눈으로 보는 시는 가끔씩 차이가 있어 또 고치곤 했다. -p, 24



앞날을 그려 볼 수 없다면 현재의 불안한 삶에라도 충실할 수밖에……. -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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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우리는 이기적일까 - 인문학으로 풀어보는 너, 나, 우리의 16가지 고민
송가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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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이기적인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이기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우리가 이기적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런 상황이었다. 수학 임용 고시를 위해 칸트의 선험적 주체를 공부해야 하는 상황, 고시를 위해 수십 년간 써온 글씨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 백곰의 털 한 올, 상어의 비늘 하나에 해당할 만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해진 이런 상황이 바로 문제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기심은 비판하는 법을 전혀 배우지 못한 우리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등장한 결과였다. 우리가 이기적이지조차 못했다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절대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떠올리면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p, 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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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두니 여기저기서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듣게 된 친구들의 취업 소식은 2년 전이었나, 전문대를 다니던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었다. 그땐 나도 취업이라는 걸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시기와 질투보다는 신기함이 앞섰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친구였고, 부모님들도 서로 다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그런 친구들이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마냥 신기했다. 그 친구들도 '그만둘 수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분이랄까?' 라고 말하던 때였으니까. 그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2년 정도 된 지금은 술자리에 나가면 '세은이는 학생이니까 우리가 낼게!' 하며 재밌게도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선배 노릇을(전혀 악의가 없는) 하고있다.


그때 들은 친구들의 취업 소식과 요즘 듣게 되는 친구들의 취업 소식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2년 전엔 신기함이었다면 요즘 듣게 되는 친구들의 취업 소식은 불안, 초조를 동반하며 시기, 질투까지 느끼게 한달까.


요즘은 친구들을 만나면 '누구 어디 붙었다며?'가 기본적인 대화의 주제가 되었고, '야, 일찍 일 시작해봤자 고생이야. 평생 할 일인데 난 좀 더 놀래.' 라며 애써 태연한 척, 쿨한 척 하며 순수한 축하의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기쁜 소식에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네지도 못하는 이런 이기적인 모습에 스스로가 싫어지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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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했던 수많은 고민들이 이 책 《20대, 우리는 이기적일까》에 전부 담겨있었다. 고맙게도 이 고민을 풀 수 있는 메시지와 함께.


수많은 방황 끝에 철학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저자. 책상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종이 뭉치가 이 책의 시작이 되었다고 했다. 고민이 있으면 종이에 끄적이며 정리한다는 저자는 그 종이 뭉치에 적혀있던 고민들을 보며 '지금 생각해보면 작디작은 문제들인데 이런 문제들로 고민했던 때가 있었구나(p, 7)' 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이 겪었던 고민을 하며 힘들어하고 있을 20대에게 저자가 공부하고 있는 인문학을 이용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제목만 보고 20대가 이기적이냐, 아니냐를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리가 이기적이게 보일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를 토닥여주며 우리가 하는 고민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눠주는 책. 친구의 성공에 순수한 축하를 보내기도 버거운 우리에게, 이런 모습을 가진 스스로에게도 질려버린 우리에게 그 누구보다 시원하게 위로와 조언을 건네줄 그런 책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정말 첫 번째 조건일까? 우리는 지금 이익을 얻고 있을까? 우리가 얻는 쥐꼬리만 한, 아니, 올챙이 꼬리(올챙이의 큰 꼬리도 개구리가 되면……)만 한 월급은 과연 우리에게 이익일까? 그런데 왜 우리는 만족감과 행복을 느낄 수 없을까? 우리의 청춘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앞으로도 더 행복할 것 같지 않을까? 혹시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익을 얻는 조건이 아니라 행복과 젊음 등을 빼앗기고 있는 조건은 아닐까? 혹시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젊음을 내놓으라며 달려드는 이들에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무조건 행복을 빼앗거나 혹은 내기를 해서 우리가 이긴다면 행복을 빼앗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에게 우리는 아무런 저항 없이 행복과 젊음, 청춘을 죄다 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가만히 앉아서 전부 털리느니 일단 싸워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잘 생각해보자. 우리는 지금 행복을 얻고 있을까, 행복을 빼앗기고 있을까? 우리는 지금 이익을 얻고 있을까, 손해를 보고 있을까? 

-p, 84~85 (가능성의 절대성 中)   



게다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불확실할 때에는 다른 욕구들은 고개도 못 내민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위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들은 층위가 있다. 가장 하위 욕구는 생리적 욕구로, 의식주나 성욕 등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들이다. 그리고 상위 욕구로 갈수록 타인과 관계 맺고 싶은 사회적 욕구, 꿈을 실현하고픈 자아실현 욕구 등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 욕구들은 아무렇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하위 욕구가 충분히 만족되어야 상위 욕구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에는 타인과 관계를 맺거나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 나온다.


