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클래식 클라우드 31
노승림 지음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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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 속되고 아름다운 것을 모두 포용한 영원한 방랑자

구스타프 말러의 자취를 따라가다

여행을 통해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전문가의 해박한 배경지식도 함께 소개되는 클래식 클라우드, 이번 편에서는 천재적인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거장 구스타프 말러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혹시 별자리가 쌍둥이자리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이중성을 지녔던 남자 말러. 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머물렀던 빈의 음악계에 크나큰 돌풍을 일으킨 개혁가지만 정작 아내인 알마의 음악 활동을 전면 금지했던 가부장적 의식을 지녔던 말러는, 자신의 작품에서도 특유의 이중성이 나타난다. 행복한 가운데에서도 비극적 운명을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 세계를 선보인 말러. 행진곡과 같은 발랄하고 씩씩한 곡조 뒤에 한없이 비극적인 장송곡이 이어진다고 하니 그의 음악이 가진 아이러니가 기대되었다. 책을 읽으며 그의 1번 교향곡 : 거인을 감상했는데, 불꽃같이 살다간 한 작곡가의 고뇌에 찬 땀방울이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듯했다.

말러는 1860년 에코 칼리슈테에서 태어나 이흘라바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선술집을 운영하고 사업에 수완이 있었던 아버지에 비해서 어머니를 닮아 감수성이 예민하고 몽상가의 기질이 컸던 소년 말러. 아무래도 아버지와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듯 보였다. 삶의 환희와 비극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든다는 그의 음악적 모순은 아마도 유소년기 성장 환경에서 온 듯하다. 아버지는 결혼 생활 내내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면서 어머니를 학대했고 많은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경험한 말러.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이런 비극적 상황을 경험할 때마다 거리에서는 너무나 발랄하고 신나는 행진곡이 울렸다고 하니 그가 경험했을 감정의 부조화가 대단히 깊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 가장 괴롭고 슬픈 상황에 가장 즐거운 배경음악이 울려 퍼지는 정서 부조화의 순간은 이 집에 비일비재했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비극이 부재할 때도 이 집안은 그리 화목한 편이 아니었다. (.....)


어느 날 구스타프는 부모가 사납게 싸우는 모습에 겁에 질려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작정 나오고 보니 유랑 밴드가 <오 그대 사랑스러운 아우구스틴>이라는 오스트리아 민요를 경쾌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


말러의 음악에서 슬프고 비극적인 선율에 반드시 해학적인 웃음이 뒤섞이는 이유는 이처럼 어린 시절 가장 슬프고 우울한 순간에 즐거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존재하는 상황을 일상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 58쪽-

그의 음악 세계를 지배한 키워드가 "세속" 과 " 죽음"이라면 그의 평생을 지배한 키워드는 바로 "유대인과 완벽주의" 가 아닐까 싶다. 당시 유럽 사회의 분위기상 유대인은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했다. 평소에 종교 활동에 무심했고 나중에는 가톨릭으로 전향하기까지 했건만 말러는 내내 반유대주의자들의 차별과 따돌림을 겪어야 했다. 평생 이방인처럼 살아야 했기에 단원들과 대중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던 그는 당시 빈 음악계에 만연했던 슐람페라이 문화 ( 안정주의, 대충대충 하려는 문화 )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리허설에 열심인 단원, 노래와 연기를 동시에 하는 성악가를 원했고 성에 차지 않는 사람은 가차 없이 해고했다고 하니 말러가 이끌었던 무대는 얼마나 긴장감이 맴돌았을지 상상이 된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힘들었겠지만 내가 관객이었다면? 말러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다면 두말 않고 달려갔을 것 같다.

" 그의 지휘는 빈에서의 첫 임기 1년 내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지휘봉은 독이 잔뜩 오른 뱀처럼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오른손으로는 서랍장 제일 깊숙한 곳 밑바닥을 뒤져 올리듯 오케스트라로부터 음악을 끌어냈다. (...) 지휘 도중 가시에라고 찔린 듯 의자에서 풀쩍 뛰어올랐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온몸을 움직였다." - 101쪽 -

독재자이자 완벽주의자였던 말러.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실도피적이고 몽상가 기질이 있었던 말러에게 자연은 특히나 좋은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휴가 때마다 호수나 숲이 있는 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작곡 활동에 몰두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호수가 자신에게 말을 건다고 할 만큼 호수와 주변 환경에 푹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침마다 수영을 하고 주변 산책을 하며 영감을 얻었는데, 하루는 괴성을 지르는 까마귀 소리를 듣고 교향곡에 필요한 모티프를 끄집어내기도 했다고 한다. 빈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로 평가받고 동시에 최악의 작곡가로 평가절하를 당하는 등 여러 희로애락을 겪는 와중에도 휴가 때면 철저하게 자신을 고립시켜가며 작곡에 몰두했던 말러. 평생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말러에게 자연은 휴식과 영감을 모두 안겨준 것으로 보였다.

말러를 수식하는 키워드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 천재적인 지휘자이자 작곡가 " 가 아닐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말러가 미치광이 감독이라고 불렸다던 시절, 빈 궁정 오페라 극장으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의 완벽주의가 얼마나 완성도 높은 연주를 이끌었을지.. 상상만 해도 굉장했을 것 같다. 함께 일했던 단원들이나 반유대주의자들은 말러를 좋아하지 않았겠지만 관객들은 얼마나 행복했을 것인가? 이 책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평생 그를 따라다닌 유대인이라는 꼬리표.. 어릴 때 경험했던 형제자매들의 이른 죽음과 불행했던 가정 환경... 딸 마리아의 죽음과 아내 알마의 남성 편력 ... 비극적 인생은 그를 우울과 몽상으로 이끈 동시에 그를 독창적인 예술 세계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든다. " 그는 만물 안에서 살았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살았다."라는 제자의 말처럼 만물을 두루 포용한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던 말러가 바로 현대 음악을 대표하는 선구자가 아닌가 싶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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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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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님, 오셨다면 <딱> 소리를 내주세요.

거리의 마술사 제니, 우당탕 기상천외한 수사에 뛰어들다

거리의 마술사인 제니의 모험 이야기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남들의 눈을 속이는 환상술사, 즉 마술사가 같은 계열인 심령술사들의 속임수를 밝혀낸다는 설정이 다소 모순적이긴 하나 대단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 작품. 또한 조나탕 베르베르가 한국인이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인 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드님이란 사실도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쩐지... 메인 스토리 사이에 끼워 넣은 탐정 지침서와 돌아가신 제니 아버님이 일기처럼 남긴 마술의 길, 즉 여러 마술 기법에 대한 안내서를 보고 조금 아버지 냄새가 난다 했지.

이야기는 1888년 뉴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공 제니는 매우 재능 있지만 아직은 거리에서 공연할 수밖에 없는, 가진 것 없는 젊은 마술사이다. 구경꾼들이 내는 몇 푼의 동전들이 그녀가 벌어들이는 소득의 전부이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입장. 그러던 어느 날 제니는 그동안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봐온 핑커턴 탐정 사무소 소장 로버트 핑커턴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제니가 솔깃할 만한 제법 큰돈을 제시하면서 그녀를 탐정으로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데. 그녀가 할 일은 바로 심령 술사인 폭스 자매의 속임수를 밝혀내는 것!

마술사로서의 재능도 뛰어나지만 눈치도 빠르고 굉장히 똑똑한 제니. 그녀는 자신의 인간적인 매력과 친화력을 이용하여 폭스 자매 중 좀 더 젊은 쪽인 마거릿과 친구가 되는데 성공한다. 이제 폭스 자매가 심령술을 하는 동안 어떻게 "딱" 소리를 내는지 알아내고 그들의 속임수를 만천하에 알릴 일만 남았다. 소매에 기계를 감추는 걸까? 아님 관절로 소리를 내는 걸까? 하지만 일은 제니가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심령술에 대해서 공격하는 무리들이 많았던 지라 폭스 자매는 평소에 그에 대비해왔고, 또 제니를 마땅찮아 하는 어떤 인물의 방해공작에 의해서 그녀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제니와 로버트는 폭스 자매들 중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케이트 폭스를 찾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게 되는데......

소설의 배경은 1800년대 후반 뉴욕이다. 남북전쟁 이후 약간 어수선한 미국의 분위기를 아주 생생하게 담고 있는 소설이다. 당시에 심령주의 운동이 굉장히 인기가 있었고 거의 미국을 휩쓸다시피했지만,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청교도가 지배하는 국가로써 기독교 단체의 힘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폭스 자매들처럼 심령을 부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분위기도 존재했다. 사람들이 심령주의에 물들지 않기를 바랐던 여러 종교들이 로버트 핑커턴과 같은 탐정들을 시켜서 심령 술사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계속 모색해왔던 것. 중간중간 작가가 끼워 넣은 핑커턴 탐정 지침서를 통해 당시에 있었던 마녀사냥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독자들에게 소개된다는 면도 흥미진진하다.