우리의 가장 기본 욕구는 취직 욕구이다. 취직을 하느냐 마느냐에 우리의 생존이 걸려 있다. 취직 욕구가 해결되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야 이후의 욕구를 고려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고기를 사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해결해야 어떤 국가에서 생산된 고기를 사 먹을지를 고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는 정말 이기적일까? 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바로 옆의 타인의 고통에도 침묵하고, 심지어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서조차 조금이라도 더 이기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그리고 이 모든 이기적인 행동들의 이유가 우리의 생존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우리는, 과연 이기적일까?

-p, 186 (우리의 이기심 中)



C와 남자 친구는 결국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친구에게 물을 수 있었다. 둘의 신기했던 관계를 알고 계속 묻고 싶었던, 하지만 진행 중인 관계에서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질문을.

"너는 남자 친구에게 왜 마음을 안 주니? 너는 그의 문제를 고민해주고 해결책까지 주지만, 네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지를 말해주지는 않잖아."

친구가 말했다.

"많이 좋아한 건 아니라서 그래."

이 말이 끝나자마자 내게 떠올랐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누구를? 네 말의 목적어가 뭐야? 네가 '남자 친구를'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는 거야? 아니면 네가 '너 자신을'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는 거야?

아마 친구의 목적어는 '남자 친구'였을 것이다. 자신이 그를 많이 좋아하지 않아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일 테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자신을 많이 사랑하지 못해서, 그에 대한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았다. 친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정도도 부족했기 때문에, 타인에게, 심지어 자신의 사랑을 가장 원하는 남자 친구에게도 자신의 사랑을 마음껏 나누어줄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친구는 혹시 자기가 누군가를 많이 사랑하게 되면, 그래서 사랑을 듬뿍 주게 되면 스스로를 덜 사랑하게 되거나 더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게 될까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좋아하는 이에게 마음을 주는 대신 도움을 주고 가르침을 주는 등의 다른 행동을 통해 사랑을 대신하려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내게는 아들을 챙기는 엄마의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친구는 어쩌면 이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해도 자기애는 영속함을. 타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조금 덜 돌보더라도 곧 스스로에게 돌아올 것임을. 사랑했던 이와 헤어지더라도 자기애는 변하지 않을 것임을. 오히려 사랑한 이후에 풍부한 경험을 갖게 된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될 것임을. 

-p, 260~261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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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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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 빠지게 된 계기가 이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소설이었는데, 중학생 때 읽었던 소설이어서인지 블로그에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없더라구요. 그렇습니다. 제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중 처음으로 읽게 된 작품이에요.


언니가 셋인 친구가 있었는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들이라 성숙했던 친구. 아오이 유우와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했던 친구. 어떤 분위기었는지 아시겠지요? 생각해보면 지금의 전 그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 친구랑 하루의 대부분을 붙어다니면서 '나도 아오이 유우 좋아! 에쿠니 가오리 좋아!' 라고 말하고 다녔으니. 그 친구가 처음으로 저한테 빌려준 책이 이 책이었어요. 《반짝반짝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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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어요. 얼마나 읽었는지 다 외워버린 부분. 


무츠키는 잠들기 전에 별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양쪽 다 시력이 1.5인 것은 그 습관 덕분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나도 따라서 베란다에 나가기는 하는데, 별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아니다.

별을 바라보는 무츠키의 옆얼굴을 보기 위해서다.

무츠키는 짧은 속눈썹이 가지런하고 얼굴이 예쁘장하다. (p, 11)


바로 이 책이 시작하는 부분이죠. 



호모인 남편(심지어 애인도 있는)과 알콜중독자인 아내. 자신들이 둘러놓은 울타리 안에서, 상대의 허물을 이해해주며 결혼 생활을 유지해나가는 모습을 중학생 땐 어떻게 이해하고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에게 매료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보다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제목이 이해가 되었달까요.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고, 그만큼 정의내리기 쉽지 않은 것도 '사랑'이라는 단어.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의 두 주인공인 무츠키와 쇼코를 보고 있자면, 바로 이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이 아닐까, 이들처럼 상대의 허물을 인정하고 이해해줄때, 비로소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을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좋으네요. 요즘은 날씨가 더워서 좀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가 힘들어요. 새로운 책을 읽기도 힘들구요. 

그래서 시원한 음료수 따라놓고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꺼내서 여유롭게 훑고있어요. 다음엔 어떤 책을 다시 읽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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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내게 끌린다
남인숙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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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중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방학하고 나서는 귀찮다는 핑계로 나 자신을 위해 예쁜 옷을 사거나 예쁜 신발을 산지 오래였다. 그만큼 나 자신에게 소홀했던 날들이었고 그만큼 나에 대한 사랑도 줄어만 갔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고 가꿀때 빛이 나는 법인데 그러질 못했으니, '그동안 움직이질 않아서 그런지 살이 쪘네. 나가기 싫어. 살 좀 뺀 후에 나가야지.' 가 반복되고 빛을 잃어갔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의 '나를 사랑하는 법도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라는 글귀가 눈에 밟혔고 택배로 받아본 즉시 정신없이 읽기 시작한게.