조나탕 베르베르의 소설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는 여러 면에서 독자들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었던 당시 아버지의 길을 이어받아 꿋꿋하게 마술사의 길을 가는 제니. 마술에 대한 그녀의 순수한 열정과 속임수를 금방 파악해 내는 영리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돈 때문에 탐정 일을 하게 되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라던가 사람들 속에 금방 녹아들어 가는 친화력 등등은 로버트 핑커턴이 그녀를 고용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1800년대 후반 미국을 휩쓸었던 심령주의 분위기는 폭스 자매의 인기를 통해 잘 드러나고 그런 분위기를 억압하려고 애썼던 종교 단체들이 오히려 더 전전긍긍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심령술사 활동에 환멸을 느끼고 숨어버린 케이트를 결국 찾아내는 로버트 핑커턴과 제니.. 과연 그들은 폭스 자매의 거짓과 심령술이 사기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을까? 베르베르 집안 특유의 재기 발랄한 문체와 흥미로운 배경지식이 돋보이는 소설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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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2
유지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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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도... 나의 모든 것을 그에게 고백하고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괴물이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괴물이어서, 서로의 상한 영혼을 알아봤던 것이 아니었을까? "

1편에서 급성 백혈병을 앓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희주의 공방에 와서 미술 치료를 시작한 수현. 킬러의 삶을 살면서 스스로 괴물이라 생각했던 수현은 일주일에 한 번씩 미술 치료를 받으며 깊은 무의식 속 숨어있던 본인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 거의 삶을 포기하고 있었기에 죽음을 기다렸던 입장이지만 수현을 걱정해 주고 지지해 주는 여자 희주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서 살고 싶다는 의지도 품게 된다.

2편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치료사와 환자로서 만남을 지속하게 되지만 이번 편에서는 희주와 수현을 평생 불행하게 만들었던 살인 사건들, 그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그리고 1편에서는 주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더듬어가듯 사랑의 감정을 느껴가는 희주와 수현의 로맨스가 주로 스토리에 녹아있다면, 2편에서는 희주 어머니의 살인 사건을 맡아 조사했던 형사의 아들인 정우성 형사가 본격적으로 다시 사건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수현이 저질렀던 과거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심판의 칼날이 좀 더 수현에게 가까이 다가왔달까? 1편에 비해서 좀 더 스피디하고 흡인력 있다고 느껴졌던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2편으로 들어가 본다.

여전히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결정적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현. 희주는 콜라주라는 미술 기법을 통해서 그의 무의식 속 숨어있는 기억들을 끄집어내려고 애쓴다. 희주는 수현에게 "안전한 장소"에 대한 콜라주와 그의 기억 속 "어두운 장소"에 대한 콜라주를 만들어 보라고 한다. 새 둥지와 기타 그리고 하얀 꽃잎으로 "안전한 장소"를 만든 수현. 희주는 이미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수현이 생각하는 안전한 장소가 그들이 미술 치료를 하고 있는 그 공방이라는 사실을 알고 감동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두운 장소"에 대한 콜라주. 수현은 검붉은 꽃잎과 눈물을 흘리는 나신의 여인 등등을 떠올린다. 더불어 얼굴 없는 여자아이와 피를 흘리는 초승달이라는 악몽을 자주 꾼다고 이야기하는 수현... 그들을 가로지르는 사건의 핵심 비밀이 숨어있는 이미지들.. 정신분석을 통해 희주가 알게 될 진실은?

한편 우성은 미국 유학 시절 자신이 배웠던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라는 기법, 즉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누군가의 감정을 알아내는 기법을 통해서 과묵한 남자 수현의 감정을 짚어낸다. 흑곰이라 불리는 한 조폭의 장례식에서 만나게 된 수현이 흑곰의 딸을 바라봤을 때의 얼굴 표정을, 자신이 배운 기법과 비교해 보고는 그가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사실을 알아내는 우성. 수현이 왜 흑곰의 딸에게 죄책감을?? 결국 우성은 과거 몇 년 동안 벌어졌던 조폭 관련 살인 사건들과 수현이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거라고 추측하게 되는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희주와 수현,, 이들의 운명은 과연?

나의 삶을 망가뜨린 장본인을 사랑하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희주와 수현은 마치 서로 물고 물리는 두 마리의 뱀처럼, 혹은 얽히고설킨 등나무처럼 복잡하게 꼬여버린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표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턱하니 사랑에 빠져 버리게 된 것. 개인적으로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지 않고 만약에 친구가 그런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면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하고 간섭을 하겠지만, 이들 두 사람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 첫눈에 반한 사랑 " 은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천년 혹은 만년 아니면 억겁을 뛰어넘은 생의 끝에 만나게 된 인연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렇게 격렬한 감정이 수반되는 사랑 이야기는 내 취향이 아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좀 너무 신파적이고 과도하게 비극적인 설정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킬러로 길러진 아름다운 남자 수현, 백혈병에 걸려 죽음만을 기다리다가 운명적 사랑을 만난 상황 등등 그리고 꼬일 대로 꼬여버린 운명이라든가, 현실감도 많이 떨어지고 너무 작위적이다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그러다가 문득 책에 빠져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세상은 요지경이고 별별 일이 다 있으니 이런 상황이 없으란 법도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중에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달까?

미술치료를 통해서 무의식이 이렇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신기했고 정우성 형사의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라는 얼굴 표정 분석 기법도 신기했다. 무엇보다도 얄궂은 운명도 극복해 내는 희주와 수현의 뜨겁고도 순수한 사랑이 정말 인상 깊었다. 감정적으로 깊게 몰입하게끔 만들었던 책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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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1
유지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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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소년은 결국, 용서받을 수 있을까?

당신은 인간 내면의 감출 수 없는 본성을 피할 것인가, 마주할 것인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남의 목숨을 빼앗아가며 살아가는 남자 수현. 매번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음의 굿판을 벌이는 냉정한 킬러이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이 일은 쉽지 않았던지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 의사는 포기하지 말라며 치료를 권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이 초연한 남자는 치료받기를 거부한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우울증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는 것으로 생각한 정신과 의사의 권유에 의해서 수현은 미술 치료를 받게 된다.

한편 미술치료사인 희주는 자신의 공방에 찾아온 환자 수현을 보고 두려운 마음을 품게 된다. 그냥 단순 환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눈빛이 너무나 냉혹하고 살기까지 어렸기 때문. 하지만 그가 그린 그림을 통해 들여다본 그의 마음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악과 선, 강함과 약함, 어른과 소년.. 그의 마음속에는 이렇게 서로 상충하는 면이 함께 들어 있었던 것. 눈빛에 살기를 띄고 무표정하며 잔인해 보이는 한 남자에게서 소년 같은 순수함을 발견하게 되는 그녀.

이 책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은 설정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고 흥미진진하다. 어릴 적에 엄마가 누군가에게 살해되고 평생 그 기억에 갇힌 채 살아가는 여자 희주. 유명 화가였던 엄마가 남긴 유작을 팔아치우고 젊은 여자와 결혼해 버린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그리고 유학을 가서 만난 연인에게 버림을 받고는 거의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살아온 그녀. 그런데 환자로 찾아온 수현도 굴곡 있는 인생이라면 만만찮다. 부모님을 잃고 보육원을 전전하다가 너무나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누나와 함께 살게 된다. 누나와 함께 산 2년은 천국이었다. 그러나 함께 산지 채 2년도 되지 않아서 누나가 한 공사장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후로 삶의 의미를 잃은 채 킬러로 살아온 인생.. 스스로를 끔찍한 괴물이라 믿으며 죽음이 찾아온 것을 반기고 있었는데, 그런데,, 살고 싶게 만드는 여자가 나타났다!

사실 희주는 자신의 엄마를 죽인 살인자를 찾아달라고 흥신소에 의뢰를 해놓은 상태였는데 그 흥신소에 소속된 킬러가 바로 수현이었던 것. 이렇게 의뢰인과 킬러가 치료사와 환자로 만나게 되었다. 희주는 수현이 킬러란 사실을 아무것도 모른 채 일주일에 한 번씩 그를 만나게 되는데, 수현이 그리는 그림을 통해 황폐해 보이는 그의 내면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순수함에 점점 끌리게 된다. 누나가 죽은 이후로 마음에 빗장을 굳게 걸은 채 살아온 수현도 미술 치료를 통해 점점 마음을 열면서 희주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몰랐던 치명적인 비밀이 있었으니...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은 어릴 적 봤던 홍콩 누아르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비정하고 잔인한 살인 사건과 피의 복수가 있으나 그 이면에 소년과 소녀가 손 맞잡고 동산을 거니는 듯한 순수함이 엿보인다. 평소에는 냉혈하고 무자비한 킬러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은 남자의 순정이 두드러진달까? 이 책은 그러나 이런 드라마적인 요소 이외에도 수현이 미술치료를 할 때 받는 정신분석 과정이 대단히 흥미롭다. 마치 진짜 수현이라는 사람이 그린 것처럼 그가 그린 그림이 사진으로 등장하고 희주가 꼼꼼하게 분석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단순히 그림 하나 만으로도 환자의 심리를 낱낱이 분석해 내는 희주의 능력에 감탄을 했고 동시에 내가 미술치료를 받는다면 나의 무의식은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스릴러 로맨스? 혹은 로맨틱 스릴러? 정확하게 규정할 순 없겠지만 이 책은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냉정한 분석 뒤에는 서로를 향한 뜨거운 애정이 느껴지는.. 그런 독특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1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굉장히 흥미로워서 2권을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치 앞의 운명도 모른 채 서로에게 빠져드는 연인을 그리는 소설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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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타라 미치코 지음, 김지혜 옮김 / 더난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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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히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 손길 하나마다