비싼 가격의 명품 구두가 주인공인 책. 이 화려한 구두가 자기를 신는 여자들을 보며 깨닫게 된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육아에 지친 여자, 돈 때문에 삶을 잃어버린 여자,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여자(이 여자에 대한 글은 내 이야기인줄 알았다), 남편의 말만 따르다보니 자신의 의견을 잃어버린 여자,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어 갈팡질팡하는 여자 등 다양한 여자들은 한번씩 이 화려한 구두를 신고 나가는 기회를 통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니면 모르채 살아가고 있었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된다.



어렸을 때의 나는 엄마의 화려한 뾰족구두를 신어보며 이런 예쁜 구두를 신은 커리어우먼이 되어 당당하게 거리를 걷는 어른이 되어있는 모습을 꿈꿨었다. 고등학생 때는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며 주인공 캐리처럼 예쁜 구두를 잔뜩 모으고, 마놀로블라닉 웨딩슈즈를 신는 모습을 꿈꿨었다. 그러나 24살인 지금의 난, 하이힐을 신어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편한 단화만 신고 다니는 여대생이 되어있다. 다행히도 요즘은 단화를 신고 다니는 여자들이 많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 꿈꿔왔던 모습과 현실이 달라 실망스러운건 사실.


책을 덮자마자 당장 예쁘게 화장을 하고 나가 나에게 어울리는 예쁜 구두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역시나 이런 마음과는 다르게 귀찮아서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이는걸로 끝냈지만, 언젠가 예쁜 구두를 나에게 선물한다면 이 구두는 나에 대해 '넌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일단 좀 움직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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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치를 찾으려면 먼저 자기 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에서 풍요로움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 놓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 속에서 벗어나기.'
'사람은 행복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을 때 행복해진다.'
'어느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결정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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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발을 디디고 불꽃처럼 살아 보기.'
'자신이 다른 것을 포기하고라도 얻고 싶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욕망의 온전한 주인이 될 때 삶은 당신 편이 된다.'
'삶에 문제가 있는데 원인을 모르겠다면, 당신에게 용기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것.'


'모든 여자의 삶은 그대로가 아름답다. 그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여러 번 만나다 보면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만날수록 자꾸만 거슬리는 일이 생겨. 말로는 쉽게 결혼 얘기도 꺼내고 하지만 행동을 보면 나를 정말 좋아하긴 하는 건가 의문이 생길 때가 많아. 그 사람이 함량 미달인지, 내가 나이 들면서 까다로워진 건지 모르겠어."


그녀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그 남자가 좋은 남자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는 남자의 감정을 판단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을 쓰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상대방의 조건과 감정 그리고 자신의 감정 사이에서 계산과 타협을 하려 드는 것이다. 그런 계산은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반드시 꼬이기 마련이다. -p, 30



나는 전에 그녀를 보면서 인간은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때 지속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순간의 합이 곧 인생 전체가 된다는 내 계산은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 미래를 공유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은 공허하고 공허해서 아무리 더해도 그 합이 양수가 될 수 없었다. 


그녀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들은 진짜 이별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전에도 여러 차례 헤어진 적이 있었지만 진짜로 헤어질 수는 없었다. 진짜 사랑을 전제한 만남이 아니었기에 이별도 매번 흐지부지되곤 했다. 깊지 않은 관계만큼이나 그들은 이별도 얄팍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그녀가 남자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에 이별에도 무게를 더할 수 있었다. 늘 어딘가 희미했던 남자도 이번만큼은 '진짜'를 직감적으로 알아챈 듯했다. 남자와 완벽하게 헤어지고 나서 그녀는 꽤 오랫동안 몹시 앓았다. -p, 73~74



인간의 삶에 누구에게나 통하는 정답은 없지만 '자신만의 정답'은 필요한 것 같다. 그 정답을 보기 위해서는 자기 삶의 안개, 즉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모호함을 걷어 내야 한다. 그 본질의 실체가 아무리 추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라 해도 말이다. 비비안이 자신의 사랑을 분명하게 깨닫고 나서야 오히려 진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었듯이.


알고 보니 인간은 자기 삶에 대한 명확함 없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없는 동물이었다. -p, 77



인간은 자기의 삶을 자기 의지로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때 자유를 느낀다. 선택의 결과가 어찌 되든 자기 의지로 결정해야 한다. 아무리 성공적이어도 남이 대신 해주는결정 속에서만 사는 건 의미가 없다. 사람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행복도 자유의 범위 안에 있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p, 119



"엄마가 자꾸 나가라 나가라 하는데 왜 그래야 해? 난 그냥 이 집이, 내 방이 제일 편한데."

그녀는 '편한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인간의 삶을 오래 관찰하면서 인간은 '불편하더라도 필요한 일'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나 역시 구두 판매 행사장에 나갔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인간의 인내는 소모성 배터리와 같아서 불편함이 지속되면 방전되고 말지만 가끔은 불편함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항상 그런 순간에 인간들은 자기 삶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그 무언가를 갖게 되더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겉보기에는 편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불편한 삶을 계속 살게 된다. -p, 207



인간의 삶에서 좋은 모든 것들은 결단력으로부터 나온다. 익숙한 것이 편한 것은 본능이며, 제 아무리 나쁜 거라고 해도 익숙한 것을 버리는 데는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도 알게 되었다. 자신은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라는 걸. -p,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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