한 땀 한 땀 삶이 짜여간다

나의 경우 부모님이 바쁘셨던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는 내내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지냈었다. 사과 농사를 크게 지으셨던 할머니는, 바쁘신 와중에도 손자 손녀들의 끼니를 잘 챙겨주려고 노력하셨고 그때 먹었던 할머니표 물김치나 된장찌개 맛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었던 할머니의 요리와 손길들... 내 어린 시절의 한 5할 정도는 할머니 댁에서의 삶이 차지한다.

일본 할머니는 어떻게 생활하고 계실까? 8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본인만의 삶에 리듬에 따라 충만한 생활을 이끌어가고 계신다는 "타라 미치코" 할머니. 유튜브 스타가 되어 크나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데 그녀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7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55년 된 서민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할머니. 2020년 우연히 손자와 함께 유튜브를 시작했고 처음에는 구독자가 가족뿐이었지만 두 달 후에는 구독자가 1만 명, 2022년 기준으로는 15만 명으로 늘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7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할머니가 지향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의 리듬에 맞게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용적이고 검소한 할머니의 살림 솜씨, 특히 요리 솜씨에 감탄했고 그녀가 삶의 어떤 부분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지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매우 긍정적인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였다. 30년째 쓰고 있다는 '10년 일기'를 3권째 쓰고 있다는데 기록이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정적인 내용은 담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한 번씩 꺼내서 읽어본다고 하는데 추억놀이가 얼마나 재미있을지 .. 상상이 된다.

" 세 권째 쓰고 있는 10년 일기. 쓰고 있는 내용이 있을 때는 길게 쓰기도 합니다. 

날씨가 맑았다, 보름달이 예뻤다, 등 날씨만 써놓은 날도 있어요.

'피곤하다' 같은 부정적인 내용은 쓰지 않아요. " - 161쪽 -

"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지요.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고 좋지 않을 때도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 - 204쪽-

그러나 역시 내가 주부라서 그런지 책 속 내용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녀의 부엌살림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간단하지만 맛깔스러워 보이는 반찬을 뚝딱 만들어내는 솜씨에 감탄하고 말았다.

" 혼자 먹기 딱 좋은 나만의 식단을 알차게 꾸립니다 " - 62쪽 -

" 예쁜 그릇은 오래된 친구입니다" -56쪽-

혼자 살다 보면 식사를 아무렇게나 하기 쉽다. 하지만 타라 미치코 할머니의 경우 프로 혼밥러라고 해야 할까? 혼자 하는 식사에 놓인 반찬이 이렇게 맛깔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시금치 깻가루 무침은 시금치 삶고 깻가루와 간장으로 바로 무쳐내면 되고 무 오이 간장 절임은 깍둑썰기를 한 무와 오이에 간장을 뿌린 뒤 몇 시간 재워두기만 하면 된다. 이 요리 외에도 달걀, 어묵, 양파로 간단히 볶아낸 사츠마아게 볶음밥도 굉장히 맛있어 보였다. 

요리도 요리지만 평생 모아 오고 있다는 예쁜 접시와 그릇들도 요리를 한층 맛있어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역시 보기에 좋은 떡이 맛도 좋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원칙을 담아서 이끌어오고 있는 충만한 삶! 타라 미치코 할머니가 이끄는 삶은 은은한 빛을 내면서 유튜브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것 같다. 연세에 비해서 굉장히 젊게 사시는 것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긍정적인 마음 자세와 규칙적인 생활 태도 등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사는 삶도 좋아 보였다. 인간관계는 난로와 같은 것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가까워지면 너무 뜨겁고 멀어지면 너무 춥고. 할머니는 독립적인 생활을 지향하면서 넓고 얕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좋아 보였다. 순간순간에 충실하고 사람에 목매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충분히 삶을 만끽하면 살아가는 그런 인생... 나의 노년도 타라 미치코 할머니의 삶을 닮았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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